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19 테마, 시간의 주권, 절약한 시간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19 테마, 시간의 주권, 절약한 시간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사진=정차조 (주)KN541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회사에서 특별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매우 중요했다.

“전 직원의 업무시간을 절약하는 방안.”

부서장 열두 명이 모였다. 두 시간 동안 발표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한 사람이 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입니까?”

의장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시간 절약을 위한 실무추진단을 구성하고 다음 주에 다시 회의합시다.”

열두 사람이 두 시간씩, 스물네 시간을 사용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위대한 시간 관리다.

시간은 사라졌는데 시간 절약 계획만 남았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의 기묘한 풍경이다.

인간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엄청난 기술을 발전시켰다.

자동차로 이동시간을 줄이고, 세탁기로 빨래하는 수고를 덜었으며, 컴퓨터로 계산을 빠르게 하고, 인공지능으로 복잡한 작업까지 처리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술은 점점 빨라지는데 사람은 점점 바쁘다.

이동시간은 줄었는데 약속은 늘어났고, 업무 처리속도는 빨라졌는데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다.

이메일을 쓰는 시간이 줄자 이메일이 늘어났다.

회의자료를 만드는 시간이 줄자 회의자료의 종류가 늘어났다.

보고서 한 장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자 보고서를 다섯 장씩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술은 인간에게 시간을 선물했는데, 인간은 그 선물을 뜯어 보기도 전에 새로운 업무로 포장했다.

참으로 성실한 불행이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절약한 시간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이 질문이 시간의 주권을 여는 첫 문이다.

시간의 주권이란 하루를 마음대로 빈둥거리며 보내는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공동체의 약속을 무시하자는 말도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노동과 관심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가능한 범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인간에게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시간은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돈은 통장에 남길 수 있다.

물건은 창고에 보관할 수 있다.

기억은 글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오후 세 시를 내일 오후 세 시와 교환할 수는 없다.

시간은 저축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시간을 절약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에 쓸 시간을 다른 무엇에 쓸 수 있도록 바꾼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사용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다.

여기서 현대 경제의 깊은 역설이 드러난다.

어떤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업무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하자.

정말 훌륭한 발전이다.

그런데 직원에게는 이전과 같은 시간 동안 두 배의 업무를 요구한다.

기업의 생산성은 높아졌다.

기술도 발전했다.

하지만 직원의 하루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 직원에게 시간 절약의 혜택은 어디로 갔을까.

물론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성과를 만들거나 품질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전의 성과가 특정한 곳에만 쌓이고, 그 발전을 가능하게 한 사람에게는 피로만 늘어난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기술이 사람의 일을 도왔는가, 아니면 사람을 더 빨리 움직이게 하는 채찍이 되었는가.

이 질문을 피하면 효율은 문명의 이름을 가진 새로운 압박이 될 수 있다.

사람은 기계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기계가 반복적인 일을 덜어 주는 동안 사람은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좋은 것을 만들고, 서로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속도가 빨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빨리 달렸는데 목적지가 틀렸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니다.

길을 잃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 데 단 10초가 걸린다.

결제는 눈부시게 빨랐다.

그런데 배송된 상품이 설명과 다르다.

고객센터에 연락하고, 문제를 설명하고, 사진을 보내고, 반품을 접수하고, 다시 배송을 기다린다.

결제에는 10초가 걸렸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판매자는 말한다.

“우리 시스템은 매우 빠릅니다.”

고객은 대답한다.

“그래서 제 시간은 누가 돌려줍니까?”

정말 필요한 질문이다.

시장에서는 기업이 절약한 시간과 소비자가 잃어버린 시간이 서로 다르게 취급될 때가 많다.

기업의 업무시간은 비용으로 계산하면서 고객의 기다림은 서비스 과정이라고 부른다.

생산자의 낭비는 손실로 기록하면서 소비자가 잘못된 상품 때문에 허비한 시간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비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지불하고 있다.

싼 상품을 사기 위해 몇 시간을 검색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으려고 다시 시간을 쓰고, 불필요한 상품을 정리하는 데 주말을 보내기도 한다.

영수증에는 상품 가격만 찍힌다.

그 상품을 고르고 관리하고 후회하는 데 사용한 시간은 찍히지 않는다.

인간은 가격표를 읽는 데는 익숙하지만 인생의 영수증을 읽는 데는 서툴다.

그래서 새로운 시장은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빨리 팔았는가보다 얼마나 정확하게 필요한 것을 제공했는가.

얼마나 빨리 배송했는가보다 전체 과정에서 얼마나 불필요한 기다림과 시행착오를 줄였는가.

얼마나 많은 상품을 보여 주었는가보다 소비자가 얼마나 적은 혼란 속에서 필요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었는가.

좋은 시장은 사람을 빨리 결제하게 만드는 시장이 아니다.

사람의 시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시장이다.

여기서 소비생산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의미를 갖는다.

기존 시장은 먼저 만들고 나중에 팔았다.

필요한지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생산하고, 팔리지 않으면 광고하고, 그래도 남으면 할인하고, 마지막에는 처분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품만 낭비되는 것이 아니다.

생산자의 노동시간이 낭비된다.

물류와 보관에 사용된 시간이 낭비된다.

소비자의 관심과 선택의 시간도 낭비된다.

필요 없는 생산은 자원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시간을 함께 소비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먼저 묻는 일은 단순한 판매전략이 아니다.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는 경제적 태도다.

사전예약구매 역시 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생산 전에 실제 필요와 수요를 확인하고, 생산 가능한 조건과 일정을 투명하게 제시한다면 불필요한 생산과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예약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생산이 지연되고, 약속한 조건이 바뀌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소비자의 시간과 신뢰를 더 많이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전예약이라는 이름이 아니다.

