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칼럼 유준형] AI와 가짜 뉴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가짜 뉴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 띵동! 지금 시각 강남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거짓은 이제 문장으로만 오지 않는다. 사진으로 오고, 영상으로 오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 낸 음성으로 온다. 한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시작된 왜곡이 몇 시간 만에 가족 단톡방을 건너가고, 교실과 직장과 시장 바닥까지 흔든다. 예전의 가짜 뉴스가 사실을 비틀었다면, 오늘의 가짜 뉴스는 진실의 얼굴까지 훔쳐 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는 단순히 정보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멈추어 의심해야 하는지조차 흐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 나는 IT 분야에서 40여년을 보냈다. 컴퓨터가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부터, 알고리즘이 사람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방식까지, 이 안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위험한지 직접 만들어 보고 가르쳐 왔다. 그런 나조차 요즘은 휴대전화 화면 앞에서 한 번 더 멈추게 된다. 지금의 합성 기술은 기술자의 눈에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러니 보통의 시민이라면, 자기 의심이 부족하다고 자책할 일이 아니라 시대 자체가 그만큼 위태로워졌다고 말해야 옳다. 2024년 5월, 부산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60대 어머니가 딸의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친구 보증을 섰는데… 내가 잡혀 왔어.” 목소리도 말투도 영락없는 딸이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집 근처 은행으로 달려가 2000만 원을 인출했다. 다행히 창구 직원이 어딘가 이상하다 싶어 112에 신고했고, 경찰 조사 끝에 그 목소리가 AI로 합성된 딥보이스였음이 밝혀졌다. 한 한국경제가 보도한 이 사건을 읽으며 나는 두 번 멈췄다. 한 번은 “엄마, 나…”라는 그 다섯 글자 앞에서 무너졌을 어머니의 마음이 떠올라서, 또 한 번은 그 어머니를 구한 것이 첨단 기술이 아니라 창구 직원의 한 번의 의심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이 사건은 예외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 보고서에서 허위정보와 조작정보를 2년 연속 가장 큰 단기 위험으로 꼽았다. 차가운 숫자처럼 보이지만, 부산의 그 어머니를 떠올리면 그 숫자가 가리키는 현실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무엇이 사실인가?”를 묻는 사회에서, “무엇을 믿어도 되는가?”를 두려워하는 사회로 옮겨가고 있다. 가짜 뉴스의 가장 무서운 힘은 사람을 속이는 데만 있지 않다. 더 무서운 힘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 뉴스조차 믿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AI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실을 보면서도 “저것도 가짜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사실을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존재 자체를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기 쉽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순간은 의견이 갈릴 때가 아니라, 같은 사실 위에 함께 설 수 없을 때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다시 진실을 붙들 수 있을까. 나는 화려한 기술이나 빠른 검증 도구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답은 훨씬 오래된 자리에 있다. 출처를 묻는 한 번의 습관, 자극적인 주장 앞에서 잠시 멈춰 교차 확인을 해보는 작은 절차, 그리고 언론과 학교와 공공기관이 책임을 미루지 않고 나눠 지는 자세. 이 평범한 것들이 위기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된다.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거짓도, 출처를 묻는 한 번의 손가락 앞에서는 힘이 약해진다. 