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엄마: 세상 모든 답을 찾아도 엄마의 목소리 하나는 되돌릴 수 없다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엄마: 세상 모든 답을 찾아도 엄마의 목소리 하나는 되돌릴 수 없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2022년 5월, MBC의 VR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 한 여성이 나왔다.

3년 전 위암으로 어머니를 잃은 딸이었다. 제작진은 봄이면 장미와 샐비어가 흐드러지던 어머니의 꽃밭을 가상현실로 되살렸다. 헤드셋을 쓴 딸이 그 꽃밭에서 엄마를 만난다. 손을 뻗는다. 닿지 않는다. 그 장면 앞에서 촬영장 스태프도 울었고, 화면 밖의 우리도 울었다.

OpenAI가 2024년 3월 공개한 Voice Engine 자료를 보면, 15초 남짓한 음성 샘플 하나와 문장만으로 원래 화자와 닮은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이 회사는 병으로 말을 잃은 환자가 자기 목소리를 되찾은 사례도 함께 소개했다. 기술은 놀랍다. 누군가에게는 닫혔던 문이 열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 놀라움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데려온다.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닮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돌려주는 일인가?

정의부터 해두자. 이 글에서 말하는 AI는 사람의 말과 기억을 데이터로 배워 다시 문장과 소리로 돌려주는 기술이다. 기계라고 부르기엔 사람의 것을 너무 많이 담고 있다. 오늘 하려는 말은 하나다. AI는 기억을 복원할 수 있어도, 그 기억을 살아낸 사람까지 되돌리지는 못한다.

엄마라는 말은 이상하다. 나이가 들어도 그 말 앞에서는 마음이 잠깐 아이가 된다.

세상에서 처음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 아프면 먼저 이마를 짚던 사람. 밥 한 그릇에 하루치 걱정을 담던 사람. 물론 모든 어머니의 삶이 그렇게만 흐르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엄마는 그리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아물지 않은 자리다. 그 자리를 아버지가, 할머니가, 이모가 대신 지켜준 집도 많다. 그래서 이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세어보니 나는 ‘엄마’와 ‘어머니’라는 낱말을 열 번도 넘게 썼다. 어머니를 부르는 말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를 가리는 말이다. 그래서 한 번은 제대로 적어두려 한다. 나의 어머니는 김창순이다. 충북 진천에서 나고 자랐다. 이 글에서 가장 오래 남았으면 하는 건 그 두 줄이다.

AI는 ‘어머니’라는 낱말을 안다. 김창순이라는 사람은 모른다.

AI는 대답을 잘하지만 어머니는 대답보다 기다림이 늘 먼저였다. 늦게 들어온 자식에게 왜 이제 오느냐고 묻던 말에는 화보다 걱정이 많았다. 밥 먹었느냐는 물음은 영양 상태 확인이 아니었다. 아직 네가 내 마음 안에 있다는 신호였다. 기계는 정확하게 답한다. 어머니의 말은 때때로 정확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다. 잔소리인 줄 알았던 말이 사랑의 다른 발음이었다는 걸, 우리는 늘 뒤늦게 안다.

요즘 AI는 그 자리까지 들어와 있다. 초록우산이 2026년 4월 만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3,300명에게 물었더니 94.4%가 생성형 AI 챗봇을 써봤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9.5%는 AI가 자기를 이해해준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했고, 35%는 AI를 사람처럼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숙제 도우미로 시작한 기술이 이제 외로움을 나누는 상대가 되고 있다.

여기서 흔한 훈계는 잠시 접어두자. 혼자 있는 아이, 말 붙일 데 없는 청년,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어르신에게 AI의 다정한 응답은 숨 쉴 자리가 된다. 사별의 영역도 그렇다. 국제학술지 JMIR(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이 2026년 9월 실은 기획 기사에는 애도 연구자 로버트 니마이어가 등장한다. 그는 챗봇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목소리를 입혀 대화해보았다.

기사의 결론은 뜻밖에 차분하다. 이런 기술이 상담과 애도를 대신하려 할 때가 아니라 거들 때 쓸모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으로 위로를 받은 유족을 우리가 나무랄 자격은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위로의 느낌과 관계의 진실 사이가 자꾸 좁아진다.

