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의 감성가곡] 가을의 기도

[손영미의 감성가곡] 가을의 기도

– 김현승 시 · 안정준 작곡 – 노래 | 소프라노 김영미 · 소프라노 김향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 들판이 천천히 무르익어 간다. 하늘에는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은 한결 낮아진 목소리로 나뭇잎 사이를 지난다. 계절이 이토록 깊어질 때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김현승의 시에 안정준이 선율을 입힌 <가을의 기도〉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지만, 김현승에게 가을은 오히려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열매가 익을수록 가지는 낮아지고, 나무가 잎을 내려놓을수록 하늘은 더 많이 보인다. 어쩌면 시인은 그 오래된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이 끝내 배워야 할 겸허를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세 연을 이끄는 ‘~하게 하소서’라는 간절한 어조는 이 시를 한 편의 기도문처럼 만든다. 그러나 그 기도는 무엇을 더 갖게 해달라는 청원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게 해달라는 간구에 가깝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마침내 홀로 서는 것. 그 세 단계 끝에 시인은 ‘절대 고독’의 자리로 걸어 들어간다. 김현승의 고독은 쓸쓸함이나 단절과는 조금 다르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외로움이 아니라, 온갖 소음과 욕망을 걷어낸 뒤 비로소 자기 영혼과 마주하는 고요에 가깝다. 그래서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는 구절은 더욱 깊게 다가온다.…

[손영미의 감성가곡] 누군가가 그립다

[손영미의 감성가곡] 누군가가 그립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그리움은 사랑이 떠난 자리가 아니라,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는 문득 소나기 한 줄기가 그리워진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처럼, 지친 마음에도 잠시 쉬어갈 여백이 필요하다. 사랑도 그렇다. 너무 뜨거우면 서로를 태우고, 적당한 그리움이 있을 때 비로소 오래 머문다. 그래서 그리움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사랑이 깊어지는 또 하나의 계절이다. SJ Park의 섬세한 선율과 정단의 시적인 언어가 만난 <누군가가 그립다〉는 바로 그 계절을 노래한다. 이 노래에서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차오른 그리움이 하늘을 빌려 흘러내리는 감정의 은유다. “빗물인지 눈물인지”라는 표현은 자연과 인간의 슬픔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그려낸다. 어느새 우리는 비를 맞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사랑했던 그 사람은 선명하게 그려진다.”라는 구절은 기억의 본질을 일깨운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보다 마음을 먼저 기억한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일수록 세월은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고 선명하게 새겨 놓는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겨울과 흰 눈의 이미지는 더욱 인상적이다. 낙엽이 이별의 시간을 상징한다면, 눈은 모든 상처를 덮어 주는 용서와 정화의 은유다. 그러나 눈부시게 하얀 풍경 속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다. 이 노래는 떠난 사람을 붙잡는 노래가 아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자신의 시간을 조용히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노래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랑은 끝날 수 있어도, 사랑했던 시간의 아름다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립다〉는 단순한 이별의 노래를 넘어, 사랑이 기억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노래하는 감성가곡이다. 삶을 깊이 살아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절제된 그리움의 품격이 이 노래의 가장 큰 울림이다. 특히 고성현의 깊고 절제된 바리톤은 이 곡의 서정을 더욱 깊게 완성한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한 음 한 음 눌러 담아내는 그의 목소리는 그리움을 절규가 아닌 삶을 통과한 사람의 담담한 고백으로 승화시킨다. 결국 <누군가가 그립다〉는 누군가를 잊지 못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던 자신의 삶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노래다. 그래서 이 노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인생이 깊어질수록 더욱 가슴에 스며드는 한 편의 시가 된다.   누군가가 그립다 SJ Park 작곡 / 정단 작사 / 고성현 노래   쏟아지는 비야 너는 내 맘 알고 있니 늘 울고 싶고 누군가가 그립다 상처 투성이 내 눈은 이제 보이지 않아도 사랑했던 그 사람은 선명하게 그려진다 뚝뚝 떨어진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가을 지나고 올 겨울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서럽도록 아름답게…

