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나는 아직 길 위에 있다 느린 걸음도 길을 만든다 묻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오늘도 한 문장을 고쳐 쓴다 나는 대학에서 「사회복지와 AI」를 가르친다. 소상공인과 중장년에게 AI를 실제 업무와 삶에 쓰는 법을 가르치는 일도 한다. 예전 같으면 강의안 한 장에 반나절이 걸렸는데, 지금은 10분 내에 초안이 나온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화면 가득 말끔한 문장이 떴다. 나는 그것을 전부 지웠다. 틀린 데가 없어서 더 그랬다. 문장은 매끄러운데, 내가 40여 년 동안 보고 겪은 것이 몇 줄도 들어 있지 않았다. 지우고 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우리는 오래 나이를 속도로 읽어왔다. 젊음은 빠르고 노년은 느리다고. 그런데 AI가 속도를 거의 공짜로 만들어버린 지금, 그 셈법이 흔들린다. 프롬프트를 짜는 요령은 머지않아 누구나 갖는다. 마지막까지 값이 남는 것은 무엇을 물을 것인가, 그리고 쏟아진 답 가운데 무엇을 버릴 것인가다. 그 판단은 살아본 만큼 나온다. 느려진 것은 걸음이고, 깊어진 것은 질문이다. 공자는 일흔을 종심(從心)이라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 말이 근사한 해방처럼 들렸다. 지금은 달리 읽힌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오래 헤매본 사람에게만 겨우 주어지는 자유다. 물론 얻은 것만 있지는 않다. 예전에는 새벽까지 읽었는데, 요즘은 12시만 넘으면 활자가 번진다. 그 구절은 나이 듦을 완성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래 틀려본 사람의 몸에 남는 감각을 말할 뿐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다.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 명으로 전체의 20.3%다. 같은 자료에서 2024년 65세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76.9%로 나타났다. 노년은 이제 기술 바깥에 서 있는 세대가 아니다. 그런데 같은 통계에 조용한 그늘이 하나 있다. 2024년 65~79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24.8%다. 넷 중 셋은 배우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유는 대개 소박하다. 거리가 멀고, 시간이 어긋나고, 무엇보다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 부끄럽다. 배움을 막는 것은 능력보다 체면일 때가 많다. 여기서 순서 하나가 중요해진다. 나는 강의에서 늘 같은 말을 한다. AI를 배우는 데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것은 내 경험에 AI를 더하는 일이라고. 순서를 뒤집으면 곤란해진다. AI를 먼저 놓고 거기에 나를 맞추면 결국 내가 사라진다. 내 경험을 먼저 놓고 그 위에 AI를 얹으면, 삼십 년 사십 년 묵혀둔 것이 갑자기 꺼내 쓸 수 있는 물건이 된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AI 사용법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잘 만든 프롬프트는 복사해서 쓰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겪었고 그때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래서 지금 이 답의 어디가 미심쩍은지는 옮겨 붙일 수가 없다. 프롬프트는 복사할 수 있어도, 살아온 인생은 복사할 수 없다. 물론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AI를 다루는 것이 직업이어서 하루 종일 만지니 늘 수밖에 없고, 틀려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없고, 물어볼 사람이 가까이 있다. 이런 조건을 빼놓고 배움을 권하면 격려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어떤 이에게는 건강과 생계가 먼저다. 화면의 작은 글자 앞에서 이미 물러선 사람도 있다. “나도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가장 친절한 얼굴을 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지난 특강에서 한 분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저는 사십 년을 국밥집만 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걸 배워서 어디에 씁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사십 년 하셨으니까 배우시는 겁니다. AI는 국밥을 모릅니다.” 웃음이 돌았지만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그분의 얼굴이 오래 남았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관과 디지털배움터에서 어르신에게 앱 사용법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있다. 그 일을 사소하다고 말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버튼 하나를 눌러본 경험이 다음 질문을 만든다. 다만 목표는 조금 더 멀리 두어야 한다. 시니어에게 AI를 가르치는 일은 사용법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 끝은 삶의 선택지를 늘리는 데 있다. 건강, 여행, 재취업, 글쓰기, 가족과의 관계까지 닿아야 그 배움이 살림이 된다. 제도도 움직이고 있다. 올해 1월 22일 「디지털포용법」이 시행되면서 디지털 접근은 시혜의 영역에서 국가가 챙겨야 할 책무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 취약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77.9%로 5년 연속 올랐다. 접근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남은 과제는 역량과 활용이다. 스탠퍼드 HAI의 「2026 AI 인덱스」는 생성형 AI가 3년 만에 세계 인구의 53% 가까이에 닿았다고 보고한다. 뒤집으면 절반 가까이는 아직 문 밖에 있다는 말이다. 그 절반 안에 어느 세대가 많이 들어 있을지는 짐작이 간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그 속도에서 누가 떨어져 나가는가다. 디지털 변화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그러니 오늘의 실천은 이렇게 잡아보시면 좋겠다. 자기 경험 한 토막을 먼저 꺼낸다. 거기서 늘 걸리던 질문 하나를 만든다. 그 질문을 AI에게 던진다. 돌아온 답은 그대로 믿지 말고 내가 아는 것과 맞대어 본다. 그리고 한 가지만 실제로 해본다. 중요한 것은 맨 앞자리다. 거기에는 AI가 아니라 내 경험이 온다. 나는 아직 길 위에 있다. 일흔하나라는 숫자는 나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오늘도 배우고, 쓰고, 가르친다. 나이는 배움의 문을 잠그는 자물쇠가 아니라, 그 문을 여는 손잡이다. 다만 그 손잡이는 혼자 돌릴 때보다 누가 옆에서 같이 잡아줄 때 훨씬 가볍게 돌아간다. 당신 곁에도 한 사람쯤 있을 것이다. 묻고 싶은 것이 많은데 물을 곳이 없어 조용히 접어둔 사람이. 참고자료 1.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 「2025 고령자 통계」, 2025. 9. 29. 2.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5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2026. 3. 26. 3. 「디지털포용법」(법률 제20672호, 2025. 1. 21. 공포, 2026. 1. 22. 시행) 4. Stanford HAI, 「The 2026 AI Index Report」, 2026. 4. ▲삽화=필자 기획·OpenAI ChatGPT 생성한 이미지 – AI 시대의 열린 강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