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한밤의 빛, 세 개의 영혼이 흐르는 무대…
세 명의 연주자가 직조한,음악이라는 별의 지도’
오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관람한
뉴서울오케스트라 주최
‘클래식 빅 3콘서트’
멋진 공연을 관람 후
친구 작업실에서
와인 한잔하고 돌아왔다.
멋진 연주를 관람하고 오는 날은
기분이 상쾌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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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빛, 세 개의 영혼이 흐르는 무대…
세 명의 연주자가 직조한, 음악이라는 별의 지도’
•글-손영미 -극작가·시인·음악칼럼니스트
어떤 밤은, 음악이 먼저 도착한다.
별보다 먼저 반짝이는 음이 있다.
숨조차 들킬까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면
시간이 아니라 ‘존재’가 연주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밤은 그런 밤이다.
세 명의 연주자가 세 방향에서 걸어와
하나의 별자리를 만든다.
피아니스트 임주희,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세 개의 세계가, 단 하나의 무대 위에서 교차한다.
임주희의 건반은 천상의 물빛을 닮았다.
베토벤의 ‘황제’가 그의 손끝에서 깨어날 때,
그 장엄함은 군주의 위엄이 아니라,
자기 안의 고독을 다스리는 자의 고요였다.
어떤 음은 말보다 더 단단하고,
어떤 쉼은 침묵보다 더 먼 곳을 향한다.
그녀는 그런 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빛의 단어’로 바꾸어낸다.
김계희의 바이올린은 서정의 창문이다.
브루흐의 선율이 흐르면,
그녀의 활 끝에서 오래된 상처 하나가 다시 숨을 쉰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
현과 손끝 사이를 오가며 노래가 된다.
그것은 무언가를 이기기 위한 연주가 아니라,
스스로를 품어내는 용기의 소리였다.
울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음성이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라흐마니노프는
밤의 심장이다.
드라마와 수직의 감정, 벼랑 끝의 명징함까지
그는 피아노라는 언어로
‘비탄과 희망’이라는 두 단어를 한 문장에 묶는다.
그의 연주는 불처럼 타오르지만,
그 불은 사람을 태우지 않고,
그 사람 안의 어둠만을 비춘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 우리 모두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 모든 결을 조율하는 지휘자 장윤성,
그는 악보 밖의 숨결까지도 읽어내는, ‘감정의 건축가’였다.
그의 손끝은 폭발이 아닌 호흡으로,
절정이 아닌 지속으로
음악이라는 시간의 방을 만들었다.
그 방 안에서,
연주자들은 각자의 별을 꺼내어
관객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그들은 그 밤의 풍경이자 바람이었고,
연주의 등불이자 그림자였다.
35년의 시간 위에 쌓인 신뢰,
그것은 보이지 않아도 가장 깊이 들리는 음악이다.
이밤, 나는 알았다.
클래식은 오래된 언어가 아니라,
지금 여기 가장 새롭고 생생한 삶의 소리라는 것을…
그들의 연주는 귀보다
마음을 먼저 열게 했다.
그리고 마음이 열리는 순간
아름다움 앞에서 무릎 꿇는다.
이 밤, 음악은
한 사람의 고백이자
세 사람의 진실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들은 음은
하나의 빛이었다.
![[손영미 칼럼] ‘세 개의 영혼이 하나의 무대로 별빛 지도를 그리다.’ [손영미 칼럼] ‘세 개의 영혼이 하나의 무대로 별빛 지도를 그리다.’](https://blog.kakaocdn.net/dna/bCyZ7m/btsPbnyR1Rr/AAAAAAAAAAAAAAAAAAAAAEKNvwFP9CLnW8EeibmfGABQnv4VJUw4_Z9HkZxQjivB/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39739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GzjKzVbHVcwjQdaoTTLX1Noe%2F64%3D)
▲사진=피아니스트 -일리야 야쉬코프스키 ⓒ강남 소비자저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