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다르다.”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랑, 그 해답 없는 질문을 향한 6시간의 대장정”
2025년 12월, 4~7 일 15:00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오후 3시에 시작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밤 8시 40분을 훌쩍 넘어 막을 내렸다.
총 340분 1부와 2부를 마치고 두 번의 휴식을 포함하면 거의 6시간 가까운 여정이었지만, 이 시간은 단순한 러닝타임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연을 가로지르는 장정의 시간 체험에 가까웠다.
이번 공연은 국립오페라단 창단 이래 최초의 전막 국내 초연이었다.
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는 2024년 〈탄호이저〉에 이어 ‘바그너 3부작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번 무대는 그 여정의 두 번째 이정표였다.
2027년 〈니벨룽의 반지〉 완성을 향한 그의 비전은 시즌북 곳곳에 숨결처럼 배어 있었다.
1. 바그너 19세기의 가장 개인적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모든 오페라의 대본을 직접 쓴 거의 유일한 작곡가다. 그에게 오페라는 음악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연극·철학·미술을 통합하는 총체예술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고백이 깃든 작품이다.
바그너가 후원자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다를 향해 품었던 금지된 사랑,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의지 소멸’ 철학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그래서 이 오페라는 단순한 사랑의 비극이 아니라,‘낮의 거짓을 벗고 밤과 죽음의 진실로 향하는 존재론적 신화’에 가깝다.
2. 1막, 비극적 전주곡, 사랑 이전의 어둠
1막은 아일랜드에서 코널 해안으로 향하는 배에서 시작된다. 전주곡이 울리는 순간, 관객은 이미 역사적 화성 혁명인 트리스탄 화음의 긴장 속으로 가라앉는다.
젊은 뱃사람의 노래 뒤편에서는
오케스트라의 현대적이고 고독한 울림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분노한 이졸데와 침묵하는 트리스탄이 …그리고 브랑게네가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건네는 아이러니가 펼쳐지며, 비극의 씨앗은 이미 1막에서 조용히 돋아나고 있었다.
3. 2막, “밤이여, 내려오라. 낮은 거짓이고 밤은 진실이다.
” 2막은 바그너 오페라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길고 밀도 높은 사랑의 듀엣이며, 그의 실존적 고백과 철학이 가장 뜨겁게 발화하는 지점이다.
곧이어 두 사람은 선언한다.
“낮은 우리를 속여 왔다.
밤만이 진실이며, 죽음만이 영원한 사랑이다.”
서울시향의 현악은 부드럽고 깊게 울렸고, 관악의 다채로운 결은 후기낭만주의 바그너 음향의 복잡한 구조를 정교하게 재현했다.
특히 플루트와 오보에의 선율은
〈니벨룽의 반지〉로 이어지는 바그너 세계의 ‘운명적 연결선’을 환기했다.
그러나 연출은 상징성의 과잉 속에서 힘을 잃었다. 우주적 이미지, 추상적 오브제, 미니멀한 무대 장치는
음악의 철학적 전개를 충분히 확장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음악 뒤로 숨어버리는 인상을 주었다.
4. 3막,죽음, 그 황홀한 구원으로의 귀결
브루타뉴의 황량한 바다.
‘슬픔의 땅(Land der Schmerzen)’에 쓰러진 트리스탄,마르케 왕의 용서, 멜롯테의 배신, 그리고 마지막에 이졸데가 부르는 궁극의 아리아 ‘사랑의 죽음(Liebestod)’이 흘렀다.
서울시향은 이 장면에서 특별히 빛났다.
현악의 숨결은 고요하지만 단단하게 펼쳐져, 이 순간이 단순한 죽음이 아닌 빛을 향한 승화임을 명확히 드러냈다.
마지막 피아니시모가 객석 뒤편까지 스며드는 순간, 단장 최상호가 말한 “한국 오페라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5. 음악은 더없이 찬란했고, 무대는 아쉬웠다
무엇보다 서울시향 이번 공연의 절대적 중심은 6시간 가까운 바그너 관현악을 흔들림 없이 유지한 견고한 호흡과 종결되지 않는 트리스탄 화음의 긴장을 정확히 견인하였다. 말러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깊이 공명할 묵직한 음향미다.
장정의 6시간 공연으로 성악연주자들의
바그너적 체력’요구했던
헬덴테너의 장대한 호흡이 독보였다.
소프라노·메조의 안정된 중음역과
조연들의 성량이 빛났고 음향의 벽’을 뚫고 나오는 명료한 발성 또한 큰 성과다.
-연출 상징의 과잉으로 남은 간극
천장에 고정된 우주적 이미지·추상 오브제가 감정선과 서사를 충분히 지탱하지 못함이 큰 아쉬운이었고, 인물 간 감정의 불꽃이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분출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막을 이 스케일로 완주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바그너가 남긴 질문중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이는 곧 쇼펜하우어의 미학으로 이 작품의 기류를 이룬다.
삶은 고통이며 욕망은 슬픔을 낳고
사랑은 자신을 파괴하면서 완성된다
바그너는 이 철학을 음악으로 체험하게 한다.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향해 잠겨드는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음악가들은 말한다.“<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다르다.”
한국 오페라사의 새로운 도약점으로
2024 〈탄호이저〉, 2025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리고 2027년 예정된 〈니벨룽의 반지〉까지 ….
국립오페라단이 제시한 이 대담한 로드맵은
단순한 시즌 편성이 아니라 한국 오페라 제작 역량의 역사적 도약이다.
6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오페라극장 3층까지 관객이 가득 찼고,
막이 내린 뒤 객석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감동이 공존한 잔향이 남아 있었다.
음악은 더없이 찬란했고,
무대 동선과 연출은 다소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 밤은 개인적으로도 한국 오페라사에도 가장 오래 기억될 찬란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