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마을에서 지구사랑 나무 심기 행사가 열렸다.
목표는 나무 천 그루.
현수막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였으며, 카메라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삽을 들었고, 누군가는 묘목을 옮겼으며,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행사가 끝나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축하합니다! 나무 천 그루를 심었습니다!”
성과는 눈부셨다.
참여 인원도 많았고, 행사 사진도 훌륭했으며, 결과 보고서에는 목표 달성률 100%라는 숫자가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물을 주고 돌보는 일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고, 일부 묘목은 심은 자리에 맞지 않아 시들었다.
한 아이가 어른에게 물었다.
“작년에 나무 천 그루 심었다면서요?”
“그렇지. 아주 성공적인 행사였단다.”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숲은 어디 있어요?”
어른은 잠시 말을 잃었다.
참으로 난처한 질문이었다.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나무 그늘은 없었다.
행사는 성공했는데 숲은 실패하고 있었다.
나무는 박수를 먹고 자라지 않는다.
기념사진을 비료로 사용할 수도 없다.
우리는 천 그루를 심었다는 숫자에 만족했지만, 정작 그 나무들이 얼마나 살아남아 자라는지는 충분히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숫자의 역설이다.
인간은 숫자를 사랑한다.
숫자는 명확하고, 비교하기 쉬우며, 복잡한 세상을 한눈에 보여 주는 듯하다.
매출이 늘었다.
회원이 증가했다.
방문자가 많아졌다.
상품을 더 많이 생산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숫자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기뻐한다.
그런데 한 가지를 자주 잊는다.
숫자가 커졌다고 반드시 세상이 좋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가게에서 하루 방문자가 두 배로 늘었다고 하자.
주인은 기뻐했다.
그런데 매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필요한 상품을 찾지 못했고, 구매한 사람들도 품질에 불만을 느꼈다.
방문자는 늘었지만 만족한 고객은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도 보고서에는 방문자 증가율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참으로 편리한 성공이었다.
잘된 것만 세면 언제나 성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숫자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숫자는 애초에 말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을 세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숫자를 많이 모으는 능력이 아니다.
무엇을 세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세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무엇을 했는가.
그 결과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변화가 실제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천 그루를 심었다는 것은 활동의 기록이다.
얼마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는 결과의 기록이다.
그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생태환경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는 더 긴 시간에 걸쳐 살펴야 할 가치다.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활동은 필요하다.
그러나 활동을 성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보고서가 훌륭하다고 현실까지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만족한다.
회의를 열었다.
교육을 진행했다.
홍보물을 배포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개설했다.
모두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 질문이 빠져 있다면 성과를 충분히 평가할 수 없다.
회의에서 무엇이 결정되었는가.
교육을 받은 사람의 이해와 행동은 달라졌는가.
홍보를 접한 사람은 필요한 정보를 얻었는가.
새로운 시스템은 실제 이용자의 불편을 줄였는가.
이 질문 앞에서 비로소 활동의 숫자가 현실의 의미를 얻는다.
생각해 보면 숫자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오히려 정확한 숫자는 막연한 주장보다 훨씬 정직하다.
문제는 자신에게 유리한 숫자만 골라 보여 주는 태도다.
가입한 사람은 세면서 떠난 사람은 세지 않는다.
판매한 상품은 세면서 반품된 상품은 살피지 않는다.
생산량은 자랑하면서 남은 재고는 숨긴다.
좋은 후기만 모으고 반복되는 불편은 지워 버린다.
그러고는 말한다.
“성과가 대단합니다.”
물론 대단할 수 있다.
다만 무엇이 대단한지는 다시 확인해야 한다.
시장의 성숙은 숫자를 버리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숫자를 더 정직하게 읽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서 제24테마에서 다룬 선택의 가치가 다시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좋은 선택을 하려면 무엇이 실제로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잘못된 숫자를 성과의 기준으로 삼으면 사람들은 그 숫자를 높이는 데 능숙해진다.
방문자 수만 중요하게 평가하면 방문자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가입자 수만 중요하게 평가하면 가입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
생산량만 중요하게 평가하면 더 많이 생산하는 데 집중한다.
문제는 그 숫자가 커지는 동안 정작 이루려던 목적은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측정하는 것이 목적을 대신 차지하는 순간, 사람들은 목적보다 숫자에 충실해지기 쉽다.
그래서 좋은 목표에는 좋은 질문이 따라야 한다.
많이 팔았는가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만족했는가.
많이 만들었는가를 넘어, 실제 필요한 만큼 만들었는가.
많이 참여했는가뿐 아니라, 참여가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가.
숫자는 행동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가치까지 판단하려면 그 숫자가 놓인 현실을 함께 읽어야 한다.
이것은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생산 구조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일반 이용자가 늘고, 가치가게가 개설되고, 사전예약구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소비생산 구조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가입한 사람이 실제로 필요한 가치를 얻고 있는가.
가치가게를 통해 소비자의 필요와 생산자의 상품이 제대로 연결되는가.