그래서 교육의 역할이 더 커진다. AI와 가짜 뉴스를 말하면, 기존 학교 교육이 낡았으니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계실까 봐 미리 말씀드린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읽기와 쓰기, 역사 이해, 논리 훈련 같은 기본 교육이 더 절실해졌다고 본다. 학생이 문장을 정확히 읽지 못하면 조작된 정보를 구별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아이가 자극적인 영상 제목을 보고 ‘진짜예요?’ 묻는 그 한순간, 그 옆에 선 선생님의 응답이 그 아이의 30년 뒤 시민의식을 결정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힘,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윤리—이런 것들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교실이라는 자리에서 길러진다. 알고리즘이 길러주는 것이 아니다. 유네스코도 생성형 AI를 교육과 연구에 활용할 때 인간 중심의 접근과 연령에 맞는 윤리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술을 들이기 전에, 사람이 그 기술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함께 보자는 뜻이다. 그 한마디가 무겁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말한다. 가짜 뉴스는 AI 시대 이전에도 늘 있었고, 결국은 사람의 판단력 문제 아니냐고. 일리가 있다. 거짓은 언제나 있었고, 군중심리도 늘 인간 사회의 약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다르다. AI는 거짓의 생산 비용을 급격히 낮추고, 유포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며, 외형적 그럴듯함까지 더한다. 한때는 조악해서 의심받던 조작물이, 이제는 너무 정교해서 먼저 믿고 싶어지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전과 같은 수준의 경계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AI를 공포의 대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같은 기술이 거짓 영상의 흔적을 추적하고, 사실 확인을 돕고, 방대한 자료를 교차 검토하는 데에도 쓰인다. 내가 현장에서 매일 만나는 AI는 위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검증 도구이기도 하다. 문제는 늘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방향이다. 진실보다 자극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도구를 위험하게 만든다. 거짓은 늘 사람의 불안을 먹고 자라고, 진실은 사람의 인내 위에서 겨우 자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다. 단톡방에 올라온 그럴듯한 영상을 받았을 때, 곧바로 옆 친구에게 전달하지 않고 한 호흡 멈추는 일. 그 멈춤이 가짜 뉴스의 가장 무서운 동력인 “속도”를 끊어낸다. 누군가가 “잠깐, 출처가 어디야?” 한마디만 던져도, 가짜 뉴스의 전파 사슬은 그 자리에서 끊어진다. 부산의 그 어머니를 구한 것도 결국 그런 한 호흡이었다. 첨단 기술이 아니라 한 창구 직원의 의심이, 한 가족의 통장과 한 어머니의 자존심을 지켰다.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우리가 가장 쉽게 속는 정보는, 모르는 사람이 보낸 정보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꼭 드는 정보다. 내 생각과 맞는 영상일수록,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약점을 드러내는 자료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 같은 편이 보낸 거짓을 가장 빠르게 퍼뜨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진실은 시끄럽지 않다. 그래서 더 천천히 읽어야 하고, 더 조심스럽게 믿어야 한다. 화려한 캠페인이나 새로운 검증 기술이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우리를 구하는 것은 손가락을 잠시 멈추는 평범한 시민들의 작은 절제, 출처를 한 번 더 따라가 보는 수고, 그리고 자기 편의 정보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정직함이다. 진실은 저절로 이기지 않는다. 누군가 손가락을 멈추는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진실은 가까스로 한 번 더 살아남는다. 우리가 지켜줄 때에만, 겨우 살아남는다. 주요 참고자료 한국경제, “영락없는 자녀 목소린데…AI 보이스피싱, AI로 방지”, 2025.4.8 세계경제포럼, Global Risks Report 2025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5 Ofcom, Understanding misinformation, 2024…

