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칼럼] 찬란한 봄밤, 듣기 좋은 곡~ 목소리는 사랑보다 오래 남는다

[손영미 칼럼] 찬란한 봄밤, 듣기 좋은 곡~ 목소리는 사랑보다 오래 남는다

– 비제 《진주조개잡이》 〈Je crois entendre encore〉와 알라냐의 기억의 미성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찬란한 봄밤에는 유난히 목소리가 먼저 계절을 적신다. 꽃은 지고 바람은 지나가도, 한 사람의 음성은 별빛보다 오래 귓가에 머문다. 그래서 봄밤에 듣는 음악은 늘 사랑의 현재보다, 지나간 사랑의 잔향과 기억을 더 깊이 흔든다. 19세기 프랑스 오페라는 감정을 격정으로 폭발시키기보다, 향기처럼 스며들게 만드는 예술에 가깝다. 그 섬세한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1863년 초연된 비제의 오페라 Les pêcheurs de perles이다. 고대 실론섬의 이국적 바다를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의 금기, 그리고 운명적 기억이 교차하는 이 작품은, 비제 특유의 투명한 관현악 색채와 기억을 자극하는 선율적 서정성이 유난히 빛나는 프랑스 낭만오페라의 대표작이다.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애절한 순간은 1막, 나디르의 로망스〈Je crois entendre encore〉에…

[손영미 칼럼] 한 사람의 안목이 시대의 유산이 되는 순간, 프리마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상준 회장의 수집 미학

[손영미 칼럼] 한 사람의 안목이 시대의 유산이 되는 순간, 프리마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상준 회장의 수집 미학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종로 인사동은 늘 시간을 품은 거리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붓끝의 숨결, 이름 모를 도자의 윤기가 골목 사이로 스며 나온다. 그 익숙한 예술의 결 위에 새롭게 문을 연 더프리마아트센터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오랜 안목과 집념이 마침내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 확장되는 뜻깊은 공간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이상준 회장의 소장품 전시가 지닌 상징성이었다. 수집은 단순히 귀한 물건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미감을 읽고, 사라질 뻔한 시간을 붙들어 미래에 건네는 조용한 사명이다. 이상준 회장이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아껴온 작품들은 이제 한 개인의 서재와 응접실을 떠나 더 많은 이들의 눈과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먼저 다가오는 것은 작품의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다. 도자의 표면에 스민 미세한 균열, 오래된 회화의 바랜 색감, 손때 묻은 고미술의 온도는 모두 한 시대의 호흡을 품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와 한민족 삶의 결을 증언하는 침묵의 기록물처럼 다가왔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이상준 회장의 오랜 수집 철학이 놓여 있다. 그의 컬렉션은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끌림의 미학’이 수십 년간 응축된 결과다. 작품을 소유하는 차원을 넘어, 시대의 미감과 역사적 상흔을 지켜내려는 소명의식이 그 안에 서려 있다. 가장 상징적인 대표작은 단연 조선 18세기 달항아리다. 한때 해외에 머물던 이 백자는 치열한 경쟁 끝에 국내로 환수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둥글고 비어 있는 듯 충만한 그 형태는 조선 미학의 절정이자, 비움 속에서 완성을 이루는 한국 정신의 형상이다. 이상준 회장에게 이 달항아리는 단순한 명품 도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문화의 귀환이자 역사 회복의 상징물이다. 또한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는 백자청화오조룡문호는 조선 왕실의 위엄과 상징 체계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용의 다섯 발톱이 상징하는 권위는 단순한 문양을 넘어 왕조의 질서와 미의식을 응축한다. 이 작품이 지닌 힘은 관람객에게 단순한 감상이 아닌 역사적 현존감을 선사한다. 근현대 회화 컬렉션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은 장욱진의 〈가로수〉다. 그의 소박한 선과 단순한 화면 속에 한국적 서정과 존재의 고요를 담아낸 이 작품은, 이상준 회장의 컬렉션이 고미술에 머물지 않고 근현대 미학의 결까지 폭넓게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소장품이 더 이상 사적인 기쁨에 머물지 않고, 후대에게 전해질 교육적·문화적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 있다. 예술품은 벽에 걸리는 순간보다 이야기를 얻는 순간 비로소 살아난다. 이곳의 작품들은 백자는 조선의 숨결을, 회화는 근현대의 사유를, 고미술은 한민족의 미감을 품으며 우리 문화사의 또 다른 문장으로 존재한다. 더프리마아트센터는 그 문장들을 단순히 벽 위에 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역사와 감각을 다시 만나게 하는 문화적 해석의 장으로 기능한다. 개인의 안목이 공공의 미감으로 확장되는 이 순간, 수집은 더 이상 사적 취미가 아니라 시대에 대한 책임이며 후대에 대한 약속이 된다. 특히 고(故) 소운 이우복 회장이 50여 년에 걸쳐 수집한 총 487점의 도자 및 근현대 미술 컬렉션이 개관전으로 공개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3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더프리마아트센터 2층에서는  <완당묵언, 추사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열려 조선 후기 서예와 문인 정신의 깊이를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의 예술 세계는 물론, 아들 김상우의 〈소동파입극도〉, 김정희에게 보내는 서간 등 당대 지식인의 정신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인사동 특유의 역사성과 예술적 분위기 위에 세련된 동선과 품격 있는 전시 연출이 더해져, 작품 한 점 한 점의 수집 서사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결국 이 전시는 소장품의 나열이 아니다. 한 사람의 취향을 넘어 시대를 관통한 미의식과 문화적 사명감이 후손에게 남기는 정신적 유산이다. 인사동 한복판에서 나는 다시 확인했다. 예술은 소유될 때보다 공유될 때 더 오래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을 세상으로 꺼내 놓은 이상준 회장의 안목과 결단은 오늘의 전시를 넘어 내일의 문화사로 오래 남게 될 것이다. <전시 정보> 더프리마아트센타 •위치: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7-11 •운영: 오전 10:30–오후 7:30…

