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수 칼럼] 수습평가서 서명이 합의퇴직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관한 사례

[정봉수 칼럼] 수습평가서 서명이 합의퇴직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관한 사례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서론 2014년 3월 가구도매업 사업을 하는 X회사(이하 ‘회사’이라 한다.)로부터 해고사건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다. 회사는 번역업무를 담당할 Y근로자(이하 ‘근로자’이라 한다.)를 채용하여 번역업무에 맡겼으나, 근로자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3개월 수습기간을 마치는 시점에서 근로계약을 종결시킨 사건이었다. 근로계약의 해지를 통보하는 자리에서 회사는 근로자에게 ‘서면해고통지’를…

[손영미 칼럼] 가곡의 효시 ‘홍난파’의 《봉선화〉 이래 106주년 기념 106인 초청음악회, 한국 가곡 106년의 역사, 6개월 간의 대장정으로 물들인다

[손영미 칼럼] 가곡의 효시 ‘홍난파’의 《봉선화〉 이래 106주년 기념 106인 초청음악회, 한국 가곡 106년의 역사, 6개월 간의 대장정으로 물들인다

– (사)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제47회 서울예술가곡제 개최 – 성악가 106인이 함께 그려내는 한국 가곡의 과거·현재·미래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이사장 정원이경숙)가 한국 가곡 탄생 106주년을 기념해 올해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제47회 서울예술가곡제’를 개최한다. 이번 가곡제는 ‘한국가곡 106년! 시대를 건너다! 노래를 잇는 우리의 숨결’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1920년 홍난파의 「봉선화」로 시작된 한국 가곡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세계를 향해 나아갈 미래를 하나의 음악 서사로 엮어내는 특별한 프로젝트다. 공연에는 원로·중견·신진 성악가 106인이 대거 참여한다. 매월 다른 주제 아래 한국 가곡의 정서와 예술성을 다채롭게 펼쳐 보이며, 회차별 전문 팀장이 무대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다. 지난 6월 30일 개최된 제1회 공연(팀장 손영미)은 가곡 애호가와 문화예술계 귀빈들의 찬사 속에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특히 「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의 손자 홍익표 교수가 참석해 뜻깊은 의미를 더했다. 축제는 오는 11월까지 매월 1회씩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기억을 담은 2회(7월), 광복과 민족의 숨결을 노래하는 3회(8월)에 이어 9월부터 11월까지 아름다운 서정과 미래의 희망을 담은 무대가 차례로 펼쳐질 예정이다. 정원이경숙 이사장은 “106년의 시간은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기억”이라며 “이번 가곡제가 한국 가곡을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이어가고, 세계와 호흡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희준 명예이사장 역시 “106인의 성악가가 들려주는 깊은 울림이 세대를 넘어 관객의 마음에 닿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공연 일정 및 개요] •행사명: 제47회 서울예술가곡제 •기간: 2026년 6월 ~ 11월 (월 1회, 총 6회 / 오후 6시) •주최·주관: (사)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회차 일시 주제 장소 / 팀장…

[정봉수 칼럼] 복수노조 시대의 교섭대표노조와 공정대표의무

[정봉수 칼럼] 복수노조 시대의 교섭대표노조와 공정대표의무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복수노조의 이해   2011년 7월 1일부터 복수노조가 전면 시행되었는데, 조합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다수 노조가 교섭대표로서 권한을 가지는 것과 함께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여 소수 노조에게도 일정 부분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복수노조 제도에서는 노사관계에…

[정봉수 칼럼] 복수노조 시대의 교섭대표노조와 공정대표의무

[정봉수 칼럼] 복수노조 시대의 교섭대표노조와 공정대표의무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복수노조의 이해   2011년 7월 1일부터 복수노조가 전면 시행되었는데, 조합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다수 노조가 교섭대표로서 권한을 가지는 것과 함께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여 소수 노조에게도 일정 부분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복수노조 제도에서는…

[손영미 칼럼] 2026 Vienna Philharmonic Summer Night Concert 쇤브룬의 여름 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선율의 성찬

