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립소를 떠난 오디세우스 – 사랑의 애도가 오래 걸리는 이유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랑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질문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을 사랑하던 나를 사랑했던 것일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이 질문과 가장 아름답게 겹쳐지는 인물이 칼립소다. 오디세우스는 바다를 떠돌다 오기기아섬에 닿아 칼립소와 7년을 보낸다. 여신 칼립소는 그를 사랑했고, 그가 머물기를 원했다. 심지어 인간이 끝내 이길 수 없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까지 그의 앞에 놓는다. 아름다운 여신, 풍요로운 섬, 늙지 않는 삶. 사랑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황홀한 조건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바닷가에 앉아 운다.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은 칼립소가 아니라 바다 너머의 이타케다. 사랑하는데, 왜 떠나는가 이 장면은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한다면 곁에 있어야 하는가. 떠난다면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파고드는 사랑의 역설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상대만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때로는 상대를 통해 일어난 자기 안의 욕망과 사랑의 상태에 더 깊이 사로잡힌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속에는 어쩌면 “당신으로 인해 사랑하고 있는 이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고백도 숨어 있다. 그래서 사랑이 위험해지는 순간이 있다.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배역을 맡은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다. 상대는 한 인간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존재,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 나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증명해주는 존재로 바뀐다. 그 순간 사랑의 주객은 뒤집힌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 완성되는 나의 욕망을 사랑하게 된다. 칼립소의 사랑에도 이러한 역설이 숨어 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기에 붙잡는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하는 곳은 이타케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은 욕망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삶으로 돌아가도록 놓아주는 일 사이에서, 사랑은 가장 어려운 시험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