[손영미 칼럼] 예술가 출신 기관장의 시대적 의미 장한나, 예술의 전당을 지휘하다

[손영미 칼럼] 예술가 출신 기관장의 시대적 의미 장한나, 예술의 전당을 지휘하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장한나의 예술의전당 사장 임명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한국 공연예술계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인사다. 1987년 개관 이래 첫 음악인 출신 여성 수장이자세계 무대의 최전선에서 예술의 언어를…

[손영미 칼럼] 치유의 봄밤, 별빛은 창밖에 머물고 노래는 마음에 머문다

[손영미 칼럼] 치유의 봄밤, 별빛은 창밖에 머물고 노래는 마음에 머문다

– 봄밤, 병원에 별빛이 내려앉는 시간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한국예술가곡연주회가 오는 3월 31일(화) 오후 6시,보바스 기념 병원 본원 로비(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 155-7)에서 따뜻한 위로의 무대 <보바스 기념 병원  별빛콘서트〉를 다시 연다. 작년에 깊은 울림을 남겼던 이번 음악회는 클래식 성악과 대중가요가 어우러지는 크로스오버 콘서트로 꾸며져 환자와 가족, 의료진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1부는 〈가고파〉, 〈남촌〉, 〈친구여〉, 〈꽃 구름 속에〉, 나폴리 민요 〈Santa Lucia〉 등으로 시작해 고향의 향수와 삶의 추억을 불러내는 친숙한 선율로 무대를 연다. 이어 <보랏빛 엽서 > 와 슈베르트의 <Ständchen> 을 비롯해 〈청산에 살리라〉, 〈그리움〉,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전통 민요 〈새타령〉까지 세대를 잇는 폭넓은 레퍼토리가 병원 로비를 한 편의 봄밤 풍경처럼 물들인다. 특히 공연의 마지막은 테너 5인의 특별 무대 〈O Sole Mio〉로 장식된다. 한국예술가곡연주회 최금주 회장은 이번 위문 연주회에 대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환자들과 함께 따라 부르는 이 시간이 단순한 연주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는 작은 하모니가 될 것” 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번 공연은 일회성 행사를 넘어 앞으로 연 1~2회 정기적으로 이어질 병원 위문 음악회로 발전할 예정이어서 음악을 통한 치유와 공감의 문화가 더욱 깊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음악은 병을 고치지는 못해도, 마음이 견디는 힘을 선물한다. 3월의 마지막 밤, 별빛처럼 내려앉는 노래가 누군가의 오늘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밝혀주리라 믿는다. 치유는 약에서 시작되지만, 견디는 힘은 결국 노래에서 피어난다. 삼월의 마지막 밤, 별빛은 창밖에 머물지만 우리의 노래는 오래도록 마음의 머문다.  