약속한 시간을 얼마나 책임 있게 다루는가다.

사람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왜 기다려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알려 주어야 한다.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졌다면 숨기지 않고 다시 알려야 한다.

기다림에도 존중이 필요하다.

시간의 주권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키는 일과 연결된다.

그런데 우리는 속도에 관해 또 하나의 착각을 한다.

느리면 무조건 나쁘고, 빠르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잘 익은 과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발효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깊은 배움에는 반복이 필요하다.

오래가는 신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중요한 것까지 미완성으로 남길 수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비효율이 아니다.

아이에게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설명해야 하는 것도 언제나 낭비는 아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는 시간도 단순히 생산성이 낮은 시간이 아니다.

어떤 시간은 줄여야 한다.

어떤 시간은 오히려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기다림은 줄이되, 필요한 숙성은 서두르지 않는 것.

반복되는 실수는 줄이되, 깊이 배우는 시간은 아끼지 않는 것.

쓸데없는 회의는 줄이되, 중요한 질문을 나누는 대화는 충분히 하는 것.

이것이 성숙한 시간의 경제다.

좋은 문명은 모든 것을 빠르게 만드는 문명이 아니다.

빨라야 할 것은 빠르게 하고, 천천히 해야 할 것은 충분히 기다릴 줄 아는 문명이다.

인간의 시간에는 속도보다 깊이가 필요할 때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만나게 된다.

같은 한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존중받고 있는가?

어떤 사람의 한 시간은 매우 비싸게 계산된다.

반면 누군가의 한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게 만들거나 낭비해도 되는 것처럼 취급된다.

직책이 높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일에는 둔감한 조직도 있다.

고객의 시간을 아낀다는 명분으로 배송과 생산 현장의 노동자에게 무리한 속도를 요구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한 사람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간을 끝없이 소모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효율이 아니다.

시간의 부담을 옮겨 놓았을 뿐이다.

사회 전체의 효율은 누가 빨라졌는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 속도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에서 누가 더 기다리고, 누가 더 피로해졌는지도 살펴야 한다.

좋은 서비스는 소비자의 편리함과 제공자의 존엄을 함께 존중해야 한다.

편리함은 중요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피로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편리함이라면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KN541이 지향하는 공유경제와 참여가치도 결국 이 질문과 연결된다.

사람은 단순히 돈만 들여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다.

시간을 들인다.

상품을 살펴보는 시간, 사용 경험을 남기는 시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시간,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

물론 시간을 많이 사용했다고 언제나 큰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시간을 헤매는 것보다 십 분 동안 정확하게 해결한 일이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참여의 가치는 사용한 시간의 길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했고, 어떤 도움이 되었으며,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다만 그 모든 활동 뒤에 사람이 자신의 삶의 일부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참여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의미 없는 참여를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설명할 수 없는 절차를 반복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실행할 권한도 없으면서 책임만 지우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모았다면 그 시간이 왜 필요한지 분명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공동체는 사람의 열정을 소모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곳이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시간표를 만들고, 목표를 세우고,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간 관리가 인생의 목적이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하루를 빈틈없이 채웠는데 정작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다.

계획은 완벽했는데 삶은 피곤하다.

성과는 늘었는데 기쁨은 줄었다.

일정표는 빼곡한데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시간을 관리하는 데 성공하고 인생을 사용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시간의 주권은 여기서 다시 질문한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쁜가.

내가 바쁘게 움직이는 일이 정말 필요한가.

지금 시간을 아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이 질문은 생산성의 문제를 넘어 삶의 방향을 묻는다.

시간을 아끼는 이유가 단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끝없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절약한 시간을 더 깊이 배우고, 더 좋은 것을 만들고, 사람을 돌보며, 자신을 회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 효율은 사람의 삶을 넓히는 힘이 된다.

여기서 진정한 풍요의 의미가 드러난다.

돈이 많아도 자기 시간을 결정할 수 없다면 그 삶은 늘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모든 것을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풍요가 있다.

물론 시간의 자유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현실이 있고, 돌봄의 책임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똑같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시간의 주권은 개인의 자기관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기업의 운영방식도 바뀌어야 하고, 시장의 거래 관행도 달라져야 하며, 기술이 만든 효율이 사람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가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시간의 주권은 개인의 철학이면서 동시에 경제의 질서다.

이제 처음의 회의실로 돌아가 보자.

열두 사람이 두 시간 동안 시간 절약을 논의했다.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회의한다면 변화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다음 회의는 꼭 필요한 사람만 모입시다.”

“미리 공유할 자료는 회의 전에 보내고, 함께 결정할 문제만 논의합시다.”

“결정할 일이 없다면 회의를 열지 맙시다.”

“줄어든 시간에는 각자 중요한 일을 하도록 합시다.”

그 순간 비로소 시간 절약이 시작된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사람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작은 구조의 변화다.

이런 변화가 쌓이면 조직의 문화가 바뀐다.

조직의 문화가 바뀌면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사람은 다시 자신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의 결론은 분명하다.

시간의 주권은 시간을 많이 갖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지 판단할 수 있는 힘이다.

진정한 효율은 더 많은 일을 시키는 기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일을 줄이고, 꼭 필요한 일에 사람의 능력을 집중하게 하는 지혜여야 한다.

좋은 시장은 빠르게 결제하게 만드는 시장만이 아니다.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기다림과 후회를 줄이는 시장이다.

좋은 발전은 기계가 얼마나 빨라졌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발전을 통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더 깊고 넓어졌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시간을 얼마나 절약했는가가 아니라,

그 시간을 누구에게 돌려주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효율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시간의 주권.

그것은 시계를 더 빠르게 돌리는 일이 아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하루를 다시 돌려주는 일이다.

시계를 빠르게 만든 문명보다 더 위대한 문명은, 사람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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