[정봉수 칼럼] 개정 노조법상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참가 절차

[정봉수 칼럼] 개정 노조법상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참가 절차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의의  개정 노동조합법 제2조에서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정봉수 칼럼] 노란봉투법을 통한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

[정봉수 칼럼] 노란봉투법을 통한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현행 노동법은 헌법에 기초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라 명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이 존엄성을 보장되도록 법률로 정한다.” 즉 이는 근로기준법의 제정 목적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리고 헌법 제33조 제1항 역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라 규정하면서 노동3권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노동조합법이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있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형사 처벌을 한다. 노동조합법은 사용종속관계에 종속된 개별 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여 노동자 집단을 만들고 사용자(자본가)에 대항하여 대등하게 협상하고 필요시 파업을 통해 노사간에 공정한 규율을 정하도록 지원한다. 그런데, 왜 헌법에서 노동3권을 기술하게 되었는가? 헌법에서 노동3권을 기술하고 있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없으면 사용자는 근로조건을 근로기준법에 맞추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의 향상을 이루지 못한다. 서양의 근대 시민법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하는 소유권절대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법의 원칙을 적용하게 되면, 노동자는 사용자에 종속노동을 하기에 더 나은 근로조건을 요구할 경우에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근로조건의 향상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의 위협에 노출됨에 따라 단결하지 않으면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단결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에 자본가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이 등장하여 자본가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의 집단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국가는 노동자의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지 아니하고는 자본주의적 근대 시민법 질서 자체도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사회정의의 실현과 근로자의 실질적인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노동3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독일은 1919년의 바이마르헌법에서 노동자의 단결 자유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1935년 와그너법 (Wagner)에서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명문화 하였다. 그러면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3권은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보장해주고 있는가? 노동3권은 근로자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스스로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유리한 교섭을 이끌어내기 위한 파업이나 태업 등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러한 노동3권은 헌법에서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므로 이를 행사하는 노동자의 집단인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직접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이에 사용자가 교섭에 대응하지 않으면 이는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과 함께 노동위원회의 구제의 대상이 된다. 또한 노동조합은 더 나은 근로조건을 갖기 위해서 집단적으로 쟁의행위(파업)를 할 수 있으며, 이는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형사 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조법의 보호를 받는다. 결국 사용자는 노동자의 집단적 파업에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노사간의 갈등을 해결해주는 최종적인 합의가 단체협약이고, 노사관계에 있어 가장 상위의 규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이 노동조합의 역할은 노사간의 갈등 해결의 방향을 제시한다. 지난 2026년 4월 포스코에 대한 눈에 띄는 2건의 노동뉴스가 있었다. 4월 8일 포스코는 조업 지원 협력사 노동자 7천명을 직고용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8일 뒤 4월 16일 대법원은 포스코 사내 협력사 노동자 223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근로자로 인정하였다. 즉, 포스코는 포스코 내 사업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내 하청 노동자 7천명의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차단하기 위하여 정규직으로 채용하였다. 이 사건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2011년부터 제기한 소송으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약 6년의 기간 동안 상당한 어려움과 불이익을 겪었다. 만약, 현 노란봉투법이 좀더 일찍 시행이 되어 하청 노조가 원청인 포스코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통해서 근로조건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하면, 해당 노동자들의 수고와 고통을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을 통한 노사가 대등하게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노사자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II). 