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는 1998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규정과 ‘근로자 파견법’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차원에서 인력 확보와 방출의 유연성을 가진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을 합법적으로 확대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정규직 확산이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2007년 7월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고 정규직으로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비정규직 사용을 2년으로 제한하였고, 그 사용기간 중에도 동일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차별을 없애는 것이었다. 이 법이 비정규직 확산을 제한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하여 비정규직의 고용을 계속해서 유지해 오고 있다. 기업들이 편법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을 유지해온 대표적인 사업이 사내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대표적인 대법원 판례 2개가 나왔는데 이 판례들을 통해 그 판단기준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사례 (1)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근로자 해고사건
현대미포조선(이하 “원청회사”)은 사내하청인 용인기업(이하 “하청업체”)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하였고, 이에 따라 하청업체는 2003.1.31. 폐업되었다. 이로 인하여 하청업체에 소속된 근로자 30명은 모두 해고되었고, 이들은 원청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인 부산고등법원은 원청회사와 하청업체 간에 도급관계가 인정된다고 보아 근로자들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청회사와 하청업체의 근로자들 간에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하였다. (대법원 2008.7.10. 선고 2005다75088 판결)
<사실관계>
원고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는 약 25년간 오직 피고 회사로부터 선박엔진 열교환기, 세이프티 밸브의 검사ㆍ수리 등의 업무를 수급인 자격으로 수행하여 왔는데, 원청회사는 하청업체가 모집해 온 근로자에 대하여 원청회사가 요구하는 기능시험을 실시한 다음, 그 채용 여부를 결정하였고, 그 시험합격자에게만 원청회사가 직접 지급하는 수당을 수령할 자격을 부여하였으며, 하청업체 소속의 근로자들에 대하여 징계를 요구하거나, 승진대상자 명단을 통보하는 등,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채용, 승진, 징계에 관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원청회사는 원고들의 출근, 조퇴, 휴가, 연장근무, 근로시간, 근무태도 등을 점검하고, 원고들이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 방법, 작업 순서, 업무 협력 방안을 결정하여 원고들을 직접 지휘하거나 또는 하청업체 소속 책임자를 통하여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하였으며, 하청업체가 당초 수급한 업무 외에도 원고들로 하여금 원청회사 소속 부서의 업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하청업체의 작업물량이 없을 때에는 교육, 사업장 정리, 타 부서 업무지원 등의 명목으로 원고들에게 매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는 등, 직접적으로 원고들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였다.
더 나아가, 하청업체는 원칙적으로 수급한 물량에 대하여 시간단위의 작업량 단가로 산정된 금액을 원청회사로부터 수령하였지만, 원청회사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선박 수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원청회사의 다른 부서 업무지원, 안전교육 및 직무교육 등에 종사하는 경우 이에 대한 보수도 산정하여 그 지급액을 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원고들에게 상여금, 퇴직금 등의 수당을 직접 지급하였다.
마지막으로, 하청업체는 사업자등록 명의를 가지고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소득신고, 회계장부 기장 등의 사무를 처리하였으나, 이러한 사무는 피고 회사가 제공하는 사무실에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청업체는 독자적인 장비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소속 근로자의 교육 및 훈련 등에 필요한 사업경영상 독립적인 물적 시설을 갖추지 못하였다.
<판단기준>
이러한 사실관계를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하청업체는 형식적으로는 원청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소속 근로자들인 원고들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자신의 사업을 수행한 것과 같은 외관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원청회사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고, 오히려 원청회사가 원고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근로자들과 원청회사 사이에는 직접 원청회사가 원고들을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 사례(2) : 현대자동차의 위장도급 사건
현대자동차 (“이하 “원청회사”)의 사내하도급 업체인 예성기업(이하 “하청업체”)은 의장공정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던 중, 노동조활 활동을 이유로 2005. 2. 2. 근로자 15명을 해고하였다. 이에 근로자들은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원청회사와 하청업체를 상대로 제기하자 하청업체는 곧 바로 폐업하였다. 이 사건은 하급심에서는 원청회사가 사용자가 아니고 실제 사용자인 하청업체는 폐업하였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되었으나, 대법원은 원청회사와 하청업체와의 묵시적 고용관계는 부정하였으나, 원청회사와 하청업체간에 파견관계가 성립된다고 인정하였다. 개정전의 파견법에 따라 근로자의 근속년수가 2년을 넘는 경우 “고용의제” 조항에 따라 근로자가 사용사업주에 고용된 것으로 본다고 인정을 받았다. (대법원 2012.2.23. 선고 2011두7076판결)
<사실관계>
자동차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작업 중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한 자동차 조립 업무인 의장 공정은 하청업체의 기술성과 전문성에 대한 요구 정도가 낮고 노무 제공 과정상 하청업체는 그 근로자에 대한 지시권이 미약하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좌우에 원청회사의 정규직 근로자들과 혼재하여 배치되어 원청회사 소유의 생산 관련 시설과 부품, 소모품 등을 사용하여 원청회사가 미리 작성하여 교부한 각종 작업지시서 등에 의하여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의 고유 기술이나 자본 등이 업무에 투입된 바는 없었다.
원청회사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원청회사의 정규직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 방법, 작업 순서 등을 결정하였다. 원청회사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직접 지휘하거나 또는 하청업체 소속 현장관리인 등을 통하여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하였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하청업체 현장관리인 등이 그 근로자들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원청회사가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였다.
원청회사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에 대하여 시업과 종업 시간의 결정, 휴게시간의 부여, 연장 및 야간근로 결정, 교대제 운영 여부, 작업속도 등을 결정하였고, 원청회사의 정규직 근로자에게 산재, 휴직 등 사유로 결원이 발생하는 경우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로 하여금 그 결원을 대체하여 작업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판단기준>
환송심인 고등법원은 ‘근로자파견 법리’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근로자가 하청업체에 고용된 후 원청회사에 파견되어 원청회사로부터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관계 있다고 판단하였다.
위장도급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2가지 사례를 언급하였다. 첫째, 현대미포조선 사례는 도급형태의 계약관계가 있지만 인사노무의 독립성과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이 없는 묵시적인 근로관계로 인정된 대표적인 위장도급 사건이었다. 둘째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사례는 원청회사와 하청업체 간에 분명한 계약관계는 인정되지만, 원청회사가 사용사업주로서의 업무를 지시하고 감독하는 가운데 하청업체근로자가 원청회사 근로자와 함께 컨베이어시스템에서 혼재하여 일하였기 때문에 하청회사는 도급의 독립성을 상실하여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