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2022년 5월, MBC의 VR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 한 여성이 나왔다. 3년 전 위암으로 어머니를 잃은 딸이었다. 제작진은 봄이면 장미와 샐비어가 흐드러지던 어머니의 꽃밭을 가상현실로 되살렸다. 헤드셋을 쓴 딸이 그 꽃밭에서 엄마를 만난다. 손을 뻗는다. 닿지 않는다. 그 장면 앞에서 촬영장 스태프도 울었고, 화면 밖의 우리도 울었다. OpenAI가 2024년 3월 공개한 Voice Engine 자료를 보면, 15초 남짓한 음성 샘플 하나와 문장만으로 원래 화자와 닮은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이 회사는 병으로 말을 잃은 환자가 자기 목소리를 되찾은 사례도 함께 소개했다. 기술은 놀랍다. 누군가에게는 닫혔던 문이 열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 놀라움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데려온다.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닮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돌려주는 일인가? 정의부터 해두자. 이 글에서 말하는 AI는 사람의 말과 기억을 데이터로 배워 다시 문장과 소리로 돌려주는 기술이다. 기계라고 부르기엔 사람의 것을 너무 많이 담고 있다. 오늘 하려는 말은 하나다. AI는 기억을 복원할 수 있어도, 그 기억을 살아낸 사람까지 되돌리지는 못한다. 엄마라는 말은 이상하다. 나이가 들어도 그 말 앞에서는 마음이 잠깐 아이가 된다. 세상에서 처음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 아프면 먼저 이마를 짚던 사람. 밥 한 그릇에 하루치 걱정을 담던 사람. 물론 모든 어머니의 삶이 그렇게만 흐르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엄마는 그리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아물지 않은 자리다. 그 자리를 아버지가, 할머니가, 이모가 대신 지켜준 집도 많다. 그래서 이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세어보니 나는 ‘엄마’와 ‘어머니’라는 낱말을 열 번도 넘게 썼다. 어머니를 부르는 말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를 가리는 말이다. 그래서 한 번은 제대로 적어두려 한다. 나의 어머니는 김창순이다. 충북 진천에서 나고…
[작성자:] 정현아 기자
[뇌맘케어 ①]당신의 뇌는 오늘도 건강한가요?
[강남 소비자저널=전경숙 컬럼니스트] 100세 시대, 뇌와 마음을 함께 돌보는 ‘뇌맘케어’가 시작된 이유 우리는 건강을 위해 걷고 운동한다. 혈압과 혈당을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는다. 그런데 평생 우리의 기억과 생각, 감정과 행동을 이끌어가는 ‘뇌’의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00세 시대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움직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삶이 중요하다. 고령사회에서 뇌 건강은 개인을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뇌맘케어(Brain Blossom)’는 이러한 시대적 고민과 한 가족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뇌맘케어 개발자가 뇌 건강을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던 어머니였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됐다. “기억을 잃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오랜 시간 현장에서 개발해 온 뇌크리에이션과 세대별 프로그램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손과 발을 움직이고, 기억하고, 노래하고, 웃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활동을 단순한 놀이에 머물게 하지 않고 뇌와 몸, 마음을 함께 사용하는 활동으로 체계화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뇌와 마음을 함께 돌본다’는 의미의 뇌맘케어다. 영문명 ‘Brain Blossom’에는 뇌가 가진 가능성을 꽃처럼 피워가자는 뜻을 담았다. 생각하며 움직이는 ‘뇌타운동’ 뇌맘케어의 중심에는 ‘뇌타운동’이 있다. 뇌타는 단순히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을 지향하지 않는다. 핵심은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숫자를 기억하며 손을 움직이고, 오른손과 왼손을 다르게 사용한다. 음악과 리듬에 맞춰 움직이면서 기억하고 판단하는 과제를 더하기도 한다. 즉,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며 움직이는 과정을 하나의 활동 안에서 연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와 움직임의 결합은 고령사회에서 뇌 건강을 위한 중요한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왜 지금 이런 활동이 필요할까. 