[손영미 칼럼] 2026 Vienna Philharmonic Summer Night Concert 쇤브룬의 여름 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선율의 성찬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매년 초여름,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 정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콘서트홀로 변모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로크 양식의 궁전과 싱그러운 기하학적 정원이 어우러진 이 무대에서 펼쳐지는 빈 필하모닉 여름밤 콘서트(Sommernachtskonzert)는 클래식 음악이 지닌 고유의 우아함이 대중의 열기와 만나는 가장 이상적인 축제의 장이다. 올해의 프로그램은 오페라와 발레, 정통 관현악과 뮤지컬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음악이 지닌 순수 예술성과 대중적 흡입력을 동시에 품어 안았다. 그리고 이 야심 찬 무대의 중심에는 젊은 거장 로렌조 비오티(Lorenzo Viotti)의 감각적인 지휘와, 세계적인 바리톤 브린 터펠(Sir Bryn Terfel)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젊은 지휘자의 다이내믹과 거장의 드라마틱한 만남 로렌조 비오티는 오늘날 클래식계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차세대 지휘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빈 필하모닉 특유의 깊고 우아한 전통적 음색(Wiener Klangstil) 위에, 젊고 세련된 리듬감과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며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연하면서도 정교한 그의 손끝은 넓은 야외 무대를 빈틈없는 음향으로 채워나갔다. 이에 화답한 브린 터펠은 단순한 성악가를 넘어, 목소리 하나로 무대 위에 거대한 서사를 세우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신과 악마, 그리고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의 내면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깊고 웅장한 바리톤 음색은 이번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단단한 드라마적 뼈대가 되었다. 신과 인간, 고전과 현대가 교차하는 다채로운 음영(陰影)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 뿜어내는 활기찬 금관악기의 팡파르로 화려하게 포문을 연 공연은 이내 묵직하고 심오한 음악적 여정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와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거쳐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에 이르는 대작들의 향연은 브린 터펠의 밀도 높은 가창을 통해 야외 광장을 순식간에 엄숙한 오페라 극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화려하고 입체적인 대작들 사이에서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기도」와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은 극적인 완급조절을 이루며 깊은 위로와 사색의 순간을 선사했다. 특히 현악 파트의 섬세한 피아니시모(pp)는 밤하늘의 정적과 맞닿으며 관객들의 숨소리마저 멎게 만들었다. 이날 프로그램의 정점은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조곡 2번이었다. 비오티의 정교한 리드 아래 펼쳐진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화려한 색채감과 폭발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은 쇤브룬 궁전의 야경과 완벽하게 짜 맞춘 듯 어우러지며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마비시키는 황홀경을 선사했다. 뒤이어 연주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중 ‘내가 부자라면(If I Were a Rich Man)’은 정통 클래식의 엄숙주의를 유쾌하게 깨뜨리며, 축제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인간미와 위트 넘치는 공감을 전했다. 전통과 일상, 별빛이 빚어낸 영원의 하모니 빈 필하모닉이 매년 여름밤 콘서트를 통해 세상에 전하는 것은 단순한 음악회의 감동 그 이상이다. 그것은 세기의 벽을 넘어온 전통과 오늘의 현대, 고전의 엄격함과 대중의 일상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문화적 연대이다. 쇤브룬의 밤공기에는 6월의 라임나무 꽃향기와 풀잎의 싱그러움이 부드럽게 스며 있었고, 수만 명의 관객들은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하나의 거대한 선율이 되어 초여름의 밤을 향유했다. 결국 축제란 거창한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채우는 위대한 음악을,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나누는 일. 2026년 빈 필하모닉의 여름밤은 그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진실을, 쇤브룬을 가득 채운 찬란한 잔향(殘響)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사진=공연실황 쇤브룬 광장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공연실황 쇤브룬 광장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공연실황 쇤브룬 광장 ⓒ강남 소비자저널…

