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마을에 강이 하나 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시장과 병원, 학교가 있었다. 주민들은 강을 건너기 위해 먼 길을 돌아다녀야 했다.
마침내 다리를 놓기로 했다.
공사는 순조로웠다. 튼튼한 교각이 세워지고, 난간이 설치되었으며, 밤이면 아름다운 조명까지 켜졌다.
어느 날 담당자가 주민들에게 발표했다.
“드디어 공정률 99%를 달성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물었다.
“그럼 이제 강 건너 시장에 갈 수 있겠구먼?”
담당자가 머뭇거렸다.
“아직은 어렵습니다.”
“왜?”
“마지막 연결 구간 2미터가 남았습니다.”
할머니가 다리를 한참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니, 강을 건너라고 다리를 놓았는데 강을 못 건넌다고?”
“그래도 99%나 완성했습니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그럼 저건 다리가 아니라 물고기 구경하는 전망대구먼.”
참으로 기막힌 성과였다.
공정률은 99%인데 주민이 강을 건널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0%였다.
보고서에는 거의 완공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할머니 앞에는 여전히 건너지 못하는 강이 있었다.
담당자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설명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그래서 내가 건널 수 있느냐?”
여기서 완성의 역설이 시작된다.
만든 사람에게는 거의 끝난 일인데,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아직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산자의 입장에서 완성을 판단해 왔다.
상품을 만들면 생산 완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개발 완료.
건물을 지으면 공사 완료.
보고서를 제출하면 업무 완료.
그런데 이상하다.
모두 일을 끝냈다는데 정작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게는 열렸는데 주문할 수 없다.
상품은 만들어졌는데 사용할 수 없다.
시스템은 개발되었는데 중요한 기능이 연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보고서는 완벽하다.
보고서만 읽으면 이미 새로운 문명이 도래한 것 같다.
문제는 보고서로는 강을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99%의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동안 쌓아 올린 교각과 난간이 없었다면 마지막 2미터도 연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의 크기와 목적의 달성은 구별해야 한다.
전체 공사의 1%가 남았더라도 그 부분이 통행을 결정한다면, 사용자의 입장에서 그 1%는 단순한 1%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숫자로 세상을 바라볼 때 놓치기 쉬운 함정이다.
생산자는 작업의 완료를 말한다.
소비자는 목적의 달성을 묻는다.
생산자는 얼마나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소비자는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미래의 시장은 바로 이 차이를 이해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제 KN541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또 하나의 쇼핑몰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생산자가 먼저 만들고 소비자가 구매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실제 필요와 선택이 생산을 호출하는 시장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언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회원가입 화면이 열렸을 때일까?
가치가게가 개설되었을 때일까?
사전예약 버튼이 작동할 때일까?
GWCP와 GWC가 화면에 표시되었을 때일까?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소비생산 구조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소비자가 그 시스템을 통해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실제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이용자 한 사람을 상상해 보자.
어느 여성이 KN541에 가입하여 월 이용권을 결제한다.
설계한 대로라면 자신의 가치가게가 열리고, 상점 이름을 정하고, 상품을 진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상품을 찾아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이웃들에게 소개한다.
그 소개를 보고 누군가 가치가게를 방문한다.
상품을 살펴보고, 필요에 따라 구매하거나 사전예약에 참여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온라인 쇼핑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이 중요하다.
어떤 경로로 소비자가 찾아왔는지 확인되고, 실제 주문이 정확하게 기록되며, 정해진 기준에 부합하는 참여와 기여가 식별되어야 한다.
사전예약으로 확인된 수요는 상품의 심의와 생산 가능성 검토로 이어져야 한다.
생산조건이 충족되면 실제 생산과 품질 검증, 상품 인도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정된 참여가치는 투명하게 기록되고, 적용 기준에 따라 정산되어 이용자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가 남긴 평가와 경험은 다음 생산을 개선하는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하나의 연결된 소비생산 경험이다.
그런데 어느 한 곳에서 연결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가치가게는 개설되었는데 누가 방문했는지 모른다.
주문은 발생했는데 누구의 실적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사전예약은 받았는데 생산으로 이어지는 조건이 불분명하다.
참여가치는 표시되는데 산정 근거와 정산 결과를 확인할 수 없다.
참으로 신비로운 시장이다.
가게는 열렸는데 손님의 발자국이 사라지고, 장사는 했는데 장부가 길을 잃었다.
개발자는 완료 버튼을 눌렀는데 소비자는 시작 버튼조차 제대로 누르지 못한다.