[손영미 칼럼] K-가곡 슈퍼스타, 전통과 세계 사이의 무대

[손영미 칼럼] K-가곡 슈퍼스타, 전통과 세계 사이의 무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K-가곡 슈퍼스타 본선 경연이 어제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650명의 예선 지원자들 가운데 단 10명만이 본선에 진출한 무대였다. 이번 무대는 한국 가곡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공연 진행은 다소 길게 느껴졌지만, 연주자들의 뛰어난 기량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음정과 호흡, 표현의 완성도는 국제 콩쿠르 무대를 연상시킬 만큼 정교했고, 무대 전반은 세련된 오케스트라와 안정된 음향 속에서 탄탄하게 구축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질문이 남는다. 기술이 완성될수록,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우리 가곡의 힘은 단순한 성악적 기교에 있지 않다. 말의 결을 살리는 호흡, 시어 사이에 스며드는 여백, 그리고 삶의 체온을 담아내는 절제된 울림 그 ‘맛’에 있다. 그 맛은 화려함이 아니라 스며듦이며, 과시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 정서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 고유한 결이 다소 옅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동시에 전통을 향한 의미 있는 시도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민요와 전통 가곡이 주요 수상으로 이어진 점은, 우리 음악의 뿌리를 다시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임선혜 교수와 박미혜 교수의 심사평은 단순한 평가를 넘어, 가곡이 지켜야 할 미학적 기준을 짚어주는 품격 있는 제안이었다. 또한 본선 수상 곡들을 보니 한국 가곡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예술임을 상기시킨다. 이번 경연은 그 규모와 방식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었다. 총상금 1억 1천만 원이라는 국내 가곡 콩쿠르 최고 수준의 파격적인 규모는, 가곡이 더 이상 소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대상 5천만 원, 금상 3천만 원, 은상 2천만 원, 동상 1천만 원이라는 구성은 단순한 보상을 넘어, 차세대 K-가곡 스타를 향한 실질적 발판을 마련한다. 경연은 1차 동영상 예심, 2차 현장 예심, 그리고 파이널 무대로 이어지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예심 단계부터 지정곡 중심의 선별 과정을 거치며, 가곡의 정체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요구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수학한 성악가들의 참여, 그리고 ‘두남재’ 출신 성악가들의 두드러진 활약 역시 한국 가곡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경연을 넘어, 새로운 가곡 콘서트 문화로 확장되고 있는 흐름의 징표이기도 하다. 관계자의 말처럼, 가곡은 한국의 언어와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예술이다. 이 무대는 그 오래된 장르가 어떻게 현재와 만나고, 다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자 선언이었다.…

[손영미 칼럼] 청소년에게 희망을 기부하다 『태도로 승진합니다.』 나눔 북토크 화제

[손영미 칼럼] 청소년에게 희망을 기부하다 『태도로 승진합니다.』 나눔 북토크 화제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앞지르는 시대다. 지식은 화면 속에서 즉시 호출되고, 경험조차 데이터의 형태로 축적된다. 그러나 삶을 끝까지 밀어 올리는 힘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어난다. 공직 30여 년 동안 국가와 지역의 굵직한 난제를 해결해 온 이인재 한국사회적자본연구소 대표가 신간 『태도로 승진합니다』 출간을 계기로 청소년을 위한 책 기부 나눔 북토크를 마련했다. 오는 3월 22일 서울 서초동 설화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출판 기념을 넘어, 책 판매 수익을 통해 청소년기관에 도서를 기부하는 실천적 나눔의 자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경쟁의 기준을 스펙과 속도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AI 시대에 접어든 지금, 남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AI가 능력을 보완해 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배우려는 자세와 삶을 견디는 힘”이라며 “환경적 어려움 속에서도 청소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태도로 승진합니다』는 서점가에서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저자는 국내 청소년기관이 최소 240여 곳에 이르는 현실을 언급하며, 책 판매 수익을 통해 단계적으로 도서 기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앞서 열린 사전 북토크 자리에서도 고향 선후배 등 30여 명이 참여해 기부 취지에 공감하며 나눔의 의미를 더했다. 이번 행사는 ‘북 콘서트’라는 화려한 형식 대신 소박한 ‘북 토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도 저자의 진정성이 돋보인다. 작은 모임이지만 그 안에는 한 세대를 향한 깊은 책임과 응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자신의 집필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삶의 가르침을 남겼듯, 35년 동안 공직에서 배운 경험을 후배 세대에 전하고 싶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지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은 결국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이번 나눔 북토크는 청소년들에게 성공의 방법보다 삶을 살아내는 태도의 가치를 전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 시대의 경쟁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배우려는 사람에게 열려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은 길을 보여 줄 수 있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힘은 태도에서 나온다.” <출판기념 나눔 북토크 안내> ● 일시 : 2026년 3월 22일(일) 오후 6시 ● 장소 : 설화아트홀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335길 38, 설화엔지니어링 B1)…

