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수 칼럼] 노동사례: 조건부 채용과 시용해고의 경계

[정봉수 칼럼] 노동사례: 조건부 채용과 시용해고의 경계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사건의 시작: 호주에서 한국까지

외국인 관련 노동사건을 주로 담당하다 보면, 법률상 판단과 당사자가 느끼는 억울함 사이에 큰 간격이 생기는 사건을 접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사례다. 호주 출신의 한 영어강사는 한국의 C어학원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는 현지 채용담당자가 진행한 약 2주간의 심사와 인터뷰를 통과했고, 어학원과 고용 관련 서류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E-2 비자를 받기 위해 범죄경력 관련 서류도 준비했고, 항공료 등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여 한국으로 왔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취업시험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채용되었다고 믿고 근무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어학원은 정식 배치 전에 1주일간의 트레이닝을 실시했고, 신규 강사 11명을 과정별로 배치했다. 이 근로자에게는 유일하게 고급과정이 배정되었다. 그는 중급과정은 통과했지만 고급과정의 최종 모의강의(Mock-up)를 통과하지 못했다. 어학원은 트레이닝 미이수를 이유로 입국 후 불과 일주일 만에 고용관계를 종료했다.

이 사건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트레이닝을 통과하지 못했으므로 애초에 근로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이미 성립한 근로계약 아래에서 업무적격성을 평가받다가 해고된 것인가?’ 이 차이에 따라 사건의 법적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II. 당사자의 주장

1. 어학원의 주장: 트레이닝은 채용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어학원은 다른 영어학원보다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원어민 강사의 선발과정을 엄격하게 운영한다고 주장했다. 지원자의 이력서와 에세이를 검토하고 전화 인터뷰를 통해 교육관, 의사소통 능력과 강의 적합성을 평가한 뒤 고용 관련 서류에 서명하게 한다. 이후 비자 발급 절차를 진행하고, 한국 입국 후 건강검진과 트레이닝을 거쳐 최종적으로 강의 현장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어학원에 따르면 이 근로자 역시 이러한 절차를 알고 있었다. 그는 5일간의 트레이닝을 마쳤지만 최종 모의강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트레이너는 다시 준비하여 재시험을 보면 예정된 근무처로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으나, 근로자가 추가 시험을 거절했다. 따라서 어학원은 근로자가 약정된 트레이닝을 ‘성공적으로 이수’하지 못했고, 근로계약의 효력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즉 어학원의 논리는 ‘해고’가 아니라 ‘조건 미성취’였다. 근로관계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정당성이나 해고절차를 따질 단계 자체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2. 근로자의 주장: 나는 이미 채용되어 한국에 왔다

근로자의 인식은 정반대였다. 그는 호주에서 이미 근로계약을 체결했고, 그 계약서를 기초로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왔다. 계약서에 트레이닝 관련 조항이 있었지만, 이를 ‘한국에 온 뒤 다시 채용시험을 치러 합격해야만 고용이 확정된다’는 의미로 이해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배치 전 교육과정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된 고급과정은 원어민에게도 쉽지 않은 비판적 사고와 논술 중심의 수업이었다. 사용 교재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학생 수준의 사고와 토론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근로자는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TESOL 자격을 보유했으며, 체코에서 약 1년간 영어강사로 근무한 경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신규 강사 11명 가운데 자신에게만 고급과정이 배정되었다는 점에서 평가의 공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근로자에게 더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이었다. 만약 한국에서 실시되는 트레이닝이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채용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시험이고, 자신이 담당할 수업이 일반 영어회화가 아니라 대학 수준의 영어논술에 가까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한국행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자 준비에 들인 시간, 항공료와 체류비, 다른 취업기회를 포기한 기회비용까지 모두 근로자가 부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사건 직전에도 유사한 계약으로 한국에 온 다른 외국인 강사가 트레이닝 미통과를 이유로 귀국한 사례가 있었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불운이라기보다 해외에서 근로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채용확정과 최종평가의 경계가 불명확할 때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III. 당시 노동위원회의 판단 및 법적 쟁점 

1.   노동위원회의 판단: 근로계약은 아직 성립하지 않았다

 

당시 노동위원회가 본 핵심 쟁점은 첫째,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유효한 근로계약이 성립했는지, 둘째, 근로계약이 성립했다면 그 종료가 사직인지 해고인지, 셋째, 해고라면 정당한 이유와 절차를 갖추었는지였다.[1]