[손영미 칼럼] 한여름 태양을 마주하는 용기, 웰링턴 CC코스가 열어준 길 위에서

[손영미 칼럼] 한여름 태양을 마주하는 용기, 웰링턴 CC코스가 열어준 길 위에서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장마가 물러난 자리에 본격적인 한여름이 들어섰다. 짙어진 녹음은 절정을 향해 달리고 하늘은 한층 더 높고 강렬해졌다. 골프는 사계절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스포츠다. 계절은 같은 코스를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꾸어 놓고, 자연은 그날의 플레이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동반자가 된다. 폭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지면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와 정수리를 내리쬐는 태양 앞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 삶의 베테랑과 초보자의 경계마저 희미해진다. 결국 골프는 자연을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자연과 호흡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잘 설계된 코스는 이처럼 혹독한 더위 속에서도 골퍼에게 길을 내어준다. 경기도 이천의 수려한 자연 속에 자리한 웰링턴 CC는 태양을 피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게 이끄는 품격 있는 코스다. 라운드가 이어질수록 코스 곳곳에 스며든 송호 골프코스 디자이너의 설계 철학이 선명히 드러난다. 인위적인 손길보다 능선과 계곡, 숲의 흐름을 존중하며 완성한 27홀은 신화 속 수호동물의 이름을 빌려 저마다 뚜렷한 개성과 전략을 품고 있다. 송호 디자이너는 말한다. “골프란? 골프장 코스를 만드는 일이든 플레이하는 일이든, 결국 신이 빚어놓은 자연과 동행하는 일이다. 코스 디자인은 신의 작품 위에 사람의 손길을 더하는 경건한 작업이다.” 그의 철학은 웰링턴 CC 곳곳에서 고스란히 읽힌다. ■ Griffin Course  숲이 들려주는 전략의 언어 그리핀 코스는 울창한 원시림과 계곡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포레스트 레이아웃이다. 홀마다 독립성이 뛰어난 덕분에 다른 팀의 방해 없이 자연과 스스로의 플레이에 깊이 몰입할 수 있다. 착지 지점(IP)에 절묘하게 배치된 벙커와 계류는 장타보다는 정확한 클럽 선택과 신중한 레이업을 요구한다. 힘보다 지혜가 빛을 발하는 코스다. ■ Wyvern Course 도전 정신을 깨우는 입체적 무대 와이번 코스는 깊은 계곡과 능선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챔피언십 코스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경은 골퍼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지만, 그 이면에는 고저차와 바람이라는 변수가 숨어 있다. 과감한 티샷과 치밀한 계산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코스는 길을 허락한다. ■ Phoenix Course 평온함 속에 숨겨진 섬세한 시험 피닉스 코스는 넓은 호수와 평원이 어우러져 가장 부드럽고 유려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린 주변의 난해한 언듈레이션과 정교한 핀 위치는 마지막 퍼트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가장 평온해 보이는 코스가 오히려 가장 섬세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셈이다. 웰링턴 CC의 진가는 독창적인 설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계절 푸른 페어웨이를 유지하기 위한 오버시딩 관리, 골퍼의 기량에 맞춘 6단계 티잉 그라운드, 앞뒤 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10분 간격 티오프 운영까지. 골퍼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가치가 코스 전체에 깊게 스며 있다. 평소 이곳의 그린은 3.0m 안팎의 빠른 스피드로 명성이 높지만, 최근 이어진 잦은 비의 영향으로 이번 라운드에서는 평소보다 다소 부드럽고 느린 컨디션을 보였다. 그럼에도 균형 잡힌 그린 관리와 자연스러운 언듈레이션 덕분에 웰링턴 CC만의 품격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골프는 결국 스코어를 남기는 운동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가는 한 편의 기록이다. 좋은 코스는 단순한 실력 시험장을 넘어, 플레이어의 시선과 태도까지 바꾸어 놓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동반자들과 웃으며 걸을 수 있었던 하루. 그날의 ‘굿샷’은 버디의 숫자가 아닌, 자연을 존중하고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된 단 한 번의 스윙이었다. 좋은 골프장은 마음껏 행복하게 스윙하게 하며, 그 안에서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곳이다. 명품 코스란 단순히 좋은 스코어를 안겨주는 곳이 아니라, 좋은 골퍼를 다듬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된 골퍼는 결국 자연 앞에서 겸손함을 배운 사람이다.

