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온라인 쇼핑몰에서 월말 성과회의가 열렸다.
담당자가 자신 있게 보고했다.
“이번 달 고객 불만 접수 건수는 0건입니다.”
회의실에 박수가 터졌다.
“대단합니다. 고객 만족도가 아주 높군요!”
그런데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구매 고객은 줄었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대답했다.
“고객들이 워낙 만족해서 불평할 일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참으로 아름다운 해석이었다.
고객은 줄어들었는데 만족도는 높아졌다고 한다.
불평은 없는데 매출도 줄고, 문의는 없는데 재구매도 줄었다.
이쯤 되면 고객이 한 명도 없는 가게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가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이 우스운 장면에는 시장의 치명적인 착각이 숨어 있다.
침묵은 만족의 증거도, 불만의 증거도 아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실일 뿐이다.
사람은 불편해도 말하지 않을 수 있다.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모르거나, 설명하는 일이 귀찮거나,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아무 불만 없이 다른 상품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침묵을 너무 쉽게 자신의 편으로 해석한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으니 모두 찬성한다고 생각한다.
질문이 없으니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는다.
불만이 없으니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참으로 편리한 확신이다.
상대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 사람을 대신해 만족한다.
이것이 침묵의 역설이다.
인간에게는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놀라운 재능이 있다.
“정말 좋습니다.”
이 말에는 귀가 활짝 열린다.
“그런데 이것은 불편합니다.”
이 말에는 갑자기 청력이 약해진다.
칭찬은 크게 기록하고 불편은 작게 처리한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모으면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다.
문제는 현실까지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듣기 좋은 말은 우리를 기쁘게 하지만, 듣기 불편한 말은 우리가 놓친 사실을 알려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경청은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조용히 있는 기술이 아니다.
상대방의 경험을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는 태도다.
여기에는 세 가지 차이가 있다.
듣는 것은 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해하는 것은 그 말이 나온 이유와 상황을 살피는 일이다.
경청은 그렇게 발견한 사실을 자신의 판단에 반영하고, 필요한 변화를 검토할 수 있는 태도다.
물론 모든 요구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말이 담고 있는 경험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느 식당에서 주문 방법을 모두 무인주문기로 바꾸었다.
주문은 빨라졌고 계산도 간편해졌다.
주인은 만족했다.
“이제 정말 편리한 세상이 되었군.”
그런데 어느 날 나이 든 손님 한 사람이 기계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섰다.
주인이 물었다.
“왜 그냥 가십니까?”
손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밥 한 그릇 먹으러 왔는데, 시험부터 봐야 하는 줄 몰랐지.”
참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서글픈 대답이다.
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결제 시스템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손님은 밥을 먹지 못했다.
기술은 성공했는데 사람의 이용은 실패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기계를 완성하는 것인가, 사람의 불편을 줄이는 것인가.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편리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능이 자유를 주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낯선 장벽이 될 수 있다.
좋은 기술이라면 그 차이까지 살펴야 한다.
경청은 바로 그 장벽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경청을 한다면서 또 다른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고객이 불편을 이야기하면 말한다.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다음 고객이 같은 문제를 말한다.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한 달 뒤에도 같은 불편이 반복된다.
“고객님의 의견을 깊이 경청하겠습니다.”
참으로 성실한 경청이다.
귀는 열심히 일하는데 손과 발은 여전히 쉬고 있다.
말을 들어 주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감사의 인사만으로 신뢰를 지킬 수는 없다.
경청에는 말할 수 있는 통로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 그리고 검토 결과를 알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
모든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왜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설명할 수는 있어야 한다.
반대로 개선을 약속했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좋은 시장은 고객에게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시장이 아니다.
고객의 경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타당한 개선을 실행할 수 있는 시장이다.
여기서 생산소비 구조를 소비생산 구조로 전환한다는 철학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기존의 판매 중심 사고에서는 소비자가 무엇을 구매했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소비생산의 관점에서는 질문이 더 깊어진다.
