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
정봉수 노무사 / 강남노무법인
근무시간이 과로사 산재인정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노조간부의 비공식 조합활동시간을 회사의 업무수행으로 보아 산재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2021. 10. 27. 선고 2019구합86761). 지금까지 판례나 행정심판 사례는 유급전임자의 조합활동에 한해서 업무수행을 인정하였으나, 조합간부의 근무시간 외의 조합활동은 업무와 직접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조합간부의 근무시간 외의 조합활동에 대해 업무수행성을 인정한 사례는 차후 유사한 사례에 있어 참조가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 하겠다.
조합간부의 근무시간 외의 조합활동을 업무수행으로 인정한 산재사례에서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 산재신청을 불승인한 사유가 무엇인지, 법원은 어떤 입장에서 이러한 조합활동을 산재로 인정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재해자는 1990. 12. 11. 한국철도공사에 입사하여 2006. 1. 2. 부터 서울본부 KTX 기관사로 근무하였다. 재해자는 2018. 1. 24. 23:30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재해자의 사체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감정 결과 사망원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되었다. 유족은 2018. 7. 2. 재해자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하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하였으나, 공단은 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공단은 “①‘재해자의 업무시간은 발병 전 1주 평균 38시간 56분, 발병 전 4주간 1주 평균 42시간 21분,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36시간 28분으로 고용노동부 고시의 단기 및 만성 과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 ②교대 업무를 수행하나 통상적으로 1달 전에 예정된 교대근무를 수행하였다. ③야간 운행 시 다음 날부터 2~3일은 휴무하는 등 휴일이 확보되었다. ④사망에 이르게 할 만한 돌발적 상황도 확인되지 않는 등 재해자의 업무와 사망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의 심의결과를 사유로 원고의 유족급여와 장례비의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의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단의 결정을 취소하였다. “재해자의 업무시간은 발병 전 1주간 38시간 56분, 발병 전 4주간 42시간 21분, 발병 전 12주간 37시간 48분으로 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만성 과로의 업무시간 기준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재해자의 업무시간은 동료 기관사의 근로시간을 다소 상회하는 수준이고 이에 더하여 재해자는 노동조합의 부지부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근무시간 외에도 상당한 시간을 조합활동을 위해 투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재해자에게는 불규칙한 교대제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하였다는 업무 가중요인도 인정된다. 실제로 재해자가 사망한 2018. 1. 24.은 재해자의 휴무일에 해당하였지만, 재해자는 노조간부 워크숍에 참석한 후 교번근무표 검토 작업을 하였고, 열차 지연 사고와 관련하여 동료 기관사의 책임 없음을 본사 담당자에게 설득하는 등 이 사건 사업장의 업무에 관련된 일을 수행하였다.”
법원은 재해자의 업무시간 외의 조합활동을 업무수행으로 인정하여 과로로 인정하였다. 재해자는 서울고속철도 노조지부의 부지부장이자 산업안전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업무 시간외의 활동을 많이 하였고, 특히 사망 전날 1박2일 워크숍에 참여하였으며, 사망 직전 까지 교번근무표 검토작업을 하였고, 열차지연사고 발생에 대해 동료 기관사를 대변하는 업무 수행을 하였다. 이러한 근로자를 위한 조합활동에 대해 공단은 업무수행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산업재해보상법은 조합활동 중 발생한 사고 및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명시된 바가 없다. 다만, 판례에서 노조전임자나 조합간부는 단체협약이나 사용자가 승인한 활동에 한해서는 업무상 질병 기준을 적용하여 업무로 인정해준 사례가 다수 있다. 또한 법원은 조합활동을 업무상 재해 해당여부 판단과 관련하여 기존의 업무상 사고의 판단기준을 확대하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판례에서 인정한 노동조합 전임자 또는 간부의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급 전임자의 조합활동이나 조합간부가 회사로부터 유급으로 인정받은 활동시간인지의 여부이다. 전임자가 근로계약상 본래 담당할 업무를 면하고 노동조합의 업무를 전임하게 된 것이 단체협약이나 사용자인 회사의 승낙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전임자가 담당하는 노동조합업무는 회사의 노무관리업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 사용자가 본래의 업무 대신에 이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를 회사의 업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임자가 노동조합업무를 수행하거나 이에 수반하는 통상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둘째, 전임자가 근무시간 외에도 업무와 관련된 조합활동을 하다가 발생한 재해 까지도 인정된다. 사용자가 원만하고 안정된 노사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조간부에게 근로자의 지위는 여전히 보유한 채로 근로계약상 본래 업무 대신 노동조합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승낙한 것이 전임자 제도이다. 이러한 전임자 제도의 법적 취지를 고려해 보았을 때 노조전임자가 노동조합 업무를 수행하던 중 입은 재해를 산재법상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으려면, 그가 수행하던 노동조합의 업무가 사용자의 노무관리업무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
셋째, 노동조합업무는 회사의 노무관리업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 사용자가 본래의 업무를 대신해서 이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업무 전임자가 아닌 간부가 사용자인 회사의 승낙에 의하여 노동조합업무를 수행하거나 이에 수반하는 통상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산재가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전임자나 조합간부의 조합활동을 근로시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해 회사의 업무와 무관한 상급단체의 활동이나 불법적인 노동조합 활동의 경우이다. 둘째, 노동쟁의 상태가 된 후부터 단체협약 체결 전까지 회사와 대립적인 노사관계에 있는 기간에 재해가 발생한 경우이다. 셋째, 전임자나 조합간부가 업무시간 외에 사용자의 노무관리 업무와 구체적인 관련성이 없는 활동을 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법원은 재해자의 근로시간 뿐만 아니라 특수한 근무상황의 가중요인, 조합간부로서 참여한 조합활동시간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업무상 재해인정여부를 판단하였다. 재해자의 ①근무시간은 4주 평균 42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정상적인 고속철도 기관사의 4주 평균 36시간 보다 많은 점, ②재해자의 업무상 가중요소로 다수의 야간근무가 있었고, 불규칙한 교번근무, 고속철도의 1인 승무와 고속운행에서 발생하는 긴장감과 소음의 환경적인 요소가 있는 점, ③특히, 재해자는 노동조합의 간부 자격으로 재해 당일 전날 노조규약에 명시된 1박2일의 간부워크숍에 참여하였던 점, ④그 밖에 당일 재해자는 자택에서 노조 교번근무표 작성업무를 수행하였고, 또한 산안부장으로 철도운행 지연사고에 대해 조합원을 대변하여 회사측 담당자에게 항의하기도 하였던 점 등을 비추어 보아 산재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본 과로사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노동부 ‘업무상 질병 인정지침’의 근로시간에 더하여 노조간부 조합활동시간을 회사의 노무관리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의 업무로 보아 재해자의 과로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는 조합간부의 노동조합 활동시간이 회사 내부인사관리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