[손영미 칼럼] 신의 가장 다정한 선물, 내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울림,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열 가지 행복

[손영미 칼럼] 신의 가장 다정한 선물, 내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울림,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열 가지 행복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운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노래한다. 울음이 생존을 위한 첫 언어라면, 노래는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다. 기쁨이 벅찰 때도, 슬픔이 깊어질 때도 사람은 결국 노래를 찾는다. 말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목소리는 가 닿고, 언어가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선율은 마음을 대신한다. 오랜만에 벨라비타 원우들과 한 무대에 선다. 개원 발기부터 함께 걸어온 시간이 어느덧 열한 기수를 이루었다. 운영이사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늘 설렘과 부담을 함께 안겨준다. 하지만 막이 오르기 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악보가 아니라 사람이다. 서로 다른 계절을 건너온 삶들이 한 곡의 노래 앞에서 같은 숨을 맞추는 순간, 무대는 공연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노래는 잘 부르는 사람만의 특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애가 목소리를 빌려 세상과 악수하는 일이며, 서로 다른 삶이 하나의 울림으로 이어지는 기적이다. 그래서 무대는 경쟁의 자리가 아니라 서로를 응원하는 가장 따뜻한 광장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피곤한 삶이자 유배당한 삶”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한 줄을 덧붙이고 싶다. “노래 없는 삶은, 자신의 영혼과 오래 대화하지 못한 삶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악기는 악기가 아니라 목소리다. 노래는 단순히 음정을 맞추고 가사를 따라 부르는 행위가 아니다. 몸과 마음, 기억과 감정을 하나로 이어주는 가장 인간적인 예술이며, 삶을 치유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들을 때 얻게 되는 열 가지 행복을 살펴본다. 1. 감정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 노래는 마음 깊은 곳에 쌓인 슬픔과 기쁨, 분노와 그리움을 가장 아름답게 흘려보내는 통로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말했다. “음악은 감정의 언어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 준다.” 노래는 울음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고, 웃음을 더욱 깊게 만든다. 2. 몸을 깨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건강법 노래는 깊은 복식호흡을 통해 온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폐는 넓어지고 혈액순환은 활발해지며,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노래하는 사람은 건강하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3. 영혼을 어루만지는 위로 어떤 날은 노래 한 소절이 백 마디 위로보다 더 깊게 마음을 안아 준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말했다. “음악은 삶의 비를 맞아도 젖지 않게 해주는 우산과 같다.” 노래는 상처를 지우지는 못하지만 견딜 수 있는 힘을 선물한다. 4. 나를 발견하는 시간 같은 악보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호른은 말했다. “노래는 영혼의 지문이다.” 세상에 같은 목소리는 하나도 없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일이다.…

[손영미의 감성 가곡 미별(美別)]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한 노래 김효근 「미별(美別)」이 들려주는 기억의 미학

[손영미의 감성 가곡 미별(美別)]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한 노래 김효근 「미별(美別)」이 들려주는 기억의 미학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만남을 배우지만, 정작 이별을 배우는 법은 누구에게도 익히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순간, 시간은 멈추고 언어는 제 기능을 잃는다. 그래서 이별은 언제나 슬픔보다 먼저 침묵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예술은 그 침묵을 끝내 언어로, 그리고 음악으로 바꾸어낸다. 김효근의 가곡 ‘미별(美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곡은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가 아니라, 상실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하는 노래다. 눈물을 지우려 하지 않고, 그 눈물 속에 오래 머물러 마침내 한 줄기 빛을 길어 올리는 음악이다. ’미별(美別)’이라는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이별은 본래 상실이고 단절이며, 인간이 감당하기 가장 어려운 운명이다. 그런데 작곡가는 그 앞에 ’아름다울 미(美)’를 붙인다. 이는 슬픔을 미화하려는 감상주의가 아니다. 사랑했던 시간을 끝내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인간의 가장 숭고한 의지다. 특히 이 작품은 사계절을 따라 한 사람의 생애와 사랑을 노래한다. 봄에는 수줍던 사람이 있었고, 여름에는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가을에는 그 사람의 빈자리가 마음을 채우고, 겨울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그를 떠나보낸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바로 이 역설 속에서 「미별」은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유한성을 교차시키며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계절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듯, 사랑 또한 육신은 떠나도 기억 속에서는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살아남는다. 특히 이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 절제에 있다. “그대와 나눈 웃음, 끝없는 이야기 시간이 멈춘 그날 함께 사라져.” 이 짧은 문장에는 절규도, 원망도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담담하기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큰 슬픔은 소리보다 침묵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그대 없는 나, 나 없는 그대.” 라는 구절은 존재론적 고독을 압축한 시어에 가깝다. 서로를 통해 존재하던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곡은 끝내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기억만 남아.” 이 한 줄에서 「미별」의 미학은 완성된다.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그것을 기억으로 숙성시킬 뿐이다. 그리고 기억은 슬픔을 조금씩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미별」은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생명을 말하고,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사랑을 완성한다. 김효근이 구축해 온 아트팝의 세계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문학과 철학, 삶과 예술을 하나의 서정으로 엮어낸다. 선율은 귀를 지나 마음으로 스며들고, 노랫말은 시가 되어 오래 남는다. 그래서 그의 가곡은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살아내는 노래가 된다. 마지막에 반복되는 “아름답게 떠났네.” 라는 한 문장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도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사랑이 기억으로 형태를 바꾸는 순간이며, 죽음은 관계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화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 배우게 된다. 오늘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는 오래된 시간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그들에게 「미별」은 위로를 건네려 하지 않는다.대신 조용히 곁에 앉아 함께 침묵한다. 그리고 그 침묵 끝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가장 깊은 사랑은 끝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기억으로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라고.…

