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소비자저널=노유경 칼럼니스트]
독일 남·서쪽 바덴뷔르템베르크 (Baden-Württembergs) 주에 있는 도시 도나우에싱엔은 (Donaueschingen) 위치상으로 보면 스위스 바젤이나 취리히와 가까운 편이고, 높은 산악 지대와 둘러싸인 분지 공간의 지형 때문에 기후 차이가 심하다. 숲이 울창하여 검은 숲이라고 불리우는 슈바르츠발트 (Schwarzwald)는 기원 전 4000년 경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이 숲은 6000 평방 킬로미터가 넘는 면적을 자랑하는, 독일에서 가장 높고 가장 큰 연속 저 산맥이다. 방문객이 가장 많은 휴양지이기도 하다. 현대 음악의 성지, 도나우에싱엔은 이곳 가까이 위치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토마스만은 (Thomas Mann 1875-1955) 이미 그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 (Doktor Faust 1947)에서 도나우에싱엔을 새로운 음악의 중심지로 불멸화 시켰다. 도나우에싱엔은 1920년대부터 유럽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1921년 퓌르스텐베르크 왕자의 후원으로 „현대 음악을 촉진하기 위한 도나우에싱거 실내악 연주“라는 제목의 뉴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곳에서 유럽 아방가르드의 수많은 대표자가 현대 음악과 사운드 아트 분야에서 새로운 실험적 형태를 선보였다.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는 (Donaueschinger Musiktage) 세계에서 새로운 음악을 위한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축제 중 하나이다. 이 음악제는 음악 교과서나 음악 역사 속에서 언급되는 세계적인 대표 작곡가와 예술인들이 주류를 이루어 공연하였다. 아놀드 쇤베르크 (Arnold Schönberg 1874-1951)를 중심으로 알반 베르크 (Alban Berg 1885-1935), 안톤 베베른 (Anton Webern 1883-1945), 파울 힌데미트 (Paul Hindemith 1895-1963)의 작품 초연과 함께 현대 실내악의 중심지로 존재하였다. 또한 도나우에싱엔 프로그램에는 실험적인 무작위 음악 (존 케이지 John Cage 1954)과 구체적인 음악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 및 피에르 앙리Pierre Henry 1953) 그리고 새로운 라디오 연극, 음악 영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 카겔Mauricio Kagel, 슈네벨Dieter Schnebel)의 다양한 아티스트가 사운드 설치 작업도 진행하였다.
1950년대,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의 전성기에 걸맞은 새로운 시작이 남·서독일방송 (Südwestfunk)과의 협력을 통해 달성되었으며, 남·서독일방송은 오케스트라를 제공하고 새로운 프로그램 초점을 도입했다. 피에르 불레즈 (Pierre Boelez 1925-2016), 카를하인츠 슈토그하우젠 (1928-2007), 루이지 노노 (Luigi Nono 1924-1990),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Iannis Xenakis 1922-2001) 의 기악 작품이 초연되었고, 그 이후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1933-2020) 와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 1923-2006), 그리고 이후 볼프강 림 (Wolfgang Rihm 1952-)이 오케스트라 초연에 새로운 악센트를 설정했다.
올해 2023년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 (10월 19일 – 10월 22일까지) 마지막 엔딩을 장식한 오케스트라 곡은 재독 여성 작곡가 박영희의 작품 “여자여! 왜 울고 있습니까?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Frau, warum weinst Du? Wen suchst Du?)”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 작곡가 박영희는 이번에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최초“로 다섯 번을 도나우에싱엔에서 위촉 받은 작곡가가 되었다. 사실 그녀는 1980년 도나우에싱엔에 초대된 „최초“의 여성 작곡가이기도 하다. 독일어권 음악대학에서 여성 최초로 작곡가 정교수가 된 그녀였고, 3년 전 2020년 박영희는 베를린 예술 대상 전 부문을 통틀어 역사상 여성 최초이자 동양인 최초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0년부터 도나우에싱엔에서 국제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박영희는 “예술가는 귀와 눈을 열어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이번에 초연된 그녀의 작품 “여자여, 왜 울고 있습니까?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는 예수께서 빈 무덤 동굴에 서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용기를 되찾고 살아갈 힘을 찾는 실존적 위로에 자신의 작품을 바친다”고 했다.
1980년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서 처음으로 위촉 받은 오케스트라 작품 „소리“는 기립박수에 인색한 독일인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박수갈채를 던졌던 작품이다. 7년 뒤 1987년, 도나우에싱엔에서 초연된 두 번째 위촉곡 „님“은 한국의 근대사를 거울과 같이 반영했으며, 민중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점철된 역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음악과 함께 의식을 표명했던 곡이다. 3번째 곡은 1998년 안나 아흐마토바 (Anna Axmatoba 1889-1966), 로제 아우스랜더 (Rose Ausländer 1901-1988), 루이제 라베 (Louise Labé 1524-1566) 의 세 명의 여성이 쓴 글을 기반으로 실존적 차원에서 개인이 자아실현을 목적으로 운명과 투쟁하는 주제를 가지고 낯선 언어와 낯익은 언어의 교집합을 찾았다. 4 번째 도나우에싱엔 초연곡은 2007년에 „빛 속에서 살아가면 In luce ambulemus“ 은 테너 독주와 관현악단을 위한 곡이며, 한국 천주교 두 번째 사제이신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1821-1861) 의 서한을 토대로 작곡된 작품이다. 이 곡은 2021년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의 뿌리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43년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와 인연을 맺은 작곡가 박영희의 이번 2023년 5번째 작품 “여자여! 왜 울고 있습니까?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은 성경 요한 복음 20장의 구절이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져 울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망연자실하여 부활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리아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제야 알아 들어 „스승님“이라고 응답했다.
성경의 구절이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제목으로 정해졌지만, 이 작품은 종교적인 의미로 구체화했다기보다, 절박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 울 수밖에 없는 이들과 요즘같이 험난한 시간 속에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를 위해, 절망과 고통 대신 희망과 기쁨의 반전을 기대하며 그녀만의 음악의 힘으로 소리를 표명했다. 오케스트라는 여러 겹으로 포효했다. 두 개의 겹은 다시 세 개의 겹을 만들었고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3D 또는 4D 이미지를 감지하게 해 준다. 100년이 넘은 역사 속에 자리매기를 한 음악의 성지 도나우에싱엔에서는 많은 유명한 작곡가의 연주가 그들의 작곡 발전이 새로운 관점에서든, 이전 접근 방식의 지속에서든 다양한 단계에서 기록될 수 있었다. 2023년 작곡가 박영희의 5번째 도나우에싱엔에서의 기록은 „생존위로“였다
글 :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쾰른대학교, 아헨대학교 출강
음악학 박사, 공연평론가, 한국홍보전문가
독일, 서울 거주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