그리고 하청 노동자들이 노란봉투법을 통한 노동3권의 적용 확대(III)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한다. II. 노사자치의 법적 구조와 제도 1. 헌법상 노동조합의 권리 헌법에서 노동3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헌법적 의미는 근로자단체라는 사회적 반대세력의 창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노사관계의 형성에서 사회적 균형을 이루어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간의 실질적인 자치를 보장하는 데 있다.  즉,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노동자를 사용하여 이윤을 얻게 되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들은 사실상 교섭력을 가질 수 없다. 이에 합법적인 단체로서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근로조건을 흥정할 수 있는 노동자의 집단이 노동조합이 된다. 이에 대해 국가는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공정한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있다. 이것이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의 의미이다. 2. 사용자성 확장을 인정한 판례와 노동부 지침 우리나라 노동법은 근로조건의 결정에 있어서 노사자치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평화를 위한 역사적 산물이다. 근로기준법 제4조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라 하면서 노사대등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거의 모든 근로규정에 있어서 근로자의 과반수 노동조합과의 합의 또는 협의를 요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제3항에서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에 관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말한다. 이하 “근로자대표”라 한다)에 해고를 하려는 날의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 각종 변형근로시간제나 휴가사용대체, 연차휴가 대체 사용 등에서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취업규칙의 변경 절차에 있어서도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 또는 의견 청취를 하여야 취업규칙으로서 효력을 가진다. 3. 노사자치제도를 통한 노사관계의 평화적 관계 노사자치제도는 헌법상의 노동3권을 보장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개별적인 노사관계에서도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사업주가 취업규칙에 정해진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과반수의 노동조합이 있는 반드시 과반수의 노동조합과 교섭을 통해서 동의 또는 협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회사의 규정으로 효력이 없다. 또한 3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은 근로자의 대표를 선정하여 노사 동수로 구성된 노사협의회를 운영할 법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하게 되면, 사용자의 이익추구라는 본능적 활동 때문에 노동자의 근로조건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III. 노란봉투법과 노동3권의 적용 확대 1. 노란봉투법의 도입 배경 우리나라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고용의 유연화가 법제화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확대되었다.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이 도입되었으나, 산업의 이중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확대되었다. 특히,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으나, 원청소속 직원과 하청직원의 급여 수준에 큰 차이가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 제2조(정의-사용자범위의 확대, 노동쟁의 개념의 확대)와 제3조(손해배상의 제한)를 개정한 내용에 대한 별칭이다. 그 유래는 2009년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과 관련이 있다. 쌍용자동차 법정관리인은 2009년 4월 경영정상화를 위해 7,135명 중 37%인, 2,646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2009년 5월에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가 8월까지 76일간 공장 점거 총파업을 진행하였다. 법원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참여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한 시민이 “4만 7천 원이라도 보태고 싶다”며 노란 월급봉투에 담아 한겨레 신문사에 보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공장점거 파업에 참가한 모든 조합원에게 재산상 가압류를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안타깝게도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근로자 중 30여명이 목숨을 끊었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그 때에 있었다면 2009년 쌍용자동차의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대항한 공장점거는 정당한 파업이고, 그 파업에 따른 참가조합원들에 대한 재산 가압류도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의 하청회사 노동조합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였다. 당시 조선업의 불황으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이 30% 삭감된 지 8년 이상 되었다. 조선업이 다시 호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청의 임금은 저임금으로 계속되었고, 이에 대해 하청 노동조합은 도크를 점거하는 농성을 하였다. 특히, 파업중 조합간부가 철제 구조물을 만들어 거기에 들어가 파업을 장기화하면서 언론에 주목을 받았다. 이 파업이 후 원청은 하청노조에 대해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 사건은 원청사용자가 하청근로자의 실질적 임금인상을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확장된 사용자 개념에 따라 근로계약 관계는 없지만, 실제로 원청이 하청회사의 근로자에 대한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로 본다. 즉, 하청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은 원청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하청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원청의 사용자가 거부하게 되면, 단체교섭 거부로 인한 부당노동행위가 된다. 