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세상은 참 이상하다.
빈 공장은 있는데 생산할 상품이 없고, 훌륭한 기술자는 있는데 주문이 없으며,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있는데 실현할 방법이 없다.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상품은 찾기 어렵다.
공장 주인은 주문이 부족하다고 하고, 기술자는 기회가 부족하다고 하며, 소비자는 좋은 상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두가 부족하다고 한다.
이 얼마나 기막힌 풍요인가.
소유는 넘치는데 연결은 가난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세상에 없는 것을 더 만드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이미 있는 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데는 인색했다.
새 공장을 세우기 전에 놀고 있는 설비는 없는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이미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은 없는지, 상품을 만들기 전에 정말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부터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시장은 늘 바빴다.
필요를 확인하기보다 생산을 서둘렀고, 연결을 고민하기보다 소유를 늘렸으며, 무엇을 함께할 수 있는지 묻기보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를 따졌다.
그 결과 창고는 커졌는데 사람의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지 못했다.
참으로 성실한 모순이다.
인간은 소유에 놀라운 재능이 있다.
드릴을 사고, 운동기구를 사고, 캠핑 장비를 사고, 언젠가 쓸 것 같은 물건을 부지런히 사 모은다.
그러고는 말한다.
“우리 집에는 없는 게 없어.”
그런데 막상 필요할 때는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
운동기구는 옷걸이가 되었고, 캠핑 장비는 창고를 차지했으며, 드릴은 이사할 때마다 새로운 상자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소유한 것은 확실한데 활용하지는 못한다.
처음에는 물건의 주인이었는데 어느 순간 물건의 보관인이 되어 버렸다.
인간이 소유를 발명했는지, 소유가 인간을 고용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공유경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바꾼다.
더 많이 갖기 전에, 이미 가진 것을 더 잘 활용할 수는 없는가.
혼자 해결하려 애쓰기 전에, 서로의 능력을 연결할 수는 없는가.
부족한 것을 새로 만들기 전에, 흩어진 가능성부터 만나게 할 수는 없는가.
공유경제는 단순히 물건을 빌려 쓰는 경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유의 한 형태일 뿐이다.
공유의 더 깊은 가치는 각자가 가진 자원과 기술과 경험이 만나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우리는 물건을 나누는 데 익숙하지만, 가능성을 나누는 데는 아직 서툴다.
케이크 하나를 열 사람이 나누면 각자의 몫은 작아진다.
그러나 케이크를 만드는 기술을 나누고, 열 사람이 자기 재료와 수고로 케이크를 만든다면 열 개의 케이크가 탄생할 수도 있다.
첫 번째는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다.
두 번째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능력을 넓히는 일이다.
공유경제가 더 깊어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상상해 보자.
한 동네에 평생 목공 일을 해 온 노인이 있다.
손끝의 기술은 여전하지만 일감이 줄어 작업실에는 먼지가 쌓여 간다.
한 청년은 어르신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생활용 의자를 구상했다. 그러나 설비도 없고 제작 경험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튼튼하고 편안한 의자를 찾고 있지만 마땅한 상품을 구하기 어렵다.
노인은 주문이 없다고 한숨을 쉬고, 청년은 돈과 기술이 없다고 한숨을 쉬며, 주민들은 좋은 물건이 없다고 한숨을 쉰다.
한숨이 세 종류다.
그 한숨을 모두 모아도 의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세 사람이 만난다면 어떨까.
주민들은 어떤 의자가 필요한지 설명한다. 청년은 사용하기 편한 구조를 제안한다. 노인은 오랜 경험으로 제작 가능성과 품질을 검토한다.
시제품을 만들어 실제로 앉아 보고, 부족한 점을 고친다. 가격과 생산조건을 확인한 뒤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살핀다.
조건이 맞으면 생산할 수 있다.
노인은 자신의 기술이 여전히 세상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청년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길 기회를 얻는다.
주민들은 자신의 생활에 맞는 상품을 만날 가능성을 얻는다.
누구도 상대방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
그 누구도 혼자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전에는 없던 가능성이 생겼다.
이것이 공유경제가 인간의 얼굴을 얻는 순간이다.
공유는 단순히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기대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능력이 만나 새로운 풍요를 만드는 일이다.
노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장과의 연결이었다.
청년에게 부족했던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것을 구현할 협력자였다.
주민에게 부족했던 것은 구매 의지가 아니라 필요에 응답하는 생산이었다.
부족함의 정체가 달라진 것이다.
세상에는 자원이 없어서 생기는 가난도 있지만, 자원이 있어도 서로 닿지 못해서 생기는 가난도 있다.
공유경제는 바로 이 연결의 빈곤을 줄이는 경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공유는 공짜가 아니다.
노인의 작업실은 노인의 재산이고, 청년의 아이디어에는 창작의 수고가 있으며, 생산에 필요한 재료와 노동에는 정당한 비용이 따른다.
함께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유권은 존중해야 하고, 사용조건은 합의해야 하며, 기여와 대가와 책임은 명확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일이니 그냥 좀 해주세요.”
이 말은 따뜻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의 일이 아닐 때 더 따뜻하다.
남의 기술을 공짜로 쓰면서 공유경제를 외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경제가 아니다.
남의 수고를 새로운 이름으로 할인하는 일이다.
진정한 공유는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가치를 함께 만들어 내는 질서다.
여기서 공유경제의 시야는 한 단계 넓어진다.
일반적인 공유경제는 이미 존재하는 공간과 자산과 서비스의 이용 기회를 연결하는 데서 출발한다.
협력의 경제는 서로 다른 사람의 능력과 경험과 기술을 결합한다.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생산형 공유경제는 이 연결을 생산 이전의 실제 수요와 결합한다.
