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식당에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계가 있었다.
그 시계에는 숫자가 없었다.
대신 단어 하나만 적혀 있었다.
‘곧’.
손님이 주문한 지 20분이 지나 물었다.
“음식은 언제 나옵니까?”
종업원이 환하게 웃었다.
“곧 나옵니다.”
10분이 더 지났다.
“아직 멀었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다시 10분이 흘렀다.
“도대체 그 조금이 얼마입니까?”
종업원은 여전히 친절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손님은 감탄했다.
이 식당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20분 전에도 곧이었고, 40분 뒤에도 곧이었다.
아마 이 식당에서 태어나면 백 살이 되어도 곧 어른이 될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곧이라는 곳은 아주 먼 데 있나 봐.”
사람들이 웃었다.
그러나 엄마는 웃지 못했다.
식사 후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식당 주인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주문이 누락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25분 정도 걸립니다.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취소하시겠습니까?”
손님은 잠시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진작 해 주셨으면 좋았잖아요.”
손님은 주문을 취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은 먹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적어도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여기에 기다림의 역설이 숨어 있다.
사람은 오래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왜 기다려야 하는지, 다른 선택은 가능한지 알 수 없는 시간 앞에서는 쉽게 지친다.
기다림의 고통은 반드시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누가 결정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물건을 주문할 때 돈을 지불한다.
그러나 상품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또 하나를 내어준다.
바로 자신의 시간이다.
돈은 통장에서 빠져나가지만 시간은 인생에서 빠져나간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하지만 어제의 오후 세 시를 다시 입금받을 방법은 없다.
이 얼마나 비싼 거래인가.
그런데 시장은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기업이 직원의 시간을 30분 더 사용하면 인건비를 계산한다.
배송이 하루 늦어지면 물류비 증가를 걱정한다.
그런데 고객이 30분을 기다리면 이렇게 말한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참으로 경제적인 회계 방식이다.
기업의 시간은 비용으로 계산하고, 고객의 시간은 ‘양해’라는 두 글자로 정산하려 한다.
물론 양해를 구할 수 있다.
누구나 실수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도 발생한다.
그러나 양해는 상대방이 선택해서 제공하는 것이지, 기업이 당연히 가져다 쓸 수 있는 무료 자원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시계가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일일까.
아니다.
기다림은 자신의 시간과 가능성을 잠시 상대방의 약속에 맡기는 일이다.
택배가 온다고 해서 외출을 미룬다.
회의가 곧 시작된다고 해서 다른 업무를 시작하지 못한다.
상품이 생산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다른 구매를 보류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다른 선택의 기회까지 내어줄 수 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시간을 맡겼는데 영수증도 없고, 언제 돌려받을지 설명도 없는 셈이다.
여기서 기다림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선택권의 문제가 된다.
기다림은 시간을 맡기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릴지 결정할 권리까지 포기하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기업의 입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시장을 바라보았다.
상품을 얼마나 빨리 생산할 것인가.
배송을 얼마나 단축할 것인가.
고객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것인가.
물론 중요한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고객은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가.
놀랍게도 고객의 기다림을 줄이는 방법은 반드시 생산속도를 높이는 것만은 아니다.
기다리는 이유를 알리고, 예상 시간을 안내하며, 상황이 바뀌었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불안과 기회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이것은 느린 생산을 정당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산의 책임과 시간의 선택권을 함께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여기서 두 종류의 기업을 만나게 된다.
첫 번째 기업은 문제가 생기면 침묵한다.
“괜히 알렸다가 고객이 화를 내면 어떡하지?”
그래서 좋은 소식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고객이 문의하면 대답한다.
“현재 확인 중입니다.”
일주일 뒤에도 확인 중이다.
한 달 뒤에도 확인 중이다.
고객은 궁금해진다.
“도대체 무엇을 확인하고 있기에 계절까지 바뀌는 것인가?”
두 번째 기업은 다르게 행동한다.
문제가 생기면 확인된 사실을 알린다.
아직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예상 일정이 달라졌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음에 언제 진행 상황을 안내할지 약속한다.
기다리기 어려운 고객에게는 적용 가능한 취소와 환불 등의 선택지도 안내한다.
어느 기업이 더 완벽한가.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 고객을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하는지는 분명하다.
“나를 믿고 기다리십시오.”
이 말과
“판단하실 수 있도록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말 사이에는 시장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믿음을 요구한다.
두 번째는 믿을 근거를 제공한다.
신뢰는 요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책임 있는 행동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설명은 책임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조치, 잘못된 부분의 교정, 필요한 환불과 후속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사과를 잘하는 기업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과할 일을 줄이는 기업이 더 좋은 기업이다.
