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의 공연 리뷰] 리얼리티 오페라 ‘기억의 향기’

[손영미의 공연 리뷰] 리얼리티 오페라 ‘기억의 향기’

– 존재의 귀환 – 잊어도 마음은 기억한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랜만에 바리톤 양준모 주연의 리얼리티 오페라 〈기억의 향기〉를 관람했다. 공명이 뛰어난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만난 이번 작품은 대극장 오페라의 화려한 스펙터클보다, 한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들여다보는 2인극이자 음악으로 쓴 모노드라마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탁월한 가창력과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양준모를 통해, 주인공 구무진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사랑과 상실, 그리고 다시 살아가려는 한 인간의 절박한 내면을 깊이 몰입하여 따라갈 수 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마음을 따라다녔다.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을 기억하는가. 이름일까, 얼굴일까. 아니면 한때 깊이 사랑했던 누군가의 흔적일까.’ 빈 의자 하나에서 시작되는 기억 구무진은 한때 음악계를 주름잡던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나 찬란했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지방 축제 음악을 만들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동거인은 인간이 아닌 AI ‘아카시아’다. 아카시아는 무심한 목소리로 데이터를 읊으면서도 조금씩 인간의 감정을 학습해 나간다. 그리고 작업실 한편, 옛 연인 미지가 앉아 있던 빈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작품 속에서 나는 그 빈 의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사람이 떠나도 자리는 남는다. 어쩌면 상실이란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머물던 자리가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진은 아카시아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러나 기억은 위로가 되는 동시에 깊은 고통을 남긴다. 사랑했던 연인과 어머니, 빛나던 자신의 순간들이 되살아날수록 현재의 초라함은 더욱 선명해진다. 술에 취해 무너져 내리던 밤, 마침내 미지가 환영처럼 그의 방에 나타난다. 그 모습이 실체인지 기억인지, 혹은 무진의 절박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짧은 재회를 통해 두 사람이 생전에 미처 건네지 못했던 진심을 비로소 나눈다는 사실이다. 무진은 미지를 위해 노래한다, 〈기억의 향기〉를. 그리고 미지는 나지막이 말한다. “사라져도 향기로 여기에 있어.”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다시 모습을 감춘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사람이 떠나면 관계는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과 함께 존재했던 ‘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억의 향기〉는 떠나간 연인을 다시 불러내는 신파에 머물지 않는다. 무진이 기억을 하나씩 더듬으며 끝내 찾아가는 존재는 미지만이 아니다. 미지를 사랑했던 자기 자신, 음악을 사랑했던 자신, 그리고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은 자신이다. 이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 기억을 과거로 퇴행하는 통로가 아닌, ‘현재의 나’에게 돌아오는 길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사랑은 끝났어도 사랑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한 인간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삶의 일부가 된다.…

[손영미 칼럼] 『님의 침묵』 100년, 다시 인제로 흐르다

[손영미 칼럼] 『님의 침묵』 100년, 다시 인제로 흐르다

– 제30회 만해대상 시상식 열려…평화·실천·문예로 이어진 만해 정신 – 박명성·정호승 문예대상, 박준영·안규리 실천대상, 니시모리 시오조 평화대상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만해 한용운 선사의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을 맞은 2026년, 그가 남긴 자유와…

[손영미 칼럼] 『님의 침묵』 100년, 다시 인제로 흐르다

[손영미 칼럼] 『님의 침묵』 100년, 다시 인제로 흐르다

– 제30회 만해대상 시상식 열려…평화·실천·문예로 이어진 만해 정신 – 박명성·정호승 문예대상, 박준영·안규리 실천대상, 니시모리 시오조 평화대상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만해 한용운 선사의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을 맞은 2026년, 그가 남긴 자유와…

[손영미의 공연 퓨리뷰 칼럼] 제19회 돌체 열린음악회, 송파구민과 함께하는 ‘음악, 그 이상의 감동’

