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자체 치매 예방 정책의 새로운 출발점
[강남 소비자저널=선주성 칼럼니스트]
초고령사회는 더 이상 예측의 영역이 아니다. 다수의 지자체가 이미 치매 유병률 증가, 돌봄 인력 부족, 의료·요양비 지출 확대라는 구조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현재 정책 대응은 여전히 사후적 관리와 시설 확충 중심에 머물러 있다. 이제 정책의 방향은 분명히 전환되어야 한다. 치매 예방의 핵심 거점은 의료기관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 공간이어야 한다. 그 최전선에 있는 공간이 바로 경로당이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6만 8천여 개의 경로당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노인 여가복지시설 가운데 가장 촘촘한 생활 인프라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로당은 주로 휴식과 친목 중심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인지기능 유지와 치매 예방이라는 정책 목표를 수행하기에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뇌과학과 노인의학 연구는 일관되게 말한다. 노년기의 뇌는 사용 빈도가 줄어드는 만큼 빠르게 기능 저하를 겪는다. 즉, 자극 없는 ‘편안한 일상’의 반복은 오히려 치매 위험을 높이는 조건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제안하고 싶은 개념이 바로 ‘노치원(老稚園)’이다. 노치원은 경로당을 노인을 위한 유치원처럼 재구성한 모델로, 단순 돌봄이 아니라 학습·활동·역할을 중심으로 한 생활 예방 플랫폼을 의미한다. 이는 새로운 시설을 건립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존 경로당의 운영 철학과 프로그램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정책 제안이다
노치원형 경로당은 세 가지 축으로 설계된다.
첫째, 정기적이고 구조화된 인지 활동이다. 주 3~5회 수준의 읽기, 쓰기, 노래, 미술, 게임, 회상 활동은 전두엽과 해마를 동시에 자극하며, 다수의 연구에서 치매 예방 효과가 확인된 바 있다.
둘째, 일상형 신체 활동이다. 고강도 운동이 아닌 균형·리듬·보행 중심의 저강도 활동만으로도 인지기능 유지와 낙상 예방에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노인의 역할 부여다. 노치원에서 노인은 단순한 서비스 수혜자가 아니라 진행자, 도우미, 경험 전달자로 기능한다. 이는 우울과 무기력을 감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비의학적 개입이다.
행정적 관점에서 이 모델의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추가 인프라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공간은 이미 확보되어 있고, 이용자 역시 지역 안에 존재한다.
둘째, 치매안심센터, 보건소, 평생학습관, 노인복지관 등과의 연계 행정이 용이하다.
셋째,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적으로 의료 및 요양비 절감이라는 재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복지 확대가 아니라, 예방 중심의 재정 전략에 가깝다.
일본의 다수 지자체는 이미 경로당을 지역 기반 인지 예방 거점으로 활용하며 ‘노인 데이케어+교육’ 모델을 제도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경로당을 여전히 복지 행정의 말단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초고령사회에서 경로당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예방 행정의 중심 무대다.
이제 지자체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경로당을 몇 곳 더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경로당에서 노인의 하루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노치원은 이상적 구호가 아니다. 행정의 결단만 있다면 즉시 실행 가능한, 가장 실천적인 치매 예방 정책이다.
경로당을 노치원으로 전환하는 일은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지자체의 미래 부담을 줄이는 선택이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을 시작할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