[손영미 칼럼] AI 기술의 시대, 우리가 끝내 선택해야 할 ‘마지막 온도’

[손영미 칼럼] AI 기술의 시대, 우리가 끝내 선택해야 할 ‘마지막 온도’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우리는 지금 인류가 한 번도 지나본 적 없는 저녁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하루의 피로를 서로의 어깨에 내려놓던 시간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매끈한 화면의 빛이 대신 채우고 있다. 기술은 이제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 믿었던 영역, 곧 위로의 형식마저 정교하게 모사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전시장 한편에서 만난 AI는 지치지 않는 목소리와 상처받지 않는 마음으로 언제나 준비된 친절을 건넸다. 기도보다 빠른 응답과 결함 없는 공감은 경이로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여운을 남겼다. 기술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인간의 빈자리를 찾아온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서 우리는 관계의 상처를 감수할 용기와 느리게 서로를 이해하던 시간을 조용히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일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사람은 늦고, 변하고, 때로 떠난다. 사랑은 언제나 균열을 남기고 관계는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의 위로는 무겁다. 함께 흔들려 본 기억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어둠을 진심으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우리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한다. 의미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상실 뒤에 남겨지는 긴 침묵 속에서, 그리고 다시 손을 내미는 결심 속에서 천천히 형성된다. 기술은 우리의 손을 노동에서 해방시켰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자유로운 손으로 다시 서로를 붙잡을 것인가,아니면 차가운 화면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시대의 질문은 기술의 한계가 어디인가가 아니라,우리가 선택할 인간의 온도가 무엇인가에 있다. 속도보다 체온을, 정답보다 질문을, 편리함보다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이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손영미 칼럼] 봄의 향연, 네 개의 목소리가 피워낸 빛의 하모니 ‘Four Divas’ 정기연주회, 3월 23일 영산아트홀 개최