[손영미 칼럼] 위기와 속도의 시대, 젠슨 황의 5가지 경영 철학이 던지는 시사점

[손영미 칼럼] 위기와 속도의 시대, 젠슨 황의 5가지 경영 철학이 던지는 시사점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늘날 글로벌 기술 시장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모두가 외형적 성장과 단기 성과를 좇는 시대, AI 인프라 시장을 선도하는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가 강조해 온 다섯 가지 핵심 가치—회복탄력성, 전략적 선택, 수평적 협력, 본질에 대한 집중, 그리고 민첩성은 단순한 자기계발의 언어가 아니다. 이는 엔비디아가 수차례의 위기를 넘어 세계 최고의 AI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검증된 생존 전략이자 미래 경영의 원칙이다. 1. 회복탄력성(Resilience) : 실패를 견디는 힘이 경쟁력이 된다 젠슨 황은 모교 스탠퍼드대학교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고통과 실패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기대보다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 즉 ‘맷집’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엔비디아 역시 창업 초기 첫 그래픽 칩 ‘NV1’의 실패로 존폐 위기를 겪었으나, 실패를 분석하고 기술을 재정비한 끝에 ‘RIVA 128’을 성공시키며 재도약했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은 위대한 리더들의 공통된 분모다. 아마존(Amazon)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역시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했다가 수천억 원의 손실을 낸 ‘파이어폰(Fire Phone)’의 역사적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주주들에게 “아마존이 더 큰 실패를 다루지 못한다면 더 큰 혁신도 없을 것”이라며 실패를 상수로 받아들였고, 이 복원력을 바탕으로 클라우드 서비스(AWS)를 세계 1위로 키워냈다. 실패를 피하는 조직보다 실패를 성장의 자산으로 삼는 조직이 결국 오래 살아남는다. 2. 전략적 선택(Strategic Retreat) :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가 미래를 결정한다 “어떤 길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젠슨 황의 이 말은 무조건적인 버티기가 능사가 아님을 뜻한다. 엔비디아는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자 과감히 철수했다. 대신 축적한 GPU 기술을 자율주행과 고성능 컴퓨팅(HPC), AI 컴퓨팅에 집중해 오늘날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 이는 애플(Apple)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1997년 경영 복귀 직후 단행했던 ‘제품 라인업 70% 퇴출’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잡스는 회사가 방대하게 벌려놓았던 수십 개의 컴퓨터 모델을 단 4가지(데스크톱 2종, 노트북 2종)로 압축하는 과감한 포기를 단행했다. 자원을 분산시키던 비효율을 쳐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현명한 후퇴가 있었기에, 애플은 파산 위기를 극복하고 아이맥과 아이폰이라는 세기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었다. 3. 지식의 공유와 수평적 협력(Flat Organization) : 정보는 권력이 아니라 성장의 자산이다 젠슨 황은 임원들만 참여하는 폐쇄적인 회의를 지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입사원부터 최고경영진까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정보를 독점하는 조직은 느려지고, 정보를 공유하는 조직은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랫(Flat) 조직의 파괴력은 픽사(Pixar)의 창업자 에드 캣멀(Ed Catmull)이 고안한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 제도에서도 증명된다. 