이미 있는 것을 함께 사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직 없는 것을 정말 필요한 만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는 필요한 것을 말한다.
생산자는 자신의 기술과 설비로 응답한다.
사전예약구매는 생산 이전에 실제 구매 의사를 확인하는 통로가 된다.
상품을 사용한 사람은 경험을 남기고, 그 경험은 다음 생산과 개선을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이렇게 소비와 생산이 한 바퀴로 이어진다.
여기서 공유의 대상은 물건만이 아니다.
필요가 공유된다.
경험이 공유된다.
생산의 기회가 연결된다.
기술과 수요가 만난다.
소비자의 경험이 생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공장을 갖지 않은 사람도 생산의 방향을 제안할 수 있고, 좋은 기술을 가진 생산자는 더 정확한 수요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생산자의 역할을 빼앗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생산자의 기술이 꼭 필요한 곳에서 사용되도록 길을 여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협력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를 잘못 판단할 수도 있고, 예상한 수요가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원가와 품질과 생산 일정이 맞지 않아 추진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공유경제는 좋은 마음만으로 운영할 수 없다.
사람의 가능성을 넓히되 현실의 조건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공유라는 이름으로 책임까지 나누어 없앨 수는 없다.
모두의 일이라는 말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생산하고, 누가 관리하며, 누가 결정하고, 누가 결과를 책임지는지 분명해야 한다.
자유롭게 연결하되 책임은 흐리지 않는 것.
이것이 공유의 품격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을 발견한다.
공유의 이름으로 새로운 지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서비스는 사람과 자원을 연결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새로운 이용 기회를 만들고 편리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결을 독점하는 주체가 거래조건과 정보와 선택권까지 일방적으로 통제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원을 제공하지만, 정작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거래할 것인지는 다른 누군가의 결정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될 수 있다.
공유라는 이름은 남았는데 자유로운 연결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유경제를 단순히 이용자 수나 플랫폼의 크기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선택권이 넓어졌는가.
참여자의 권리가 존중되는가.
서로의 수고가 정당하게 인정되는가.
연결을 제공하는 구조가 오히려 새로운 종속을 만들지는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공유경제의 성장은 사람을 더 많이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는 데 있다.
공유경제는 지구사랑의 관점에서도 새롭게 보아야 한다.
지구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 상품을 소유했는지보다 그 상품을 만들고 사용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모했는지의 영향을 받는다.
쓰지도 않을 물건을 끝없이 만들고, 창고에 쌓아 두었다가 버리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서 초록색 포장지만 바꾼다고 지구가 웃지는 않는다.
지구는 포장지 색깔보다 생산과 소비의 실제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미 있는 자원을 더 오래 활용하고, 중복 구매를 줄이며, 생산 전에 실제 필요를 확인한다면 불필요한 생산과 폐기를 줄일 수 있다.
물론 공유한다고 무조건 환경에 좋은 것은 아니다.
공유를 위한 운송과 관리에 더 많은 자원이 들어갈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 효과를 살펴야 한다.
지구사랑은 좋은 의도를 주장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낭비를 줄이는 결과로 확인되어야 한다.
KN541이 시장 구조의 전환을 지구사랑과 연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요를 먼저 묻고, 좋은 소비로 좋은 생산을 부르며,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고, 불필요한 생산을 줄이는 것.
이것은 단순한 유통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소비의 책임과 생산의 방향을 함께 바꾸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발전을 더 많이 가지는 능력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같은 자원으로 얼마나 더 많은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가.
이미 존재하는 기술로 얼마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가.
사람의 경험을 연결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가.
누구도 부당하게 희생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더 좋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이것이 공유경제가 추구해야 할 발전의 기준이다.
소유 없는 생산은 생산의 문을 넓히고, 지배 없는 발전은 그 문을 새로운 권력의 울타리로 만들지 않으며, 자기 주장 없는 행동은 함께 필요한 일을 실천하게 한다.
공유경제는 이 세 가지가 현실에서 만나는 자리다.
서로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서 함께 만들고, 서로를 지배하지 않으면서 함께 성장하며, 자기의 옳음만 주장하지 않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공유경제는 단순한 경제기법을 넘어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
상대방을 나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주는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
그 사람에게 내가 모르는 지혜와 경험과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나의 작은 가능성도 누군가와 만나면 더 큰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사람을 연결하고, 연결은 새로운 생산의 길을 연다.
우리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살아야 할 이유다.
세상에는 혼자서는 불가능하지만 함께라면 가능한 일이 무수히 많다.
한 사람에게 없는 기술이 다른 사람에게 있고, 한 사람이 찾지 못한 길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경쟁의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차이를 적으로 만들면 갈등이 생기고, 차이를 연결하면 가능성이 생긴다.
공유경제의 가장 깊은 가치는 바로 그 가능성에 있다.
오늘의 결론은 분명하다.
공유경제는 남의 것을 공짜로 사용하는 경제가 아니다.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제다.
공유경제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나누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흩어진 능력을 연결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까지 열어 가는 경제다.
이제 우리는 사람에게 묻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까?”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당신이 가진 것으로 누구의 가능성을 열 수 있습니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물어야 한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세상에 없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인가?”
어쩌면 우리가 찾던 풍요는 새로운 창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닿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기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나고, 작은 경험이 실제 수요를 만나며, 사람의 필요가 좋은 생산자를 만나는 순간 이전에는 없던 길이 열린다.
우리는 가난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능력과 경험을 가진 존재이기에 함께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풍요는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에 있지 않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무엇을 함께 가능하게 했는가에 있다.
공유경제.
그것은 가진 것을 나누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서로의 가능성이 만나 아직 없던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KN541 소비생산형 공유경제를 더 선명하게 세워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