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제1테마
생소한 이론을 통해 세상을 봐라
익숙함은 가장 오래된 감옥이다.
감옥이라고 해서 꼭 쇠창살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무서운 감옥은 문이 열려 있는데도 나가지 않는 감옥이다. 사람은 날마다 새 하늘을 보면서도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해석한다. 새로운 사건을 만나도 낡은 말로 이름 붙이고, 낯선 사람을 만나도 익숙한 기준으로 재단하며, 시대가 바뀌어도 오래된 문법으로 세상을 읽는다.
그러고는 말한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지?”
사실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눈이 늘 그 모양일 수 있다.
생소한 이론을 통해 세상을 보라는 말은 어려운 학문을 들이대자는 뜻이 아니다. 세상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자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보자는 말이다. 당연하다고 믿어 온 것을 의심하고, 자연스럽다고 여긴 것을 뒤집고,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는 방향에서 잠시 옆으로 비켜서자는 말이다.
사람은 자주 착각한다.
많이 보면 잘 안다고 생각한다.
오래 겪으면 깊이 안다고 생각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면 맞는 줄 안다.
그러나 오래 본 것이야말로 가장 안 보일 수 있다.
매일 보는 가족의 수고를 모른다.
매일 쓰는 물건의 생산과정을 모른다.
매일 하는 소비가 어떤 시장을 키우는지 모른다.
매일 듣는 말이 내 생각을 어떻게 길들이는지 모른다.
익숙함은 편하지만 위험하다.
익숙함은 사람을 안심시키지만, 동시에 생각을 재운다.
그래서 생소한 이론이 필요하다.
생소한 이론은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는 렌즈다. 렌즈를 바꾸면 같은 풍경도 달라진다. 어제까지는 그냥 장바구니였던 것이 오늘은 생산을 움직이는 신호로 보인다. 어제까지는 그냥 소비자였던 사람이 오늘은 시장의 방향을 묻는 주체로 보인다. 어제까지는 그냥 동네였던 곳이 오늘은 새로운 문명이 시작될 수 있는 생활 거점으로 보인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다.
보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기존 시장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생산자는 만들고,
소비자는 사고,
플랫폼은 연결하고,
광고는 흔들고,
가격은 판단하고,
유행은 명령하고,
사람은 따라갔다.
이 구조 안에서 소비자는 늘 끝에 있었다.
물건이 만들어진 뒤에야 등장했고, 가격이 정해진 뒤에야 선택했고, 광고가 흔든 뒤에야 반응했다. 그리고 결제가 끝나면 조용히 사라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시장은 소비자를 왕이라고 불렀지만, 왕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고객이 주인이라고 말했지만, 주인은 늘 영수증을 들고 나갔다.
소비자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소비자는 대부분 계산대 앞에서만 중요했다.
왕인데 묻지 않고,
주인인데 초대하지 않고,
중요한데 끝에 세운다.
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모순인가.
생소한 이론은 이 모순을 보게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생산과 소비의 순서를 다시 묻는다. 꼭 생산이 먼저이고 소비가 나중이어야 하는가. 소비자는 꼭 만들어진 것을 고르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필요가 먼저 말해지고, 수요가 먼저 드러나고, 사용 경험이 다음 생산을 판단하게 할 수는 없는가.
이 질문 하나가 세상을 뒤집는다.
세상은 대개 큰 혁명으로만 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 더 깊은 변화는 질문이 바뀔 때 시작된다.
“무엇을 팔 것인가?”에서
“무엇이 필요한가?”로.
“어떻게 더 소비하게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좋은 소비가 좋은 생산을 부르게 할 것인가?”로.
“어떻게 사람을 붙잡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사람이 자기 선택의 주인이 되게 할 것인가?”로.
질문이 바뀌면 시장이 바뀐다.
시장이 바뀌면 관계가 바뀐다.
관계가 바뀌면 문명이 바뀐다.
생소한 이론은 거창한 말이 아니다.
질문을 바꾸는 힘이다.
해학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너무 오래 남의 안경을 쓰고 살았다. 안경 주인이 광고주인지, 플랫폼인지, 유행인지, 오래된 상식인지도 모르고 그냥 썼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흐릿해도 내 눈이 나쁜 줄 알았다. 사실은 안경이 문제였을 수 있다.
이제 안경을 벗어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렌즈를 끼워야 한다.
낯선 렌즈로 보면 돈도 달라 보인다.
돈은 단순한 소유의 도구가 아니라 흐름의 방향이 된다.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따라 시장이 달라지고, 누구에게 돌아오는가에 따라 공동체가 달라진다.
소비도 달라 보인다.
소비는 사라지는 지출이 아니라 생산을 부르는 신호가 된다. 내가 무엇을 사고, 왜 사고, 어디서 사고, 누구와 나누는지가 다음 시장의 씨앗이 된다.
교육도 달라 보인다.
교육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행동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배웠는데 움직이지 않으면 종이만 남고, 배운 것을 생활로 내리면 사람이 바뀐다.
공동체도 달라 보인다.