사전예약구매가 실제 수요를 확인하고 불필요한 생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
상품을 사용한 경험이 다음 생산의 개선으로 이어지는가.
참여가치의 기록과 정산은 확인 가능한 기준에 따라 운영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숫자가 단순한 성장의 장식이 아니라 시장 구조의 변화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소비생산의 목적은 사람을 숫자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의 필요와 경험이 생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회원 한 명은 보고서의 한 칸이 아니다.
필요를 가진 한 사람이다.
구매 한 건은 매출의 숫자만이 아니다.
그 상품이 자신의 생활에 도움이 되리라는 소비자의 기대이기도 하다.
그 기대에 제대로 응답할 때 거래는 신뢰가 되고, 신뢰는 다음 선택의 이유가 된다.
여기서 숫자가 놓치기 쉬운 또 하나의 가치가 드러난다.
사람의 삶은 모두 같은 단위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교육은 백 명이 참여해도 아무런 변화를 남기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한 사람이 배운 내용을 실천하여 주변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교육 인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회를 얻었는지와 그 기회가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숫자가 크다고 무조건 깊은 것도 아니고, 숫자가 작다고 무조건 하찮은 것도 아니다.
숫자는 규모를 보여 주지만, 의미는 관계와 결과 속에서 드러난다.
지구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친환경 상품을 몇 개 판매했는가.
환경 캠페인을 몇 번 진행했는가.
나무를 몇 그루 심었는가.
이런 숫자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실제 환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다.
불필요한 생산과 폐기물이 줄었는가.
제품의 자원 사용과 환경 부담은 개선되었는가.
심은 나무는 살아남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가.
좋은 의도를 숫자로 기록하는 일과 그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졌는지 검증하는 일은 다르다.
지구는 인간이 작성한 성과보고서를 읽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실제로 바꾸어 놓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이 얼마나 엄격한 평가자인가.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문장을 써도 지구는 감탄해 주지 않는다.
나무가 살아야 하고, 낭비가 줄어야 하며, 생산과 소비의 방식이 실제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구사랑은 선언보다 검증을 필요로 한다.
이제 처음의 나무 심기 마을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천 그루를 심는 것만큼 그 나무가 살아갈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음 해에는 계획을 바꾸었다.
심을 나무의 숫자를 먼저 정하지 않았다.
어떤 나무가 그 땅에 적합한지 살피고, 누가 돌볼 수 있는지 확인했으며, 물과 관리에 필요한 조건부터 마련했다.
심는 수량은 이전보다 줄어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념사진을 찍은 뒤에도 나무를 찾아갔다.
잎이 마르면 이유를 살피고, 자라는 모습도 기록했다.
행사의 성공보다 나무의 생존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몇 그루 심었어요?”
어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얼마나 잘 자라는지 함께 보자.”
그제야 숫자의 의미가 달라졌다.
천 그루라는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자라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숲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문명도 그렇다.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웠는가보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크게 시작했는가보다 무엇이 지속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았는가보다 그 사람들과 어떤 가치를 만들어 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발전의 실체가 보인다.
숫자의 역설.
그것은 숫자를 믿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만 믿지 말라는 이야기다.
측정할 것은 정확히 측정하되, 측정한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숲은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살아 자라는 나무들이 오랜 시간 서로의 자리를 지킬 때 숲이 된다.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문명도 마찬가지다.
성과표에 얼마나 많은 숫자를 채웠는가보다, 그 숫자들이 사람과 세상에 어떤 좋은 변화를 남겼는가가 중요하다.
천 그루를 심었다고 숲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그루가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사람들로부터 숲은 시작된다.
![[정봉수 칼럼] 수습근로자의 해고와 정당성 [정봉수 칼럼] 수습근로자의 해고와 정당성](https://blog.kakaocdn.net/dna/Z6RJw/dJMcacZpxdm/AAAAAAAAAAAAAAAAAAAAAB-0yKzQKdFnJTgFbqzXz1T36OT3AccdUkPHHI52aNo_/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93458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0qF%2BditovT5CeXaa9PQ0m8e8cEc%3D)
![[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24 테마, 선택의 가치,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미래를 결정한다 [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24 테마, 선택의 가치,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미래를 결정한다](https://blog.kakaocdn.net/dna/Iz2vH/dJMcahTLD6w/AAAAAAAAAAAAAAAAAAAAACyBgGVMUja9IaWKMdT1ULYXqPTk9QZa39yyOT_PCX4m/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93458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T%2FtpxpmH3VnqgTTdZbk49vKE6jo%3D)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CEO: AI 참모를 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CEO: AI 참모를 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https://blog.kakaocdn.net/dna/bWpgj5/dJMcaik2Btp/AAAAAAAAAAAAAAAAAAAAAJw08VQJvc1E-YR2Ab7307QCAxYp4parr-sCjlyiT9j_/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93458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AuEzdOU1s6wzPLDe8ogQ47QmITw%3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