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19세기 중엽, 파리 오페라 무대는 늘 새로운 감각을 갈망하고 있었다. 낭만주의의 정열과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교차하던 시대, 젊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1863)를 선보인다. 인도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그리고 신성한 맹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초연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낭만적 오리엔탈리즘’의 대표작으로 재평가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테너 아리아 〈Je crois entendre encore〉(“나는 아직도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으로 꼽힌다. 영국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이 곡은, 주인공 나디르가 옛사랑 레일라를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다. 단순한 서정을 넘어선 깊은 울림을 지니며, 맹세와 욕망, 신성한 의무와 인간적 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내면을 고요히 드러낸다. 음악적 특징 이 아리아는 피아니시모(pianissimo, 아주 여린 소리)로 흐르는 듯한 선율이 특징이다. 테너의 고음역을 사용하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호흡이 요구되며, 고음 B와 C를 벨칸토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떠올리듯 표현해야 한다. 마치 안개 속 기억처럼 아련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난도 아리아다. 가사와 의미 Je crois entendre encore Caché sous les palmiers, Sa voix tendre et sonore Comme un chant de ramiers. “나는 아직도 듣는 듯하다. 야자수 아래 숨어 울려 퍼지던 그녀의 목소리, 부드럽고 울림 있는 그 음성, 마치 산비둘기의 노래처럼…” 이처럼 노래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잔향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주인공의 내면에는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이 선명히 살아 있다. 비제의 젊은 서정성 아리아는 테너의 섬세한 호흡, 끝없는 레가토, 맑고 고운 고음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젊은 비제가 이미 보여준 시적인 선율 감각이 짙게 드러난다. 작품 전체 맥락에서 이 아리아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운명의 복선을 암시하며, 이후 펼쳐질 사랑과 희생의 비극을 예고한다. 바다처럼 돌아오는 기억 〈진주조개잡이>는 “이국적 배경 위에 펼쳐진 사랑과 희생의 드라마”이고, 그 중심에 선 〈Je crois entendre encore〉는 테너들이 도전하는 가장 서정적이고 난해한 아리아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곡의 매혹은 단순히 선율의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한 올 한 올 이어가는 긴 호흡, 절제된 고음의 투명한 울림은 인간 내면의 미묘한 흔들림을 투사한다. 음 하나하나가 파도에 실린 기억처럼 떠올랐다 사라지고, 다시 다가왔다 멀어진다. 바다는 결코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잃어버린 목소리를 끊임없이 속삭이며 되살려낸다. 무엇보다 이 아리아를 들을 때, 우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 존재가 품은 근원적 갈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 갈망은 시간 속에서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침묵 속에서 선명해진다. 마치 “사랑의 기억은 파도처럼 반복된다”라는 하나의 철학적 진술처럼, 음악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회귀의 운명을 일깨운다. 비제의 진주조개잡이는 당대 오리엔탈리즘적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오늘 우리가 듣는 이 아리아는 그 시대를 넘어선다. 그것은 바다와도 같은 음악의 힘이다. 기억과 갈망, 우정과 사랑을 초월적으로 아우르는 울림 그 이상이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파도의 이름으로 돌아올 뿐이다.” ▲영상 로베르토 알라냐가 미셸 플라송의 지휘로 비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1막 로망스 〈Je crois entendre encore〉를 노래합니다. 이 영상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된 DVD 라이브 〈베르사유에서 만나는 프랑스 오페라 100년〉중 한 장면으로, 2009년 베르사유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특별한 무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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