픽사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감독, 작가, 애니메이터가 한자리에 모여 제작 중인 작품의 문제점을 가감 없이, 날 것 그대로 비판하고 토론한다. 권위주의를 배제하고 정보와 아이디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수평적 협력은, 단순한 조직문화를 넘어 혁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경쟁력이다. 4. 본질에 집중(Core Purpose) : 시장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먼저 본다 “시장의 크기를 좇지 말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에 투자하라.” 이 철학은 CUDA 개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에는 시장의 외면과 투자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젠슨 황은 장기적인 기술 생태계를 믿고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딥러닝 시대가 열리면서 CUDA는 오늘날 AI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플랫폼이 되었다. 당장의 이익 대신 인류가 해결해야 할 ‘본질적 과제’에 투신한 사례로 테슬라(Tesla)의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빼놓을 수 없다. 머스크가 전기차와 우주 산업에 뛰어들 때 월가와 전문가들은 파산을 점치며 조롱했다. 그러나 그는 내연기관의 종말과 우주 개척이라는 본질적 명제에 집중했고, 수차례의 부도 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기술 개발에 매진해 패러다임을 바꿨다. 단기 트렌드가 아닌 인류의 본질적인 문제를 향한 긴 호흡만이 시대를 흔드는 위대한 유산을 남긴다. 5. 민첩성과 적응력(Agility) : 과거의 성공을 스스로 허물 수 있는 용기 엔비디아는 그래픽 카드 제조사를 넘어 AI 플랫폼 기업, 데이터센터 중심 기업으로 끊임없이 변신해 왔다. 젠슨 황은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는 순간 쇠퇴가 시작된다고 믿으며, 변화 앞에서 스스로를 리부트(Reboot)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강조한다. 과거의 영광을 스스로 깨부수고 성공한 대표적 명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3대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다. 그는 2014년 취임 당시, MS의 절대적 상징이었던 윈도우(Windows) 중심의 폐쇄적 성공 방정식을 과감히 버렸다. 경쟁사였던 리눅스와 오픈소스를 포용하고 클라우드(Azure) 중심으로 회사의 체질을 완벽히 리부트한 그의 민첩성과 유연성이 있었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올드한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탈피해 글로벌 AI 및 클라우드 리더로 부활할 수 있었다. 오래 살아남는 기업의 조건 젠슨 황을 비롯한 글로벌 리더들의 경영 철학은 “더 독해지고 더 많이 일하라”는 맹목적인 채찍질이 아니다. 실패를 견디는 ‘맷집‘ 때로는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지식을 나누는 ‘연대‘,본질을 향한 ‘끈기,‘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드는 ‘유연성‘에 관한 이야기다. 기업도 사람도 결국 같은 원리로 성장한다. 속도가 미덕이 된 세상이지만,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잔기술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변화 앞에서 자신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다. 위대한 기업과 인생은 미래를 완벽히 예측해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거친 파도 속에서도 자신의 본질을 지키며, 미래가 올 때까지 단단하게 버텨낸 존재만이 결국 시대를 바꾼다.

[손영미 칼럼] 가곡의 효시 ‘홍난파’의 《봉선화〉 이래 106주년 기념 106인 초청음악회, 한국 가곡 106년의 역사, 6개월 간의 대장정으로 물들인다

[손영미 칼럼] 가곡의 효시 ‘홍난파’의 《봉선화〉 이래 106주년 기념 106인 초청음악회, 한국 가곡 106년의 역사, 6개월 간의 대장정으로 물들인다

