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며칠 전 책상 앞에서 두바이의 한 식당 영상을 보았다. ‘AI 셰프’가 메뉴를 짜고 맛의 조합을 설계한다는 뉴스였다. 주방은 깔끔했고 추천된 요리는 그럴듯했다. 그런데 영상 끝에서 한 사람 셰프가 국자를 들어 한 입 맛을 보더니, 무언가를 아주 조금 더 넣었다. 그 작은 동작에서 나는 오래전 부엌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늘 불을 끄기 직전에 숟가락을 들었다. 한 모금 머금고, 잠깐 멈추고, 소금을 조금 더 넣거나 그냥 두었다. 우리는 그 머뭇거림을 손맛이라 불렀다. 음식은 완성되기 직전의 몇 초에서 갈린다. 같은 된장, 같은 냄비, 같은 불 앞에서도 누군가는 한 번 더 끓이고 누군가는 그때 불을 끈다. 레시피에는 ‘소금 약간’이라 적혀 있지만, 그 약간은 늘 다르다. 김치가 익은 정도, 국물의 온도, 먹는 사람의 나이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 그 자리에도 인공지능이 들어선다. AI는 냉장고 속 재료를 읽어 메뉴를 짜고, 로봇은 볶고 튀기고 굽는 일을 일정한 속도로 반복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푸드테크 핵심기술로 AI·로봇 기반 식품 제조와 외식 자동화, 맞춤형 식단 서비스를 꼽았고, 지난해 국내 전시장에서도 AI 로봇 교반기와 자동 조리기기가 주목받았다. 두바이의 그 식당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다만 거기서도 음식을 실제로 조리하고 맛을 보고 고치는 일은 사람 셰프의 몫이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AI가 요리를 모르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나 요리를 안다는 것과 누군가를 먹인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요리는 재료를 익히는 기술만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하루를 받아내는 일이다. 배고픈 사람의 속을 채우고, 지친 사람의 마음을 데우고, 오래 떠나 있던 사람을 집으로 데려온다. 음식 한 그릇에는 영양성분표에 적히지 않는 것이 담긴다. 국을 데우며 기다린 시간, 불 앞에서 흘린 땀, 누군가를 떠올리며 다시 간을 본 마음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손맛을 막연한 정성으로만 풀이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전문 셰프의 손맛은 우연이 아니다. 수없이 반복한 칼질, 숱한 실패, 재료를 보는 눈, 불의 세기를 읽는 감각, 위생과 안전에 대한 책임, 손님 앞에 내놓는 한 접시의 자존심이 쌓여 만들어진다. 손맛은 오래 훈련된 몸의 지식이다. AI는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간을 보는 마음까지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기술을 밀어낼 일은 아니다. 외식 현장은 인력난과 원가 상승, 음식물 쓰레기와 싸운다. 뜨거운 기름 앞에서 사람을 덜 위험하게 하고, 허드렛일을 덜어주고, 알레르기와 영양 정보를 더 정확히 관리하는 데 AI와 로봇은 분명 힘이 된다. 기술은 좋은 셰프가 더 좋은 음식을 만들도록 돕는 또 하나의 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다. AI는 맛의 조합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이 손님에게 이 음식이 너무 매운지, 막 퇴원한 어르신에게 이 국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처음 먹는 음식 앞에서 아이가 겁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일은 사람에게 남는다. 계산이 끝나는 자리에서 배려가 시작된다. 손맛은 손끝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향한 기억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AI 시대의 위험은 기계가 음식을 만든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더 큰 위험은 우리가 맛을 너무 빨리 숫자로 바꾸려는 데 있다. 별점과 리뷰, 조회수와 추천 알고리즘이 기준이 되면서 어느새 ‘맛있다’는 말이 ‘많이 팔린다’는 말과 뒤섞였다. 그러나 입맛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음식은 완벽하지 않아서 오래 남는다. 조금 투박한 김치찌개, 모양이 고르지 않아도 따뜻했던 전, 명절 아침 부엌에 번지던 기름 냄새가 그렇다. 훌륭한 셰프는 새로운 맛을 발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먹는 사람의 삶을 상상한다. 재료를 고르는 손에는 계절이 있고, 불을 다루는 손에는 인내가 있고, 접시를 내는 손에는 존중이 있다. 인공지능은 세상의 레시피를 한순간에 훑지만, 한 사람의 허기를 알아채는 표정까지 익히기는 어렵다. 기계가 맛을 분석하는 동안, 사람은 추억을 차려낸다. 미래의 주방은 지금보다 똑똑해질 것이다. AI는 더 정교하게 맛을 예측하고, 로봇은 더 안정적으로 조리하고, 건강에 맞춘 식단도 더 쉬워질 것이다. 두려워할 변화가 아니라 잘 써야 할 변화다. 다만 그 길에서 셰프의 자리를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셰프의 숙련과 창의, 감각과 윤리는 기술이 가져갈 낡은 짐이 아니라 기술이 존중해야 할 중심이다. 손맛의 비밀은 손에만 있지 않다. 그 손이 지나온 시간에, 그 손이 기억하는 사람에게, 그 손이 끝내 놓지 않는 책임에 있다. 그러니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레시피를 외워도 밥상이 건네는 위로까지 흉내 내기는 어렵다. 밥상은 배를 채우는 자리이면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음식을 빠르게 만든다. 그러나 식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은 끝내 사람에게 남는다. 오늘의 작은 실천은 어렵지 않다. AI가 골라준 레시피를 따르더라도 마지막 한 번은 내가 직접 숟가락을 든다. 그리고 묻는다. 이 음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조금 더 싱겁게 해야 할 사람은 없는가? 유난히 지친 누군가에게 한 술 더 따뜻하게 건넬 길은 없는가? 인공지능은 앞으로 더 많은 요리를 배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AI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가? 손맛의 비밀은, 어쩌면 그 숟가락을 드는 마음에 있다. 참고자료 농림축산식품부, 푸드테크 핵심기술 관련 정책자료: AI·로봇 기반 식품 스마트 제조, 외식 자동화, 맞춤형 식단 서비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푸드테크가 바꿀 우리 집 식탁은?」(2025): AI 로봇 교반기, 자동 혼합 조리기기, 스마트 급식 등 전시 동향. Reuters, “Dubai to debut restaurant operated by an AI chef”(2025.7.8): AI 셰프 ‘Aiman(에이만)’ 사례 — 메뉴·분위기·서비스는 AI가 설계하되 실제 조리·간 보기·조정은 인간 셰프(Reif Othman 팀)가 담당하는 협업 구조. 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State of the Restaurant Industry 2026: 외식업의 기술 도입·자동화·데이터 분석·운영 효율화 흐름. ▲사진=구글 제미나이(나노 바나나2)가 생성한 이미지 – 손맛의 순간, 양념을 조절하는 셰프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