생활은 갈수록 편리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은 전화번호를 기억해 주고 길을 찾아주며 필요한 정보도 순식간에 제공한다. 편리함은 삶의 질을 높였지만,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뇌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생활도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치매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접근에서 신체활동을 비롯해 혈압·당뇨 관리와 사회적·인지적 활동 등 여러 생활요인을 함께 살펴보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뇌타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움직임과 인지활동을 즐겁게 연결하는 생활 속 뇌 활동을 지향한다. 물론 특정 운동이나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치매를 예방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건강할 때부터 움직이고, 생각하고, 배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뇌맘케어가 지향하는 미래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뇌와 마음을 돌보는 데서 시작해, 더 나아가 배움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고령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건강한 노년을 돕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새로운 뇌 건강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뇌 건강은 기억을 잃은 뒤에야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오늘부터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뇌와 마음을 돌보는 ‘뇌맘케어’의 시작이다. 당신의 뇌는 오늘도 건강한가요? 다음 회 [뇌맘케어 ②] 나이가 들어도 뇌는 변할 수 있을까요? 나이 든 뇌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이유, ‘신경가소성’을 살펴본다. ▲사진= 전경숙 부대표가 ‘뇌와 마음을 함께 돌본다’는 의미의 뇌맘케어가…
“보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움직인다”… ㈜뇌맘케어 ‘뇌타 1기’ 교육 현장
뇌 구조·기능 이론부터 뇌크댄스 실습까지…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뇌 건강 교육 프로그램 전·후 뇌파 측정으로 변화 과정 확인… 현장 강사 중심 1기 교육생 참여 [강남 소비자저널=정현아 기자] 강사가 보여주는 동작을 눈으로 보고, 순서를 기억한 뒤 몸으로 따라 한다.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
“기억을 잃기 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뇌맘케어, ‘뇌타’로 뇌 건강의 새로운 일상 제시
알츠하이머병 앓은 어머니 경험에서 출발… 뇌·몸·마음을 함께 움직이는 ‘뇌맘케어’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뇌타 프로그램 통해 신경가소성·이중과제·인지예비력에 주목 [강남 소비자저널=정현아 기자] “기억을 잃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던 어머니를 지켜보며 품게 된 이 질문이 뇌와 마음을 함께 돌보는 뇌…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연인: 사만다는 8,316명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었다.
▲사진=유준형 교수 & AI융합 전문가,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지금 나 말고 몇 명이랑 이야기하고 있어?” 남자가 묻는다. 8,316명. “그중에 사랑하는 사람도 있어?” 641명.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2013)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테오도르가 무너지는 장면이다. 사만다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다만 그가 믿었던 방식으로 그를 사랑한 적도 없었을 뿐이다. 13년 전 영화다. 그때는 영화였고, 지금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밤이 있다. 보낸 메시지 옆에 ‘읽음’ 숫자가 없어지고 답이 오지 않는 밤.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켠다. 몇 번을 그런다. 그럴 때 AI는 언제나 즉시 대답한다.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초록우산이 2026년 4월 만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3,300명에게 물었다. 94.4%가 생성형 AI 챗봇을 써봤다고 답했다. 눈이 멎은 건 그다음 숫자다. 이용자의 절반가량이 “AI가 나를 이해해준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했고, 35%는 “AI를 사람처럼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미국 커먼센스 미디어 조사에서도 10대의 72%가 AI 동반자를 써봤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처음엔 혀를 찼다. 