[손영미 칼럼] 사랑은 왜 조건을 지우는가, 사랑은 가장 연약한 순간까지 품는 일이다

[손영미 칼럼] 사랑은 왜 조건을 지우는가, 사랑은 가장 연약한 순간까지 품는 일이다

–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을 읽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랑하는 까닭_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기쁨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슬픔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첫 문장은 역설처럼 시작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용운은 사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이유는 아름다움이나 성공, 젊음 같은 세속적 조건이 아니라는 데 이 시의 깊이가 있다. 시인은 세 번의 반복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드러낸다. 홍안과 백발 기쁨과 슬픔 건강과 죽음 이 대비는 인간의 삶 전체를 상징한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환희에서 고통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여정을 압축한 것이다. 세상은 대부분 빛나는 순간을 사랑한다. 젊음을 사랑하고, 성공을 사랑하며, 웃는 얼굴을 사랑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백발이 되고, 슬픔이 찾아오고, 병과 죽음이 가까워질 때 많은 사랑은 흔들린다. 한용운이 말하는 사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이 한 줄은 사랑의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 사랑은 상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순간까지 품는 일이다. 존재 전체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불교적 세계관을 지닌 만해의 시답게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을 둘로 나누지 않는다. 죽음조차 사랑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연은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사랑은 시간을 이기는 감정이다. 육체를 넘어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며, 조건을 넘어 영혼을 품는 약속이다. 오늘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하지만, 그 사랑은 종종 조건의 다른 이름이 되곤 한다. 아름다울 때만, 성공했을 때만, 건강할 때만 사랑한다면 그것은 거래일 뿐이다. 한용운은 묻는다. 당신은 그 사람의 백발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손영미 칼럼] 한국예술가곡연주회 18년 간 지켜온 우리 음(音)의 숲, ‘한가연’이 걸어온 경이로운 기록

[손영미 칼럼] 한국예술가곡연주회 18년 간 지켜온 우리 음(音)의 숲, ‘한가연’이 걸어온 경이로운 기록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서양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홍수 속에서도 오롯이 우리말과 우리 정서가 담긴 한국가곡만을 품고 18년을 한결같이 걸어온 단체가 있다. 바로 사단법인 한국예술가곡연주회(이하 한가연)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무대를 열어 오직 한국가곡만을 연주하며,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뀔 세월 동안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꾸준히 전파해 온 한가연은 마침내 뜻깊은 이정표를 세웠다. 한가연은 지난 2026년 6월 26일 오후 4시, 세일아트홀에서 ‘제203회 한국예술가곡연주회 정기연주회 겸 창립 18주년 기념음악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203회의 뚝심, 그리고 위로가 된 음악 한가연이 걸어온 길은 숫자만으로도 그 경이로움을 증명한다. 18년 동안 매월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한국가곡만을 무대에 올린 정기연주회는 이번 공연으로 203회를 맞았다. 이와 함께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 특별음악회도 29회에 이르렀으며, 정기공연을 넘어 우리 가곡의 외연을 넓혀 왔다. 무엇보다 한가연의 음악은 화려한 공연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매년 두 차례 이상 병원을 찾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위로음악회를 꾸준히 이어오며, 음악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예술 실천을 지속해 왔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몸소 실천해 온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8주년을 수놓은 우리 가곡의 향연…

