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수 노무사 / 강남노무법인 / 법학박사
최근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우수 인력이 대기업으로 이직하여 중소기업이 수년동안 개발한 기술영업정보가 누출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중소기업은 전문기술인력에 대해 전직금지 약정을 체결하고 경쟁업체로의 전직을 제한할 수 있지만, 근로자에게도 더 좋은 작업환경과 보수를 받는 직장으로 전직할 수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전직금지약정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채용하여 사용 중에 근로자가 회사에서 배운 회사의 고유한 영업비밀이나 영업에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가지고 경쟁회사로 전직하여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약정이다. 이 전직금지약정은 근로자가 헌법상 가지는 국민의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의 권리를 위반할 수 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효력을 가진다. 사용자의 보호 가치가 있는 고유한 영업비밀은 회사의 소유권으로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에 전직금지약정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그 효력을 가진다. 사용자가 근로자와 체결한 전직(경업)금지약정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회사의 전문기술이나 생산방식, 영업활동이 보호 가치가 있는 영업비밀 이어야 하고, 이 영업비밀을 지키기 위해 회사가 충분히 노력하였다는 내용을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영업비밀로 인정되고, 근로자와 체결한 전직금지약정은 정당한 효력을 가진다.
그러면, 전직금지약정이 실제 사례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회사는 전직한 근로자가 회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경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원에 전직 근로자의 취업 금지나 예방을 청구할 수 있고(제10조), 회사가 전직 근로자의 영업비밀 침해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11조). 실무에서 퇴직근로자가 경쟁업체로 전직하는 경우, 전직금지의무 위반에 대한 가처분이나 손해배상소송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1. 보호할 가치가 있는 영업비밀
대법원은 보호할 만한 사용자의 이익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①동종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②보안서약서 등을 통해 이를 제3자에게 알리지 않도록 근로자와 약정한 것이어야 한다. 고객정보, 거래처 정보, 노하우 등도 위 요건에 해당한다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에 해당된다. 그러나 근로자가 고용기간 중에 습득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 등을 사용하여 영업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가 동종업계 전반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것이고,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수하는데 그다지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지 않았던 경우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2.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와 직무내용
근로자가 퇴직 전 직장에서 영업비밀이나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여 그러한 정보를 습득한 것을 요건으로 한다. 따라서 연구개발직의 경우에는 전직금지의무에 연관성이 많다. 이에 반해 단순 반복적인 생산업무만 수행한 경우라고 하면 회사의 영업비밀을 취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근로자가 1998년 반도체 관련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연구개발업무에 종사하던 중 2017년 건강상 사정으로 퇴직한 후 3개월 뒤 경쟁회사에 더 높은 연봉과 지급으로 이직한 경우, 전직금지의무 위반으로 보았다.
근로자는 제약회사의 영업관리사원으로 복막투석액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가 업무 중 취득한 제품의 원가 분석 자료 및 대리점 마진율, 할인율, 가격, 신제품 개발 계획 등은 중요한 영업 비밀에 해당된다. 이러한 영업비밀을 가지고 동종 제품을 판매하는 경쟁 제약회사에 취업한 경우에는 전직금지의무 위반에 해당된다.
3. 전직제한의 기간과 장소
전직제한 기간은 전직제한약정의 효력에 있어 중요한 판단요소가 된다. 경쟁업체로의 전직금지 기간은 근로자의 생존권과 직업선택의 자유와 직결될 수 있고, 사용자의 영업비밀보호를 위하여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기간 내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보통 단기적으로 설정된 경우에는 그 효력이 인정되고, 장기적으로 설정된 경우에는 권리남용이 될 수 있다. 법원은 약정된 전직금지기간이 과도하게 장기라고 인정될 때에는 적당한 범위로 전직금지기간을 제한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 취업한 근로자가 1년 간 근무한 후 경쟁업체로 이직하였다. 근로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 체결시에 퇴직 후 1년의 경쟁회사로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였다. 법원은 근로자가 퇴직 후 1년간의 경업금지의무를 둔 약정은 타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신청인 회사의 보호가치가 있는 이익의 중요성을 고려하더라도, 핸드폰 시장의 기술이 급변하여 1년 이상 된 기술은 쓸모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근로자의 경쟁업체로의 전직을 장기간 금지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여지가 있다. 이 사건의 전직금지약정에서 정한 2년의 전직금지기간은 피신청인에게는 다소 과도한 제한이 된다. 따라서 ‘퇴직일로부터 2년’간의 전직을 금지한 경업금지약정은 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4.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유무
근로자에게 전직금지의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는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 판단에 중요한 요소이다. 법원에서는 전직금지약정의 대가로 금전을 지급하게 되면, 동종업계로의 전직금지의무가 있다고 한 판례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의 지급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업무가 회사의 영업비밀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전직금지의무가 발생한다.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경쟁 반도체 회사로 전직한 근로자에 대한 전직금지약정 위반에 대한 사건에서 회사가 전직금지의무의 대가로 특별 인센티브를 지급하였다. 이러한 전직금지의무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 대가가 있기 때문에 2년간의 동종 유사업체로의 취업을 금지하는 것을 타당하게 보았다.
피고는 손톱깎기 등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에 무역부장으로 근무하였는데, 회사에서는 근로계약서에 2년간 경쟁업체에 취업을 금지하는 경업금지약정 규정을 두고 있었다. 피고가 경쟁회사를 설립하여 원고와 경쟁관계가 되어 진행된 소송에서, 법원은 피고가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의 체결로 인해 특별한 대가를 수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도 퇴직 후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경업이 금지되는 규정을 두었기 때문에 경업금지약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5. 근로자의 퇴직경위
경쟁업체로의 전직금지약정은 근로자 스스로 회사를 그만 두고 경쟁회사로 이직하는 경우에 사용자의 영업비밀보호를 위하여 취하는 조치이다. 그러나 근로계약의 종료사유가 임금체불, 부당해고, 정리해고 등과 같이 사용자의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로 퇴직하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경쟁업체로 이직하더라도, 전직금지의무를 강제할 수 없다. 따라서 퇴직사유가 근로자의 자발적인 사직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전직금지약정이 효력을 가진다.
6.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판단
전직금지약정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5가지의 세부 판단기준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전직금지약정에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사용자의 영업비밀보호 중에 어떤 권리가 우선 보호가치가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검토하여 이익 형량을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회사 영업비밀의 보호대상 여부, 근로자가 보유한 영업비밀의 정도, 경업제한기간, 영업비밀보호에 대한 회사의 대가지급여부, 그리고 근로자의 퇴직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회사의 영업비밀을 보유한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퇴직하여 경쟁업체로 이직하는 경우, 사용자는 회사의 영업비밀보호를 위해 해당 근로자에 대해 전직(경업)금지를 청구를 할 수 있으며, 회사가 이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경쟁회사가 당해 회사의 앞선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해당 근로자를 스카우트하는 채용방식의 전직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경쟁업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에게도 직업선택의 자유와 더 나은 환경에서 근로할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가 회사의 고유한 영업비밀을 보유한 것도 없고, 전직금지약정의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받은 것도 없는 경우에는 사용자의 영업비밀보호 의무에 앞서 근로자의 권리가 우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