[손영미 칼럼] 봄의 향연, 네 개의 목소리가 피워낸 빛의 하모니 ‘Four Divas’ 정기연주회, 3월 23일 영산아트홀 개최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는 2026년 3월 23일(월)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네 명의 소프라노가 선사하는 특별한 봄의 무대, <Four Divas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디바(Diva)’라는 호칭은 단순히 노래 실력이 뛰어난 성악가를 넘어, 한 시대의 감성을 대변하고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과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증명해 내는 이들에게 허락되는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 성악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네 명의 소프라노김보영(예술총감독), 김미현, 김성현, 백현애가 한자리에 모여, 각기 다른 음색을 하나의 봄빛으로 엮어낼 예정이다. 디바의 전통을 잇는 오늘의 목소리 오페라의 역사 속에서 디바는 늘 시대를 움직이는 상징이었다. 20세기 신화 마리아 칼라스부터 레나타 테발디, 조안 서덜랜드, 그리고 현대의 안나 네트렙코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목소리라는 악기로 당대의 미학을 번역해 왔다. 이번 <Four Divas> 콘서트는 이러한 디바의 전통을 계승하며, 동시에 한국 성악의 오늘을 보여주는 자리다. 특히 예술총감독을 맡은 김보영을 필두로 대외협력홍보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미현, 김성현, 백현애 등 화려한 프로필을 자랑하는 중견 성악가들이 각자의 해석과 색채를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클래식에서 팝까지, 경계를 허무는 프로그램 이번 연주회는 하나의 완결된 서사처럼 구성되었다. 공연의 문을 여는 곡은 아만다 맥브룸의 <The Rose>. 가시 돋친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장미처럼, 네 명의 소프라노가 합창으로 삶과 사랑의 희망을 노래하며 관객의 마음을 연다. 이어지는 무대는 정통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 가곡 솔로: 아르디티의 <입맞춤(Il Bacio)>,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 등 낭만적인 감성이 짙은 곡들로 개성을 드러낸다. • 오페라의 정수 푸치니 <라 보엠>의 ‘행복한 마음으로 떠났던 곳으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아, 그이인가-언제나 자유롭게’ 등 드라마틱한 아리아들이 배치되어 디바들의 진면목을 확인시킨다. • 앙상블의 묘미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 등은 두 목소리가 빚어내는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중성이다. ‘Que Sera, Sera’, ‘Evergreen’ 등 익숙한 영화음악 메들리와 ‘강 건너 봄이 오듯’, ‘고향의 봄’ 같은 한국 가곡 메들리는 성악이 우리 곁의 보편적인 예술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완벽한 앙상블을 위한 조력자들 이번 공연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탄탄한 연주진이 뒤를 받친다. 피아노 최은순, 바이올린 이혜림, 첼로 배승현, 퍼커션 김재훈 등 각 분야의 전문 연주자들이 협연하여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인 사운드를 완성할 예정이다. 네 개의 목소리, 하나의 계절이 되다 공연의 대미는 지중해의 태양처럼 강렬한 에너지를 담은 칸초네 메들리(<La Spagnola>, <Volare> 등)가 장식한다. 겨울의 침묵을 깨고 솟아오르는 봄빛처럼, 이들의 노래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계절을 살아갈 환희와 에너지를 전할 것이다. 음악은 한 사람의 호흡에서 시작되지만, 여럿이 함께 울릴 때 비로소 하나의 계절이 된다. 2026년 3월, 영산아트홀에서 울려 퍼질 네 명의 디바의 목소리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가장 찬란한 봄의 서곡이 될 것이다. ▲사진=Four Divas 정기연주회 포스터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Four Divas 정기연주회 프로필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Four Divas 정기연주회 프로그램 ⓒ강남…

[손영미 칼럼] 왕과 ‘사는’ 남자,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남을 것인가

[손영미 칼럼] 왕과 ‘사는’ 남자,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남을 것인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최근 개봉한 영화 ‘ 왕과 사는 남자‘ 가  2026년 2월 4일 개봉 후 흥행을 이어가며 3월 6일 1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3월 8일 기준 1,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영화는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와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관계를 중심으로, 유배지 영월에서의 시간을 그린 사극이다.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사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왕을 모시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권력에서 밀려난 한 인간과 그 곁을 끝내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인간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우리는 지도자를 말할 때 흔히 힘을 떠올린다. 결단력, 카리스마, 통치력 같은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익숙한 문법을 조용히 뒤집는다.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은 더 이상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왕관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인간의 품위뿐이다. 그리고 엄흥도는 그 곁에서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람 곁에 남는가. 장항준 감독이 이 작품의 핵심으로 말한 인간의 마지막 ‘도덕의 마지노선’이라는 화두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각박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효율과 계산을 먼저 배운다. 손해 보지 않는 법, 휘말리지 않는 법, 마음을 깊이 주지 않는 법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가 끝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그 모든 계산 밖에서도 누군가가 마지막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손영미 칼럼] 비참함 가운데 명랑하게, 삶이라는 캔버스에 대하여

[손영미 칼럼] 비참함 가운데 명랑하게, 삶이라는 캔버스에 대하여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서 시작해 장의사의 손에서 끝나는 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상을 떠난다. 그 사이의 시간만이 우리가 직접 걸어야 할 길이다. 그 길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거창하지도 않다. 인생의 대부분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차 한 잔을 마시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접는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씩 자신의 생을 조금씩 사용한다. 하지만 그 길이 언제나 환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살면서 몇 번쯤 자신의 삶이 설명되지 않는 구간을 지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시간,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매듭,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이란 축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비참함 가운데 명랑한 것이다.” 이 문장은 삶의 모순을 말하는 동시에 삶을 견디는 태도를 말해 준다. 명랑함은 조건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