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어느 카페에서 신제품 커피를 개발하기로 했다.
주인은 고객 열 명을 초대해 의견을 물었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다섯 명은 뜨거운 커피를 원했고, 나머지 다섯 명은 차가운 커피를 원했다.
주인은 고민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절반의 고객이 실망할 것 같았다.
그때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평균을 내면 되겠군!”
마침내 새로운 커피가 탄생했다.
미지근한 커피였다.
주인은 만족했다.
뜨거운 커피를 원하는 사람과 차가운 커피를 원하는 사람의 의견을 공평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음 결과는 참담했다.
뜨거운 커피를 원한 사람들은 말했다.
“커피가 식었네요.”
차가운 커피를 원한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스커피가 왜 미지근합니까?”
열 명의 의견을 빠짐없이 반영했다.
그런데 만족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참으로 위대한 민주적 커피였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절반씩 반영했더니 모든 사람이 온전히 불만을 갖게 된 것이다.
주인은 억울했다.
“분명히 고객의 의견을 듣고 평균까지 계산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문제는 계산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평균을 내서는 안 되는 것을 평균 냈기 때문이다.
이것이 평균의 역설이다.
우리는 평균을 사랑한다.
평균 소득, 평균 매출, 평균 만족도, 평균 이용시간, 평균 구매금액.
복잡한 세상을 숫자 하나로 정리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사람 열 명의 이야기를 일일이 듣지 않아도 평균 하나면 보고서가 완성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평균은 올라갔는데 불편하다는 사람이 늘어난다.
평균 매출은 증가했는데 문을 닫는 가게가 생긴다.
평균 만족도는 높아졌는데 다시 구매하지 않는 고객도 있다.
물론 이런 현상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평균이 전체의 모습을 요약할 수는 있어도 각자의 현실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평균은 통계의 중심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인간의 중심은 아니다.
한 사람은 배가 고프고, 다른 사람은 이미 배부르다.
두 사람의 식사량을 평균 냈다고 배고픈 사람의 허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는 너무 높은 계단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불편이 없는 계단이다.
평균적으로 이용할 만한 건물이라는 평가가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출입할 길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평균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평균만으로 판단하면 중요한 차이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숫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숫자에 맞추려고 사람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기묘한 문명인가.
신발을 만들 때도 그렇다.
발 크기가 240밀리미터인 사람과 280밀리미터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평균은 260밀리미터다.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260밀리미터 신발을 신기면 공평할까.
한 사람에게는 너무 크고,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 작다.
통계는 정확할 수 있지만 신발은 불편하다.
그런데 우리는 시장에서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하나의 평균적 소비자로 묶고, 그 평균을 기준으로 상품을 만든다.
그다음 실제 소비자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고객에게 맞추어 설계했는데 왜 불편하다는 거죠?”
그 사람에게는 그 상품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간단한 대답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평균적인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사람들이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지고 있는가.
그 차이 가운데 반드시 존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공통으로 만들고, 어디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여기서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좋은 시장은 모든 사람에게 서로 다른 상품을 무한정 만들어 주는 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고, 오히려 생산비와 재고, 자원 낭비를 늘릴 수 있다.
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상품만 강요하는 시장도 좋은 시장이라고 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이해한 뒤 합리적인 공통점과 필요한 선택지를 구별하는 능력이다.
안전과 품질의 기본 기준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크기와 맛, 사용 방식과 편의성은 실제 수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표준은 필요하다.
다만 표준이 사람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도구인지, 사람을 표준에 억지로 맞추기 위한 규칙인지 구별해야 한다.
표준이 사람의 삶을 도와야지, 사람이 표준을 모시고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앞선 제29테마에서 번역의 가치를 살펴보았다.
소비자가 생활의 언어로 말한 필요를 생산자가 설계의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경청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하나의 평균으로 뭉개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열심히 들었지만 정작 아무도 원하지 않은 상품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소비생산의 다음 질문은 분명하다.
누구의 필요를 생산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가.
그리고 서로 다른 필요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연결할 것인가.
여기서 KN541이 지향하는 소비생산 구조의 의미가 한층 구체화된다.
기존의 대량생산은 일정한 수요를 예상하여 상품을 먼저 만드는 방식에 익숙했다.
표준화는 원가를 낮추고 많은 사람이 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전이었다.
우리는 그 성취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비자의 필요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채 생산수량과 상품 사양을 결정하면, 팔리지 않는 재고와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동시에 생길 수 있다.
공장에는 상품이 남아 있는데 시장에는 필요한 상품이 부족한 것이다.
참으로 풍요로운 결핍이다.
상품은 넘치는데 원하는 상품은 없다.
공장은 열심히 만들었고, 소비자는 열심히 찾는다.
그런데 두 사람은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생산 이전의 정보가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KN541이 새로운 건강 믹스커피를 개발한다고 생각해 보자.
소비자에게 단순히 커피를 좋아하는지 물으면 충분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달지 않은 커피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부드러운 맛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커피 향이 진해야 만족한다.
어떤 사람은 원료와 성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때 모든 의견을 한데 섞어 평균적인 맛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달지도 않고, 향도 약하고, 부드럽지도 않은 어중간한 커피가 탄생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각자 원하는 바를 말했는데 제조사는 누구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맛을 만들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수십 가지 커피를 생산해야 할까.
그것도 답은 아니다.
