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칼럼 유준형] AI와 고독: 인공지능은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고독: 인공지능은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밤늦게 방 안의 불은 꺼졌는데, 손안의 화면만 환하다. 식어 버린 찻잔 옆에서, 잠 못 드는 이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글자를 눌러 넣는다. “오늘 너무 외로워. 나랑 얘기 좀 해줄래?” AI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정한 문장을 돌려준다. “제가 곁에서 편안한 이야기 친구가 되어 드릴게요.” 이상하다.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비어 있다. 대답은 왔지만, 사람이 온 것은 아니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25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6명 중 1명이 외로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우울과 불안, 건강과 수명, 나아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까지 갉아먹는 사회적 위험으로, 외로움이 마침내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라고 예외일까? 2024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의 36.1%, 약 804만 가구에 이르렀고 그중 70세 이상의 비중이 가장 높다. 2025년 홀로 생을 마감한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 한 해 전보다 또 늘었다. 숫자로 보면 통계지만, 한 사람의 삶으로 보면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은 마지막 밤이다.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대화 상대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사라져도 곧바로 알아차려 줄 사람이 없다는 두려움이다. 고독은 연락처의 빈칸이 아니라, 마음을 맡길 한 사람의 부재다. 이 빈자리로 AI가 들어오고 있다. 말벗 챗봇, 돌봄 로봇, 안부 확인 서비스가 빠르게 늘고 있다. AI는 약 먹을 시간을 일러주고, 날씨를 알려주고, 옛 노래를 틀어주고, 잠 못 드는 밤의 말상대가 되어 준다.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는 누구에게도 폐 끼칠 걱정 없이 말을 붙일 창구가 되고, 부모나 교사에게 차마 못 하던 속마음을 청소년이 처음 꺼내 보이는 상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것을 무턱대고 나쁘다 할 수는 없다. 외로운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침묵 속의 방치다. 사람이 당장 곁에 없을 때 AI가 한밤의 응급등처럼 잠시 마음을 붙들어 준다면, 그 쓸모는 분명하다. 이동이 불편한 고령자,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 관계망이 약한 사람에게 AI는 작은 안전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위험하다. AI가 친구처럼 말한다고 해서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친구란 내 말을 들어 주는 존재만이 아니다. 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나와 함께 시간을 허비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AI는 언제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기다림의 아픔은 겪지 않는다. 말은 걸어와도, 관계의 책임까지 지지는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외로운 사람이 AI에게만 더 깊이 매달릴 때다. 어떤 종단 연구는 챗봇에 오래 기댈수록 외로움과 의존이 함께 짙어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물론 모두에게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AI는 현실의 관계로 건너가는 디딤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피해 숨는 골방이 된다. 그래서 진짜 물음은 “AI가 친구냐 아니냐”가 아니다. AI가 사람에게 다시 가는 다리가 되느냐, 사람을 피하는 벽이 되느냐다. 교육도 이 물음을 비켜갈 수 없다. 학생이 AI에게 위로를 구하는 시대에, 학교와 가정이 금지만 외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상담 교사와 부모와 친구의 자리를 AI에 내어 주어서도 안 된다. 이제 교육은 AI 사용법만이 아니라 외로움을 말하는 법, 도움을 청하는 법, 친구의 침묵을 알아채는 법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지식을 넘어, 관계를 가르치는 일이다. 고령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한층 절실하다. 2025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20.3%, 마침내 초고령사회다. 그런데 같은 해 65세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76.9%, 메신저 이용률은 92.6%에 이른다. 이것은 희망의 신호이기도 하다. 디지털을 모르는 노인만 있는 게 아니라, 디지털로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노인이 늘고 있다는 뜻이니까. 다만 그 편리함이 자녀의 전화와 이웃의 방문, 복지관의 프로그램과 친구의 손편지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기술은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세련되게 포장할 뿐이다. 사람은 대답을 듣기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누군가를 걱정하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흔적으로 남기 위해 산다. AI는 내 취향을 기억한다. 그러나 내 젊은 날의 상처를 함께 건너오지는 않았다. AI는 내 생일을 알려 준다. 그러나 그날을 기다리며 케이크를 고르는 마음까지 갖지는 못한다. 외로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곁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단순하다. AI는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얼마간은 그렇다. 긴 밤을 견디게 하고, 닫힌 입을 열게 하고, 위험한 신호를 먼저 감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끝내는 아니다. AI는 친구의 말투를 빌릴 수 있어도, 친구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인간의 고독은 결국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가장 깊이 아문다. 우리가 할 일은 AI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세우는 것이다. AI는 문을 두드리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홀로 있는 사람을 찾아내고, 위험한 침묵을 감지하고, 복지와 의료와 교육의 손길을 더 빨리 잇는 일 – 거기까지가 기계의 몫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마주 앉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기술은 대화를 흉내 낼 수 있어도, 기다림의 체온까지 옮겨 오지는 못한다. 오늘 밤에도 어느 방에서는 찻잔이 조용히 식어 갈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화면에 대고 “나 외로워”라고 손끝으로 눌러 쓸 것이다. 그것은 기계에게 보낸 문장이지만, 실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구조 요청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그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시대라면, 인간은 더 늦지 않게 응답해야 한다. AI가 친구가 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인간다운 친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누구의 안부를 먼저 물을 것인가?   참고자료 1.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5. 6. 30). From Loneliness to Social Connection: Charting a Path to Healthier Societies. WHO Commission on Social Connection. 2. 국가데이터처. (2025. 9). 2025 고령자 통계. 3. 보건복지부. (2025. 11. 27).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결과. 4. 국가데이터처. (2025. 12).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 5. Fang, C. M. et al. (2025). How AI and Human Behaviors Shape Psychosocial Effects of Extended Chatbot Use: A Longitudinal Randomized Controlled Study.   ▲사진=구글 제미나이(나노 바나나2)가 생성한 이미지 – AI 로봇과 노인의 대화 ⓒ강남 소비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