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급수검정시험 창안
- 중국 간체자 능력검정시험 창안
- 문자와 문화로 한중간의 교류를 도모
- 훈민정음 복원을 위해 사활 걸어
- 성경을 통한 한자 보급 “일등공신
- ‘호(號)’는 후손이 이어나가야 할 숭고한 문화
- 독특하게 유교적인 주제로 시를 쓰는 시조시인
10살 때부터 서당에서 전통 한문교육을 받으면서 시작된 한문학의 외길로 50년간의 한문학도의 길과 1985년 한문학원을 설립하여 후학들을 양성하고 1995년 국내 최초로 대한민국한자급수시험을 시행하는 등 35년간의 한국한자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며 한자교육부문에서는 항상‘국내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대한민국 한문교육학의 대가’ 박재성 교수를 만났다.
박재성 교수는 1995년 한국한문학원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회원사 학원의 단합과 질적, 양적 성장을 위한 방안을 고심 하던 중, 국내 최초로 사단법인 한국한자교육연구회를 설립하고 대한민국한자급수시험을 창안, 1997년 제4회 대한민국한자급수시험에 전국적으로 약 1만여명에 달하는 응시자가 몰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후 2000년 초 국전여류서예가협회 회원들에게 한문을 지도하면서 사단법인 한중문자문화교류협회 전신인 한국한문교육진흥회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일로매진해 왔다.
중국에서는 1964년부터 2235자의 번체자에 대해서 간체자로 전환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중국과의 실질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간체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박 교수는 ‘간체자를 알아야 중국을 안다’는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국내 최초로 간체자 능력검정제도인 한중공용한자자격검정을 시행하게 되어 2011년에 국가공인을 취득하였다.
박 교수는 2011년은 한문학자로서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일들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10여년 각고의 노력 끝에 집필한 국내최초의 화역사연 대표의 저작을 완성하게 되었고, 국내최초로 2235간체자 사전을 출간, 간체자 능력검정인 공용한자 자격검정이 국가공인을 취득(교육부 제2011-13호)했으며 또한 주한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교육처의 후원으로 중국 국제한어추광영도판공실(HSK)과 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지속가능한 한자문화 교육진흥에 관련하여 박 교수와 대담을 했다.
⦁질문: 우리나라는 훈민정음과 한자를 동시에 쓰는 문자강국으로 한문학자로써 훈민정음 복원을 위해 사활을 걸어 오셨는데…
답: 국문학자이셨던 선친(박홍원 전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교수)의 영향 탓에 국문에도 남다른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특히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이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또다른 일제 식민지가 남긴 암울한 역사의 단면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종대왕은 위대한『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지,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글은 주시경 선생이 우리 글, 우리말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만행 속에서 우리글을 지켜내려는 방편으로 만든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글자는 모두 28자인데 24자만 쓰는 것은 창제원리를 도외시한 결과이기 때문에 반드시 잃어버린 4개의 글자를 복원해서 써야 한다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소리글자인 훈민정음과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쓰는 세계 최대의 문자강국인 특징을 살려서 후세에 자랑스럽게 전수시켜야 하는 것이 이 시대 학자들의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뜻을 같이한 동지들과 함께 세계문자문화교류협회 설립 및 세계문자문화비엔날레 추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질문: 박 교수께서는 한자는 바벨탑 이후 갈라져 나온 문자라고 주장하시며 ‘성경을 통한 한자 보급’ 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답: 제가 크리스찬으로서 한자와 성경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해 왔으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한자는 성경의 바벨탑 사건 이후 갈라져 나온 문자이다. 한자에 담긴 성경의 기원을 밝힌 문헌으로 한자의 기원을 논하는 허신(許愼 AD58경 ~ 147경)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연구를 통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1900여 년 전에 이미 중국의 문헌 속에 성경의 내용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이를 기초로 민족의 이동사와 한문학을 더욱 세밀히 연구하여 한자가 바벨탑 이후 갈라진 언어의 하나였다는 가설을 세우며, 그간 동양의 사상과 기독교는 별개라는 개념을 무너뜨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기독교가 유입된 시기는 명나라 때였지만 그보다 수백 년 전에 이미 한자에는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은 의미심장한 발견”되었다. 그래서 전국의 교회를 순방하며‘성경한자를 통한 전도법’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회를 열고 있다.
제가 성경 속 사자성어를 집대성하여 <성경 속 재미있는 사자성어(가나북스)>을 출간했는데 내용 중 예를 들면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창 28:15)”는 말씀을 ‘何往庇護(하왕비호 – 어찌 하, 갈 왕, 도울 비, 지킬 호)’와 같은 주옥같은 성경 말씀을 사자성어로 정리할 수 있다.
⦁질문: 문자는 화합과 동행, 세계와 함께 할 수 있는 길로써 문자와 문화로 한중간의 교류를 도모하고 계시는데…
답: 세계에서 최고의 문자인 <훈민정음>을 보유한 문자강국으로서의 자긍심으로 한중간의 문자와 문화 교류는 물론 전 세계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자문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문자와 문화>라고 강조하면서, 이념과 수많은 민족들이 화합하고 동행하는 프로젝트로써 ‘세계문자문화비엔날레’를 조직하고 있다.
⦁질문: 한·중한자국제인증시험으로 국내를 넘어 중국 포용을 위해 (사)한·중문자문화교류협회를 이끌고 계시는데…
답: 협회는 20년 전 설립하였던 사단법인 한중문자교육협회가 사회적 무관심과 회원들의 참여 저조로 활동을 중단하려고 할 때,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과의 특별제안으로 2020년 2월 15일(토) 서울한영대학교 글로리아홀에서 학계, 문화 예술계, 언론계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뜻을 함께한 총회에서 정관개정과 본인을 이사장으로 추대하여 ㈜문화매일(대표 최수진)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한중문자문화교류의 새 장을 여는데 뜻을 함께 해 재탄생시켰다.