실제 수요를 구분하여 확인하고, 충분한 공통 수요가 있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
시제품을 통해 맛과 품질을 검증하고, 제조원가와 적정 생산수량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서로 다른 선호를 반영한 소수의 제품군을 검토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사전예약구매는 실제 구매 의사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예약이 많다고 제품의 품질이 검증된 것은 아니며, 선호가 존재한다고 반드시 경제적인 생산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수요 확인과 품질 검증, 생산 가능성은 각각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품을 먼저 정해 놓고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의 필요를 확인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며, 실현 가능한 생산조건을 찾는 것.
소비가 생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소비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 사람의 선택은 하나의 생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비슷한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면 새로운 생산의 가능성이 열린다.
혼자서는 제조하기 어려웠던 상품도 충분한 수요가 확인되면 생산을 검토할 수 있다.
이것이 소비생산에서 연결의 경제적 가치다.
사람을 평균에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실현할 수 있는 필요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조건 개인에게 맞춘 상품만 만들자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한 사람에게 맞추느라 나머지 아홉 사람에게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시켜서도 안 된다.
반대로 다수에게 편리하다는 이유로 소수의 기본적인 접근 가능성과 안전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좋은 시장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공통으로 지켜야 할 기준은 분명히 하고, 필요가 다른 부분에서는 선택할 여지를 만드는 것.
그것이 획일성과 무한한 맞춤 생산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다.
여기서 지구사랑의 철학도 새롭게 보인다.
친환경 상품을 많이 만든다고 반드시 환경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수요와 맞지 않는 상품을 잔뜩 생산해 놓고 재고를 처분한다면 원재료와 에너지, 운송과 보관에 사용된 자원이 낭비될 수 있다.
그러므로 환경을 위한 생산에는 좋은 원료를 사용하는 일뿐 아니라 얼마나 필요한 상품을 얼마나 적절하게 만들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사람의 필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지구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사랑은 사람에게 불편을 참으라고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사람의 필요와 지구의 한계를 함께 고려하여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이것이 생산소비 구조를 소비생산 구조로 전환한다는 철학의 중요한 의미다.
그런데 평균의 역설은 시장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공정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모두에게 똑같이 대하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모두에게 같은 신발을 지급했다고 모두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같은 설명을 했다고 모두가 같은 정도로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평등한 존중과 획일적인 대우는 구별해야 한다.
사람의 존엄은 똑같이 존중하되, 필요한 도움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이것은 특혜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다른 출발점과 조건을 살펴 실질적인 참여의 기회를 넓히자는 이야기다.
좋은 공동체는 사람들을 하나의 모양으로 깎아 맞추지 않는다.
서로 다른 능력과 경험이 제자리를 찾도록 돕는다.
생각해 보라.
세상 모든 나무가 같은 높이로 자라야 한다면 숲은 얼마나 우스운 모습이 되겠는가.
큰 나무는 키를 줄여야 하고, 작은 나무는 억지로 늘어나야 한다.
나무마다 필요한 빛과 물, 자라는 속도와 형태가 다른데 우리는 평균 높이를 정해 놓고 모두 거기에 맞추려 한다.
그것은 숲을 가꾸는 일이 아니라 숲을 자로 재단하는 일에 가깝다.
물론 나무를 돌보는 데에도 공통의 원칙은 필요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존재의 차이까지 없애려 한다면 풍요로운 생태계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은 무질서와 같지 않다.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원칙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공통의 목적을 지키면서 서로 다른 가능성이 살아날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평균을 중심으로 시장을 설계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평균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실제 생활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평균은 버려야 할 숫자가 아니다.
다만 평균이 알려 주지 못하는 차이를 다시 살펴야 한다.
이제 처음의 카페로 돌아가 보자.
주인은 미지근한 커피 열 잔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고민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반영했는데 왜 모두가 불만이었을까.
그러다 깨달았다.
사람들은 평균적인 커피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다섯 명은 따뜻한 커피를, 다섯 명은 차가운 커피를 원했다.
다음 날 주인은 메뉴를 다시 정리했다.
따뜻한 커피와 차가운 커피.
복잡한 기술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발명품이 등장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 다른 필요를 구별했을 뿐이다.
손님들은 각자 원하는 커피를 주문했다.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고객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 것 같네요.”
참으로 놀라운 혁신이었다.
평균을 없앤 것이 아니라 평균 뒤에 가려져 있던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제30테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숫자를 사용하는가.
아니면 숫자에 맞추기 위해 사람을 바꾸려 하는가.
평균의 역설.
그것은 통계를 믿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통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의 삶까지 보라는 말이다.
열 사람의 의견을 평균 냈다고 열 사람의 필요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좋은 시장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상품을 내놓고 만족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필요를 이해하고, 실현 가능한 선택을 마련하며, 그 결과가 실제로 사람의 생활을 나아지게 했는지 확인한다.
그것이 소비생산의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균적인 소비자를 위해 상품을 만들어 왔다.
이제는 평균 속에 가려진 실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숫자는 시장을 설명하는 도구다.
그러나 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숫자가 아니다.
사람이다.
커피는 평균을 마시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마시라고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 역시 평균적인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이다.
평균을 계산하는 능력은 기술이다.
평균 뒤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능력은 지혜다.
우리가 열어야 할 새로운 시장은 그 지혜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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