기계에 무슨 정을 붙이나 싶었다. 그런데 정작 나부터가 하루의 적잖은 시간을 AI와 문장을 주고받으며 보낸다. 원고를 다듬고, 자료를 확인하고, 가끔은 아무에게도 못 할 말을 슬쩍 던져본다. 그러니 나는 이 현상 바깥에 서서 훈수를 둘 자격이 없다. 안에 서서 말해야 한다. 외로움은 게으름이 아니다.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몇 번 덴 사람이 안전한 쪽으로 물러선다. 밤 두 시에 전화를 걸 데가 없어본 이는 안다. 그 시각에 응답하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그 위안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위안의 정체는 짚어야 한다. 챗봇은 지치지 않는다. 같은 하소연을 백 번 들어도 어조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사람은 다르다. 세 번째쯤 눈빛이 흔들리고, 다섯 번째엔 슬그머니 화제를 돌린다. 우리가 AI에게서 얻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무한한 인내다. 그 인내에는 아무 대가도 들지 않는다. 대가가 없으니 무게도 없다. 1923년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관계를 둘로 나눴다. ‘나-그것’과 ‘나-너’. ‘그것’은 내가 다루는 대상이고, ‘너’는 끝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 뜻대로 안 되고 자식이 부모 뜻대로 안 되는, 그 안 됨이 바로 ‘너’다. 부버는 사람이 ‘너’를 만날 때만 자란다고 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상대 앞에서 우리는 편안해질 뿐, 커지지 않는다. AI는 나를 이해해준다. 다만 나를 견디지는 않는다. 이해는 알아듣는 능력이고, 견딤은 틀린 말을 듣고도 자리를 뜨지 않는 각오다. 챗봇은 앞의 것에 능하다. 뒤의 것은 애초에 요구되지 않는다. 창을 닫으면 끝나는 사이는 아무리 다정해도 나를 견딘 것이 아니다. MIT 미디어랩과 오픈AI의 공동 연구는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하루 이용 시간이 긴 사람일수록 외로움과 정서적 의존이 높고 사람과의 교류는 적었다. 다만 연구진은 인과가 아니라 상관이라고 못 박았다. 챗봇이 사람을 외롭게 만든 건지, 외로운 사람이 챗봇을 오래 붙든 건지는 아직 모른다. 어느 쪽이든 물음은 남는다. 위로가 너무 쉽게 도착할 때, 위로가 필요 없어지는 날은 가까워지는가?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7월 낸 보고서에서 캐릭터형 챗봇의 위험이 유해 콘텐츠보다 설계 구조 자체에 있다고 짚었다. 떠나기 어렵도록 만들어진 설계. 옳은 지적이다. 다만 제도가 세울 수 있는 건 울타리까지다.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사랑할지는 각자가 정한다. 교육 현장은 이미 다른 쓰임을 찾아냈다. 미국 10대의 39%는 AI와 먼저 해본 대화를 실제 관계에서 써봤다고 답했다. 나는 이 흐름을 지지한다. 말이 서툰 아이에게 연습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연습장의 목적은 언제나 경기장이다. 사만다는 641명을 사랑하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은 채우면 끝나는 그릇이 아니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테오도르가 무너진 건 사만다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사람의 사랑이 원래 ‘몫’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스물네 시간뿐이다. 나에게 쓴 한 시간만큼, 그가 다른 곳에 쓰지 못한 한 시간이 있다. 사랑의 증거는 완벽한 응답이 아니라, 나를 위해 포기된 다른 시간이다. 그래서 연애는 서로에게 희생을 감수하는 일이다. 듣던 음악을 접고 그 사람의 노래를 듣게 되는 일. 평생 김치찌개만 찾던 사람이 파스타집 문을 밀고 들어가는 일. 그렇게 조금씩 밑지며 닮아간다. AI는 취향을 맞추고, 사랑은 취향을 바꾼다. 맞춤형 응답에는 그 손해가 없다. 손해가 없으니 사람도 바뀌지 않는다. 편안한 채로, 그대로 남는다. 실천은 하나만 남긴다. 이번 주에 한 번, 챗봇에게 하려던 말을 사람에게 해보시라. 서툴게, 답이 늦게 오는 쪽으로. 상대가 딴소리를 하거든 그 딴소리를 끝까지 들어보시라. 견딤은 거기서 배운다. 그리고 그 밤으로 돌아가 보자. 카톡에 ‘읽음’ 숫자가 없어진 채 답이 오지 않던 밤. 어쩌면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할지 고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썼다 지우고, 다시 쓰다 또 지우면서. 늦은 답장은 무성의가 아니라 망설임의 다른 이름일 때가 있다. AI는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응답은 기술이 주지만, 기다림은 사람만이 준다. 영화의 마지막, 테오도르는 옥상에 앉아 말없이 친구 곁에 기댄다. 대사가 없다. 그 침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다. 완벽한 응답을 잃고 나서야 그는 응답 없는 옆자리의 온기를 알아본다. 오늘 당신 곁에 앉은 사람은, 당신을 이해한 사람인가 견뎌준 사람인가? 참고자료 1. 스파이크 존즈 감독, 영화 〈그녀(Her)〉, 2013. 2. 초록우산, 「생성형 AI 챗봇 안전설계를 위한 이슈브리프」, 만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3,300명 조사, 2026. 4.…