원청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구제신청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원청 사용자는 변경된 사용자의 개념에 따라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여기서 노동조합법 제29조의2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하청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있지만, 하나의 교섭창구를 만들어 교섭을 요구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이 규정에도 불구하고 하청 노동조합이 사업장에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등으로 분리교섭이 필요한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분리교섭을 할 수 있다. 특히 하청노동조합은 다양한 하청회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교섭창구의 분리 신청이 많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된다. 3. 하청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하청근로자가 원청을 상대로 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하더라도 보통 5년이상이 되어야 확정이 되고, 그 상당한 기간 동안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직업을 변경하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 현대미포조선 위장도급 사례는 하청노조가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하청회사가 2003년 1월 31일 폐업하였다. 이에 대해 근로자 30명이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한 결과 대법원은 2008년 7월 10일 원청회사와 하청근로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하였다. 무려 5년이 걸려 해결이 되었다. 현대자동차 위장도급 사례에서도 하청회사에서 노동조합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2005년 2월 2일 근로자 15명이 해고 되었다. 대법원은 2012년 2월 23일 현대자동차의 위장도급을 인정하였다. 이 사건도 무려 7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앞서의 포스코의 사내하청의 경우에도 6년이 걸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사내 하청 근로자들이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노동조합을 통해서 설립하고,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것이다. 원청 사업주와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은 대등한 당사자간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자리이므로, 원청 사용자가 단체교섭 사항에 대해 수용하지 않을 경우, 하청 노조는 파업을 하여 교섭의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원청의 정규직에 해당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청 노동조합 소속의 근로자들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임금인상을 이끌어 낸다고 하면, 굳이 원청의 근로자라는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노란봉투법을 통해서 하청 노동조합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이 대폭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IV. 맺음말 헌법에서 노동3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는 근대시민법의 원칙만 인정된다고 하면, 종속노동으로 생존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은 근로기준법상의 최저기준에 머무르게 되어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갈등이 사회적 불안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노사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헌법은 종속노동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을 인정해주고 이를 통해서 노사 평화를 이루도록 헌법에서 노동조합을 보호해주고 있다.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수많은 정규직 근로자들이 정리해고 되었고, 그 정리해고된 자리에 기간제나 계약직, 또는 사내하도급으로 채워졌다. 같은 일을 하면서 정규직의 급여 50% 정도의 급여를 받는 하청 근로자들에게는 이번 개정된 노란봉투법이 원청의 노동자와의 근로조건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비정규보호법이 2007년 도입되었지만, 많은 원청 사용자들이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내하청으로 변형하거나 다양한 비정규직으로 변경하여 사용하였다. 이번 노란봉투법을 통해서 진짜 사용자를 찾고 그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해야만,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조합을 통해서 하청노동자의 노동조합이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것이다. 앞으로 노사 대등의 근로조건 결정원칙을 가지고 원청 사용자와 하청 노동조합간에 단체교섭을 통해서 서로 상생하는 노사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사진=노란봉투법(그림:정하은) ⓒ강남 소비자저널…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세종대왕: 인공지능 시대, 다시 묻는 백성을 위한 기술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세종대왕: 인공지능 시대, 다시 묻는 백성을 위한 기술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얼마 전, 중장년들을 위한 작은 강의 자리에서 한 분을 만났다. 평생 시장에서 옷가게를 하셨다는 6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손에 든 휴대폰 화면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시다가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교수님, 이거에다 그냥 말로 해도 알아듣는다는 게 정말이에요?” 나는 그분 옆에 앉아 함께 화면을 켰다. “한번 해보세요. 평소에 궁금하셨던 거 아무거나요.” 그분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건강보험에서 보내준 종이가 있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어요. 이거 좀 쉽게 풀어줄 수 있어요?” 사진을 찍어 올리자, 화면에…

