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 금기, 서사의 문화사 –
[강남 소비자저널=강대옥 칼럼니스트]
에로티즘은 언제나 사회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시에 말해지지 않는 영역에 머물러 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성과 욕망은 끊임없이 규율되고 통제되어 왔으며, 공적 언어로 사유되기보다는 사적 영역에 은폐되거나 도덕의 이름으로 정리되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성을 둘러싼 수많은 이미지와 담론 속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것을 문화사적·서사적 대상으로 깊이 있게 성찰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지금 ‘한국의 에로티즘’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불균형, 즉 과잉된 소비와 결핍된 사유의 간극에 있다.
에로티즘은 흔히 음란함이나 노골적인 성적 표현과 혼동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욕망이 문화 속에서 형상화되는 방식이다. 그것은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상상력, 관계와 권력, 금기와 위반의 문제이며, 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드러내는 지표이다. 에로티즘이 억압될수록 그것은 더욱 복잡한 우회와 은유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허용될수록 새로운 규범과 시장의 논리에 포획된다.
한국 사회에서 에로티즘은 오랫동안 ‘없어야 할 것’ 혹은 ‘관리되어야 할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부재는 곧 무(無)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로티즘은 고전 문학의 은유 속에, 판소리와 야담의 웃음 속에, 멜로드라마와 대중가요의 과잉된 감정 속에, 그리고 오늘날의 웹서사와 영상 콘텐츠 속에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존재해 왔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억압하거나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해석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성과 욕망을 둘러싼 담론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 디지털 환경의 확산은 성적 이미지와 서사를 전례 없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유통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성폭력, 동의, 젠더 권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기존의 성 인식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한편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었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검열과 도덕적 비난이 작동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로티즘은 더 이상 과거처럼 은폐된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충분히 이해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성을 말하지만, 욕망의 역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소비하지만, 그 이미지가 어떤 문화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는 묻지 않는다. 지금 ‘한국의 에로티즘’을 사유하는 일은, 변화한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한국의 에로티즘은 다른 문화권과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다. 그것은 강한 유교적 윤리, 가족과 혈통 중심의 사회 구조, 식민지 경험과 분단, 그리고 국가 주도의 근대화와 검열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성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라기보다, 관리와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욕망은 직접적으로 말해지기보다 서사와 감정 속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한국의 에로티즘은 노골적 신체성보다는 정서적 밀도, 금기와 위반의 긴장, 말해지지 않는 것의 축적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사랑 이야기의 과잉, 비극적 로맨스의 반복, 희생과 정절의 미학은 단순한 도덕 담론이 아니라, 억압된 욕망이 선택한 표현 방식이었다. 지금 이 에로티즘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한국 문화가 어떻게 욕망을 길들여 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에로티즘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흔한 오해는, 그것이 곧 도덕의 해체나 무분별한 자유의 옹호로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에로티즘은 윤리의 부재가 아니라, 윤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 어떤 욕망이 금지되고, 어떤 표현이 허용되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한 사회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보호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의 에로티즘’을 말하는 것은 성을 미화하거나 자극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욕망과 규범의 관계를 더 정교하게 이해하기 위한 문화적 성찰이다. 이는 오히려 성을 둘러싼 폭력과 오해, 왜곡을 줄이기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욕망을 사유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욕망을 통제할 언어도 잃게 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성과 욕망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드문 순간이다. 젠더 감수성의 변화, 세대 간 인식 차이, 디지털 서사의 폭발은 기존의 성 규범을 더 이상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논쟁으로 소모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적 깊이를 지닌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의 에로티즘’을 지금 다시 쓰는 일은, 과거를 미화하거나 현재를 단죄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욕망을 억압해 왔고, 어떤 방식으로 우회해 왔으며, 앞으로 어떤 언어로 욕망을 말할 것인지를 묻는 작업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성을 둘러싼 논쟁을 반복하면서도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에로티즘은 사소한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 사회가 개인을 규정하는 구조를 모두 포함한다. 지금 ‘한국의 에로티즘’을 말하는 일은, 욕망을 통해 한국 사회를 다시 읽는 일이며, 침묵 속에 축적된 문화의 층위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 책은 자극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책이 되고자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의 에로티즘’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