[손영미의 공연 퓨리뷰 칼럼] 제19회 돌체 열린음악회, 송파구민과 함께하는 ‘음악, 그 이상의 감동’

– 시와 가곡이 짓는 따뜻한 집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은 음악을 닮았다. 뜨겁던 계절이 한 걸음 물러나고 바람 끝에 서늘한 음표 하나가 묻어오는 때, 사람의 마음도 문득 노래 한 곡에 오래…

[손영미의 클래식 음악 칼럼] 가을의 속삭임, 그리고 복도 끝에 남겨진 피아노 선율

[손영미의 클래식 음악 칼럼] 가을의 속삭임, 그리고 복도 끝에 남겨진 피아노 선율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이 오는 길목, 조금씩  신선해진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는 유난히 짙은 아련함이 배어 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A Comme Amour〉를 듣고 있노라면, 투명하게 흐르는 아르페지오 위로 가만히 얹히는 선율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어느 계절의 기억을 두드린다. 프랑스어 제목 A Comme Amour는 직역하면 ‘A는 Amour의 A’, 곧 ‘A는 사랑의 A’ 정도의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에게는 오래도록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제목으로 사랑받아왔다. 원제에는 가을이라는 말이 없지만, 잔잔하면서도 쓸쓸한 그 서정이 가을의 온도와 닮아 있다. 이 아름다운 선율은 연주자인 클레이더만이 직접 작곡한 곡은 아니다. 그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시킨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폴 드 세네빌(Paul de Senneville)과 그의 음악적 동료들이 만들어낸 프렌치 팝 특유의 서정이 담긴 작품이다. 클레이더만의 음악은 정통 클래식의 무거운 형식에서 한 걸음 벗어나 클래식 피아노의 우아함과 대중음악의 친근한 선율을 이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는 거대한 담론을 말하기보다, 지친 하루의 저녁과 오래된 사랑, 잊고 지냈던 한 사람과 한 계절을 조용히 불러낸다. 그리고 내게 이 곡은 언제나 한 장면으로 돌아온다. 중학교 3학년, 어느 해질녘이다. 나는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남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학교는 낮과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다. 운동장의 소음도 사라지고 긴 복도에는 늦은 햇살과 적막만 남았다. 그때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맑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선율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소리가 흘러오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텅 빈 복도를 따라가다 음악실 앞에 이르면, 서울에서 교생실습을 위해 내려왔던 젊은 음악 선생님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문을 열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복도 끝에 가만히 앉아 들었다. 늦은 오후의 빛이 음악실 창문을 비스듬히 지나가고, 피아노 앞에 앉은 젊은 선생님의 등 뒤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어려 있었다. 그가 왜 혼자 남아 피아노를 쳤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선율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알 것 같았다. 사람에게는 말로는 다 꺼내놓을 수 없는 마음이 있고, 때로 음악은 그 마음 대신 울어준다는 것을. 한 사람은 건반 앞에 앉아 자신의 외로움을 연주하고 있었고, 한 소녀는 복도 끝에 앉아 그 외로움의 이유도 모른 채 오래도록 듣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최초의 순간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손영미 영화 리뷰 칼럼] 인생이라는 오디세이, 당신의 이타케는 어디인가