[손영미 칼럼] 소년은 왜 춤추기 시작했는가

[손영미 칼럼] 소년은 왜 춤추기 시작했는가

–  Billy Elliot에 대한 공연 리뷰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인간은 때때로 자신에게 가장 금지된 곳에서 운명을 발견한다. 소년 빌리에게 그곳은 거친 복싱장이 아니라, 부드러운 발레 교실이었다. 탄광의 먼지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던 영국 북부의 음울한 회색 도시. 파업과 실업, 가난과 분노가 뒤엉킨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 거친 풍경 한가운데서 한 소년은 묻는다. “나는 왜 춤을 추고 싶은가.” 그 질문은 단순한 취미의 발견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자기 영혼의 진동수를 처음으로 감지한 순간에 가깝다. 빌리는 세상이 규정한 ‘남성성’의 틀에서 벗어난다. 강해야 하고, 싸워야 하며, 울지 말아야 한다는 완고한 질서 속에서 그는 몸이라는 도구로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언어가 ‘말’이 아닌 ‘춤’이라는 사실이다. 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언어다. 언어가 탄생하기 전, 인간은 몸으로 슬픔을 새겼고, 기쁨을 하늘로 던졌으며, 절망을 발로 구르며 견뎌냈다. 빌리의 도약은 단순히 미학적인 발레 동작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된 존재가 자기 영혼의 감옥을 박차고 나오는 철학적 몸짓이다. 특히 작품 속에서 인상적인 지점은 ‘침묵하는 남성들’의 변화다. 광부인 아버지와 형은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시대의 피로와 투쟁 속에서 감정을 거세당한 이들이다. 그러나 빌리가 춤추는 찰나, 그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은 단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술은 생존 이후에 누리는 사치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절망적인 순간, 인간을 인간답게 남게 하는 최후의 불꽃이다. 뮤지컬 무대에서 이러한 감정은 더욱 강렬하게 증폭된다. Elton John 의 음악은 거친 노동의 리듬과 소년의 섬세한 내면을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특히 〈Electricity〉가 울려 퍼지는 순간, 관객은 더 이상 타인의 춤을 관람하는 제삼자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새 각자의 삶 속에서 한 번쯤 접어두었던 꿈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춤출 때 어떤 기분이 드니?” 그 질문에 빌리는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전기(Electricity)가 흐르는 것 같아요.” 이 대사는 현대 예술철학의 핵심을 관통한다. 진정한 예술은 논리보다 먼저 도착한다. 인간은 어떤 아름다움 앞에서 먼저 전율하고, 이해는 그다음에 찾아온다. 예술은 해석되기 이전에 이미 몸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무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성인이 된 빌리가 공중으로 비상하는 장면은 흔한 성공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존재의 무게를 이겨내고 삶의 중력을 극복해내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가난은 여전하고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결정적인 변화가 있다. 소년이 더 이상 자신의 재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인간의 자유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단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Billy Elliot 는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은 무엇 앞에서 가장 자유로워지는가.” 마지막 조명이 꺼진 뒤에도 마음속에 길게 잔상이 남는 것은 화려한 테크닉이 아니다. 한 소년이 세상의 편견보다 자기 심장의 떨림을 더 신뢰했다는 사실이다.…