두 사람이 모두 사실을 말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서로 다른 완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자의 완성은 자신에게 맡겨진 기능의 구현일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의 완성은 그 기능들이 연결되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상태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KN541의 완성도를 평가할 때는 기능의 개수만 세어서는 안 된다.
가입부터 이용권 결제, 가치가게 운영, 구매와 주문 귀속, 사전예약 참여, 생산과 상품 인도, 참여가치 기록과 정산까지 실제 이용자의 행동을 따라가며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기능을 무조건 한꺼번에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약속한 범위 안에서 핵심 기능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검증하고, 준비 중인 기능은 준비 중이라고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다.
개발 완료와 운영 가능, 그리고 실제 이용 검증 완료는 서로 다른 단계다.
그 차이를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미완성 자체만이 아니다.
미완성인데도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는 상태다.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확인하면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을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는 순간 문제는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감추어야 할 대상이 되기 쉽다.
그때부터 기술의 문제는 신뢰의 문제로 커진다.
생각해 보라.
고객은 개발률 99%를 구매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약속한 결과를 선택한다.
기업이 99%를 개발했다고 해서 고객의 불편도 99%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래 경쟁력은 단순히 기능을 많이 만드는 능력에 있지 않다.
그 기능들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연결하고, 고객이 다시 선택할 이유를 만드는 능력에 있다.
바로 여기에서 관계경제와 신뢰경제가 출발한다.
관계는 가입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신뢰는 약속이 이행되는 경험을 통해 쌓인다.
고객이 실제로 가치를 경험하고 다시 선택할 때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을 얻는다.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주권 역시 화면에 표시되는 권리가 아니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
소비자가 필요를 제안할 수 있는가.
자신의 선택이 생산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가.
참여한 가치가 정당한 기준에 따라 인정되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설명을 듣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경험이 가능해질 때 소비자는 시장의 끝에 서 있는 구매자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참여자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겪어 온 우여곡절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개발이 늦어지고 계획이 어긋났다는 사실 자체가 미래의 자산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지막 2미터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엇이 연결되지 않았는지, 어떤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지 못했는지, 어떤 기능을 먼저 완성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고생한 시간이 아까워서 무조건 계속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 고생을 통해 발견한 문제를 바로잡고, 처음의 생각을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로 바꿀 이유가 여전히 있다면 방법을 찾아 완성하자는 것이다.
우여곡절은 완성의 증거가 아니다.
그러나 그 우여곡절을 통해 발견한 마지막 2미터를 정확하게 연결한다면, 그 시간은 미래를 떠받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완성의 철학이 지구사랑과도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것도 낭비지만, 만들어 놓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품 역시 자원을 낭비할 수 있다.
소비자의 필요를 확인하고, 실제 수요에 맞추어 생산을 검토하고, 품질을 검증하며, 사용 경험을 다음 생산에 반영하는 일.
이것은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불필요한 생산과 폐기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시장을 바꾸어 지구사랑을 실천한다는 말은 결국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만들고, 그것이 끝까지 제 역할을 하도록 책임지는 일과 연결된다.
생산량을 늘리는 능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만들어진 것이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지까지 생각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 처음의 강가로 돌아가 보자.
마침내 마지막 2미터가 연결되었다.
안전 점검을 마치고 다리가 열렸다.
할머니가 시장바구니를 들고 다리 앞에 섰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심스럽게 강을 건너 마침내 반대편 땅에 발을 디뎠다.
담당자가 감격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어떠십니까?”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야 다리구먼.”
“그전에는 뭐였는데요?”
“강 위에 길게 누워 있던 공사비지.”
사람들이 웃었다.
할머니는 시장바구니를 고쳐 들었다.
“이제 시장도 가고, 병원도 가고, 손주 학교에도 갈 수 있겠네.”
그날 다리가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는 공정률 100%라는 숫자만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생활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완성의 진정한 의미다.
생산자의 완성은 작업의 끝이지만, 소비자의 완성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KN541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많은 기능을 갖춘 시스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기능을 통해 소비자가 실제로 선택하고 참여하며, 자신의 기여를 확인하고, 다음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장이다.
생산이 완료되었다는 선언보다 그 생산으로 무엇이 가능해졌는가가 중요하다.
기술의 진보는 개발자의 보고서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의 진보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삶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99%를 만들고도 아무도 건너지 못하는 다리가 있다.
반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다리가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을 만들고 싶은가.
마지막 2미터를 남겨 놓고 99%의 성공을 자랑하지 마라.
그 2미터가 누군가에게는 아직 건너지 못한 강 전체일 수 있다.
진정한 완성은 만든 사람의 박수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첫걸음에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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