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22 테마, 책임의 가치, 모두의 일이 아무의 일이 되지 않게 하라

[정차조 칼럼] 출판 책 중심 테마 100선_제22 테마, 책임의 가치, 모두의 일이 아무의 일이 되지 않게 하라

▲사진=정차조 (주)KN541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마을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의논했다. 누구나 찬성했고, 모두가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포스터는 아름다웠고, 무대에는 꽃이 놓였다. 손님들도 제시간에 도착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물었다.

“음향 점검은 누가 했습니까?”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다 같이 준비하기로 했잖아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정작 마이크를 점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협력이었다.

모두가 주인이었고, 아무도 담당자가 아니었다.

이것이 공동체의 역설이다.

함께하자는 말은 넘치는데 정작 해야 할 일 앞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누군가 하겠지.”

그 누군가는 참으로 바쁜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조직과 공동체에서 가장 많은 일을 맡고 있지만 정작 만나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름도 없고, 연락처도 없으며,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곧잘 그에게 맡긴다.

그러고 일이 잘못되면 놀란다.

“도대체 왜 아무도 안 했어?”

모두가 누군가를 믿었기 때문이다.

좋은 뜻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러나 책임이 없으면 그 뜻은 현실이 되지 못한다.

아름다운 선언만으로 마이크가 켜지지는 않는다.

좋은 마음만으로 상품이 만들어지지도 않고, 약속한 일이 저절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준비하고, 누군가는 확인하며, 누군가는 끝까지 결과를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책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책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잘못했을 때 혼날 사람부터 떠올린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잘못했는지 찾고, 일이 어긋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논의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책임을 맡기보다 피하는 데 익숙해진다.

누구도 혼나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의 본래 가치는 잘못한 사람을 찾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하고, 그 일을 끝까지 완수하며,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데 있다.

책임은 처벌의 이름이 아니라 신뢰를 지키는 행동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우스운 일이 벌어진다.

“이 일은 책임지고 해주세요.”

“그럼 이렇게 결정하겠습니다.”

“그건 먼저 허락받으세요.”

“필요한 비용을 집행하겠습니다.”

“그것도 승인받아야 합니다.”

“그럼 무엇을 결정할 수 있습니까?”

“일단 책임지고 진행하세요.”

참으로 신비로운 업무 방식이다.

책임은 맡겼는데 권한은 주지 않는다. 결과는 요구하면서 실행할 조건은 마련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 책임은 신뢰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사람은 일을 하기보다 허락받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마침내 책임지는 사람은 사라지고 결재를 기다리는 사람만 남는다.

책임에는 그 일을 실행할 권한과 필요한 조건이 따라야 한다.

권한에는 그 결과를 설명할 의무가 따라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완료 여부를 확인할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연결되지 않으면 공동의 목표는 쉽게 구호로 남는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규정과 보고서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이크 하나를 점검하는 데 보고서 열 장이 필요하다면 이미 어딘가 잘못되었다.

회의를 줄이기 위해 회의하고, 보고를 간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보고서를 만드는 세상에서는 절차가 목적을 삼켜 버린다.

기록은 일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보고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

제도는 사람의 행동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이 제도를 모시고 살아서는 안 된다.

좋은 시스템은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기 쉬우며,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책임은 업무를 나누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맡은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하자.

그때 우리는 물을 수 있다.

“왜 아직도 안 했습니까?”

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무엇이 어려웠습니까?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향하는 곳이 다르다.

첫 번째는 잘못을 확인하는 데 머무르기 쉽고, 두 번째는 해결의 문을 열 수 있다.

물론 이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무책임까지 덮어서는 안 된다.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면 미리 알려야 하고, 문제가 생겼다면 원인과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한 사람이 무조건 비난받는다면 사람들은 점차 문제를 숨기게 된다.

그렇게 조용해진 공동체는 평화로운 것이 아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진정한 신뢰는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제가 드러나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자란다.

여기서 평생의 동역자라는 말이 깊은 의미를 얻는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은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나 평생의 동역자는 같은 목적을 향해 각자의 몫을 실천한다.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위험한 곳을 살피며, 또 누군가는 뒤처지는 사람이 없는지 돌아본다.

모두가 똑같이 걸을 필요는 없다.

다만 서로의 걸음을 존중하면서 목적지를 잃지 않아야 한다.

앞서가는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뒤에 있는 사람이 길을 잃었다면 좋은 동행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의 눈치만 보며 제자리에 서 있는 것도 동행은 아니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공유경제 역시 그렇다.

소비자는 필요한 것을 말하고, 생산자는 기술과 노동으로 응답한다. 연결하는 사람은 정보를 제공하고, 운영하는 사람은 약속이 지켜지는지 살핀다.

역할은 달라도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중요하다는 말이 모두가 모든 일을 결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책임의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생산 구조에서도 이 원칙은 중요하다.

소비자의 필요를 먼저 확인하는 것만으로 좋은 상품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실제 생산이 가능한지, 품질은 적정한지, 가격과 일정은 현실적인지 검토해야 한다.

사전예약구매는 기대를 모으는 일이면서 동시에 지켜야 할 약속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질수록 책임도 선명해져야 한다.

참여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누군가는 경험을 나누며, 누군가는 실제 실행에 힘을 보탠다.

그 수고를 정당하게 인정하려면 어떤 기여가 있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수고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좋은 의도만으로 모든 성과를 인정해서도 안 된다.

가치가 공정하게 다루어질 때 참여는 신뢰로 이어진다.

지구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찬성한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선언도 그 자체로 쓰레기 한 봉지를 줄여 주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누군가는 생산 과정의 낭비를 개선하며, 누군가는 자원을 오래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구는 우리의 구호를 듣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달라진 행동의 결과를 통해 회복될 기회를 얻는다.

생각해 보면 문명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거창한 선언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약속한 시간을 지키는 일.

상품의 품질을 끝까지 확인하는 일.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

잘못된 결과를 외면하지 않고 바로잡는 일.

이런 평범한 행동들이 서로 연결될 때 공동체의 신뢰가 쌓인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이루려면 위대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세상에 더 필요한 사람은 자기 몫의 작은 약속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능력이 부족해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숨지 않는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꾸미지 않고, 약속을 지키기 어려우면 먼저 알리며, 잘못된 결과 앞에서 변명보다 해결을 생각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사람의 품격이다.

책임은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몫을 분명히 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며, 다른 사람의 역할도 존중하는 일이다.

진정한 동역자는 상대방에게 무조건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의 능력을 가장 바르게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신뢰가 자란다.

이제 처음의 음악회로 돌아가 보자.

첫 공연에서는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모두가 준비했다고 믿었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음악회에서는 준비 방식이 달라졌다.

한 사람이 음향을 맡고, 다른 사람은 무대를 준비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손님을 맞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각자 맡은 일을 확인했다.

드디어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의 약속이 제자리에서 지켜졌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한 책임이 아름다운 공연을 가능하게 했다.

책임의 가치.

그것은 누군가에게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일이 아니다.

서로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도록 자기 몫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꿈을 함께 꾸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한 행동이다.

공동체의 힘은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하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데 있다.

함께라는 말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말 속에 누군가의 희생만이 아니라 모두의 존엄과 각자의 책임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좋은 뜻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러나 그 뜻을 끝까지 지켜 내는 것은 책임이다.

그리고 책임이 신뢰와 만나는 순간, 함께라는 말은 비로소 현실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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