[정봉수 칼럼] 동포근로자의 고용제도와 체류자격별 노동법 적용

[정봉수 칼럼] 동포근로자의 고용제도와 체류자격별 노동법 적용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문제의 소재 2025년 12월, 체류외국인은 2,783,247명으로 한국의 전체인구(51,117,378명)의 5.44%에 해당되며, 2030년에는 350만명을 상회하여 전체인구의 7%에 해당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외국인의 주요증가 요인은 중국과 구 소련지역의 외국국적 동포들이 2010년 이후 연평균 28%로 증가한 데에 있다.[1]이 특정지역의 동포근로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는…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어린이: 호기심과 몰입의 시간이 미래의 천재성을 키운다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어린이: 호기심과 몰입의 시간이 미래의 천재성을 키운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칼럼니스트] 얼마 전,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옆자리에 젊은 엄마와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앉았다. 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더니,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무언가를 그렸다 지웠다 했다. 곁눈으로 보니 자동차 같기도 하고 로봇 같기도 한 것을 끝없이 변형시키고 있었다. 엄마는 처음엔 가만히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숨이 깊어졌다. 결국 한마디 했다. “그만 좀 그리고 영어 단어장 좀 펴라. 시험이 며칠 안 남았잖아.” 나는 그 한숨이 익숙했다. 30여년 전, 내 아이를 키울 때 내가 똑같이 쉬었던 한숨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조급해지고, 불안하기 때문에 다그치게 된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만큼 부모의 오래된 본능도 없다. 그러나 칠십이 되어 그 모자(母子)를 옆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그때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그 불안이, 아이의 가능성보다 먼저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CEO가 한국에 와서 한 이야기 기사를 읽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게임을 만들 때 부모가 ‘시간 낭비’라며 걱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이 훗날 프로그래밍과 AI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다. 동시에 그는 AI 시대에도 수학과 과학 같은 기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놀이를 미화한 게 아니라, 기본기 위에서 살아 있는 호기심이 자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기사를 읽고 또 한참을 읽었다. 30여년 전, 내 아이가 만화책을 펼쳐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어느 주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시계를 가리키며 “이제 그만 보고 들어가서 공부하거라” 하고 말했다. 별일 아닌 한마디였지만, 지금 와서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른다. 시계를 가리키는 대신 옆에 앉아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라고 한 번이라도 물었다면 어땠을까. 다 자란 자식 앞에서 차마 꺼내지 못하는 아쉬움 한 가닥이, 그런 식으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아이를 앞서가게 하는 힘은 조급함이 아니라 몰입이다. 몰입은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과 다르다. 좋아하는 것을 붙들고 스스로 더 알고 싶어지는 상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파고드는 상태, 거기서 진짜 배움이 시작된다. 어떤 아이는 책에서 그 순간을 만나고, 어떤 아이는 그림에서 만나며, 어떤 아이는 블록과 만들기 속에서 만난다. 어른 눈에는 산만해 보이고 무의미해 보이던 시간이, 사실 아이 안에서는 세상의 구조를 더듬어 가는 시간일 수 있다. 물론 오해는 없어야 한다. 모든 놀이가 천재성을 낳는다는 뜻이 아니다. 읽기, 쓰기, 수학, 과학, 그리고 교실에서 배우는 질서와 습관은 여전히 아이를 받쳐주는 뼈대다. 학원에 보내는 부모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도 그 한복판을 통과해 본 사람이다. 다만 뼈대만으로 사람은 서지 않는다. 뼈대 위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호기심이고, 그 호기심을 오래 지탱하는 것이 몰입이다. 요즘 부모들이 가장 갈등하는 지점이 화면이라는 것도 안다. 게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질 것이다. 내 말은 모든 화면 시간이 괜찮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수동적으로 흘려보내는 시간과, 무엇을 만들고 풀어내려고 파고드는 시간은 분명히 다르다. 그 차이를 알아보는 눈은 아이 곁에 있는 어른만 가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천재성은 처음부터 번쩍이는 재능의 이름이 아니다.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오래 바라보는 힘, 금세 싫증 내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파고드는 힘, 정답을 빨리 맞히는 것보다 ‘왜 그런가’를 끝까지 붙드는 힘. 그런 것들이 쌓여 비로소 남다름이 된다. AI 시대의 인재는 많이 외운 아이가 아니라, 오래 좋아해본 아이에게서 나온다. AI는 정보를 빠르게 모아준다. 그러나 좋아해서 파고들던 어린 날의 떨림까지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AI는 답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그러나 스스로 빠져들어 끝내 자기 세계를 만들어보는 기쁨까지 대신 주지는 못한다. 그 떨림과 기쁨이 빠진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AI 앞에서 무엇을 가지고 설 수 있을까? 그래서 어른의 태도가 조금 달라져야 한다. 다그치기 전에 한 번쯤 옆에 앉아 이렇게 물어보는 일이다. “너, 지금 뭐가 그렇게 재미있니?” 그 한 마디가 아이의 시간을 통제의 대상에서 관찰의 대상으로 바꾼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아이가 어디에서 눈이 빛나는지, 무엇을 할 때 시간이 멈춘 듯 빠져드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고 있는지를. 다시 카페로 돌아간다. 엄마의 다그침에 아이는 잠깐 손을 멈췄다. 그러나 영어 단어장을 펴는 대신 그림 속 로봇의 팔 한 짝을 마저 그리고서야 책을 꺼냈다. 그 작은 고집이 나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자기가 무엇에 빠져 있는지 분명히 아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이 글이 어디선가 그런 어머니, 그런 아버지의 손에 닿는다면 한 가지만 전하고 싶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든, 블록을 쌓든, 무언가에 한 시간을 잊고 빠져 있을 때, 그 시간은 결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답을 미리 쥐여주는 일이 아니라, 자기만의 불빛을 꺼뜨리지 않게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더 시킬 것인가보다, 아이가 무엇에 오래 빛나는지를 먼저 보아야 하지 않을까? 칠십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을, 같은 길을 통과하고 있는 이 땅의 젊은 부모들에게 작은 마음으로 적어 둔다. ▲사진=구글 제미나이(나노 바나나2)가 생성한 이미지 – 호기심 가득한 창작의 순간 발행정보…

