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칼럼] 고결한 외면은 없다 정치적 무관심이 치르는 가장 비싼 대가

[손영미 칼럼] 고결한 외면은 없다 정치적 무관심이 치르는 가장 비싼 대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언제부터인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은 현대인의 세련된 태도처럼 소비되고 있다.

“정치판은 답이 없다.”
“그놈이 그놈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

정치를 외면하는 것이 마치 진흙탕 싸움에 발을 담그지 않는 고결한 선택인 양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이 관심을 거두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당신이 외면한 자리는 결국 다른 누군가가 차지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2400년 전의 이 경고는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정치가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시장을 외면하면서 좋은 물건만 팔리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민이 감시를 멈추고 참여를 포기할 때 정치의 공간은 가장 무책임하고 가장 탐욕적인 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

결국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온다.

내 삶을 바꾸는 법과 제도가 무능한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고, 내가 낸 세금의 쓰임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며, 공동체의 미래가 소수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로 우리는 결국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삶이 좌우되는 현실을 감당해야 한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 역시 같은 맥락에서 경고했다.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이 나빠지는 이유는 악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이유는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 투표를 포기하는 것, 공공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 그 모든 무관심은 결국 현상을 유지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방관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때로 가장 강력한 동의가 된다.

정치가 추하게 보일 수는 있다. 반복되는 정쟁과 실망스러운 모습들 속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시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때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돌보고 지켜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치 참여란 거창한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삶과 연결된 정책에 관심을 갖는 일,
선거 때 후보와 공약을 비교하는 일,
최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하여 더 큰 위험을 막는 일,
권력에 질문하고 감시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일.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민의 최소한의 책임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어느 날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희생, 그리고 책임 의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 권리를 누리면서도 책임은 외면한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정치를 향한 냉소는 쉽다. 비판 역시 쉽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는 냉소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관심과 참여, 그리고 책임 있는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권력은 언제나 시민의 수준을 비추는 거울이다.우리가 외면한 자리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들어선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우리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

진정한 고결함은 세상을 외면하는 데 있지 않다.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공동체를 위해 책임 있게 참여하는 데 있다.

높은 언덕 위에서 냉소하는 사람보다, 광장으로 내려와 자신의 한 표와 목소리를 보태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움직인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혐오가 아니라 정치적 각성이다.

침묵을 멈추는 순간, 민주주의는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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