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를 관리하는 기술자가 있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찾아와 기계를 점검하고, 작은 이상을 살피고, 필요한 부품을 교체했다.
주민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늘 잘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관리비를 검토하던 주민이 물었다.
“엘리베이터는 고장도 안 나는데 왜 점검비를 계속 내야 합니까?”
다른 주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한 기계를 왜 자꾸 들여다보는 거죠?”
그 말을 들은 기술자가 조용히 대답했다.
“멀쩡할 때 살펴야 계속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고장 난 것을 고치면 돈을 받을 이유가 분명하다. 그러나 고장이 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은 무엇을 해냈는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억울한 직업이다.
일을 잘할수록 문제가 줄어들고, 문제가 줄어들수록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문제가 생기면 왜 미리 점검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문제가 없으면 왜 점검비를 내야 하느냐고 묻는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기술자도 난감하다.
그런데 이 우스운 이야기가 우리 문명의 중요한 약점을 보여 준다.
우리는 고장 난 것을 고치는 일에는 관심이 많지만, 고장 나지 않도록 살피는 일에는 인색하다.
병이 깊어지면 치료의 중요성을 말하고, 관계가 멀어지면 소통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환경이 훼손되면 복구 계획을 세운다.
물론 회복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살필 수 있었던 것은 없었을까.
이것이 돌봄의 역설이다.
돌봄이 성공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한 하루 뒤에는 누군가의 관심과 수고가 있다.
우리는 앞선 제26테마에서 고장 난 지퍼 하나 때문에 멀쩡한 가방 전체를 버리려 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무엇을 고칠 수 있는가?”
이제 질문을 한 걸음 더 앞당겨 보자.
“무엇을 미리 살폈다면 고칠 필요조차 없었을까?”
수선이 사라질 뻔한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라면, 돌봄은 그 가치가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두 가지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회복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알아보는 지혜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수많은 돌봄 위에서 움직인다.
길을 걷는 사람은 도로가 안전하게 관리되기를 기대한다.
물을 마시는 사람은 깨끗한 물이 공급되기를 기대한다.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그것이 약속한 품질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 가운데는 누군가가 꾸준히 돌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많다.
문제가 생긴 뒤 달려오는 사람은 쉽게 눈에 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묵묵히 일한 사람은 기억에서 빠지기 쉽다.
영웅은 위기 앞에서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영웅은 위기가 커지지 않도록 평범한 하루를 지킨다.
그에게는 박수도, 화려한 무대도 없을 수 있다.
그저 오늘도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을 뿐이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그의 성과일 수 있다.
그런데 시장은 눈에 보이는 것을 계산하는 데 익숙하다.
새 상품이 몇 개 팔렸는지, 새로운 시설을 몇 곳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았는지는 쉽게 기록한다.
반면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한 성과나 문제가 커지기 전에 예방한 수고는 숫자로 드러내기 어렵다.
새로 만든 것은 자산이 되고, 이미 있는 것을 돌보는 일은 비용으로만 취급되기도 한다.
참으로 이상한 계산이다.
건물을 짓는 데 큰돈을 사용하면 투자라고 부르면서, 그 건물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아깝다고 여긴다.
새로운 사람을 모으기 위해 많은 돈을 쓰면서, 이미 함께하는 사람이 겪는 불편을 살피는 데는 인색할 때도 있다.
들어오는 문은 화려하게 만들고, 안에 들어온 사람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지는 잊는 것이다.
그러나 돌보지 않는 풍요는 오래가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만들어도 유지하고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 가치는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여기서 발전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발전은 새로운 것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이미 만들어진 가치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사람의 생활에 얼마나 오래 도움을 주는지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돌봄을 단순히 시설을 관리하는 기술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어느 날 오랜 벗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생각해 보자.
“별일 없지?”
“응, 별일 없어.”
아주 짧은 대화다.
무슨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정보가 오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관계는 거창한 사건으로만 깊어지지 않는다.
평범한 날의 안부, 어려움을 알아보는 눈길, 말없이 들어 주는 시간 속에서도 자란다.
우리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어려움이 커져야만 비로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웃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일이 괜찮은 것도 아니다.