MIT 미디어랩과 OpenAI가 2025년 3월 함께 내놓은 연구는 약 4천 명 설문과 천 명 규모의 4주 통제 실험을 병행했다. 하루 사용량이 많을수록 외로움, 정서적 의존, 문제적 사용은 높고 사회적 교류는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것이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는 아니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외로워서 더 쓰는 것인지, 더 써서 외로워지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 모호함 자체가 신중해야 할 이유다.

고인을 닮은 AI, 이른바 그리프봇(griefbot)을 둘러싼 논의도 늘고 있다. 고인이 동의한 적 없는 목소리, 상실 직후의 흔들리는 판단, 월 구독료로 이어지는 의존. 그리움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고, 그래서 가장 쉽게 팔린다. 기술은 목소리의 파형을 되살린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나를 사랑하던 시간까지 되살리지는 못한다.

솔직히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다. 그게 절제인지 겁인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짐작은 한다. 어느 날 AI가 어머니와 닮은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면 나는 흔들릴 것이다. 듣기 싫어서가 아니다. 너무 듣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 순간 기억해야 한다. 그건 어머니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기술의 힘을 빌려 다시 울린 것이다. 여기에 선을 긋는 일은 차갑다. 그러나 사랑을 가볍게 만들지 않으려면 그 정도의 차가움은 필요하다.

교육이 할 일도 여기서 갈린다. 아이들에게 쓰지 말라고만 해서는 부족하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하게 해야 한다. 음성 복원은 기술이고, 기억은 삶이고, 그리움은 마음이다. AI가 만든 목소리를 듣더라도 사실과 감정을, 위로와 의존을, 추모와 대체를 갈라 볼 줄 알아야 한다. 기술 교육인 동시에 인간 교육이다.

AI 시대의 위험은 기계가 똑똑해지는 데만 있지 않다.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 복제 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데 있다. 사진은 복원된다. 목소리는 합성된다. 그러나 아플 때 잡아준 손, 말없이 차려놓은 밥상, 전화를 끊기 전 한 번 더 이어지던 숨소리는 복제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정보이기 전에 관계였고, 파일이기 전에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기술을 겁낼 일은 아니다. AI는 남은 사람이 사진과 편지를 정리하고 가족의 내력을 기록하도록 돕는다. 다만 목적은 고인을 다시 만들어내는 데 두지 말고, 남은 사람이 사랑을 더 정직하게 기억하도록 돕는 데 두어야 한다. 기술은 추모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애도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은 도구지만, 방향은 사람이 정한다.

오늘의 작은 실천은 어렵지 않다. AI에게 무언가를 묻기 전에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보는 일이다. 연락처를 열어 이제는 걸 수 없는 이름을 잠깐 바라보는 일이다. 아직 걸 수 있는 번호가 있다면 오늘 한 번 눌러보는 일이다. 사정이 있어 걸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랑은 완벽한 문장보다 늦기 전에 건넨 안부에서 더 자주 살아난다.

인공지능은 앞으로 더 많은 기억을 복원할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사랑의 무게다.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는 건, 그만큼 깊이 사랑받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묻는다. AI가 엄마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아직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얼마나 소중히 듣고 있는가?

세상 모든 답을 찾아도,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던 그 한 번의 떨림은 다시 검색되지 않는다.

 

참고자료

1. 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3 ‘엄마의 꽃밭’, 2022년 5월.

2. OpenAI, ‘Navigating the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of Synthetic Voices’, 2024년 3월 29일.

3. 초록우산, ‘생성형 AI 챗봇 안전설계를 위한 이슈브리프’, 2026년 4월.

4. MIT Media Lab · OpenAI, ‘Investigating Affective Use and Emotional Well-being on ChatGPT’, 2025년 3월.

5. 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 ‘Is Grief Dead? How Digital Resurrection Technologies Affect Bereavement’, 2026년 9월 10일.

▲삽화=필자 기획·OpenAI ChatGPT 생성한 이미지 – AI 속 엄마의 얼굴 ⓒ강남 소비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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