[손영미 영화 리뷰 칼럼] 인생이라는 오디세이, 당신의 이타케는 어디인가

– 호메로스에서 현대 스크린까지, 3천 년을 건너온 귀환의 철학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지난 8월 5일 국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연일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며 흥행의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 9일째인 14일 기준 누적 관객 약 285만 명. 3천 년 전 쓰인 고전이 첨단 영상의 시대에 다시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부터 흥미롭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영웅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 이타케로 향한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어도 그의 진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신들의 분노와 거대한 폭풍, 괴물과 유혹, 죽음과 망각이 그의 귀향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트로이에서 이타케까지는 20년을 떠돌아야 할 만큼 먼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호메로스는 왜 한 인간을 그토록 오랫동안 바다 위에 붙잡아 두었을까. 그 질문에서 『오디세이아』는 모험담을 넘어 인간에 대한 철학이 된다. 전쟁의 영웅에서 한 인간으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서사시다.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노래한다면,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난 뒤 한 인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전쟁 10년, 귀향 10년. 오디세우스는 무려 20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귀향을 늦춘 것은 단지 성난 바다와 신들의 방해만이 아니다. 그를 붙잡은 것은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욕망과 교만, 호기심과 쾌락, 망각이었다. 그래서 그의 항해는 지리적 이동이라기보다 인간이 자신에게 돌아가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내면의 지도에 가깝다. 전쟁터에서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어쩌면 자기 욕망을 이기는 일이다. 『오디세이아』가 3천 년을 살아남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칼립소, 사랑이라는 이름의 망각 그의 귀향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둔 존재는 여신 칼립소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7년을 보낸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과 안락을 주고, 심지어 불멸까지 약속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낼 법한 제안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밤마다 바닷가에 앉아 이타케를 바라보며 운다. 칼립소라는 이름에는 ‘감추다’라는 어원이 담겨 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세상으로부터 감추고, 시간으로부터 감추며, 마침내 그 자신으로부터도 감추려 한다. 여기서 사랑의 역설이 생긴다. 사랑은 상대를 곁에 두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길까지 막아 버린다면 사랑은 보호가 아니라 아름다운 감금이 될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가 버린 것은 여신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그는 영원히 사는 것보다 유한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길을 택한다. 키르케, 인간 안의 야성을 마주하다 마녀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 장면은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기괴하면서도 상징적이다. 인간이 짐승으로 변한다는 것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욕망에 자신을 내맡길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이성과 품위를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키르케는 단순한 악녀가 아니다. 이후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돕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어떤 유혹과 실패는 인간을 파괴하지만, 어떤 실패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오디세우스는 키르케를 지나며 세상을 이기는 지혜보다 자기 안의 욕망을 다루는 지혜를 배운다.…

[손영미의 감성가곡] 가을의 기도

[손영미의 감성가곡] 가을의 기도

– 김현승 시 · 안정준 작곡 – 노래 | 소프라노 김영미 · 소프라노 김향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 들판이 천천히 무르익어 간다. 하늘에는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은 한결 낮아진 목소리로 나뭇잎 사이를 지난다. 계절이 이토록 깊어질 때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김현승의 시에 안정준이 선율을 입힌 <가을의 기도〉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지만, 김현승에게 가을은 오히려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열매가 익을수록 가지는 낮아지고, 나무가 잎을 내려놓을수록 하늘은 더 많이 보인다. 어쩌면 시인은 그 오래된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이 끝내 배워야 할 겸허를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세 연을 이끄는 ‘~하게 하소서’라는 간절한 어조는 이 시를 한 편의 기도문처럼 만든다. 그러나 그 기도는 무엇을 더 갖게 해달라는 청원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게 해달라는 간구에 가깝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마침내 홀로 서는 것. 그 세 단계 끝에 시인은 ‘절대 고독’의 자리로 걸어 들어간다. 김현승의 고독은 쓸쓸함이나 단절과는 조금 다르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외로움이 아니라, 온갖 소음과 욕망을 걷어낸 뒤 비로소 자기 영혼과 마주하는 고요에 가깝다. 그래서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는 구절은 더욱 깊게 다가온다.…