– (사)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제47회 서울예술가곡제 개최 – 성악가 106인이 함께 그려내는 한국 가곡의 과거·현재·미래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이사장 정원이경숙)가 한국 가곡 탄생 106주년을 기념해 올해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제47회 서울예술가곡제’를 개최한다. 이번 가곡제는 ‘한국가곡 106년! 시대를 건너다! 노래를 잇는 우리의 숨결’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1920년 홍난파의 「봉선화」로 시작된 한국 가곡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세계를 향해 나아갈 미래를 하나의 음악 서사로 엮어내는 특별한 프로젝트다. 공연에는 원로·중견·신진 성악가 106인이 대거 참여한다. 매월 다른 주제 아래 한국 가곡의 정서와 예술성을 다채롭게 펼쳐 보이며, 회차별 전문 팀장이 무대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다. 지난 6월 30일 개최된 제1회 공연(팀장 손영미)은 가곡 애호가와 문화예술계 귀빈들의 찬사 속에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특히 「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의 손자 홍익표 교수가 참석해 뜻깊은 의미를 더했다. 축제는 오는 11월까지 매월 1회씩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기억을 담은 2회(7월), 광복과 민족의 숨결을 노래하는 3회(8월)에 이어 9월부터 11월까지 아름다운 서정과 미래의 희망을 담은 무대가 차례로 펼쳐질 예정이다. 정원이경숙 이사장은 “106년의 시간은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기억”이라며 “이번 가곡제가 한국 가곡을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이어가고, 세계와 호흡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희준 명예이사장 역시 “106인의 성악가가 들려주는 깊은 울림이 세대를 넘어 관객의 마음에 닿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공연 일정 및 개요] •행사명: 제47회 서울예술가곡제 •기간: 2026년 6월 ~ 11월 (월 1회, 총 6회 / 오후 6시) •주최·주관: (사)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회차 일시 주제 장소 / 팀장…

[손영미 칼럼] 2026 Vienna Philharmonic Summer Night Concert 쇤브룬의 여름 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선율의 성찬

[손영미 칼럼] 2026 Vienna Philharmonic Summer Night Concert 쇤브룬의 여름 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선율의 성찬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매년 초여름,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 정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콘서트홀로 변모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로크 양식의 궁전과 싱그러운 기하학적 정원이 어우러진 이 무대에서 펼쳐지는 빈 필하모닉 여름밤 콘서트(Sommernachtskonzert)는 클래식 음악이 지닌 고유의 우아함이 대중의 열기와 만나는 가장 이상적인 축제의 장이다. 올해의 프로그램은 오페라와 발레, 정통 관현악과 뮤지컬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음악이 지닌 순수 예술성과 대중적 흡입력을 동시에 품어 안았다. 그리고 이 야심 찬 무대의 중심에는 젊은 거장 로렌조 비오티(Lorenzo Viotti)의 감각적인 지휘와, 세계적인 바리톤 브린 터펠(Sir Bryn Terfel)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젊은 지휘자의 다이내믹과 거장의 드라마틱한 만남 로렌조 비오티는 오늘날 클래식계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차세대 지휘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빈 필하모닉 특유의 깊고 우아한 전통적 음색(Wiener Klangstil) 위에, 젊고 세련된 리듬감과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며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연하면서도 정교한 그의 손끝은 넓은 야외 무대를 빈틈없는 음향으로 채워나갔다. 이에 화답한 브린 터펠은 단순한 성악가를 넘어, 목소리 하나로 무대 위에 거대한 서사를 세우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신과 악마, 그리고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의 내면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깊고 웅장한 바리톤 음색은 이번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단단한 드라마적 뼈대가 되었다. 신과 인간, 고전과 현대가 교차하는 다채로운 음영(陰影)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 뿜어내는 활기찬 금관악기의 팡파르로 화려하게 포문을 연 공연은 이내 묵직하고 심오한 음악적 여정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와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거쳐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에 이르는 대작들의 향연은 브린 터펠의 밀도 높은 가창을 통해 야외 광장을 순식간에 엄숙한 오페라 극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화려하고 입체적인 대작들 사이에서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기도」와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은 극적인 완급조절을 이루며 깊은 위로와 사색의 순간을 선사했다. 특히 현악 파트의 섬세한 피아니시모(pp)는 밤하늘의 정적과 맞닿으며 관객들의 숨소리마저 멎게 만들었다. 이날 프로그램의 정점은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조곡 2번이었다. 비오티의 정교한 리드 아래 펼쳐진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화려한 색채감과 폭발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은 쇤브룬 궁전의 야경과 완벽하게 짜 맞춘 듯 어우러지며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마비시키는 황홀경을 선사했다. 뒤이어 연주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중 ‘내가 부자라면(If I Were a Rich Man)’은 정통 클래식의 엄숙주의를 유쾌하게 깨뜨리며, 축제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인간미와 위트 넘치는 공감을 전했다. 전통과 일상, 별빛이 빚어낸 영원의 하모니 빈 필하모닉이 매년 여름밤 콘서트를 통해 세상에 전하는 것은 단순한 음악회의 감동 그 이상이다. 그것은 세기의 벽을 넘어온 전통과 오늘의 현대, 고전의 엄격함과 대중의 일상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문화적 연대이다. 쇤브룬의 밤공기에는 6월의 라임나무 꽃향기와 풀잎의 싱그러움이 부드럽게 스며 있었고, 수만 명의 관객들은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하나의 거대한 선율이 되어 초여름의 밤을 향유했다. 결국 축제란 거창한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채우는 위대한 음악을,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나누는 일. 2026년 빈 필하모닉의 여름밤은 그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진실을, 쇤브룬을 가득 채운 찬란한 잔향(殘響)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사진=공연실황 쇤브룬 광장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공연실황 쇤브룬 광장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공연실황 쇤브룬 광장 ⓒ강남 소비자저널…

