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극장 벗어난 창조 공간의 생성이 필요하다
탁계석(케리커쳐) : K-Classic 회장
열린 눈이 열린 세상을 만든다
우린 극장에 가는 습관이 없어요. 극장에서의 음악회라는 것도 설명을 들어야 겨우 이해가 가는 겁니다. 프로그램에는 독일어, 프랑스, 이태리 등 원어 투성이니 전문가도 해독이 쉽지 않지요. 이걸 수준이라 말할지 모르겠으나, 시민의 생활에 반영되기는 한계가 있죠.
아티스트가 자기 관객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요? 티켓사는 자기 팬 말입니다. 예외는 있죠. 엄청난 전파 소비로 만들어진 방송 스타. 그러나 반짝 스타이기 쉽죠. 전파의 힘이 사라지면 이내 화려한 순간은 공허가 될 수 있거든요. 긴 레이스에서 보면 당황하고 길을 잃죠.
코로나19가 가져올 사회의 대변혁이 뭘까요? 준비해야죠. 좁혀서 공연과 예술, 앞으론 실내 공연장보다는 야외가 좋고, 풍광이 좋은 곳에서 예술을 접하는 공간의 이동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여행은 다 좋아하니까.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 수백, 수천명 공연장보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문화로 바뀔 것 같지 않나요? 동호인 문화의 급신장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니까 축약하면 ‘날마다 소풍’은 ‘아츠 포커싱’(Arts focusing)이죠. 다양한 예술과 소비자를 집중시켜 관광 명소나 전시, 공연의 가교 역할입니다. 일상을 떠나 발견하는 것의 묘미를 한 차원 높인 것입니다. 인생과 삶의 여정에 예술이 얼마나 소중한가. 말보다 체험이죠. 변화를 꿈꾼다는 것의 실행이고요.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고, 인구의 1/3 죽으면서 르네상스가 온 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공포에서 인간이 찾은 피난처가 예술이니까요. 하루하루 최고의 날을 살자. 이 자각(自覺)이 문예부흥의 바탕을 이루었고, 예술을 아는 후원자들이 예술 투자로 자기의 삶을 승화시킨 것이니까요. 예술이 최고 정점이기에 이를 나누는 것이 예술 후원아닙니까. 못배운 김밥할머니가 전재산을 대학에 기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출발해 우리식 문화 르네상스 만들어야
예술의 후원은 모르고서는 결코 일어 날수 없죠. 우리사회에 예술기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 황무지가 넓다는 것이죠. 이걸 ‘소풍’이란 키워드로 하나씩 풀어가고 개척해 나가려는 겁니다.
▲사진=예필의 음악, 미술과 영화, 시, 예술교양총서 ⓒ강남구 소비자저널
예술은 후원이 없으면 좋은 작품이 안나오죠. 예술가가 지치고 병들면 거기서 받는 에너지에서도 곰팡이 냄새가 날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후원만 기다리면 죽죠. 아티스트도 이런 상황에선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가만 앉아서 불러주기만 기다리면 갈등이 상처가 되고 좌절합니다. 표도 안팔리는데 개런티 받을 자존심만 세운다면 타이밍만 놓치는 것이죠. 살아있는 공간으로의 이동에 예술가도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예술은 재생산되는 공산품과 다른것이니까, 실존에 대한 생각을 잘해서 주변을 가꾸어 가야 합니다. ‘카톡 뿌리기’도 문화를 전파하는 새로운 방식이니까, 이걸로 주변 문화가꾸기를 하는 겁니다. 한 방에 되는 게 아니라 이슬에 옷 젖는 방식입니다. 그래야 하나라도 건지게 되죠.
물론 유럽은 중세 교회가 엄청나게 강했고 그래서 그 안에서 클래식이 뱃속에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이죠. 그게 왕과 귀족으로 넘어 갔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만 보는데 익숙해서 다른 쪽을 안보거든요. 안보는 것을 보는 것이 변화가 아닙니까?
예술이 영혼을 치유하는 최고의 의사입니다.
그렇지만 유럽사회는 어마한 메세나로 문화유산을 남겼죠. 최근의 ‘이건희 컬렉션’ 역시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가치인 예술을 공유하려는 정신입니다. 인생은 소멸하지만 이런 게 정말 훌륭한 정신이죠.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것도 좋지만 인생이 그걸 뛰어 넘어 있어야죠.
‘날마다 소풍’은 그 좁은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어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던 강한 노동과 억압의 세월,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세대의 찌든 일상이 하루만의 위안이었던 것을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립니다.
바야흐로 4차원의 메타버스. 우리네 삶이 전과 같을 수야 없겠지요. ‘시선(視線)의 높이가 삶의 높이’ 란 철학자의 말이 떠오르는 요즈음입니다. 힘겹게 고통의 언덕을 오르고, 생존 벼량끝에서 소풍이 자칫 사치로 보일 수 있겠으나, 쉼 없이는 창조가 솟아나지 않기에 지친 몸과 정신부터 치유에 나서려는 겁니다. 어린왕자가 어린이 동화책이 아닌 것은 순수성을 잃지 않은 눈과 귀가 어른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월드 뮤직 미술과 영화와 시를 만나다’ 가까이 두면 정말 좋은 책
예술을 강건너 보다, 더 까마득하게 멀리 두는 이가 있다면 우선 예필 작가의 ‘월드 뮤직 미술과 영화와 시를 만나다’ 부터 일독하기를 권합니다. 저자가 10년에 걸쳐 쓴 책으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고, 특히 QR코드로 동영상, 음원, 그림까지 볼 수 있는 예술총서입니다. 세계 각 나라의 민속 음악과 그 뿌리에서 변이되어가면서 예술이 융합해 가는 이동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을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가까이 두고 보면 예술 친구로 길라잡이할 좋은 책입니다. 필자도 감탄하며 보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계산없이 떠나고 보는 순발력, 혼돈의 상황에서 내적 질서를 만들어 내는 지성과 예술의 동반, ‘날마다 소풍’이 출발하는 이유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ᆢᆢ-천상병 시인-
▲사진=찰리포토테라피스트 제공 ⓒ강남구 소비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