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며칠 전, 인터넷에서 다른 것을 찾다가 우연히 기사 하나에 눈이 멎었다. ‘한국인 기대수명 83.7세, 역대 최고’라는 제목이었다. 무심코 눌러 보니, 2024년에 태어난 아이는 평균 83.7년을 살고, 예순 살인 사람에게는 아직 23.7년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일흔 하나의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남은 햇수를 손으로 꼽아 보았다. 큰손주나 작은 손주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모습까지는 볼 수 있을까, 그러다 화면 아래쪽 작은 숫자에 눈이 멎었다. 아프지 않고 보내는 건강수명은 65.5년. 평균을 사는 사람이라면, 생의 마지막 열여덟 해쯤은 어딘가를 앓으며 지난다는 뜻이었다. 오래 사는 일과 잘 사는 일 사이에, 그렇게 긴 틈이 벌어져 있었다.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소원이다. 창세기에는 오늘의 상식으로는 닿기 어려운 인물들이 나온다. 므두셀라는 969년을,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고 적혀 있다. 누구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고, 누구는 고대인의 시간 감각이자 신앙의 상징으로 읽는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천하에 사람을 보냈다. 왕은 나라를 얻었지만, 죽음만은 끝내 그의 신하가 되지 않았다. 그 오래된 소원 앞에, 이제 새 이름이 하나 섰다. 인공지능이다.
사람들은 다시 묻기 시작했다. AI가 암을 더 일찍 찾고, 치매의 신호를 미리 읽고, 노화를 늦추는 약을 앞당긴다면, 인간은 100 살을 넘어 150, 200, 어쩌면 그 너머까지 살 수 있을까? 상상은 더 멀리 간다. 어떤 이는 몸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읽어 병이 오기 전에 막는 예방의학의 시대를 그린다. 어떤 이는 유전자 편집과 세포 재프로그래밍, 장기 재생으로 늙은 몸을 고쳐 쓰는 미래를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목소리와 글과 표정을 데이터로 모아 ‘디지털 분신’을 남기고, 같은 유전자를 가진 몸으로 갈아탈 수 있다고까지 한다. 낡은 집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하듯, 몸을 바꾸면 나도 계속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이 대목에서 독자의 눈은 멈춘다. 그러나 놀라움이 클수록 문장은 조심해야 한다. 과학적 가능성과 상업적 과장은 다르고, 디지털 아바타와 살아 있는 영혼은 다르다. 수명을 늘리는 기술은 가능성을 말하지만, 영생을 약속하는 순간 위험한 신화가 된다.
AI가 의료의 속도를 바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상의학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병변을 함께 찾아내고, 신약 개발에서는 수많은 후보 물질을 빠르게 추려낸다. 단백질 구조 예측은 연구의 시간을 크게 줄였고, 손목 위 작은 기기는 심박과 수면과 혈당을 기록하며 몸의 이상을 먼저 알린다. 예전엔 크게 무너지고 나서야 병원을 찾았다면, 이제는 데이터가 먼저 조용히 경고음을 울린다. 누군가에겐 그렇게 번 몇 해가 한 생애만큼 클 수 있다.
그러나 AI는 생명을 보조할 수는 있어도, 생명을 책임지지는 못한다. 의료 현장에서 AI는 전문가의 판단을 돕는 도구여야 한다. 한 사람의 병력과 가족력, 형편과 두려움, 외로움까지 함께 살피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세포를 다시 젊게 만드는 연구와 인간의 죽음을 정복하는 일은 같은 말이 아니다. 희망은 필요하다. 그러나 희망을 확정처럼 파는 것은 생명 앞에서 무례한 일이다.
디지털 영생도 그렇다. AI가 고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생전의 글을 배워 대답할 수는 있다. 남은 가족에게는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겨진 흔적의 재구성이다. 그 사람이 웃던 방식, 끝내 침묵하던 이유, 마음속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사랑까지 데이터가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기억을 저장하는 일과 영혼을 잇는 일은 다르다.
클론의 문제는 더 무겁다. 설령 나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생명이 태어난다 해도, 그는 나의 예비 몸이 아니라 또 하나의 존엄한 사람이다. 그에게 ‘내 생명을 늘리기 위한 그릇’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인간은 인간을 도구로 바꾸기 시작한다. 인간은 갈아 끼우는 부품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누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저장고가 될 수 없다.
신앙의 자리에서 보면 경계는 더 또렷하다. 기술이 말하는 생명연장과 믿음이 말하는 영생은 같은 말이 아니다. 영생은 죽지 않는 육체를 끝없이 붙드는 기술의 이름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넘어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는 희망의 언어다. 그러니 AI가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학으로도 신앙으로도 지나치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을 이기려는 오만보다, 주어진 날들을 더 잘 돌보는 겸손이다.
이제 처음의 숫자로 돌아온다. 83.7과 65.5, 그 사이에 끼인 열여덟 해. 그 틈이 내게 묻는다. 너는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이냐, 더 잘 살고 싶은 것이냐.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아직 모른다. 더 일찍 찾아내고, 더 정밀하게 고치고, 더 꾸준히 돌본다면 수명은 조금 더 늘 것이고, 먼 훗날에는 그 폭이 꽤 클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늘어나는 것은 시간이지만, 깊어지는 것은 하루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되려면 버티는 몸만으로는 모자라다. 외롭지 않아야 하고, 쓸모없다 느끼지 않아야 하고, 병상에 누워서도 존엄을 잃지 않아야 한다. AI는 약 먹을 시간을 일러줄 수 있어도, “당신은 아직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노년은 몸의 시간이기 전에 관계의 시간이다. 오래 산다는 건 더 오래 사랑할 기회를 얻는 일이면서, 동시에 더 오래 외로울 위험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말벗 AI가 곁에 늘어도 외로움이 저절로 걷히지는 않는다. 사람은 대답을 듣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또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I가 시간을 벌어준다면, 인간은 그 시간을 사랑으로 써야 한다. 이것이 이 칼럼의 결론이다. AI는 불로초가 아니다. 디지털 분신은 영혼이 아니다. 클론은 나의 예비 육체가 아니다. 그러나 AI가 질병을 조금 늦추고, 위험을 조금 줄이고, 가족과 작별할 시간을 조금 더 마련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도구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다.
언젠가 AI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우리의 몸을 읽어낼 것이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질문은 여전히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남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은 이것이다.
그 남은 시간을, 나는 누구의 곁에서 보낼 것인가?
참고자료
새만금일보, ‘한국인 기대수명 83.7세 역대 최고’, 2025년 12월 3일 16:25 (황승훈 기자) — https://www.smgnews.co.kr/254123 (모바일: https://m.smgnews.co.kr/254123
국가데이터처, 「2024년 생명표」, 2025년 12월 3일 발표 — 기대수명 83.7년, 유병기간 제외 건강수명 65.5년, 60세 기대여명 23.7년.
『성경』 창세기 5장 — 므두셀라 969년, 노아 950년의 장수 기록.
사마천, 『사기(史記)』 「진시황본기」 — 진시황의 불로초 탐색 기록(서복 파견).
Jumper, J. et al., “Highly accurate protein structure prediction with AlphaFold,” Nature 596 (2021): 583–589 — AI 단백질 구조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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