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1시간 앞두고 노트북을 열었다. 전날 밤 인공지능에게 맡겨 뽑아낸 슬라이드가 45장. 도표는 정확했고 문장은 매끄러웠다. 흠잡을 데가 없어서 오히려 손이 멈췄다. 자료를 만든 인공지능은 강의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앞줄에 누가 앉는지, 그중 몇이 회사에서 등 떠밀려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 가운데서 19장을 지웠다. 무엇으로 채울지는 문을 열고 나서 정했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한 사람이 남아 물었다. 남은 26장 어디에도 없던 질문이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쓰는 사람이 쓰지 않는 사람을 대체한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카림 라카니 교수의 이 진단은 이제 강사들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휴넷이 국내 371개 사 인사·교육 담당자에게 물은 결과, 2025년 기업이 가장 많이 투자한 교육 분야는 AI 교육으로 33.7%였다. 이듬해 중점을 둘 분야를 묻자 같은 항목이 50.9%로 올라섰다. 한 해 사이 17% 포인트다. 강단의 지형이 바뀌는 속도가 이 숫자에 다 들어 있다. 어떤 강사에게는 자리가 늘고, 어떤 강사에게는 줄어든다는 말이기도 하다.
강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다.
어제까지 나와 같은 교재를 쓰던 사람이 먼저 달라지는 일이다.
1,200년 전 당나라의 한유는 「사설(師說)」에서 스승을 이렇게 정의했다. 도를 전하고, 학업을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 전도(傳道)와 수업(授業)과 해혹(解惑)이다. 이 셋을 오늘의 강의실에 놓으면 사정이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은 전도와 수업에 이미 깊숙이 들어왔다. 자료를 모으고, 수준에 맞춰 풀어 쓰고, 사례까지 지어낸다. 그러나 해혹 앞에서 멈춘다. 의혹이 일반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 셋째 줄에 앉은 한 사람이 품은, 그 사람만의 막힘이다.
오래 강단에 서다 보면 유독 필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다 알아들어서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막혔는지 몰라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그 표정은 데이터로 오지 않는다. 앞에 선 강사의 눈에만 들어온다. 한유는 의혹을 품고도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그 의혹이 끝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공지능은 던져진 질문에 답한다.
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는 못한다.
같은 글에서 한유는 한 걸음 더 갔다. 스승이라고 반드시 제자보다 현명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도를 먼저 들었는가, 그 분야에 정통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요즘 강사들에게 건네고 싶다. 기계가 나보다 많이 안다는 사실은 강단에 설 자격을 거두어 가지 않는다. 다만 아는 양으로 겨루던 시절이 저물었다.
그렇다면 도구를 잘 쓰면 명강사가 되는가? 여기서부터 길이 갈린다. 한국기술교육대 능력개발교육원은 ‘AI 교사·강사 아카데미’를 통해 인공지능 역량을 갖춘 훈련교사 1,900명을 새로 길러내고, 1만 명의 교사·강사에게 역량 강화 교육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보수교육을 받는 직업훈련 교사·강사가 6만여 명이다. 국가가 강사라는 직업을 통째로 다시 배치하는 중이다.
다만 강사를 길러내는 자리에 여러 해 있다 보니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도구를 빨리 익히는 사람과 끝내 좋은 강사가 되는 사람이 좀처럼 겹치지 않는다. 몇 해 지나면 도구를 못 다루는 강사는 드물어진다. 무엇을 쥐었느냐보다 누가 쥐었느냐가 남는 날이 온다.
연구는 오래전에 답을 내놓았다. 좋은 수업의 조건을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에 나란히 물은 조사에서, 양쪽 모두가 1순위로 꼽은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열정이었다. 강의 내용도 자료의 완성도도 그 뒤였다. 배우는 쪽은 그다음으로 교수자의 태도와 학생 수준에 대한 고려를 들었다. 수업 만족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꼽은 연구도 있다. 목록 어디에도 슬라이드 장수는 없었다. 열정은 준비량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오늘 이 사람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는지가 목소리와 시선에 묻어날 따름이다.
준비를 대신해주는 도구는 생겼다.
준비한 것을 버리는 판단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날 남아 있던 사람이 내게 던진 질문은 이랬다. 선생님은 이걸 직접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컴퓨터를 만진 지 사십여 년이고, 요즘은 남에게 AI 쓰는 법을 가르치며 산다. 그런데도 말이 막혔다. 슬라이드에는 근거가 있었고 사례도 넉넉했지만, 그 대목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다음 강의를 바꿨다. 기계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다. 궁색해질 일도, 얼굴이 붉어질 일도 없다. 강단에 서는 사람만 부끄러울 수 있다.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기계가 끝내 갖지 못할 강사의 자산이 아닐까?
이달 초 부산 벡스코에서 교육부와 한국교육방송공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함께 연 인공지능 활용 교육 콘퍼런스에 교원 1만 명이 모였다. 이틀 내내 그들이 붙들고 있던 물음은 어떤 도구가 좋으냐가 아니었다. 이 도구를 내 교실에 어떻게 앉힐 것이냐였다. 도구를 묻는 사람은 도구에서 멈추고, 교실을 묻는 사람은 교실로 간다. 그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몇 해 뒤 강단의 명단을 가른다.
다음 강의에서 한 가지만 해보시기를 권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자료에서 10장을 지우는 것이다. 아까울 것이다. 정확하고 매끈한 10장이니까.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아는 사람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명강사라 불러왔다.
지운 자리에 당신은 무엇을 넣겠는가?
다음 회에는 배우는 쪽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인공지능이 무엇이든 알려주는 시대에, 사람은 왜 여전히 사람에게 배우러 오는가.
참고자료
1. 한유(韓愈), 「사설(師說)」. “師者, 所以傳道授業解惑也”, “師不必賢於弟子”.
2. Karim R. Lakhani, “AI Won’t Replace Humans — But Humans With AI Will Replace Humans Without AI”, Harvard Business Review / Digital, Data, Design Institute at Harvard, 2023.
4.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능력개발교육원, ‘AI 교사·강사 아카데미’ 운영 현황, 2026.
5. 「교수자와 학습자 의견 비교를 통한 좋은 수업의 특성 분석」,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제23권 제2호.
필자 | 유준형 박사(Ph.D).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MBA)/전자계산학/산업공학/사회복지학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40여 년을 IT 현장에서 보낸 베테랑 엔지니어이다. 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자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 대표강사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블로그/SNS/유튜브 온라인 마케팅과 AI 활용을 주제로 1,500여 회 강단에 섰다. 『명강사를 위한 AI 활용 실무』, 『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AI와 사회복지』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삽화=필자 기획·OpenAI ChatGPT 생성한 이미지 – AI 시대 강사의 세대교체 ⓒ강남 소비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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