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칼럼] AI와 관종의 시대, 문학은 무엇으로 살아 남는가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란 무엇인가?

[손영미 칼럼] AI와 관종의 시대, 문학은 무엇으로 살아 남는가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란 무엇인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2026년은 한국 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1926년생 문학인들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번에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는 지난 6월 18일 오후 3시 30분,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에서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김자림과 박현숙, 시인 김종길과 박인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다섯 문학인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랑을 통과하며 지켜낸 시대의 상처와 인간의 존엄을, 문학을 통해 다시금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또 다른 시대적 전환점 앞에 서 있다. AI가 문장을 쓰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결정하며, SNS가 감정을 소비하는 시대. 과거의 문학이 전쟁과 가난, 분단의 상처를 견디게 했다면, 앞으로의 문학은 소음과 속도, 과잉된 자기 노출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야 한다.
한없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쉼 없이 배설되는 현대인의 과잉된 언어들과 달리, 시는 침묵의 뼈를 발라내어 가장 정직한 진액만을 남기는 작업이다. 뱉어낸 단어보다 차마 뱉지 못해 행간에 숨겨둔 여백이 독자의 마음에 닿을 때, 시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그 여백은 ‘관종의 시대’가 잃어버린 성찰의 공간이며, 타인의 슬픔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작은 의자다.

오늘의 문학이 마주한 풍경은 한 세기 전과 사뭇 다르다. 과거의 인간이 침묵을 견디며 살아냈다면, 오늘의 인간은 지나친 소음 속에서 길을 잃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감정을 전시한다. SNS는 삶을 기록하는 공간을 넘어 감정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존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기 위해 살아간다.
슬픔은 공유되기 전에 콘텐츠가 되고,
분노는 성찰되기 전에 확산되며,
고독은 견디기 전에 소비된다.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듣지 못하는 시대. 어쩌면 오늘날 시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침묵을 복원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이제 시를 쓴다. 운율도 맞추고, 은유도 만들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그럴듯한 문장을 생산한다. 그러나 AI가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살아낸 시간’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병실에서 흘린 눈물의 온도, 사랑이 끝난 뒤 빈 의자 하나를 바라보던 저녁의 공기, 누군가를 용서하기까지 걸린 십 년의 침묵. 시는 언어의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상처의 결이다. 그래서 좋은 시는 잘 쓴 문장이 아니라, 한 인간이 온몸으로 살아낸 흔적이다.

문학은 더 이상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만 살아남기 어렵다. 정보는 이미 AI가 더 빠르게 제공한다. 그러나 문학은 정보를 넘어 의미를 묻는다. AI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면, 문학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AI가 답을 만든다면, 문학은 질문을 지켜낸다. 따라서 미래의 문학은 지식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마지막 보루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시대에 문학이 삶 속에 녹아든다는 것은 거창한 서가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무분별한 자극에 마비된 감각을 깨워 일상의 미세한 결을 다시 느끼는 일이며,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포장된 감정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진짜 나를 마주하는 용기다.

100년 전 박인환이 전후 도시의 황량함 속에서 한 방울의 서정을 건져 올렸고, 김종길이 절제된 언어로 영혼의 품격을 지켜냈듯, 오늘날 우리가 문학 안에서 살아남는 방식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화려한 기술과 과잉된 소음으로 가득할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의 진심 어린 떨림을 갈망한다.

문학은 자극적인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고요한 방파제이며, 시는 그 방파제 위에 피어난 여백의 꽃이다. 화려한 데이터가 증명할 수 없는 인간만의 쓸쓸함과 존엄. 앞으로의 100년 동안 문학은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끝까지 사랑하는 예술이 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는 시대, 시인은 가장 깊은 곳의 침묵을 듣는 사람이다. 문학은 인간이라는 숲을 지키는 일이고, 시는 그 숲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바람의 떨림을 기록하는 일이다. AI가 문장을 만드는 시대에도 인간만이 시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이 시대 문학의 화두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인간은 시간을 쓴다.”
그리고 좋은 시는, 살아낸 시간이 마침내 언어가 되는 순간 탄생한다.

오늘 나는 이 소음 가득한 세상의 귀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는 한 줄의 여백을 받아 적는다. 세상을 크게 흔드는 소음보다, 한 사람의 가슴을 오래 울리는 침묵의 서정이 결국 더 오래 살아남을 것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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