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청문회: 진실을 부르는 힘은 고성이 아니라 준비된 질문이다.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청문회: 진실을 부르는 힘은 고성이 아니라 준비된 질문이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청문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뒤에야 나는 그날의 장면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았다. 책상에 앉아 다른 문서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대목에서 손이 멈췄다.

한 의원이 월드컵 경기 영상을 자료로 꺼내 들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질문이 전제한 그 선수는 이미 그라운드를 뛰고 있었다. 전제부터 어긋난 질문이었다. 그리고 코치를 향해 이어진 질문은 더 허망했다. 그래서 왜 졌느냐고.

그 한 장면만이 아니었다. 증인이 설명을 시작하면 말을 끊고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다그치는 장면, 떠도는 의혹을 사실인 양 전제하고 던진 질문,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반박에 자료 대신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이 이어졌다고 언론은 전했다. 답변 태도를 두고 벌어진 실랑이에 질의 시간이 흘러가기도 했다. 물론 그날 모든 질문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심판 배정 구조의 이해충돌을 파고든 질의처럼, 자료를 읽고 온 질문은 분명히 남았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나는 영상을 껐다가 다시 켰다.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부끄러워서였다. 저 자리를 맡긴 사람 중에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대한축구협회 현안 청문회를 열었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 등이 증인석에 앉았다.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협회 운영 전반을 따져 묻겠다는 취지였다. 위원장은 시작에 앞서 성적 부진만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전해진 장면들은 그 다짐과 자주 어긋났다. 2024년 현안질의와 국정감사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이 되풀이됐고, 채택된 참고인 열세 명 가운데 실제로 출석한 사람은 네 명이었다.

고성은
회의장을 가득 채우지만, 준비되지 않은 질문은 확인되어야 할 사실을 회의장 밖으로 밀어낸다.

오해를 피하고 싶다. 이 글은 축구인을 탓하려는 글이 아니다. 국회를 조롱하려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축구 현장은 오랜 세월 땀으로 버틴 사람들의 세계이고,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묻는 공적 기관이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한다. 감독 한 사람을 몰아세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공개된 절차와 실제 절차의 간극을 복원하는 일이다. 회장 한 사람을 단죄하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결정의 사슬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군가 무너지는 장면 아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제도다.

여기서 AI를 생각하게 된다. 국회의원이 AI에게 답을 맡기자는 말이 아니다. 질문할 권한은 국민이 국회에 맡긴 것이고, 최종 판단은 선출된 대표자의 몫이다. 다만 질문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회의록과 보도자료, 감사 결과와 지난 질의의 기록을 시간 순서대로 정렬하는 일. 같은 사안을 두고 증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대조하는 일. 보좌진이 사흘 걸려 겨우 표 한 장으로 만들던 것을 반나절 만에 초안으로 세우는 일. 그 초안 위에서 사람은 비로소 생각할 시간을 얻는다.

질문서 한 장이 달라졌다면 그날의 풍경도 달라졌을 것이다. 왜 졌느냐고 묻는 대신, 어느 회의에서 어떤 기준으로 최종 후보군이 좁혀졌는지 물을 수 있었다. 공개된 절차와 실제 진행된 절차가 갈라지는 지점을 의원이 표 한 장으로 들이밀 수도 있었다. 그 결정에 서명한 사람, 보고받은 사람, 이견을 냈다가 기록에서 사라진 사람의 이름을 차례로 짚어 갈 수도 있었다. 질문이 이렇게 바뀌면 답변은 감정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워진다.

 AI는 국회의원을 대신할 수 없다. 대신, AI는 부실한 질문이 국민의 질문으로 자라도록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다.

국회가 AI를 모르는 공간도 아니다. 국회도서관은 뉴스와 소셜 데이터, 국회 안팎의 자료를 융합 분석해 의정 현안과 관련 자료를 제시하는 ‘AI시사분석 아르고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의회연맹이 펴낸 「의회를 위한 AI 지침」의 핵심도 분명하다. AI는 민주적 숙의와 의사결정에서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확장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구는 이미 와 있다. 남은 문제는 그 도구를 질문의 품격으로 바꿀 역량이다.

물론 반론이 있다. 정치인이 AI에 기대면 더 위험해지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타당한 걱정이다. 검증 없이 들고 나온 질문은 청문회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AI는 틀린다. 맥락을 오해하고, 없는 근거를 그럴듯하게 채워 넣는다. 그것을 사실로 포장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러므로 원칙이 필요하다. 출처를 확인할 것. 자료를 원본과 대조할 것. 개인정보와 민감 정보는 넣지 말 것. 마지막 질문의 책임은 의원과 보좌진이 질 것. 결국 준비를 마친 사람이 묻 청문회여야 한다.

축구도 결국 질문의 경기다.
좋은 패스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공간을 읽고, 시간을 재고, 다음 장면을 미리 상상해야 겨우 나온다. 청문회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두 경기의 결과를 함께 물려받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동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다. 그중 누군가는 언젠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것이다. 그날 그 아이 앞에 남아 있을 것은 이번에 확인된 사실과 그래서 바뀐 규정뿐이다. 고성은 그때까지 남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분노는 하루치 기사를 만들고, 준비된 질문은 한 줄의 기록을 남긴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언제나 기록 쪽이다.

우리도 회의에서, 교실에서, 저녁 밥상에서 누군가를 몰아붙이기 직전에 잠시 멈출 수 있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가. 어떤 자료가 필요한가. 내 분노는 사실 위에 서 있는가. 오늘의 작은 실천은 이 세 문장을 소리 내지 않고 되뇌어 보는 일이다.

AI 시대의 시민성은 답을 빨리 얻는 능력에서 오지 않는다. 물어야 할 것을 끝까지 물을 준비를 갖추는 데서 온다.

경기장에서 길을 잃은 공은 훈련으로 돌아가야 하고, 청문회장에서 길을 잃은 질문은 준비로 돌아가야 한다. 그날 내가 영상을 껐다가 다시 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나는 아직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다음 청문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가?

참고자료

1. 연합뉴스, 「국회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개최…감독 선임 등 운영 전반 지적(종합)」, 2026.7.30.

2. YTN, 「문체위, 오늘 축구협회 청문회…정몽규·홍명보 출석·답변 주목」, 2026.7.30.

3. 일간스포츠, 「“왜 졌어요”·“예·아니요로만 답하세요”…또 입 막고 호통만 치고 ‘허탕’」, 2026.7.30.

4. 이데일리, 「답변 막고 호통만…축구협회 따지던 국회 청문회 오히려 ‘자살골’」, 2026.7.30.

5. 스포츠경향, 「고압적인 심판위원장, 각종 질문에 ‘회피성 대답’ 남발한 간부…축구협회 ‘성토의 장’이 된 문체위 청문회」, 2026.7.30.

6. 국회도서관, 「AI시사분석 아르고스」 서비스 소개.

▲사진=구글 제미나이(나노 바나나2)가 생성한 이미지 – 호통치는 의원과 당황한 증인 ⓒ강남 소비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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