이제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생산 구조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생산자가 먼저 만들고 소비자가 구매하는 생산소비 구조를 넘어, 소비자의 실제 필요와 참여가 생산을 호출하는 시장을 만들고자 한다.
사전예약구매는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그러나 상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소비자가 참여한다면 기업이 책임져야 할 것도 달라진다.
완성된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아직 생산을 준비하는 상품을 예약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생산조건과 일정에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예약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으로 이어지는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예상 일정과 변경 가능성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지연이나 변경이 발생하면 필요한 사실을 안내받고, 약속된 조건과 관련 기준에 따라 기다림을 계속할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에게 무조건 기다리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소비가 생산을 호출하는 시장이라면, 생산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소비자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
기다림에 동의했다는 것은 무기한 침묵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 원칙이 실현된다면 사전예약은 단순한 선결제 방식과 구별되는 신뢰의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고객은 그저 상품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생산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 판단을 조정할 수 있는 참여자다.
기업 역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예측할 필요는 없다.
다만 불확실성이 발생했을 때 어떤 절차로 설명하고, 교정하고, 책임질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이 관계경제와 신뢰경제의 중요한 기초다.
관계는 상품을 판매했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시험받는다.
고객생애가치 LTV 역시 단순히 구매 횟수만 늘린다고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다시 선택할 만한 경험을 제공하고, 그 관계가 경제적으로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이 놓치기 쉬운 가장 큰 비용은 광고비만이 아니다.
기다리는 고객의 신뢰를 잃는 비용이다.
광고비를 더 쓰면 새로운 고객은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잃어버린 신뢰를 같은 가격으로 다시 구매할 수는 없다.
참으로 이상한 경제다.
신뢰를 쌓는 데는 수많은 약속이 필요하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설명 없는 침묵 한 번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이제 시야를 더 넓혀 보자.
기다림의 문제는 기업과 고객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 사이에도 있고, 친구 사이에도 있으며, 평생 함께하는 동역자들 사이에도 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정작 설명해야 할 것은 빠뜨린다.
왜 기다려야 하는가.
무엇을 해결하고 있는가.
상대방은 그동안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믿음은 상대방을 무조건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아니다.
상대방이 현실을 알고도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그렇다고 모든 불확실성을 낱낱이 쏟아내라는 뜻은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은 혼란을 만든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고, 사실과 기대를 구분하며,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 정확하게 설명하면 된다.
진실은 화려할 필요가 없다.
다만 진실이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은 말보다 행동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이제 처음의 식당으로 돌아가 보자.
며칠 뒤, 음식을 먹지 못하고 떠났던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주인이 놀라 물었다.
“지난번에 그렇게 기다리셨는데 또 오셨습니까?”
손님이 대답했다.
“그날은 정말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사실대로 말씀하시더군요.”
주인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생기면 더 빨리 알려드리겠습니다.”
손님이 웃었다.
“그럼 오늘은 얼마나 걸립니까?”
“지금 주문이 밀려서 5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정확히 약속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손님은 시계를 보았다.
마침 읽고 싶었던 책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시간이 있으니 기다리겠습니다.”
음식은 48분 만에 나왔다.
지난번보다 더 오래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가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지난번에는 40분을 기다리고도 시간을 빼앗긴 것 같았다.
이번에는 48분을 기다렸는데도 자신의 시간을 사용한 것 같았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음식이 아니었다.
시계도 아니었다.
기다림을 결정한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지난번의 기다림은 알 수 없는 약속에 붙잡힌 시간이었다.
이번의 기다림은 필요한 정보를 듣고 스스로 선택한 시간이었다.
물론 알고 선택한 기다림이라도 지나친 지연이나 약속 위반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다림의 의미를 바꾼다.
이것이 기다림의 역설이다.
우리는 고객이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 계산해 왔다.
이제는 고객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맡기고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고객의 돈은 결제와 환불로 정산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돌려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더욱 신중해야 한다.
돈을 받는 순간 거래가 시작된다.
시간을 맡기는 순간 신뢰가 시험된다.
고객이 맡긴 것은 단순한 30분이나 50분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
그 시간을 존중하지 못하는 기업이 어떻게 평생의 관계를 약속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시장은 모든 일이 언제나 정시에 완성되는 완벽한 시장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사실을 알리고, 책임을 이행하며, 소비자가 자기 삶의 선택권을 잃지 않도록 하는 시장이다.
기업은 고객에게 기다림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침묵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기다림에 대한 선택권은 돌려줄 수 있다.
상품보다 먼저 도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소비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우리의 정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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