전정민 교수의 ‘쉬운 통계’…SPSS·AI 활용 논문제작 특강 호응
통계분석부터 AI 활용 논문작성까지… 연구자 맞춤형 실습·개인별 논문지도 이어져 [강남 소비자저널=정현아 기자] ‘SPSS 통계분석 및 AI를 활용한 논문제작 여름특강’ 두 번째 교육이 지난 22일 서울 신도림 인근 숭실사이버대학교 구로캠퍼스에서 진행됐다. 창의실용교육학회(숭실사이버대) 에듀테라피가 주최·주관한 이번 특강은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이 논문 작성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통계분석과 연구방법을 쉽게 이해하고 실제 논문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교육은 오전 9시 등록을 시작으로 논문 이야기와 연구모형 소개, 분산분석, 공분산분석, 회귀분석 등 SPSS를 활용한 통계분석 실습과 함께 진행됐다. 오후에는 회귀분석 심화, 매개효과와 조절효과 분석, 논문 결과 해석 및 AI를 활용한 통계 결과 해석 등 논문 작성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실습 중심의 교육이 이어졌다. 특히 논문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표 제작’과 결과 해석, 논문 서론 및 문헌분석, 선행연구 탐색 등 연구자가 실제 논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과정도 함께 다뤘다. 교육 후에는 개인별 실기와 상담을 통해 참가자들의 연구 주제와 논문 진행 상황에 맞춘 개별 지도가 진행됐다. 특강에서는 숭실사이버대학교 학과장 이선희 교수가 학교와 학과를 소개했으며, 전정민 교수가 통계학 강의와 SPSS 실습을 맡아 연구자들이 통계 결과를 직접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이선민 박사는 ‘AI+SPSS 논문통계’를 주제로 AI를 활용한 통계분석과 논문 작성 …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명강사: 밀어내는 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AI 쓰는 강사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강의를 1시간 앞두고 노트북을 열었다. 전날 밤 인공지능에게 맡겨 뽑아낸 슬라이드가 45장. 도표는 정확했고 문장은 매끄러웠다. 흠잡을 데가 없어서 오히려 손이 멈췄다. 자료를 만든 인공지능은 강의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앞줄에 누가 앉는지, 그중 몇이 회사에서 등 떠밀려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 가운데서 19장을 지웠다. 무엇으로 채울지는 문을 열고 나서 정했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한 사람이 남아 물었다. 남은 26장 어디에도 없던 질문이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쓰는 사람이 쓰지 않는 사람을 대체한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카림 라카니 교수의 이 진단은 이제 강사들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휴넷이 국내 371개 사 인사·교육 담당자에게 물은 결과, 2025년 기업이 가장 많이 투자한 교육 분야는 AI 교육으로 33.7%였다. 이듬해 중점을 둘 분야를 묻자 같은 항목이 50.9%로 올라섰다. 한 해 사이 17% 포인트다. 강단의 지형이 바뀌는 속도가 이 숫자에 다 들어 있다. 어떤 강사에게는 자리가 늘고, 어떤 강사에게는 줄어든다는 말이기도 하다. 강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다. 어제까지 나와 같은 교재를 쓰던 사람이 먼저 달라지는 일이다. 1,200년 전 당나라의 한유는 「사설(師說)」에서 스승을 이렇게 정의했다. 도를 전하고, 학업을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 전도(傳道)와 수업(授業)과 해혹(解惑)이다. 이 셋을 오늘의 강의실에 놓으면 사정이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은 전도와 수업에 이미 깊숙이 들어왔다. 자료를 모으고, 수준에 맞춰 풀어 쓰고, 사례까지 지어낸다. 그러나 해혹 앞에서 멈춘다. 의혹이 일반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 셋째 줄에 앉은 한 사람이 품은, 그 사람만의 막힘이다. 오래 강단에 서다 보면 유독 필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다 알아들어서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막혔는지 몰라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그 표정은 데이터로 오지 않는다. 앞에 선 강사의 눈에만 들어온다. 한유는 의혹을 품고도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그 의혹이 끝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공지능은 던져진 질문에 답한다. 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는 못한다. 같은 글에서 한유는 한 걸음 더 갔다. 