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21 테마, 기억의 가치, 풍경은 지나가도 함께한 사람은 남는다

[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21 테마, 기억의 가치, 풍경은 지나가도 함께한 사람은 남는다

▲사진=정차조 (주)KN541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2026년 10월 23일 아침, 울릉도에서 독도를 향하며

새벽 3시 40분.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길을 나섰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정신은 출발했지만 몸은 여전히 이불과 협상 중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설렘이 있어야 한다는데, 그 시간 우리의 가장 절실한 소망은 잠을 조금만 더 자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다는 우리의 아름다운 여행 계획에 별 관심이 없었다.

파도는 거침없이 출렁였고 배는 흔들렸다.

멀미가 시작되자 인생의 철학도 단순해졌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왜 이 배에 탔는가.

육지는 도대체 언제 나타나는가.

여행인지 유배인지, 유배를 마치고 귀향하는 길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멀미 앞에서는 누구도 특별하지 않았다.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똑같이 육지를 그리워했다.

참으로 공평한 바다였다.

오후 1시 30분.

마침내 울릉도에 도착했다.

그토록 원망스럽던 바다가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오고, 푸른 하늘과 산과 바다가 지친 몸을 맞아 주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법한 마음이 슬그머니 변했다.

“그래도 오길 잘했네.”

인간은 참으로 변덕스럽다.

하지만 그 변덕이 얼마나 다행인가.

고생한 뒤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흔들린 뒤에도 다시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어진 점심 식사는 특별했다.

멀미 끝에 먹는 맛있는 음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다. 흔들리던 몸과 마음이 세상과 다시 화해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거창한 철학도 배가 고프면 힘을 잃는다.

역시 인간은 밥을 먹어야 너그러워진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관음도로 향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는 끝없이 넓었다. 푸른 물결과 수평선이 맞닿은 풍경 앞에서 한동안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붙들고 사는 걱정들은 정말 그렇게 큰 것일까.

사무실에서 마주하는 작은 문제 하나가 때로는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풀리지 않는 일과 마음에 걸리는 말 한마디가 하루를 가득 채운다.

그런데 드넓은 바다 앞에서는 그 문제들의 크기가 달라진다.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때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해답보다 더 넓은 풍경인지도 모른다.

봉래폭포에서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났다.

바다는 마음을 넓혀 주었고, 폭포는 지친 정신을 깨워 주었다.

그리고 저녁.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첫날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새벽에는 잠과 싸웠고, 바다에서는 멀미와 씨름했으며, 오후에는 풍경에 감탄했다. 그 모든 고생이 저녁 식탁에서는 웃으며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참 이상하다.

고생은 할 때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데, 지나고 나면 가장 먼저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이 된다.

이것이 기억의 역설이다.

그러나 모든 고생이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시간을 서로 원망하며 지나면 상처가 남고, 서로를 배려하며 건너면 동행의 이야기가 남는다.

기억의 가치는 무엇을 겪었는가보다 그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건넜는가에 있다.

우리는 울릉도의 바다를 보러 왔다.

그러나 정작 더 깊이 바라보게 된 것은 서로의 얼굴이었다.

관음도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봉래폭포의 물줄기도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볼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기억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혼자 보는 아름다움은 감탄으로 남는다.

함께 보는 아름다움은 이야기로 남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평생 나눌 사람이 있다면 풍경은 삶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서로 같은 사람이 아니다.

살아온 길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며,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누군가는 말을 먼저 하고, 누군가는 깊이 생각한다. 누군가는 앞서 걷고, 누군가는 뒤에서 풍경을 바라본다.

그런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는 서로 같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서로 다르지만 같은 내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진정한 동역자는 모든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다를 때도 존중하고, 어려움 앞에서는 함께 길을 찾으며, 누군가 지치면 걸음을 늦춰 줄 줄 아는 사람이다.

좋은 날 함께 웃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어려운 날에도 같은 길을 걸어가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귀하다.

그 귀한 사람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앞선 제20테마에서 우리는 가격의 역설을 살펴보았다.

가격표는 물건의 값을 알려 주지만, 그것이 삶에 남기는 가치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여행도 마찬가지다.

교통비와 숙박비, 식사비는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관음도 정상에서 함께 바라본 수평선의 값은 얼마인가.

파도에 흔들리던 순간 서로를 걱정했던 마음의 값은 얼마인가.

저녁 식탁에서 터진 웃음의 값은 얼마인가.

평생의 동역자와 함께한 하루를 어떤 가격표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돈으로 여행은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돈만으로 평생의 동역자를 얻을 수는 없다.

그리고 오늘, 10월 23일.

우리는 독도를 향한다.

독도 탐방과 KN541 온라인 전환 선포식이라는 뜻깊은 시간을 앞두고 있다.

어제 울릉도의 바다가 우리의 시야를 열었다면, 오늘 독도에서의 시간은 앞으로 함께 걸어갈 길을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독도에서 세상을 단번에 바꾸겠다고 외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과 함께 지켜 갈 약속을 서로의 가슴에 새기려는 것이다.

생산이 먼저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장에서 사람의 필요가 생산의 출발점이 되는 시장으로.

소비와 참여가 사라지는 시장에서 그 가치가 다시 사람과 공동체로 이어지는 시장으로.

그 길을 함께 걸어가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선언만으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독도의 바람이 우리의 약속을 대신 지켜 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감동적인 말을 해도 돌아와서 실천하지 않으면 그 말은 바닷바람에 흩어지고 만다.

오늘의 선포식은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라 앞으로의 책임을 함께 확인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훗날 우리가 오늘을 돌아보며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때 독도에서 우리가 그런 약속을 했었지.”

그러면 누군가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다.

“그래. 그런데 우리 정말 하나씩 해냈잖아.”

그 순간 선언은 추억을 넘어 우리가 함께 살아낸 역사가 된다.

좋은 기억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함께 어려움을 건넜다는 기억은 다음 어려움 앞에서 서로를 믿게 하고, 같은 풍경에 감동했던 기억은 생각이 부딪힐 때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함께 품은 약속은 지치고 흔들릴 때 처음의 뜻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의 보관함이 아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을 비추는 마음의 등불이다.

어제 우리는 많이 흔들렸다.

그러나 인생도 늘 그렇지 않은가.

계획이 어긋나고, 서로의 생각이 부딪히며, 믿었던 일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날도 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흔들려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제의 파도는 우리를 흔들었지만 목적지를 없애지는 못했다.

앞으로의 동행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여행에는 돌아오는 날이 있다.

그러나 평생의 동역자에게는 함께 걸어갈 다음 날이 있다.

우리는 울릉도와 독도의 여정을 마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멀미의 괴로움은 희미해지고, 관음도의 바다와 봉래폭포는 사진 속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함께 웃었던 얼굴과 서로의 고단함을 살폈던 마음은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오늘의 결론은 분명하다.

풍경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볼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 아름답다.

선언은 의미 있다.

그러나 그 선언을 함께 지켜 갈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 큰 희망이다.

우리는 울릉도에 풍경을 보러 왔다.

그러나 돌아갈 때는 풍경보다 더 소중한 것을 가슴에 담아 갈 것이다.

평생 함께 걸어갈 동역자들.

기억의 가치.

그것은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살아낸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바꾸게 하는 힘이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울릉도에 왔다.

이제 같은 뜻을 품고 더 긴 인생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여행은 끝나지만 우리의 동행은 끝나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바로 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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