[손영미 칼럼] 사랑은 왜 조건을 지우는가, 사랑은 가장 연약한 순간까지 품는 일이다

[손영미 칼럼] 사랑은 왜 조건을 지우는가, 사랑은 가장 연약한 순간까지 품는 일이다

–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을 읽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랑하는 까닭_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기쁨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슬픔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첫 문장은 역설처럼 시작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용운은 사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이유는 아름다움이나 성공, 젊음 같은 세속적 조건이 아니라는 데 이 시의 깊이가 있다. 시인은 세 번의 반복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드러낸다. 홍안과 백발 기쁨과 슬픔 건강과 죽음 이 대비는 인간의 삶 전체를 상징한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환희에서 고통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여정을 압축한 것이다. 세상은 대부분 빛나는 순간을 사랑한다. 젊음을 사랑하고, 성공을 사랑하며, 웃는 얼굴을 사랑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백발이 되고, 슬픔이 찾아오고, 병과 죽음이 가까워질 때 많은 사랑은 흔들린다. 한용운이 말하는 사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이 한 줄은 사랑의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 사랑은 상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순간까지 품는 일이다. 존재 전체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불교적 세계관을 지닌 만해의 시답게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을 둘로 나누지 않는다. 죽음조차 사랑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연은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사랑은 시간을 이기는 감정이다. 육체를 넘어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며, 조건을 넘어 영혼을 품는 약속이다. 오늘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하지만, 그 사랑은 종종 조건의 다른 이름이 되곤 한다. 아름다울 때만, 성공했을 때만, 건강할 때만 사랑한다면 그것은 거래일 뿐이다. 한용운은 묻는다. 당신은 그 사람의 백발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손영미 칼럼] 한국예술가곡연주회 18년 간 지켜온 우리 음(音)의 숲, ‘한가연’이 걸어온 경이로운 기록

[손영미 칼럼] 한국예술가곡연주회 18년 간 지켜온 우리 음(音)의 숲, ‘한가연’이 걸어온 경이로운 기록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서양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홍수 속에서도 오롯이 우리말과 우리 정서가 담긴 한국가곡만을 품고 18년을 한결같이 걸어온 단체가 있다. 바로 사단법인 한국예술가곡연주회(이하 한가연)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무대를 열어 오직 한국가곡만을 연주하며,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뀔 세월 동안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꾸준히 전파해 온 한가연은 마침내 뜻깊은 이정표를 세웠다. 한가연은 지난 2026년 6월 26일 오후 4시, 세일아트홀에서 ‘제203회 한국예술가곡연주회 정기연주회 겸 창립 18주년 기념음악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203회의 뚝심, 그리고 위로가 된 음악 한가연이 걸어온 길은 숫자만으로도 그 경이로움을 증명한다. 18년 동안 매월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한국가곡만을 무대에 올린 정기연주회는 이번 공연으로 203회를 맞았다. 이와 함께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 특별음악회도 29회에 이르렀으며, 정기공연을 넘어 우리 가곡의 외연을 넓혀 왔다. 무엇보다 한가연의 음악은 화려한 공연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매년 두 차례 이상 병원을 찾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위로음악회를 꾸준히 이어오며, 음악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예술 실천을 지속해 왔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몸소 실천해 온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8주년을 수놓은 우리 가곡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