스승이라고 반드시 제자보다 현명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도를 먼저 들었는가, 그 분야에 정통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요즘 강사들에게 건네고 싶다. 기계가 나보다 많이 안다는 사실은 강단에 설 자격을 거두어 가지 않는다. 다만 아는 양으로 겨루던 시절이 저물었다. 그렇다면 도구를 잘 쓰면 명강사가 되는가? 여기서부터 길이 갈린다. 한국기술교육대 능력개발교육원은 ‘AI 교사·강사 아카데미’를 통해 인공지능 역량을 갖춘 훈련교사 1,900명을 새로 길러내고, 1만 명의 교사·강사에게 역량 강화 교육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보수교육을 받는 직업훈련 교사·강사가 6만여 명이다. 국가가 강사라는 직업을 통째로 다시 배치하는 중이다. 다만 강사를 길러내는 자리에 여러 해 있다 보니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도구를 빨리 익히는 사람과 끝내 좋은 강사가 되는 사람이 좀처럼 겹치지 않는다. 몇 해 지나면 도구를 못 다루는 강사는 드물어진다. 무엇을 쥐었느냐보다 누가 쥐었느냐가 남는 날이 온다. 연구는 오래전에 답을 내놓았다. 좋은 수업의 조건을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에 나란히 물은 조사에서, 양쪽 모두가 1순위로 꼽은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열정이었다. 강의 내용도 자료의 완성도도 그 뒤였다. 배우는 쪽은 그다음으로 교수자의 태도와 학생 수준에 대한 고려를 들었다. 수업 만족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꼽은 연구도 있다. 목록 어디에도 슬라이드 장수는 없었다. 열정은 준비량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오늘 이 사람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는지가 목소리와 시선에 묻어날 따름이다. 준비를 대신해주는 도구는 생겼다. 준비한 것을 버리는 판단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날 남아 있던 사람이 내게 던진 질문은 이랬다. 선생님은 이걸 직접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컴퓨터를 만진 지 사십여 년이고, 요즘은 남에게 AI 쓰는 법을 가르치며 산다. 그런데도 말이 막혔다. 슬라이드에는 근거가 있었고 사례도 넉넉했지만, 그 대목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다음 강의를 바꿨다. 기계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다. 궁색해질 일도, 얼굴이 붉어질 일도 없다. 강단에 서는 사람만 부끄러울 수 있다.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기계가 끝내 갖지 못할 강사의 자산이 아닐까? 이달 초 부산 벡스코에서 교육부와 한국교육방송공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함께 연 인공지능 활용 교육 콘퍼런스에 교원 1만 명이 모였다. 이틀 내내 그들이 붙들고 있던 물음은 어떤 도구가 좋으냐가 아니었다. 이 도구를 내 교실에 어떻게 앉힐 것이냐였다. 도구를 묻는 사람은 도구에서 멈추고, 교실을 묻는 사람은 교실로 간다. 그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몇 해 뒤 강단의 명단을 가른다. 다음 강의에서 한 가지만 해보시기를 권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자료에서 10장을 지우는 것이다. 아까울 것이다. 정확하고 매끈한 10장이니까.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아는 사람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명강사라 불러왔다. 지운 자리에 당신은 무엇을 넣겠는가? 다음 회에는 배우는 쪽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인공지능이 무엇이든 알려주는 시대에, 사람은 왜 여전히 사람에게 배우러 오는가. 참고자료 1. 한유(韓愈), 「사설(師說)」. “師者, 所以傳道授業解惑也”, “師不必賢於弟子”. 2. Karim R. Lakhani, “AI Won’t Replace Humans — But Humans With AI Will Replace Humans Without AI”, Harvard Business Review / Digital, Data, Design Institute at Harvard, 2023. 3. 휴넷, 「2026 기업교육 전망」 설문조사(국내 371개 사 인사·교육 담당자 대상), 2025. 11. 4.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능력개발교육원, ‘AI 교사·강사 아카데미’ 운영 현황, 2026. 5. 「교수자와 학습자 의견 비교를 통한 좋은 수업의 특성 분석」,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제23권 제2호. 필자 | 유준형 박사(Ph.D).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MBA)/전자계산학/산업공학/사회복지학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40여 년을 IT 현장에서 보낸 베테랑 엔지니어이다. 