공동체는 모임이 아니라 기억과 책임의 구조다. 사람만 모이면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묻고, 함께 기록하고, 함께 고치고, 함께 다음을 만드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문명도 달라 보인다.
문명은 먼 역사책 속의 단어가 아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필요로 말하고, 어떤 소비를 선택하며, 어떤 사람과 연결되고, 어떤 기록을 남기는가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생소한 이론은 이상한 말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말이다.
너무 익숙한 현실을 그대로 두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을 바꾸려면 먼저 현실을 다르게 보아야 한다. 다르게 보지 않고 다르게 살겠다는 말은, 같은 냄비에 같은 재료를 넣고 다른 맛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물론 기대는 자유다. 그러나 국은 정직하다.
생각도 그렇다.
같은 생각으로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세상을 기대하는 것은 참 낭만적이지만, 대체로 피곤한 낭만이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탄하기 전에, 내가 세상을 읽는 방식이 바뀌었는지 물어야 한다.
생소한 이론을 통해 세상을 보라는 말은 바로 이 질문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가.
그 당연함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내 소비는 누구의 시장을 키우는가.
내 선택은 어떤 생산을 부르는가.
내 말은 어떤 관계를 만들고 있는가.
내가 배운 것은 생활을 바꾸고 있는가.
내가 속한 공동체는 사람을 세우는가, 사람을 소모하는가.
이 질문을 피하면 사람은 편하다.
그러나 편한 만큼 갇힌다.
이 질문을 시작하면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한 만큼 열린다.
세상의 문은 자주 불편함 쪽으로 열린다.
생소한 이론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의자가 불편하면 자세를 바꾸게 되고, 질문이 불편하면 생각을 바꾸게 된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면 시장이 바뀐다.
이것이 출발이다.
『생소한 이론을 통해 세상을 봐라』는 낯선 말로 세상을 어렵게 만들자는 책이 아니다. 익숙한 세상이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을 잠재웠는지 깨우자는 책이다. 우리가 소비자라고 불리며 얼마나 작아졌는지, 시장이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자주 침묵했는지, 문명이라는 거대한 말 앞에서 얼마나 쉽게 구경꾼이 되었는지 묻는 책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별들의 무희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낯설게 본다.
그다음에는 기존의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세 번째 길을 찾는다.
생산과 소비를 다시 엮고,
문명의 방향을 다시 묻고,
실천과 전략을 사람의 손에 쥐여 주고,
범주를 다시 세우고,
소비를 시장의 끝에서 시작으로 돌려놓고,
마침내 별들의 무희처럼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리듬 안에서 움직이는 세계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긴 여정의 첫 문은 하나다.
낯설게 보라.
보던 대로 보지 말라.
들어온 대로 믿지 말라.
남들이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쓰지 말라.
시장이 정한 자리에 조용히 앉지 말라.
세상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많은 질서는 누군가 오래 반복해서 단단해 보일 뿐이다.
많은 상식은 누군가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오래 굳어진 것일 뿐이다.
많은 시장은 사람들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믿어 주었기 때문에 유지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질문하라.
정말 원래 그런가.
정말 다른 길은 없는가.
정말 소비자는 끝에 있어야 하는가.
정말 생산은 기업만의 언어인가.
정말 시장은 돈이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가.
정말 문명은 거대한 권력이 만드는가.
아니다.
문명은 질문하는 사람에게서 다시 시작된다.
시장은 필요를 말하는 사람에게서 다시 열린다.
생산은 소비자의 신호를 들을 때 다시 정직해진다.
공동체는 서로의 수고를 기록할 때 오래간다.
오늘의 결론은 단순하다.
익숙함은 우리를 편하게 하지만, 생소함은 우리를 깨운다.
익숙함은 길을 반복하게 하지만, 생소함은 새 길을 보게 한다.
익숙함은 세상을 설명하지만, 생소함은 세상을 다시 만들게 한다.
생소한 이론을 통해 세상을 보라.
그 말은 지식인의 장난이 아니다.
잠든 시장을 깨우는 첫 문장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낯설게 보아야 한다.
소비를 낯설게 보고,
생산을 낯설게 보고,
돈을 낯설게 보고,
교육을 낯설게 보고,
공동체를 낯설게 보고,
나 자신까지 낯설게 보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보인다.
우리가 살던 세상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설계된 것이었다.
그리고 설계된 것은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이 한 문장이 가슴을 뚫는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르게 보면,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생소한 이론은 그 첫 번째 눈이다.


![[김종우 칼럼] 반려동물산업 에세이_113 펫테크, 반려동물의 건강과 행복을 연결하는 미래산업으로 주목 [김종우 칼럼] 반려동물산업 에세이_113 펫테크, 반려동물의 건강과 행복을 연결하는 미래산업으로 주목](https://blog.kakaocdn.net/dna/7pVxP/dJMb99OHRUd/AAAAAAAAAAAAAAAAAAAAAAUagotm2FsbsDdZbHkp3ThZ-kqyEz5QGOYTCwriQmJj/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93458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PnsIw90ICWTiLt8Xi8hFD4rRxr4%3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