[정봉수 칼럼]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의 제한과 허용 범위

[정봉수 칼럼]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의 제한과 허용 범위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문제의 소재 헌법 제33조는 근로자에게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근로3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함)이 제정되었다.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노동조합법 제4조에 따라 형사책임이 제한되고, 민사책임은 같은 법 제3조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규정에 따라 판단된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정당한 단체행위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향상을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서 확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용자와 단체교섭으로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 더 나은 근로조건을 요구한다. 이에 사용자는 인건비가 회사제품의 원가인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게 된다. 노동조합은 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여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파업을 하게 된다. 이에 맞서 사용자는 무노동 무임금으로 대응하여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를 지치게 한다. 노사간의 힘의 대결을 통해 절충된 합의문이 작성되고, 이것이 단체협약이 된다.  여기서 만약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하거나, 도급 또는 하도급을 줄 수 있게 된다면 노동조합의 파업 효과는 현저히 줄어들어 더 이상 파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사용자에게 굴복하게 된다. 이러한 단체행동권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쟁의행위 기간 중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해 신규로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외주를 줄 수 없다고 노조법은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쟁의행위 중 대체근로금지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여 단체협약을 자율적으로 체결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보호법규이다.  이하에서는 대체근로 제한의 의의, 허용되는 내부 대체와 신규채용의 한계, 원·하청관계와 근로자파견의 문제 및 필수공익사업의 예외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대체근로금지의 의의    노조법 제43조(사용자의 채용제한)는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으며, 도급 또는 하도급을 줄 수 없다.(제1항,제2항)」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제16조(근로자 파견의 제한)에서 「파견사업주는 쟁의행위 중인 사업장에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근로자를 파견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쟁의행위기간 중의 대체근로제한 규정의 취지는 헌법상 근로자의 쟁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자의 대체근로의 제한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취한 제도적 장치이자 무기대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의 대항행위가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아무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것이고, 이것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 행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쟁의행위 중에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대체할 수 없도록 정한 것이다.[1]    III. 대체근로 제한의 범위  1.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의 의미   사업의 개념에 대해 판례는 「사업」이라 함은 개인사업체 또는 독립된 법인격을 갖춘 회사 등과 같이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면서 계속적,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전체로서의 독립성을 갖춘 하나의 기업조직을 뜻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2] 이에 대하여 대기업의 경우, 계열사 간에는 서로 다른 사업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특정 기업이 본사를 서울에 두고 공장이나 지점을 여러 곳에 둔 경우에 하나의 사업으로 본다.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과 관계 있는 자에 대해서는 쟁의행위기간 중 업무의 대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조합원, 비조합원, 당해 사업과 관계가 있는 다른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업무대체가 가능하다고 본다.    2. 신규채용의 제한    노조법 제43조 제1항은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판례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로서 다음의 2가지가 있다.    (1) 쟁의행위기간 중 쟁의행위 참가자들의 업무를 수행시킬 의도로 쟁의행위기간 전에 근로자들을 신규 채용한 경우이다. 이 경우 사용자의 의도가 쟁의행위 기간 중에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에 대해 대체할 대체인력이므로 이는 노조법 제43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였다.[3]   (2) 자연 감소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신규 채용한 경우이다. 자연감소 인원을 충원하였고, 이러한 인원이 차후 노동쟁의로 중단된 업무에 대체인력으로 투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용자의 대체인력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인사권 행사로 판단하였다. [4]    3. 대항행위의 정당성 요건  쟁의행위기간 중의 대체근로에 있어 노동조합의 대항행위가 정당성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판례들은 적법한 대체근로인 경우와 위법한 대체근로로 나누어 판단하고 있다. (1) 사용자의 적법한 대체근로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대체근로의 저지를 위한 파업참가근로자들의 전면적‧배타적 직장점거가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법원은 업무방해죄를 인정하고 있다.[5]    (2) 쟁의행위기간 중 사용자의 위법한 대체근로저지를 위해 파업참가 근로자들은 폭력이나 파괴∙협박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한, 상당한 정도의 실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6]   4. 불법쟁의 행위에 대한 적용   대체근로 제한규정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해당된다고 본다. 노조법상 쟁의행위 시 민형사상의 면책 규정은 정당한 쟁의행위를 전제로 하므로,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대체근로를 이용하여 업무수행을 계속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는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신규채용이나 대체근로를 할 수 있다. [7]    그러나, 현실적으로 쟁의행위가 정당한 파업인지 불법파업인지 법원의 판단을 받기 전에는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조합의 파업을 불법 쟁의행위로 판단하여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에 대해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하거나 대체하여 투입하는 경우에 이는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불분명한 경우에 대체근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함이 원칙이고, 명백히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에 한해서 대체근로를 허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8]    5. 도급 또는 하도급 금지 노조법 제43조 제2항은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도급 또는 하도급 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용자가 쟁의행위 기간 중에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도급 또는 하도급을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도급업체와 하도급 업체 사이의 관계에서 하도급 회사의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할 경우에 도급업체와의 도급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도급업체가 도급계약을 해지하거나 또는 도급업체 자신의 근로자를 이용하여 중단된 업무를 대체할 수 있고, 다른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다른 하도급 업체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와 관련된 판례는 아직 없지만[9] 행정해석은 도급업체의 행위는 대체근로금지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관련된 사례로, 구청과 청소용역업체간에 생활쓰레기 수거사업 도급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청소용역업체 노조의 쟁의행위로 인해 업무가 중단된 경우 자치구가 생활쓰레기 처리업무를 직접 수행하거나 다른 용역업체를 지정할 수 있다. 구청과의 용역계약 관계에 있는 용역업체 노사간의 쟁의행위로 인하여 중단된 업무를 구청이 직접 수행하거나 다른 용역업체로 하여금 수행토록 하는 것은 구청이 쟁의행위의 당사자인 사용자의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동법 규정에 저촉되지 아니한다.[10] …

[손영미 칼럼] AI와 관종의 시대, 문학은 무엇으로 살아 남는가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란 무엇인가?