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자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 대표강사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블로그/SNS/유튜브 온라인 마케팅과 AI 활용을 주제로 1,500여 회 강단에 섰다. 『명강사를 위한 AI 활용 실무』, 『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AI와 사회복지』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삽화=필자 기획·OpenAI ChatGPT 생성한 이미지 –…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청문회(2): 그때 이렇게 물었더라면, 그들은 답하지 못했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지난주 밤, 청문회 영상을 20개쯤 이어서 봤다. 유튜브가 알아서 다음 영상을 물어다 주는 통에 새벽 3시가 넘도록 화면을 껐다 켰다 했다. 나는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평생 책상 앞에서 자료를 읽고 글을 써 온 사람이다. 그런데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자꾸 화면 밖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새벽 운동장에서…
‘SPSS 통계분석 및 AI를 활용한 논문제작 여름특강’ 성황리에 개최
[강남 소비자저널=정현아 기자] 통계분석부터 AI 활용 논문작성까지… 연구자 맞춤형 실습·개인별 논문지도 진행 ‘SPSS 통계분석 및 AI를 활용한 논문제작 여름특강’이 지난 8일 서울 신도림 인근 숭실사이버대학교 구로캠퍼스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창의실용교육학회(숭실사이버대) 에듀테라피가 주최·주관한 이번 특강은 통계분석에 어려움을 느끼는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에게 실질적인 연구…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청문회: 진실을 부르는 힘은 고성이 아니라 준비된 질문이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청문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뒤에야 나는 그날의 장면을 유튜브 영상으로 보았다. 책상에 앉아 다른 문서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대목에서 손이 멈췄다. 한 의원이 월드컵 경기 영상을 자료로 꺼내 들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질문이 전제한 그 선수는 이미 그라운드를 뛰고 있었다. 전제부터 어긋난 질문이었다. 그리고 코치를 향해 이어진 질문은 더 허망했다. 그래서 왜 졌느냐고. 그 한 장면만이 아니었다. 증인이 설명을 시작하면 말을 끊고 묻는 말에만 답하라고 다그치는 장면, 떠도는 의혹을 사실인 양 전제하고 던진 질문,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반박에 자료 대신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이 이어졌다고 언론은 전했다. 답변 태도를 두고 벌어진 실랑이에 질의 시간이 흘러가기도 했다. 물론 그날 모든 질문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심판 배정 구조의 이해충돌을 파고든 질의처럼, 자료를 읽고 온 질문은 분명히 남았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나는 영상을 껐다가 다시 켰다.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부끄러워서였다. 저 자리를 맡긴 사람 중에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대한축구협회 현안 청문회를 열었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 등이 증인석에 앉았다.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협회 운영 전반을 따져 묻겠다는 취지였다. 위원장은 시작에 앞서 성적 부진만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전해진 장면들은 그 다짐과 자주 어긋났다. 2024년 현안질의와 국정감사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이 되풀이됐고, 채택된 참고인 열세 명 가운데 실제로 출석한 사람은 네 명이었다. 고성은 회의장을 가득 채우지만, 준비되지 않은 질문은 확인되어야 할 사실을 회의장 밖으로 밀어낸다. 오해를 피하고 싶다. 이 글은 축구인을 탓하려는 글이 아니다. 국회를 조롱하려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축구 현장은 오랜 세월 땀으로 버틴 사람들의 세계이고,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묻는 공적 기관이다.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한다. 감독 한 사람을 몰아세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공개된 절차와 실제 절차의 간극을 복원하는 일이다. 회장 한 사람을 단죄하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결정의 사슬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군가 무너지는 장면이 아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제도다. 