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지난주 밤, 청문회 영상을 20개쯤 이어서 봤다. 유튜브가 알아서 다음 영상을 물어다 주는 통에 새벽 3시가 넘도록 화면을 껐다 켰다 했다. 나는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평생 책상 앞에서 자료를 읽고 글을 써 온 사람이다. 그런데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자꾸 화면 밖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새벽 운동장에서 언 손으로 아이들 공을 받아주는 지도자들, 그 앞에 줄지어 선 아이들. 그 시간들을 생각하니 아까웠다. 처음에는 증인석 쪽이 답답했다. 그런데 열 번째 영상쯤부터 아쉬움의 방향이 바뀌었다. 증인석이 아니라 질문하는 쪽이었다.
7월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대한축구협회 청문회를 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한 달여 만이었다. 오래 기다린 자리였는데 그날 오간 말들은 이상하리만치 헛돌았다.
답변에는 문법이 있었다. 절차를 앞세우는 방식이 첫째다. 감독 선임 절차를 묻자 전 회장은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1순위로 추천했고 이사회가 최종 결정했다는 답을 되풀이했다. 추천한 사람은 추천만 했고, 의결한 사람은 올라온 안건을 의결만 했다. 그렇다면 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물음만은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성적을 방패로 삼는 방식이 둘째다. 16강에 올랐다면 청문회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이 나왔다. 절차의 흠을 성적으로 덮을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셋째는 자리의 한계를 내미는 방식이다. 회장 직무대행은 감사 결과에 불복해 낸 소송의 항소를 취하할 뜻이 있느냐는 물음에, 직무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답했다. 가장 허탈했던 것은 그다음이다. 감독 선임을 실무에서 매듭지은 당사자는 해외 구단 취업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결정한 사람이 빠진 자리에서 나머지가 그의 결정을 대신 설명했다.
고성과 분노는 즉흥이지만 회피는 오래 준비된 언어다.
준비된 언어는 즉흥적인 목소리로 깨지지 않는다. 그날 고성이 여러 차례 오갔고, 한 증인은 답변 태도가 논란이 되면서 며칠 뒤 스스로 물러났다. 돌아보면 그날 남은 것은 그 한 건이었다. 구조를 물으러 간 자리에서 개인의 태도 문제 하나를 건져 온 셈이다.
질의에도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이 아니라 기록을 묻는 것, 예와 아니요 사이에 가두는 것, 어느 쪽으로 답하든 다음 질문이 준비되어 있는 것. 이 셋만 지켜도 답변은 갈 곳이 없어진다. 그러면 그날 이렇게 물었으면 어땠을까? 몇 가지만 적어 본다.
“회장에게는 감독 추천 권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앞선 감독 선임 때 최종 면접은 직접 하신 것으로 감사 결과에 적혀 있습니다. 규정에 없는 일을 하신 것은 맞습니까, 아닙니까? 맞다면 그 책임도 이사회에 있습니까?”
“16강에 갔으면 청문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절차가 잘못됐다는 뜻입니까, 성적이 좋으면 절차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까?”
“이사회가 결정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안건이 이사회에 오르기까지 회장실이 관여한 기록을 제출하실 수 있습니까? 없다면 없다고 답변서에 남기시겠습니까?”
“다른 후보들은 면접과 발표 자료를 요구받았고 한 사람만 요구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을 정상 절차라 부르려면 면제의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조항 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쇄신하겠다는 사과문과 감사 결과를 법정에서 다투겠다는 항소는 같이 갈 수 있습니까? 둘 중 하나는 거두셔야 하지 않습니까?”
“심판 배정을 심의하는 사람이 자기 배정에는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규정이 지금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면 왜 없습니까?”
차이는 하나다. 그날의 많은 질문들은 기억을 물었고, 위 질문들은 기록을 묻는다.
기억을 물으면 잊었다고 답하지만, 기록을 물으면 답할 수가 없다.
이런 질문은 재능이 아니라 시간의 산물이다. 감사보고서와 회의록과 지난 속기록을 나란히 펼쳐 놓고, 한 사람의 말이 언제 어떻게 달라졌는지 찾아내는 일이다. 보좌진 몇 사람이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그런데 그 자료는 이미 국회 안에 다 있다. 지난 칼럼에 소개한 국회도서관의 분석 서비스까지 갈 것도 없다. 요즘은 회의록 수천 쪽에서 한 사람의 발언만 뽑아 시간순으로 세우는 일을 기계가 몇 분 만에 해낸다. 2024년 현안질의부터 이번 청문회까지 같은 사람의 말을 나란히 놓았다면 진술이 달라진 대목이 드러났을 것이다. 감사 결과와 답변을 문장 단위로 대조했다면 규정을 지켰다는 주장이 어디서 무너지는지 보였을 것이다. 나올 법한 답변을 미리 돌려 봤다면 퇴로를 막는 두 번째 질문을 손에 쥐고 갔을 것이다. 끝까지 물고 늘어진 위원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이 그날의 대세는 아니었다. 한 번 비켜 가면 대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회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성공한다.
기계가 완벽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국회가 쓰는 분석 서비스조차 역사 인식을 묻는 질문에 엉뚱한 답을 내놓아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기계는 틀린다. 그래서 더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AI는 대신 물어 주지 않는다. 다만 물을 준비를 하는 시간을 줄여 줄 뿐이다.
무엇을 물을지 정하는 일, 답을 피하는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째로 다시 던지는 일은 끝까지 사람의 몫이다. 그날의 실패는 도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잘잘못의 결론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낼 것이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축구인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국회의 몫은 따로 있었다. 국회는 처벌하는 곳이 아니라 기록을 남기는 곳이다. 그날 남았어야 할 것은 사퇴 한 건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회의록 한 권이었다.
책임은 저절로 남지 않는다. 묻는 사람이 있을 때만 남는다.
작은 실천 하나를 권한다. 다음 청문회가 열리거든 증인의 표정 말고 질문을 보시라. 저 질문에 예와 아니요로만 답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는가? 그 하나만 봐도 10분 안에 그날의 성패가 짐작된다.
자료도 도구도 이미 손안에 있다. 다음에도 같은 장면이 되풀이된다면, 그때는 도구가 없어서라고 말할 수 없다. 남는 물음은 하나다. 묻지 못한 것인가? 묻지 않은 것인가?
참고자료
1. 스포츠경향, 「고압적인 심판위원장, 각종 질문에 ‘회피성 대답’ 남발한 간부…축구협회 ‘성토의 장’이 된 문체위 청문
회」, 2026. 7. 30.
2. MBC뉴스, 「청문회 선 정몽규·홍명보 “기대 못 미쳐 송구”」, 2026. 7. 30.
3.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최종 결과 발표」(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 관련), 2024. 11. 5.
4. 국회도서관, 「AI시사분석 아르고스」 서비스 안내(nanet.go.kr).
5.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 ‘축구 팬 및 축구 관계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발표」, 2026. 8. 8.
▲삽화=필자 기획·OpenAI ChatGPT 생성한 이미지 – 다그치는 의원과 답변하는 증인 ⓒ강남 소비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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