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의 패러다임 전환과 향토성의 재발견
[강남 소비자저널=탁계석 칼럼니스트]
AI와의 첫 협업 실험이 마무리되었다. 단종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삼경」, 「청령포」, 「회상」 세 작품은 예상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새로운 창작 방식의 가능성을 분명히 입증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AI는 작품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창작 생태계를 ‘재구성하는 계기’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설계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의미를 설계할 것인가가 창작의 본질로 떠올랐다.
■ 향토성, 이제 콘텐츠의 중심으로
다음 단계는 분명하다. 지역이다.
대한민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향토적 자산—역사, 인물, 설화, 풍경—이야말로 K-클래식의 가장 강력한 원천이다.
각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소재들을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뒤, 작품으로 완성하는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문화 자원의 구조화’다.
지역 탐방과 체험을 통해 얻어진 생생한 현장성은 AI와 결합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그 결과물은 가곡에 머무르지 않는다. 합창곡, 뮤지컬 넘버, 관현악, 음악극으로 확장되며 하나의 복합적 문화 자산으로 재탄생한다.
■ 플랫폼, 창작의 생산성을 바꾸다
그동안 창작의 가장 큰 한계는 ‘비생산성’이었다.
수많은 작품이 일회성으로 소멸되고, 축적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러나 AI 협업은 이 구조를 바꾼다.
1차 창작물이 2차, 3차 확장으로 이어지는 ‘연쇄 생산 구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플랫폼이다.
K-클래식 뉴스는 단순한 홍보 매체가 아니라, 창작을 기록하고 확산시키는 생태계의 중심축이 된다.
특히 오케스트라 음악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창작 모델을 만들어낸다. 음악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되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 글로벌 시장, 우리가 설계하는 생태계
이제 시선은 세계로 향한다.
중요한 것은 ‘진출’이 아니라 ‘구조’다.
해외 연주자들이 한국 창작 작품을 연주할 때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순한 콘텐츠 공급자가 아니라 생태계 설계자가 된다.
이것은 한국 창작 음악이 서양 음악사의 주변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실질적 경로를 의미한다.
속도는 AI가 제공한다. 그러나 방향은 우리가 정해야 한다.
■ 글로컬 모델, 지역에서 세계로
영월 청령포 단종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다.
조견당과 같은 명품 고택을 중심으로 공연, 숙박, 지역 농산물, 체험 프로그램이 결합될 때 문화는 산업이 되고, 산업은 다시 지역을 살린다.
이 구조는 단순한 공연 기획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 모델’이다.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며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구조, 그것이 바로 글로컬 전략의 핵심이다.
지역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콘텐츠의 중심이다.
■ 교육, 다음 세대를 준비하다
AI 시대의 창작은 교육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라, ‘표현 능력’의 교육이 필요하다.
국악과 양악이 서로를 배우고, 새로운 연주 언어를 만들어내는 K-클래식 아카데미는 필수적이다.
창작과 연주, 기술과 감성이 분리되지 않는 통합적 교육 구조가 요구된다.
■ 아리랑, 다시 날아오르다
최근 밀양을 중심으로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을 잇는 ‘빅 쓰리 아리랑’ 연합 움직임은 매우 상징적이다.
세계로 확산된 현대적 아리랑이 있다면, 이제는 그 원형이 다시 날아올라야 할 시점이다.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아리랑은 또 한 번 진화할 것이다.
■ 지금은 ‘신호탄’의 시간
지금 우리는 매우 특별한 시점에 서 있다.
AI 기술, 한류의 확장, 지역 콘텐츠의 재발견—이 세 축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다.
하나의 ‘신호탄’이다.
우리는 이미 씨앗을 뿌렸다.
이제 그 씨앗이 숲이 되는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 결론: 설득의 시대에서 증명의 시대로
이제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말하는 시대다.
AI는 창작의 속도를 혁명적으로 바꾸었지만, 그 안에 담길 의미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속도가 아닌 깊이, 양이 아닌 완성도.
그 기준 위에서 K-클래식은 새로운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지금이다.
▲사진=영월 주천면의 300년 명품 고택 조견당 김주태 회장(우)과 업무협약 하는 K클래식 탁계석 회장 ⓒ강남 소비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