[손영미의 감성가곡] 누군가가 그립다

[손영미의 감성가곡] 누군가가 그립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그리움은 사랑이 떠난 자리가 아니라,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는 문득 소나기 한 줄기가 그리워진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처럼, 지친 마음에도 잠시 쉬어갈 여백이 필요하다. 사랑도 그렇다. 너무 뜨거우면 서로를 태우고, 적당한 그리움이 있을 때 비로소 오래 머문다. 그래서 그리움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사랑이 깊어지는 또 하나의 계절이다. SJ Park의 섬세한 선율과 정단의 시적인 언어가 만난 <누군가가 그립다〉는 바로 그 계절을 노래한다. 이 노래에서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차오른 그리움이 하늘을 빌려 흘러내리는 감정의 은유다. “빗물인지 눈물인지”라는 표현은 자연과 인간의 슬픔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그려낸다. 어느새 우리는 비를 맞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사랑했던 그 사람은 선명하게 그려진다.”라는 구절은 기억의 본질을 일깨운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보다 마음을 먼저 기억한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일수록 세월은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고 선명하게 새겨 놓는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겨울과 흰 눈의 이미지는 더욱 인상적이다. 낙엽이 이별의 시간을 상징한다면, 눈은 모든 상처를 덮어 주는 용서와 정화의 은유다. 그러나 눈부시게 하얀 풍경 속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다. 이 노래는 떠난 사람을 붙잡는 노래가 아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자신의 시간을 조용히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노래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랑은 끝날 수 있어도, 사랑했던 시간의 아름다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립다〉는 단순한 이별의 노래를 넘어, 사랑이 기억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노래하는 감성가곡이다. 삶을 깊이 살아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절제된 그리움의 품격이 이 노래의 가장 큰 울림이다. 특히 고성현의 깊고 절제된 바리톤은 이 곡의 서정을 더욱 깊게 완성한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한 음 한 음 눌러 담아내는 그의 목소리는 그리움을 절규가 아닌 삶을 통과한 사람의 담담한 고백으로 승화시킨다. 결국 <누군가가 그립다〉는 누군가를 잊지 못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던 자신의 삶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노래다. 그래서 이 노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인생이 깊어질수록 더욱 가슴에 스며드는 한 편의 시가 된다.   누군가가 그립다 SJ Park 작곡 / 정단 작사 / 고성현 노래   쏟아지는 비야 너는 내 맘 알고 있니 늘 울고 싶고 누군가가 그립다 상처 투성이 내 눈은 이제 보이지 않아도 사랑했던 그 사람은 선명하게 그려진다 뚝뚝 떨어진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가을 지나고 올 겨울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서럽도록 아름답게…

[손영미 칼럼] 신의 가장 다정한 선물, 내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울림,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열 가지 행복

[손영미 칼럼] 신의 가장 다정한 선물, 내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울림,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열 가지 행복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운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노래한다. 울음이 생존을 위한 첫 언어라면, 노래는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다. 기쁨이 벅찰 때도, 슬픔이 깊어질 때도 사람은 결국 노래를 찾는다. 말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목소리는 가 닿고, 언어가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선율은 마음을 대신한다. 오랜만에 벨라비타 원우들과 한 무대에 선다. 개원 발기부터 함께 걸어온 시간이 어느덧 열한 기수를 이루었다. 운영이사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늘 설렘과 부담을 함께 안겨준다. 하지만 막이 오르기 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악보가 아니라 사람이다. 서로 다른 계절을 건너온 삶들이 한 곡의 노래 앞에서 같은 숨을 맞추는 순간, 무대는 공연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노래는 잘 부르는 사람만의 특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애가 목소리를 빌려 세상과 악수하는 일이며, 서로 다른 삶이 하나의 울림으로 이어지는 기적이다. 그래서 무대는 경쟁의 자리가 아니라 서로를 응원하는 가장 따뜻한 광장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피곤한 삶이자 유배당한 삶”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한 줄을 덧붙이고 싶다. “노래 없는 삶은, 자신의 영혼과 오래 대화하지 못한 삶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악기는 악기가 아니라 목소리다. 노래는 단순히 음정을 맞추고 가사를 따라 부르는 행위가 아니다. 몸과 마음, 기억과 감정을 하나로 이어주는 가장 인간적인 예술이며, 삶을 치유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들을 때 얻게 되는 열 가지 행복을 살펴본다. 1. 감정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 노래는 마음 깊은 곳에 쌓인 슬픔과 기쁨, 분노와 그리움을 가장 아름답게 흘려보내는 통로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말했다. “음악은 감정의 언어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 준다.” 노래는 울음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고, 웃음을 더욱 깊게 만든다. 2. 몸을 깨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건강법 노래는 깊은 복식호흡을 통해 온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폐는 넓어지고 혈액순환은 활발해지며,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노래하는 사람은 건강하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3. 영혼을 어루만지는 위로 어떤 날은 노래 한 소절이 백 마디 위로보다 더 깊게 마음을 안아 준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말했다. “음악은 삶의 비를 맞아도 젖지 않게 해주는 우산과 같다.” 노래는 상처를 지우지는 못하지만 견딜 수 있는 힘을 선물한다. 4. 나를 발견하는 시간 같은 악보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호른은 말했다. “노래는 영혼의 지문이다.” 세상에 같은 목소리는 하나도 없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일이다.…