⦁질문: 문자와 문화의 의미를 형상화 하여 제작한 한·중문자문화교류협회 로고를 직접 도안하여 전문 디자이너들로 부터 극찬을 받았다든데 어떤 의미인가…
답: 협회 로고는 한국의 전통전 문양기법으로 한자인 文字文化를 세계 4대문명 발생지의 의미를 나타내고 협회 설립년도인 2000년을 표현하였다. 로고의 자세한 설명은 사단법인 한중문자문화교류협회 홈페이지에 탑재되어 있다.
⦁질문: 우리 선조들이 사용해 오던‘호’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든데…
답: 직함(職銜)이란 사회 각 조직에서 개인이 맡은 직책에 대한 호칭을 말하는데,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 조직과 무관한 모임이나 행사에서도 그 직함을 사용하다보니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회장아니면 사장으로 불리운다. 예를 들면 7~80년대에는 다방에서 김사장하고 부르면 거의 동시에 많은 손님들이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호(雅號)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예술가들의 호(號) 또는 별호(別號)를 문예적(文藝的)으로 이르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이름 이외에 누구나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애칭을 뜻한다.
그래서 예술가. 문학가. 철학가. 정치인들처럼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사들이 주로 아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듯이 예로부터 문인들은 대개 ‘별호’를 가지고 있어서, 이름대신 다른 사람을 칭할 때는 호를 불러 주었다,
이처럼 상대방의 이름 부르기를 기피하여 자나 호를 불러주는 전통은 성인이 되는 의식으로 남자 20세에 상투를 틀고 관을 쓰는 관례(冠禮)와, 여자 15세에 쪽을 틀어 비녀는 꽂는 계례(筓禮)를 치루면서 자(字)를 받게 되었는데, 주로 남자가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본명과 함께 자(字)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피휘법이 생겨나면서 사람의 성격, 특징, 관직, 기호嗜好 등을 사용하여 스승, 친구, 선배가 호를 지어주어서 자유롭게 부르게 된 데서 연유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서예가이자 한문학자인 박재성 교수는 많은 이들로부터 호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어 호를 지어주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엉겅퀴를 통해 국민 건강을 위해 한국엉겅퀴 재배에 성공한 심재석 임실생약 대표의 아호를 薊儂(엉겅퀴 계, 나 농)으로 지어준 것을 비롯하여, 합참의장을 역임한 이필섭 장군의 호를 芝村(지초 지, 마을 촌)으로 지어드린 일화는 군문에 널리 알려진 일화이기도 하다.
⦁질문: 둥글게 생긴 인감도장은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이고, 사각도장이 전통 문화라고 주장하시는데…
답: 싸인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지금도 각종 계약서 등 중요 문서에는 도장을 찍어야 왠지 문서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문서에 찍는 우리의 도장은 왜 원형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네모난 도장을 일제 강점기 때에 둥근 도장으로 바꿔서 붉은 인주를 묻혀 찍으면 일장기의 모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짜낸 아주 비열한 방법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의 옥새부터 현 우리나라 대통령 국새를 비롯하여 지방 자치단체장을 표하는 관인은 물론 초등학교 교장의 직인이나 서화가나 개인이 사용하는 낙관까지 모두 사각형인 것을 보더라도 원래 네모난 도장을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네모난 도장을 사용하였던 이유는 옛날 사람들은 지구는 네모난 사각형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간을 뜻하는 춘하추동의 사계절과 방향을 뜻하는 동서남북의 사방과 공간의 의미인 상하좌우 등이 모두 四라는 우주의 개념 속에 가장 존귀한 인간의 신분을 표현한 데서 유래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서화가들이 사용하는 낙관을 보면 먼저 찍는 성명인은 백문인(白文印 : 인주를 묻혀 찍으면 음각으로 새긴 글씨가 하얗게 나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아호(雅號)는 주문인(朱文印 : 인주를 묻혀 찍으면 양각으로 새긴 글씨가 붉게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우주의 철학적인 깊은 의미가 담긴 전통적인 사각도장을 원형으로 바꾸어서 붉은색 인주(印朱)를 묻혀서 찍으면 일장기를 연상하게 한다는 데 착안하여 일제 강점기부터 원형도장으로 바뀌어버린 우리 생활 속에 남은 일제 잔재 중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박재성 교수는 한문학교육학박사와 명예 효학박사이며, 서예가, 시인, 한문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한영대학교 문자교육검정평가원장, 중국 산동대학교 개원교수로서 학자의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한중문자문화교류협회 이사장, 한국문자교육회 회장직을 맡아 오면서 대한민국 문화예술명인대전 한시부문 명인대상, 아시아문예 시조부문 신인상 등 각종 문화대전에서 대상으로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특히 중국정부 주최 한어 국제심포지움과 중국 학술지 논문발표 등의 유공으로 주한중국대사로 부터의 한중문화교류부문 공로패를 수상했으며, 최근 중국 선전대학교 교류협력을 위한 MOU체결 등으로 한중 국제교류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 내 2월 15일 서울시 구로구 소재 서울한영대학교 글로리아홀에서 사)한중문자문화교류협회 정상화 총회를 개최했으며, 오는 5월 16일 본격적으로 제1회 ‘한중한자국제인증시험’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한자교육을 보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성교수 인물정보 바로가기]
[제1회 한중한자국제인증시험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