노동위원회는 계약의 성립에는 당사자 의사의 객관적 합치가 필요하고, 당사자가 특정 사항을 계약성립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면 그 조건에 관한 합치가 있어야 한다는 계약법리를 전제로 판단했다.[2] 당시 제출된 고용 관련 서류에는 트레이닝을 이수하고 교습자격이 부여되는 것을 효력발생의 조건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고, 근로자는 중급과정은 통과했지만 고급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노동위원회는 트레이닝 이수가 근로계약 효력발생의 조건인데 그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으므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유효한 근로계약이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근로계약 성립을 전제로 한 부당해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 ‘조건부 채용’인지 ‘시용근로’인지 실질을 보아야 한다

2026년 현재 이 사건을 다시 본다면 계약서에 ‘트레이닝 통과’를 조건으로 적어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채용의 전체 과정과 당사자의 합리적 인식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이미 채용심사를 마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며, 사용자의 고용을 전제로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하고 사용자 제공 숙소에 입주한 뒤 사용자의 지휘 아래 교육을 받았다면, 실질적으로 근로관계가 어느 단계까지 형성되었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교육’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실제 목적이 근로자의 업무능력·자질·적격성을 관찰하고 본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시용 또는 수습과 유사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시용근로관계에서 본채용 거부는 통상의 해고보다 다소 넓게 인정될 수 있지만, 대법원은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3]

 

3. 해고 또는 본채용 거부라면 구체적인 서면통지가 필요하다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하고, 서면통지가 있어야 해고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시용기간 만료 시 본채용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근로자가 그 사유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거부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4]

따라서 이 사건의 트레이닝이 실질적으로 시용평가에 해당한다고 평가된다면, 단순히 ‘트레이닝 Fail’이라는 결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평가항목에서 어떤 기준에 미달했는지, 그 기준이 사전에 객관적으로 제시되었는지, 다른 신규 강사와 비교하여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었는지, 재평가 기회가 실제로 공정하게 제공되었는지 등이 정당성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4. 외국인 근로자의 해외채용에는 명확한 사전 설명이 특히 중요하다

외국인 근로자는 채용을 믿고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 비자 발급, 범죄경력증명, 학위·경력서류, 항공권, 주거, 기존 직장의 퇴사 등 상당한 비용과 위험을 부담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한국 입국 후의 트레이닝을 ‘최종 채용시험’으로 운영하려면 그 사실, 평가기준, 불합격 가능성, 불합격 시 비용부담과 귀국 문제를 채용 단계에서 명확히 고지하는 것이 분쟁 예방의 핵심이다.

반대로 이러한 핵심정보를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해외에서 근로계약과 비자 절차를 진행하고 입국 후 짧은 평가만으로 고용을 종료한다면, 계약의 형식과 별개로 채용과정의 공정성 및 시용해고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VI. 결론

 

당시 노동위원회는 계약서의 조건부 문구를 중시하여 근로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당시 제출된 계약서와 계약성립 법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은 단순히 ‘트레이닝에 떨어진 지원자’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해외채용, 취업비자 발급, 근로계약 체결, 한국 입국, 사용자 제공 숙소 입주와 교육 참여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고용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일한 사건을 예방하려면 사용자는 해외채용 단계에서 ① 트레이닝이 단순교육인지 최종 선발시험인지, ② 평가항목과 합격기준은 무엇인지, ③ 불합격 시 근로계약의 법적 처리와 비용부담은 어떻게 되는지, ④ 재평가 기회가 있는지를 서면으로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시용근로로 운영한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본채용을 거부하거나 해고할 경우 구체적인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5]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행은 단순한 면접 장소의 이동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결정이다. 사용자가 그 결정을 전제로 사람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면, 계약서의 한 문구에만 기대기보다 채용과 평가의 기준을 투명하게 설계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인사관리가 필요하다. 이 사건이 지금도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사진=외국본사에 파견근무 외국인의 부당해고 사례 ⓒ강남 소비자저널

[1]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 제27조(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제28조 이하(부당해고 등의 구제신청)

[2]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 계약 성립을 위한 의사표시의 객관적 합치에 관한 법리

[3]           대법원 2006. 2. 24. 선고 2002다62432 판결 — 시용근로관계에서 본채용 거부의 합리적 이유와 사회통념상 상당성

[4]           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5두48136 판결 — 시용기간 만료 시 본채용 거부사유의 구체적·실질적 서면통지

[5]           대법원 2020년 판결례 등 — 시용기간 중 해고에도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와 구체적 서면통지가 요구된다는 법리 확인 [편집 주: 원문에 구체적인 선고일과 사건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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