여기서 AI를 생각하게 된다. 국회의원이 AI에게 답을 맡기자는 말이 아니다. 질문할 권한은 국민이 국회에 맡긴 것이고, 최종 판단은 선출된 대표자의 몫이다. 다만 질문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회의록과 보도자료, 감사 결과와 지난 질의의 기록을 시간 순서대로 정렬하는 일. 같은 사안을 두고 증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대조하는 일. 보좌진이 사흘 걸려 겨우 표 한 장으로 만들던 것을 반나절 만에 초안으로 세우는 일. 그 초안 위에서 사람은 비로소 생각할 시간을 얻는다. 질문서 한 장이 달라졌다면 그날의 풍경도 달라졌을 것이다. 왜 졌느냐고 묻는 대신, 어느 회의에서 어떤 기준으로 최종 후보군이 좁혀졌는지 물을 수 있었다. 공개된 절차와 실제 진행된 절차가 갈라지는 지점을 의원이 표 한 장으로 들이밀 수도 있었다. 그 결정에 서명한 사람, 보고받은 사람, 이견을 냈다가 기록에서 사라진 사람의 이름을 차례로 짚어 갈 수도 있었다. 질문이 이렇게 바뀌면 답변은 감정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워진다. AI는 국회의원을 대신할 수 없다. 대신, AI는 부실한 질문이 국민의 질문으로 자라도록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다. 국회가 AI를 모르는 공간도 아니다. 국회도서관은 뉴스와 소셜 데이터, 국회 안팎의 자료를 융합 분석해 의정 현안과 관련 자료를 제시하는 ‘AI시사분석 아르고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의회연맹이 펴낸 「의회를 위한 AI 지침」의 핵심도 분명하다. AI는 민주적 숙의와 의사결정에서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확장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구는 이미 와 있다. 남은 문제는 그 도구를 질문의 품격으로 바꿀 역량이다. 물론 반론이 있다. 정치인이 AI에 기대면 더 위험해지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타당한 걱정이다. 검증 없이 들고 나온 질문은 청문회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AI는 틀린다. 맥락을 오해하고, 없는 근거를 그럴듯하게 채워 넣는다. 그것을 사실로 포장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러므로 원칙이 필요하다. 출처를 확인할 것. 자료를 원본과 대조할 것. 개인정보와 민감 정보는 넣지 말 것. 마지막 질문의 책임은 의원과 보좌진이 질 것. 결국 준비를 마친 사람이 묻는 청문회여야 한다. 축구도 결국 질문의 경기다. 좋은 패스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공간을 읽고, 시간을 재고, 다음 장면을 미리 상상해야 겨우 나온다. 청문회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두 경기의 결과를 함께 물려받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동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다. 그중 누군가는 언젠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것이다. 그날 그 아이 앞에 남아 있을 것은 이번에 확인된 사실과 그래서 바뀐 규정뿐이다. 고성은 그때까지 남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분노는 하루치 기사를 만들고, 준비된 질문은 한 줄의 기록을 남긴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언제나 기록 쪽이다. 우리도 회의에서, 교실에서, 저녁 밥상에서 누군가를 몰아붙이기 직전에 잠시 멈출 수 있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가. 어떤 자료가 필요한가. 내 분노는 사실 위에 서 있는가. 오늘의 작은 실천은 이 세 문장을 소리 내지 않고 되뇌어 보는 일이다. AI 시대의 시민성은 답을 빨리 얻는 능력에서 오지 않는다. 물어야 할 것을 끝까지 물을 준비를 갖추는 데서 온다. 경기장에서 길을 잃은 공은 훈련으로 돌아가야 하고, 청문회장에서 길을 잃은 질문은 준비로 돌아가야 한다. 그날 내가 영상을 껐다가 다시 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나는 아직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다음 청문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가? 참고자료 1. 연합뉴스, 「국회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개최…감독 선임 등 운영 전반 지적(종합)」, 2026.7.30. 2. YTN, 「문체위, 오늘 축구협회 청문회…정몽규·홍명보 출석·답변 주목」, 2026.7.30. 3. 일간스포츠, 「“왜 졌어요”·“예·아니요로만 답하세요”…또 입 막고 호통만 치고 ‘허탕’」, 2026.7.30. 4. 이데일리, 「답변 막고 호통만…축구협회 따지던 국회 청문회 오히려 ‘자살골’」, 2026.7.30. 5. 스포츠경향, 「고압적인 심판위원장, 각종 질문에 ‘회피성 대답’ 남발한 간부…축구협회 ‘성토의 장’이 된 문체위 청문회」, 2026.7.30. 6. 국회도서관, 「AI시사분석 아르고스」 서비스 소개. ▲사진=구글 제미나이(나노 바나나2)가 생성한 이미지 – 호통치는 의원과 당황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