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칼럼] 훈민정음 탑 하나 없는 부끄러운 민족

▲사진=’훈민정음 탑’ 예상도
[한문교육학 박사  박재성]

6백여 년 전 새로운 문자가 동방의 작은 나라에 섬광처럼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한자 중에서 얼마 안 되는 지식을 가지고 식자층의 전유물인 양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그들 앞에서 문자를 모르는 것이 당연한 운명이라고 체념하며 살아가는 백성들의 안타까움을 느낀 임금의 열정이 빚어낸 훈민정음. 대국의 눈치를 보자며 벌떼같이 일어난 신하들의 반대 상소 속에서 수많은 날 잠 못 이루며 창제한 훈민정음!

훈민정음은 늘 공기처럼 한결같이 우리와 함께 해 주었는데 우리는 6백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훈민정음을 기념하는 탑 하나 제대로 세우려고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화사상에 젖은 조선 시대 식자층들이 비하하여 지어준 억울한 이름 언문, 언서, 언자, 언해, 암클, 중글. 그리고, 일본 치하 배달말 해방 후에는 북한의 조선글 남한의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어도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 훈민정음은 우리 민족에게 세종대왕이 하사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의 선물이다.

그러함에도 우리 역사 속에 이렇게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을 기념하는 탑 하나 찾을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조선 초기 시기 언필칭 ‘중국’이란 명나라였을 것이고, 당시 ‘문자’란 어쩌면 지금의 중국,

지금의 한자보다 더 거대한 힘을 발휘했을 터. 그 엄청난 한자 문화의 중력 속에서 백성을 위한 보다 쉬운 훈민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해내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충격이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세종의 문자 창제 계획은 그야말로 역사를 통째로 갈아엎는 거대한 파도였고 세기의 대변환이었으며, 우리 민족이 변치 않는 문자 강국의 영예를 얻게 한 불후의 금자탑이었다.

기하학적이고 단순명료하며, 과학적이면서 내적 질서가 정연하고, 우주의 이치를 담은 선명한 글꼴 구조로 문자가 갖을 수 있는 모든 특성을 지닌 훈민정음의 모습은 바로 우리 한민족에 대한 자존심을 세우려는 자각이었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에는 백성을 어여삐 살피는 긍휼한 마음이 깔려있고, 백성을 사랑한다는 고백이며, 우리 말이 중국과 다름을 뼈저리게 인식한 문화적 주체성을 천명한 고고한 뜻이 담겨있다.

스물여덟 자로 쉽고 간명하며 체계적인 문자 훈민정음은 무궁무진한 작용성을 발휘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문자혁명이었다.

그런데 초성과 중성 종성의 어울림 상태의 문자적 원리를 갖고 태어나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의 존재 이유를 우리는 자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 스스로 파괴해 가고 있지는 안 했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터이다.

오랜 실록의 흔적이 가늘지만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온 역사를 통해 잊을 수 없는 이름인 훈민정음을 기념하는 탑을 건립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시간의 배를 타고 한없이 과거에서 미래로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전통이란 그야말로 면면히 이어져가는 옛것이 살아남은 상태이다. 전통의 계승과 발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력 있는 찬란한 문화 강국의 위대한 표상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현대성은 빠르고 번쩍이는 빠른 활용성과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상상력의 불꽃이 번뜩이는 보편적이고 문화적이며 실용적인 문자로서의 장점을 지녔다는 것을 만장에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독창성과 생명력 있는 미의식과 자긍심이 담긴 훈민정음이 미래에도 면면히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훈민정음 기념탑을 건립하여 세계 문자의 이정표가 되게 하여야 한다.

훈민정음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자랑할 수 있는 위대한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훈민정음탑건립조직위원회 상임조직위원장

한문교육학박사 박 재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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