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과정의 조력자들(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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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재성 이사장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이 기록처럼 과연 세종대왕이 혼자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을까? 이 질문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의문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임금이 친히 창제한 훈민정음이라는 엄청난 문화적 업적을 대서특필해도 부족할 터인데, 세종실록 1443년 12월 30일 기사에 두서너 줄로 간단하게 소개한 것 때문에 의문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세종실록의 기록처럼 세종 재위 25년 12월 30일에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해에 시작할 언해 사업을 염두에 두고 그 전에 이미 만들어 놓고서 그 발표 시기를 연말에 맞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12월 한 달 안에 만들었다고 한 것도, 임금이 그동안 이 일 때문에 정사를 소홀히 했다는 인상을 신하들에게 주지 않기 위한 연막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열성적으로 몰입했던 시기는 재위 23년 무렵으로 임금과 몇 사람의 조력자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철통같은 보안 속에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훈민정음 창제 작업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밀실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훈민정음을 반포한 뒤에 최만리 등 집현전 학사들이 “신하들과 의논도 하지 않았다.”라고 상소문에서 언급한 점을 들 수 있다.

만약 집현전 관원들이 공개적으로 조력하였다면, 집현전 실무책임자였던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 집현전 최상위층 보수파들이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고, 만약 그들이 알고 있었다면 훈민정음이 창제되기도 전에 이미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집현전 학사들이나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훈민정음탑건립조직위원회 상임조직위원장

한문교육학박사 박 재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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