[손영미의 감성 가곡 미별(美別)]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한 노래 김효근 「미별(美別)」이 들려주는 기억의 미학

[손영미의 감성 가곡 미별(美別)]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한 노래 김효근 「미별(美別)」이 들려주는 기억의 미학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만남을 배우지만, 정작 이별을 배우는 법은 누구에게도 익히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순간, 시간은 멈추고 언어는 제 기능을 잃는다. 그래서 이별은 언제나 슬픔보다 먼저 침묵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예술은 그 침묵을 끝내 언어로, 그리고 음악으로 바꾸어낸다. 김효근의 가곡 ‘미별(美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곡은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가 아니라, 상실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하는 노래다. 눈물을 지우려 하지 않고, 그 눈물 속에 오래 머물러 마침내 한 줄기 빛을 길어 올리는 음악이다. ’미별(美別)’이라는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이별은 본래 상실이고 단절이며, 인간이 감당하기 가장 어려운 운명이다. 그런데 작곡가는 그 앞에 ’아름다울 미(美)’를 붙인다. 이는 슬픔을 미화하려는 감상주의가 아니다. 사랑했던 시간을 끝내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인간의 가장 숭고한 의지다. 특히 이 작품은 사계절을 따라 한 사람의 생애와 사랑을 노래한다. 봄에는 수줍던 사람이 있었고, 여름에는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가을에는 그 사람의 빈자리가 마음을 채우고, 겨울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그를 떠나보낸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바로 이 역설 속에서 「미별」은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유한성을 교차시키며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계절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듯, 사랑 또한 육신은 떠나도 기억 속에서는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살아남는다. 특히 이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 절제에 있다. “그대와 나눈 웃음, 끝없는 이야기 시간이 멈춘 그날 함께 사라져.” 이 짧은 문장에는 절규도, 원망도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담담하기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큰 슬픔은 소리보다 침묵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그대 없는 나, 나 없는 그대.” 라는 구절은 존재론적 고독을 압축한 시어에 가깝다. 서로를 통해 존재하던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곡은 끝내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기억만 남아.” 이 한 줄에서 「미별」의 미학은 완성된다.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그것을 기억으로 숙성시킬 뿐이다. 그리고 기억은 슬픔을 조금씩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미별」은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생명을 말하고,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사랑을 완성한다. 김효근이 구축해 온 아트팝의 세계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문학과 철학, 삶과 예술을 하나의 서정으로 엮어낸다. 선율은 귀를 지나 마음으로 스며들고, 노랫말은 시가 되어 오래 남는다. 그래서 그의 가곡은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살아내는 노래가 된다. 마지막에 반복되는 “아름답게 떠났네.” 라는 한 문장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도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사랑이 기억으로 형태를 바꾸는 순간이며, 죽음은 관계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화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 배우게 된다. 오늘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는 오래된 시간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그들에게 「미별」은 위로를 건네려 하지 않는다.대신 조용히 곁에 앉아 함께 침묵한다. 그리고 그 침묵 끝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가장 깊은 사랑은 끝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기억으로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