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산책 같은 첼로, 운명을 응시하는 지휘
– 정치용과 박유신, 디토 오케스트라가 빚어낸 ‘가을의 마지막 노래’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은 모든 것이 절정을 향해 가는 계절이면서 동시에 소멸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나무는 가장 찬란한 빛깔로 마지막 잎을 물들이고, 바람은 한 계절의 기억을 데리고 저문다. 자연은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기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보낸다.
음악도 그러하다. 하나의 선율이 태어나고 절정에 이르렀다가 마침내 침묵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인간의 생애를 닮았다. 음악이 우리를 위로하는 까닭은 영원한 것을 약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한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때문일 것이다.
10월 24일 정오, 신세계 남산 트리니티홀에서 열린 2026 Saturday Concert 〈가을의 마지막 노래〉는 이러한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무대였다.
지휘자 정치용이 이끄는 디토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박유신이 함께한 이날 공연은 그리그의 〈마지막 봄〉, 슈만의 〈첼로 협주곡 a단조〉,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e단조〉로 구성되었다.
북유럽의 서정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내면으로, 다시 인간 존재의 비극적 깊이로 향하는 음악적 여정이었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음악적 어법을 지녔지만 하나의 정서적 지점에서 만난다. 끝나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그가 작별을 속삭였다면, 슈만은 마음을 고백했고, 브람스는 운명을 응시했다.
그리그, 마지막 봄에 건네는 조용한 작별
첫 곡은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의 〈두 개의 슬픈 선율〉 Op.34 중 제2곡 〈마지막 봄〉이었다.
노르웨이 시인 아스문 올라브손 비녜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을 현악 합주로 편곡한 작품이다. 원래 제목은 〈봄〉이었으나 이후 〈마지막 봄〉으로 바뀌면서 작품에 내재한 이별과 소멸의 정서가 더욱 선명해졌다.
봄은 일반적으로 탄생과 희망의 계절이다. 그러나 그리그의 봄은 다르다. 다시 돌아올 계절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에게는 마지막일 수 있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선율은 마치 오래된 편지를 천천히 펼쳐 읽는 듯했다. 화려한 극적 전개도, 감정을 과장하는 절규도 없다. 절제된 선율 속에서 삶을 향한 애착과 떠나야 하는 존재의 체념이 조용히 교차한다.
그리그는 비극을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선율을 통해 슬픔의 깊이를 드러낸다. 음악은 때로 침묵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마지막 봄〉이 남기는 울림은 죽음 자체의 공포가 아니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인간의 애틋한 시선이다.
우리가 계절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영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지나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리그의 음악은 조용히 일깨운다.
박유신의 첼로, 가을 산책처럼 깊어지는 내면의 노래
이어진 슈만(1810~1856)의 〈첼로 협주곡 a단조〉 Op.129는 음악회의 정서를 외부의 풍경에서 인간의 내면으로 옮겨 놓았다.
슈만은 1850년 10월, 뒤셀도르프 시절에 이 작품을 불과 2주 남짓한 기간에 작곡했다. 낭만주의 특유의 서정성과 불안, 열정과 고독이 한데 응축된 작품이다.
이 협주곡은 독주자가 현란한 기교로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전통적인 협주곡의 방식과는 거리를 둔다. 첼로는 하나의 인격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 악장은 쉼 없이 이어져 하나의 긴 독백을 형성한다.
이날 박유신의 첼로는 한적한 가을 숲길을 걷는 듯했다. 낙엽이 내려앉은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계절의 숨결을 듣듯, 그의 선율은 서두르지 않고 슈만의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낮은 음역에서는 오래 묵힌 그리움이 배어 나왔고, 높은 음역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한 고백이 가느다란 빛처럼 번져 나갔다.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음과 음 사이에 머무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짚어내는 연주였다. 특히 서정적인 선율에서는 슈만 특유의 내성적인 자아와 격정적인 자아가 교차하며, 첼로는 마치 한 인간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독백하는 듯한 울림을 남겼다.
슈만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그가 창조한 두 개의 상징적 자아,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이다. 오이제비우스가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자아라면, 플로레스탄은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자아를 상징한다.
박유신의 연주에서도 이 상반된 정서가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졌다. 부드러운 서정 속에 불안이 스며 있었고, 격정적인 선율의 이면에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 고독이 자리했다.
특히 느린 악장에서 첼로가 들려주는 내밀한 노래는 사랑의 고백이자 지나온 시간을 향한 회상의 언어처럼 다가왔다. 박유신의 첼로가 아름다웠던 것은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그 슬픔 곁을 조용히 걸어갔기 때문이다.
슈만은 생전에 이 작품의 관현악 초연을 듣지 못했다. 초연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60년에 이루어졌다. 자신의 음악이 훗날 어떤 목소리로 세상에 울려 퍼질지 알지 못한 채 악보를 남긴 작곡가.
그러나 예술은 창작자의 생애를 넘어 살아남는다. 한 인간의 내면에서 태어난 고백이 세월을 건너 타인의 가슴에서 다시 노래가 되는 것이다.
