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늘도 듣고 보는 나의 육신의 수고로움으로 내 영혼은 조금 쉬었을까…
그 물음으로 하루를 열며 닫으며, 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앉아 있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Resurrection)’, 그 거대한 시간의 강 속에서 나의 감각은 느리게 잠식되어 갔다. 음악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침투했고,
그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생의 근원적 떨림을 다시 들었다.
‘죽음에서 시작된 서사’
말러는 생애 내내 ‘죽음’과 ‘부활’의 주제를 붙잡은 작곡가였다.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나, 이방인으로 살았던 그는 늘 생의 결핍과 고독을 음악으로 이겨냈다.
그의 교향곡 2번은 단순한 장송곡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도 인간은 노래할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의 변주다. 오늘 과천시립교향악단은 그 물음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냈다.
지휘자 안두현은 콘서트홀 전체를 하나의 악기로 삼았다.현악의 긴장과 금관의 폭발, 타악의 절묘한 절제…
그의 손끝은 모든 음을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다뤘다.
오케스트라는 소리의 벽을 세우고, 다시 그것을 허무는 순환 속에서.죽음과 생, 어둠과 빛을 오가는 영혼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기억의 멜로디, 인간의 회한’
두 번째 악장 Andante moderato는
삶의 평화로움 속에 스며든 쓸쓸한 회한의 선율이었다.
말러가 어린 시절 고향의 들녘에서 들었을 법한 왈츠풍의 리듬이 짧은 행복의 기억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곧 사라지는 희미한 빛,
마치 인간이 세상에 잠시 들렀다 떠나는 유한한 생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악장 속에서도 관객은 삶의 부서진 잔광을 보았다.
세 번째 악장 Scherzo는 풍자와 혼돈의 무도회 같았다.
인간이 되풀이하는 허무,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영혼의 방황. 그 불안과 혼란의 리듬이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근원의 빛’, 영혼의 회복
네 번째 악장 Urlicht(근원의 빛)에서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목소리는 말러의 내면 그 자체였다.
“나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리라.”
그 한 문장은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음색은 고요했으나 뜨거웠고
마치 시간의 결이 녹아내리듯 관객의 마음을 감싸 안았다. 그 순간, 음악은 종교가 되었고, 눈물은 기도가 되었다.
‘ 부활 ‘ 인간의 찬가
마지막 악장 “Auferstehung”(부활)이 시작되자,
홀의 공기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뀌었다.
소프라노 서선영, 김정미, 그리고 합창단 클라시쿠스(Classicus)의 하모니가
하늘로 치솟는 듯 이어졌다.
“부활하리라! 예, 너는 다시 일어나리라!”
이 선율이 터져 나올 때, 객석의 숨결마저 떨렸다.
죽음을 넘어선 생의 환희 절망 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인간의 존엄이 그 속에 있었다.
지휘자 안두현은 단지 오케스트라를 이끈 것이 아니라,
모든 연주자를 하나의 영혼으로 묶어내는 말러적 합일을 구현했다. 그는 거대한 울림 속에서도 질서를 잃지 않았고, 감정의 폭발을 철저한 구조미로 통제했다.
그의 지휘봉은 말러의 심장을 대변하듯 떨리고 있었다.
‘예술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다’
공연이 끝난 후, 홀 안은 긴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은 경건함이었고, 동시에 구원의 시간이었다.
오늘의 ‘부활’은 단지 종교적 의미의 부활이 아니라
예술가의 부활, 인간 존재의 부활이었다.
말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그 너머에 인생도 음악도 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나서며,
나는 문득 내 안의 ‘부활’을 느꼈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지만,
예술은 그 고단함 속에서 영혼을 쉬게 한다.
그것이 오늘 내가 얻은, 음악이라는 특권이자 구원이었다.
#과천시립교향악단 콘서트시리즈 5 –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
#2025년 11월 12일(수)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안두현
#출연: Sop. 서선영 / M.Sop. 김정미 / 합창단 클라시쿠스
▲사진=공연 후 첼리스트 박건우씨(좌)와 필자 ⓒ강남 소비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