경기대학원동양문화과 학술연구 및 풍수답사

▲천안각원사에서 청동아미타불상을 뒤로하고 ⓒ강남구소비자저널

[강남구소비자저널 = 이경영 기자] 경기대학교대학원 동양문화과에서는 지난 4월8일 토요일에 학술연구 및 풍수답사를 천안으로 다녀왔다. 전통적으로 이어온 풍수문화기행은 석,박사 통합 및 졸업한 동문들도 함께 이어온 행사로서 경기대학원 동양문화학과의 단합과 결속에 큰 역활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번 풍수답사에는 김주환교수, 진희권교수, 류호기교수, 이강진교수, 외 각담당교수와 60여명의 석,박사과정 학생들과 동문들이 참여하였다. 일정은 서울 양재역을 출발하여 천안 각원사를 탐방하고 점심식사를 한후 한명회선생묘소를 탐방하고  조병옥박사 생가터를 둘러본후, 천안에서 활동하는 박사과정의 김흥자의 소담카페에서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귀경하였다.

천안은 고려 태조 때 고을 터를 오룡쟁주형의 명당으로 보았는데, 남산 밑에 있는 동헌 터가 이에 해당된다. 동헌을 품은 남산은 용의 구슬에 해당하므로 이곳에 용주정(龍珠亭) 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천안지방에는 ‘용(龍)’ 자가 든 지명이 약 20여 개소가 된다. 고려 태조 이후 조선 인조까지 국왕의 거둥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천안은 본래 동서 도솔(兜率)의 땅 인데 930년(고려 태조 13) 삼국의 중심이고 전략적 요충지라 하여 천안부로 하고 도독을 두었다. 이때 천안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여졌다. 고려 태조가 천안의 왕자봉에 올라 지세를 살폈는데, 이곳에 성을 쌓으면 천하(天下)가 편안(便安)해진다는 술사 예방의 말에서 지명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995년(고려 성종 14) 환주도단련사로 고쳤다가 목종 때 폐지하였고, 현종 때 다시 천안으로 고쳤으며, 1310년(고려 충선왕 복위2) 영주(공州)로 고쳤다가 1362년 (고려 공민왕 11) 다시 천안부가 되었다. 1413년(태종 13) 영산군(공山郡)으로 고쳤다가 다시 1416년(태종 16) 천안군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천안군이 되었고, 1914년 목천군과 직산군을 병합하였다. [목천현과 직산 현은 지명유래 ▷▷ 목천면과 직산읍 참조] 1920년 영성면을 천안면으로 고쳤고, 1931년 천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 천안 읍과 환성면을 합하여 천안시가 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천원군으로 개편되었다. 2008년 일반 행정구를 신설하여 동남구와 서북구로 나누어 관할케 하였다. · 동남구東南區Dongnam-gu 동남구는 시의 동부와 중남부에 위치한 구이다. 2008년 자치구가 아닌 일반 행정구로써 천안시를 두 지역으로 나누어 동남구와 서북구를 신설하면서 만들어진 구이다. 구 지명은 시의 동남부를 관할한 것에 유래하였다. 병천천이 지류인 광기천(廣基川), 산방천(山方川) 등을 합류 동부를 남동류하여 미호천에 합류한다. 「조선지형도」 에는 목천읍이면으로 병천면이 갈전면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의 천안면을 포함해 동남쪽의 면들이 오늘날의 동남구이다.

▲한명회묘소 열심히 설명하는 류호기교수와 경청하는 학생들 ⓒ강남구소비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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