정치용의 지휘, 절도 속에 피어난 고귀한 운명의 선율
인터미션 이후 연주된 브람스(1833~1897)의 〈교향곡 제4번 e단조〉 Op.98은 이날 공연의 음악적 중심이자 사유의 종착점이었다.
1885년 완성된 이 작품은 브람스가 남긴 마지막 교향곡이다. 당시 52세였던 그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 작품에 응축했다.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에는 낭만주의의 뜨거운 감정과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미가 공존한다. 첫 악장부터 현악기가 들려주는 하행과 상행의 선율은 마치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쓸쓸하다.
그러나 그 쓸쓸함은 단순한 감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짧은 동기들이 치밀하게 발전하면서 거대한 음악적 건축물을 형성한다.이날 정치용의 지휘는 절도와 긴장 속에서 브람스의 장엄한 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의 지휘에서 두드러진 것은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는 절제와 음악의 구조를 꿰뚫는 선 굵은 해석이었다. 명확한 악구의 흐름과 관현악의 균형 속에서 브람스의 비극적 정서는 점차 밀도를 높여 갔다.
정치용은 감정을 무작정 분출하기보다 음악의 구조 속에서 그 깊이를 드러냈다. 선율의 흐름은 단호했으나 경직되지 않았고, 절제된 표현 속에서도 인간의 운명을 향한 묵직한 울림이 살아 있었다.
제2악장의 고풍스러운 선율은 사색의 깊이를 더했고, 제3악장의 힘찬 리듬은 잠시 생의 활력을 환기했다. 그러나 그 밝음조차 마지막 악장이 품고 있는 비극적 운명을 지워내지는 못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4악장의 파사칼리아였다.
브람스는 바로크 시대의 변주 원리를 활용해 여덟 마디의 주제를 바탕으로 30개의 변주와 코다를 이어가며 거대한 음악적 흐름을 완성했다.
정치용의 지휘 아래 반복되는 주제는 마치 운명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움직이는 듯했다. 동일한 선율이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인간의 발걸음처럼 다가왔다.
그는 그 운명을 감상적으로 풀어내지 않았다. 엄격한 형식과 절제된 표현 속에서 오히려 비극의 무게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절도 속에 피어난 고귀한 비애. 그 중심에는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선 굵은 선율이 있었다.
브람스의 마지막 악장은 위로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밝은 결말로 청중을 안심시키지도 않는다. 대신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비극을 예술적 질서와 형식 속에서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삶의 어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어둠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 그것이 브람스 음악의 위대함이며, 정치용의 지휘가 일깨운 음악적 품격이었다.
가을 산책 같은 첼로, 운명을 응시하는 지휘
이날 공연의 백미는 서로 다른 음악적 개성이 하나의 정서적 서사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박유신의 첼로가 가을 숲길을 홀로 걷는 한 인간의 내밀한 독백이었다면, 정치용의 지휘는 그 숲 너머로 펼쳐지는 거대한 운명의 풍경이었다.
한 사람은 마음의 깊이를 노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삶의 무게를 음악적 질서로 세웠다.
박유신의 첼로에서는 인간의 상처와 그리움이 들렸고, 정치용의 지휘에서는 그 모든 감정을 품고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기품이 느껴졌다.
그리그의 〈마지막 봄〉이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바라보았다면, 슈만의 〈첼로 협주곡〉은 그 유한한 존재가 품고 있는 감정의 복잡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은 그러한 인간의 삶을 보다 거대한 철학적 질서 속으로 끌어올렸다.
세 작품의 음악적 미학은 달랐지만, 그 차이가 오히려 공연 전체의 정서적 깊이를 형성했다.
그리그는 작별을 속삭였고, 슈만은 마음을 고백했으며, 브람스는 운명을 응시했다.
마지막 음표가 사라진 자리, 가을은 다시 노래한다
음악회가 끝나면 무대에는 침묵이 남는다.
조금 전까지 공간을 가득 채우던 선율은 사라지고, 청중은 저마다 다른 기억을 품은 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음악은 끝났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어떤 선율은 오래전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화음은 미처 건네지 못한 작별의 말을 되살린다. 또 어떤 음악은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슬픔을 조용히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그의 봄은 마지막이기에 더욱 아름다웠고, 슈만의 첼로는 불완전한 인간의 내면을 노래했기에 더욱 진실했으며, 브람스의 교향곡은 비극을 회피하지 않았기에 더욱 장엄했다. 가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무르익는다는 것은 단순히 풍요로워지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비워야 할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도, 청춘도, 계절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진다는 사실이 그 존재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한하기에 우리는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오래 기억하며, 더 아름답게 노래한다.
그리그의 쓸쓸함, 슈만의 고백, 브람스의 장엄함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끝나가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그 답을 음악은 말없이 들려준다.
마지막 음표가 사라진 자리, 가을은 비로소 가장 깊은 노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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