[손영미 칼럼] AI와 관종의 시대, 문학은 무엇으로 살아 남는가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란 무엇인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2026년은 한국 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1926년생 문학인들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번에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는 지난 6월 18일 오후 3시 30분,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에서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김자림과 박현숙, 시인 김종길과 박인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다섯 문학인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랑을 통과하며 지켜낸 시대의 상처와 인간의 존엄을, 문학을 통해 다시금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또 다른 시대적 전환점 앞에 서 있다. AI가 문장을 쓰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결정하며, SNS가 감정을 소비하는 시대. 과거의 문학이 전쟁과 가난, 분단의 상처를 견디게 했다면, 앞으로의 문학은 소음과 속도, 과잉된 자기 노출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야 한다. 한없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쉼 없이 배설되는 현대인의 과잉된 언어들과 달리, 시는 침묵의 뼈를 발라내어 가장 정직한 진액만을 남기는 작업이다. 뱉어낸 단어보다 차마 뱉지 못해 행간에 숨겨둔 여백이 독자의 마음에 닿을 때, 시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그 여백은 ‘관종의 시대’가 잃어버린 성찰의 공간이며, 타인의 슬픔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작은 의자다. 오늘의 문학이 마주한 풍경은 한 세기 전과 사뭇 다르다. 과거의 인간이 침묵을 견디며 살아냈다면, 오늘의 인간은 지나친 소음 속에서 길을 잃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감정을 전시한다. SNS는 삶을 기록하는 공간을 넘어 감정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존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기 위해 살아간다. 슬픔은 공유되기 전에 콘텐츠가 되고, 분노는 성찰되기 전에 확산되며, 고독은 견디기 전에 소비된다.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듣지 못하는 시대. 어쩌면 오늘날 시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침묵을 복원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이제 시를 쓴다. 운율도 맞추고, 은유도 만들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그럴듯한 문장을 생산한다. 그러나 AI가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살아낸 시간’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병실에서 흘린 눈물의 온도, 사랑이 끝난 뒤 빈 의자 하나를 바라보던 저녁의 공기, 누군가를 용서하기까지 걸린 십 년의 침묵. 시는 언어의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상처의 결이다. 그래서 좋은 시는 잘 쓴 문장이 아니라, 한 인간이 온몸으로 살아낸 흔적이다. 문학은 더 이상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만 살아남기 어렵다. 정보는 이미 AI가 더 빠르게 제공한다. 그러나 문학은 정보를 넘어 의미를 묻는다. AI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면, 문학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AI가 답을 만든다면, 문학은 질문을 지켜낸다. 따라서 미래의 문학은 지식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마지막 보루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시대에 문학이 삶 속에 녹아든다는 것은 거창한 서가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무분별한 자극에 마비된 감각을 깨워 일상의 미세한 결을 다시 느끼는 일이며,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포장된 감정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진짜 나를 마주하는 용기다. 100년 전 박인환이 전후 도시의 황량함 속에서 한 방울의 서정을 건져 올렸고, 김종길이 절제된 언어로 영혼의 품격을 지켜냈듯, 오늘날 우리가 문학 안에서 살아남는 방식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화려한 기술과 과잉된 소음으로 가득할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의 진심 어린 떨림을 갈망한다. 문학은 자극적인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고요한 방파제이며, 시는 그 방파제 위에 피어난 여백의 꽃이다. 화려한 데이터가 증명할 수 없는 인간만의 쓸쓸함과 존엄. 앞으로의 100년 동안 문학은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끝까지 사랑하는 예술이 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는 시대, 시인은 가장 깊은 곳의 침묵을 듣는 사람이다. 문학은 인간이라는 숲을 지키는 일이고, 시는 그 숲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바람의 떨림을 기록하는 일이다. AI가 문장을 만드는 시대에도 인간만이 시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이 시대 문학의 화두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손영미 칼럼] 지식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단한 품성’ 위대함은 지식이 아니라 고난에서 탄생한다

[손영미 칼럼] 지식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단한 품성’ 위대함은 지식이 아니라 고난에서 탄생한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최근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리드하는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이 한 방송에 출연해 성공과 위대함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던졌다. “우리가 겪은 고난으로부터 위대함이 탄생합니다.” 짧지만 강렬한 이 한마디는 화려한 성공 신화 뒤에 숨은 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한 시대를 살고 있다. 클릭 몇 번에 방대한 정보가 쏟아지고, 인터넷은 모든 지식을 손쉽게 대령한다. 이제 지식을 얻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한다. 이토록 똑똑한 세상에서, 한 분야의 정점에 이르는 ‘위대함(Greatness)’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젠슨 황은 그 답을 ‘고난’에서 찾는다. 물론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고통이 필수 조건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준의 성취를 이루고자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장인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십 년의 시행착오를 견디고, 예술가가 자신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끝없는 고독을 통과하듯, 위대함은 반드시 ‘시련’이라는 통행증을 요구한다. 고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