[손영미 칼럼] 105억의 오페라, 부산의 축제

[손영미 칼럼] 105억의 오페라, 부산의 축제

–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작 〈오텔로〉, 불꽃을 넘어, 도시의 혈관을 여는 불씨로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지난해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은 하나의 건축이 아니라, 도시의 심장에 처음으로 음악이 이식된 사건이었다. 이어 도착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그 심장에 성대를 얹는 일이다. 부산은 이제 항구의 파도만으로…

[탁계석 칼럼] 고급 기고문_AI 협업 이후, K-클래식은 어디로 가는가

[탁계석 칼럼] 고급 기고문_AI 협업 이후, K-클래식은 어디로 가는가

– 창작의 패러다임 전환과 향토성의 재발견   ▲사진=탁계석 케이클래식 & 예술비평가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탁계석 칼럼니스트] AI와의 첫 협업 실험이 마무리되었다. 단종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삼경」, 「청령포」, 「회상」 세 작품은 예상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새로운 창작 방식의 가능성을 분명히 입증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AI는 작품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창작 생태계를 ‘재구성하는 계기’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설계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의미를 설계할 것인가가 창작의 본질로 떠올랐다.   ■ 향토성, 이제 콘텐츠의 중심으로 다음 단계는 분명하다. 지역이다. 대한민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향토적 자산—역사, 인물, 설화, 풍경—이야말로 K-클래식의 가장 강력한 원천이다. 각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소재들을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뒤, 작품으로 완성하는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문화 자원의 구조화’다. 지역 탐방과 체험을 통해 얻어진 생생한 현장성은 AI와 결합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그 결과물은 가곡에 머무르지 않는다. 합창곡, 뮤지컬 넘버, 관현악, 음악극으로 확장되며 하나의 복합적 문화 자산으로 재탄생한다.   ■ 플랫폼, 창작의 생산성을 바꾸다 그동안 창작의 가장 큰 한계는 ‘비생산성’이었다. 수많은 작품이 일회성으로 소멸되고, 축적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러나 AI 협업은 이 구조를 바꾼다. 1차 창작물이 2차, 3차 확장으로 이어지는 ‘연쇄 생산 구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플랫폼이다. K-클래식 뉴스는 단순한 홍보 매체가 아니라, 창작을 기록하고 확산시키는 생태계의 중심축이 된다. 특히 오케스트라 음악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창작 모델을 만들어낸다. 음악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되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 글로벌 시장, 우리가 설계하는 생태계 이제 시선은 세계로 향한다. 중요한 것은 ‘진출’이 아니라 ‘구조’다. 해외 연주자들이 한국 창작 작품을 연주할 때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순한 콘텐츠 공급자가 아니라 생태계 설계자가 된다. 이것은 한국 창작 음악이 서양 음악사의 주변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실질적 경로를 의미한다. 속도는 AI가 제공한다. 그러나 방향은 우리가 정해야 한다.…

[손영미 칼럼] 2026 한국가곡대축제‘김효근 K-아트팝 가곡의 밤’

[손영미 칼럼] 2026 한국가곡대축제‘김효근 K-아트팝 가곡의 밤’

– 노래는 끝나는 예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옮겨가는 숨이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행여, 그대 나 몰래 운다면 그 눈물 닦아주리…” 김효근 작곡 〈어느 행복한 아침에〉의 한 구절이다. 이 짧은 문장은 노래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말해준다. 노래는 입술에서 태어나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눈물 곁으로 도착한다. 지난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오후 7시, 부산콘서트홀에서 ‘2026 한국가곡대축제-김효근 K-아트팝 가곡의 밤’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지난해 개관한 부산콘서트홀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악기였다. 클래식 전용 홀 특유의 풍부하고 입체적인 사운드는 성악가의 미세한 호흡과 떨림까지 객석 구석구석으로 투명하게 전달하며, 이번 음악회의 감동을 한층 더 극대화했다. 지난 15년간 한국 현대가곡의 흐름을 이끌어온 작곡가 김효근. 그는 전통적 예술성(ART)과 대중성(POP)을 결합한 ‘K-아트팝’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며, 한국 가곡 르네상스의 한 축을 단단히 세워왔다. KNN과 한국가곡부산문화재단, 한국거래소, BNK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이어진 이번 축제는 한국 가곡의 현재를 증명하는 귀한 무대였다. 공연은 인간 감정의 궤적을 따라가는 네 개의 정서적 테마로 구성되었다. 오프닝 〈안드로메다〉를 시작으로 ‘사랑’, ‘그리움’, ‘삶’, ‘위로’의 서사가 부산콘서트홀의 입체적 음향을 타고 관객의 마음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1. 사랑, 가장 순수한 떨림의 시작 사랑은 설명할 수 없기에 더 깊고, 닿을 수 없기에 더 오래 머문다. 이 흐름 속에서 사랑의 이야기는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타인의 눈물을 먼저 알아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첫사랑〉이 품고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은 지나갔지만, 그 떨림은 평생의 기준으로 남는다. 김효근의 가곡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존재를 흔드는 근원적 울림으로 그려낸다. 〈어느 행복한 아침에〉는 그 대표적인 예다.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이 고백하는 이 곡은, 사랑이란 결국 타인의 슬픔을 대신 감당하려는 마음임을 일깨워주었다. 2. 그리움 , 시간 너머로 이어지는 감정 두 번째 테마는 ‘그리움’이다. 김효근의 음악에서 그리움은 과거를 향한 회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움직이는 감정이다. 그의 선율은 늘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노래한다. 공간의 깊이감을 더하는 콘서트홀의 울림 덕분에, 듣는 이들은 각자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호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