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삶이 어느덧 한 고비를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다시 ‘자신만의 노래’를 찾게 된다. 은퇴 이후 노래를 배우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래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노래는 삶의 리듬을 되찾는 호흡, 그리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치유의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젊어지고 한때의 자신을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11월 3일 17:00청담동의 작은 갤러리 ‘미쉘’에서 그 행복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공연의 시작은 가을을 여는 목소리로…
피아노·바이올린·오보에의 3중주가 감미롭게 공간을 감싸며 첫 무대가 열렸다.
소프라노 김숙영의 〈가을편지〉가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 위에
‘가을 냄새가 스며든 목소리’처럼 흐르자, 관객들의 마음도 함께 열렸다.
이어 소프라노 김경자, 김미현, 김정임의 호소력 있는 무대가 이어졌고,
공간은 점점 음악의 열기로 가득 찼다.
감성연주자 바리톤 이광석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열창과 연이은
바리톤 윤종국의 깊이 있는 음색이 더해지며 공연의 몰입은 더욱 깊어졌다.
공연은 가요,가곡, 오페라 아리아 ,영화음악까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중견 아마추어 성악가들을 이끄는 음악감독 유소영의 기획력이 돋보였다.
이삼 일 만에 혼자 뚝딱 프로그램을 완성해낸, 그야말로 마이다스의 손이었다.
•무대 위에서 빛난 순간들
〈O mio babbino caro〉 — G. Puccini
소프라노 윤인숙의 맑은 음색에 순수한 사랑의 고백이 투명하게 실렸다.
〈Vissi d’arte〉 — G. Puccini
“나는 사랑으로 살았고, 예술로 살았다.”
소프라노 김정임의 절절한 표현력은 삶의 간절함을 담아냈다.
〈Vecchia zimarra〉 — G. Puccini
바리톤 윤종국의 묵직한 진심이 오래된 외투의 체온처럼 따뜻했다.
〈Moon River〉 — H. Mancini
소프라노 김숙영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오드리 헵번의 은빛 강을 눈앞에 되살렸다.
그리고 내가 부른 곡
G. F. Handel — 〈Ombra mai fu〉
1738년 런던에서 초연된 오페라 〈Serse / Xerxes〉 중 아리아로,
페르시아 왕 세르세가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을 찬미하는 곡이다.
성악에서는 ‘옴브라 마이 푸’, 기악편곡에서는 ‘헨델의 라르고’라고 불린다.
이 음악은 과도한 힘으로 흔드는 것이 아니라,가사의 단조로움을 음악이 채우며 고요의 울림으로 선율과 음악으로, 메시아처럼 인간이 가진 가장 고요한 목소리로 연주하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공간이 만든 공명, 마음이 만든 울림 이야기…
후반 소프라노 전혜숙, 최금주 김미연의호소력있고 안정감있는 호흡 에너지로 열창으로, 이어지며 무대는 더욱 뜨겁게 살아났다.
갤러리 무대는 크지 않았지만, 그랜드피아노의 울림과 공간의 공명 덕분에 살롱콘서트 특유의 친밀한 에너지가 살아났다.
관객과 눈을 마주하며 속삭이듯 노래할 때, 숨결이 선율이 되어 공기 위를 부유하는 듯했다.
“정적인 수채화 같은 공간 속에서, 빗방울처럼 음악이 번져갔다.”
갤러리의 그림들은 오래된 기억의 풍경을 품고 있었고, 그 색채는 빛과 그림자를 머금어 관객들의 내면의 상실과 치유의 여정을 비추었다.
“바람은 스쳐가고, 남은 것은 빛의 그림자뿐. 그러나 그 그림자 속에도 따뜻한 온기는 있었다.”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나는 시간…
3년 전 함께 유럽 연수를 갔던 멤버들은 그때보다 훨씬 성숙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다시 깨달았다.
“예술은 나이를 잊게 한다.
그리고 노래는,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음악 속에서 신의 정원을 산책하듯 무대를 거닐었다.
가을밤, 인생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순간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진=미쉘 갤러리 공연 실황 무대 ⓒ강남 소비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