왜 그 상품을 선택했는가.
어떤 필요를 충족하려 했는가.
사용하면서 무엇이 불편했는가.
다음 생산에서는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생산은 소비자가 무엇을 샀는지만 기록하는 시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람의 필요와 경험이 상품과 서비스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치가게에서 상품을 살펴보던 소비자가 구매를 마치지 않고 떠났다고 생각해 보자.
거래기록에는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과만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상품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설명이 부족했거나 결제 과정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가격과 배송조건이 기대에 맞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유를 확인하지 않은 채 상품이 인기가 없다고 단정한다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소비자의 모든 행동을 감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필요한 정보를 적법하고 투명하게 다루면서,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전하는 경험과 확인 가능한 사실을 통해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KN541이 앞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은 이러한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개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가치가게에서 발견한 불편은 이용 절차를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상품 사용 경험은 제조사와 함께 품질을 개선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사전예약구매에 관한 의견은 다음 상품의 생산조건과 안내 방식을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소비자의 의견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생산자의 기술과 제조조건, 안전성과 원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소비자는 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생산자는 만드는 과정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한쪽이 다른 쪽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비생산에서 경청이 갖는 경제적 가치다.
소비자의 말이 생산자의 판단을 돕고, 생산자의 설명이 소비자의 이해를 넓힌다.
시장은 그 두 경험이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한다.
그 연결이 깊어질수록 생산은 막연한 예측보다 실제 필요에 가까워질 수 있다.
경청은 생산 이전의 질문이면서 생산 이후의 검증이다.
지구사랑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에게 환경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왜 친환경 상품을 선택하기 어려운지, 어떤 비용이 부담스러운지, 생활 속에서 무엇이 불편한지 듣는 일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좋은 의도라도 사람의 현실과 만나지 못하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지구사랑은 사람에게 올바른 행동을 강요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해하고, 그 장애물을 줄이는 시장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경청의 가치는 인간관계에서도 더욱 깊어진다.
우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설명을 잘하고, 설득을 잘하며, 자신의 생각을 힘 있게 전달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준비한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다.
세상에는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의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부족할 때가 있다.
평생의 동역자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동역자는 내 말에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말해 줄 수 있고, 나 역시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관계다.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은 관계의 결함이 아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관계를 좁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경청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경계가 있다.
말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까지 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용한 사람에게는 조용한 이유가 있다.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중일 수도 있으며,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경청은 침묵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원할 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고, 말하지 않을 자유도 존중하는 일이다.
특히 경계해야 할 침묵이 있다.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믿게 된 침묵이다.
그것은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대가 사라져 나타난 침묵일 수 있다.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공동체와 시장이라면 그런 체념이 쌓이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이제 처음의 온라인 쇼핑몰로 돌아가 보자.
회의실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객 불만 0건.”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숫자만으로는 고객이 만족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필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우리 고객들은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을 시작했다면 다음 보고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불만 접수 건수는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가 비로소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장이 더 나빠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를 발견하는 일과 문제가 악화되는 일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불평의 숫자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불편의 원인을 줄이는 일이다.
경청의 가치.
그것은 사람의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에 있지 않다.
그 말을 통해 무엇을 새롭게 이해했고, 무엇을 실제로 바꾸었는가에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좋은 상품을 설명하고, 새로운 경제를 소개하며, 새로운 문명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사람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어디에서 불편을 겪는가.
무엇이 달라지면 더 나은 생활이 가능해지는가.
소비생산의 출발점은 소비자를 향한 설명이 아니다.
소비자의 생활에 대한 이해다.
고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장은 조용할 수 있다.
그러나 조용하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시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경청은 침묵 속에 숨은 마음을 안다고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우리는 말을 잘하는 문명을 만들어 왔다.
이제는 듣고 이해하며 바꿀 줄 아는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좋은 시장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가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바꾸었는가에서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