한 번의 안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상태를 알아볼 기회는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돌봄이다.
다만 돌봄을 아름답게 말한다고 그 부담까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끝없는 희생을 요구하면서 우리는 가족이고 공동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돌봄에도 시간과 능력이 필요하다.
책임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필요한 지원을 마련하며, 돌보는 사람 역시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를 아름답다고만 칭찬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한 돌봄은 누군가를 끝없이 소모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계와 조건을 함께 가꾸는 일이다.
이 철학은 새로운 시장을 설계하는 데도 중요하다.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생산 구조를 생각해 보자.
회원이 가입하고, 가치가게가 개설되고, 상품이 판매되며, 교육이 진행되는 것은 의미 있는 시작이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가치가게를 이용하는 사람이 실제로 운영 방법을 이해하고 있는가.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는가.
사전예약구매에 참여한 사람은 필요한 진행 정보를 제때 안내받고 있는가.
교육을 마친 사람은 배운 내용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기회를 얻고 있는가.
에코 베이스를 찾은 사람이 다시 문의할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빠지면 새로운 참여를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해도 그 참여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KN541이 발전시켜야 할 시장은 단순히 사람을 모으는 시장이 아니다.
사람이 들어온 뒤에도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얻고,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그 경험이 운영과 생산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의를 접수하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처리 결과를 확인하며, 반복되는 불편을 찾아 시스템을 개선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작은 불편이 더 큰 문제로 번지기 전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고객을 붙잡아 두는 기술과는 다르다.
고객이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돌봄은 의존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이 더 편리하고 자율적으로 생활하도록 돕는다.
여기서 소비생산은 한층 깊은 의미를 얻는다.
생산 이전에 필요를 묻는 것만큼, 생산 이후에 그 필요가 실제로 충족되었는지 살피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선이 다음 생산으로 보내는 답장이라면, 돌봄은 문제가 생기기 전부터 이어지는 대화다.
좋은 상품과 좋은 시장은 한 번의 거래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사람이 겪는 현실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지구사랑 역시 돌봄의 철학 없이는 완성되기 어렵다.
나무를 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심은 나무가 살아 자랄 수 있도록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친환경 상품을 만드는 일은 의미 있다.
그러나 실제 사용 과정에서 낭비가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환경문제가 커진 뒤 해결책을 찾는다.
그러나 가능한 피해를 미리 줄일 수 있다면 복구에 필요한 자원과 비용도 줄어들 수 있다.
지구사랑은 훼손된 자연을 되살리려는 노력인 동시에, 훼손을 줄이기 위해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살피는 태도다.
자연은 인간이 좋은 뜻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행동과 실제 결과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돌봄의 성과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단순히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관리가 훌륭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연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봄에도 점검 기준과 기록, 개선의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을 살폈고, 어떤 위험을 발견했으며, 필요한 조치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돌봄을 존중한다는 것은 막연한 헌신을 칭찬하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던 수고를 제대로 평가하고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는 앞서 숫자의 역설에서 천 그루를 심었다고 숲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제 그 숲을 이루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가치를 발견한다.
심는 사람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무를 심는 행사는 하루면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숲이 자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관계도, 시장의 신뢰도 그러하다.
처음의 열정으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책임 없이는 깊어지기 어렵다.
다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로 돌아가 보자.
아침이 되었다.
주민들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누군가는 출근했고, 누군가는 학교에 갔으며, 누군가는 장을 보러 나섰다.
버튼을 누르자 문이 닫혔고, 엘리베이터는 평소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은 아무런 감탄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당연함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정기적으로 기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날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고장도 없었고, 소동도 없었다.
사람들은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이제 그 평범함이 저절로 주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돌봄의 가치.
그것은 문제가 생긴 뒤에만 드러나는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다.
소중한 것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살피는 마음과 책임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의 가능성을 넓힌다.
그러나 이미 있는 것을 돌보는 사람은 그 가능성이 오래 지속되도록 돕는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새로 만들었는가를 물었다.
이제는 무엇을 끝까지 잘 지켜 냈는지도 물어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
어쩌면 그 하루가 누군가의 가장 훌륭한 성과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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