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헌법 제33조 제1항을 보면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근로자는 이와 같은 노동3권을 헌법을 통해 기본권으로 보장받고 있다. 또한, 이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동조합법이 제정되였다. 그러나, 하나의 사업장에 하나의 노동조합(이하 ‘노조’)만 인정되다 보니 노동3권의 행사가 제한을 받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가 개별 사업장에서 허용 되었고, 이 복수노조제도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함께 다수노조의 공정대표의무를 명시하였다(노조법 제29조의2, 제29조의4). 교섭창구 단일화제도의 목적은 복수노조가 사용자와 노사협상에서 단체교섭을 하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즉 노조 상호 간의 반목과 동일한 사항에 대해 같은 내용의 교섭을 반복해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노무관리상의 어려움, 노조 소속에 따라 근로조건이 달라지는 점 등의 문제점을 예방하는 데에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통해 과반수 노조가 단체교섭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 소수 노조는 교섭권이나 노조의 권리 행사가 제한되어 노조로 존립 자체가 힘들어 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교섭대표노조의 공정대표의무가 도입되었고, 이로써 소수 노조도 노조의 역할과 권한의 행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기존 몇 개의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사업주 주도의 다수노조가 설립되었고, 이로 인하여 단체교섭의 지위를 잃은 기존의 노조가 무력화 되었던 사례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상 복수노조 시대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와 함께 공정대표의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발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지난 10년 동안의 관련판례를 통해 그간 우리 법원의 공정대표의무의 판단기준과 구제의 실효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공정대표의무의 주체, 범위, 입증책임>
1. 주체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 또는 그 조합원 간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노조법 제29조의4).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이다. 여기서 교섭대표노조가 공정대표의무를 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사용자도 교섭대표노조와 함께 공정대표의무(차별금지의무)를 부담한다. 그러나 사용자 단독으로 공정대표의무를 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파생된 소수노조가 교섭대표 노조에 대한 권리자이기 때문이다. 공정대표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신청인은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가한 소수 노조이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가하지 않은 노조는 제외된다.
2. 범위
공정대표의무의 내용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 간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공정대표의무는 단체교섭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의 내용 뿐만 아니라 단체교섭의 과정에서도 준수되어야 한다.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단체교섭 과정에서 소수노동조합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공정대표의무를 절차적으로 적정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에 관한 정보를 소수노동조합에 적절히 제공하고 그 의견을 수렴하여야 한다. 단체교섭 과정에서 다수노조에게는 재량권이 인정되지만, 교섭대표 노조가 이러한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함으로써 소수노조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경우에는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것이 된다.
단체협약의 내용에서 공정대표의무와 관련해 문제되는 것들은, ①조합원 범위, 가입 대상, 자격, ②근로시간 면제한도 및 면제자 전임자 대우, ③유니온 숍 문제 등이며 조합 활동과정에서 문제시 되는 것들은, ①조합비 공제, ②유급 조합활동 인정요건, ③노사협의회 위원 선정, ④노조 사무실, ⑤노조 게시판 등 편의 제공이다. 단체교섭 과정에서 문제되는 것들은, ①교섭 요구안에 대한 의견수렴, ②교섭경과 및 교섭결과의 통지 설명, ③교섭의제 선정 문제 등이다.
3. 입증책임
누구에게 입증책임이 있는가에 따라서 소송의 유불리가 나누어진다. 일반적으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지게 된다. 그러나 공정대표의무의 입증책임에 대해 대법원은 “교섭대표노동조합이나 사용자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다른 노동조합 또는 그 조합원을 차별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그와 같은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점은 교섭대표노동조합이나 사용자에게 그 주장–증명책임이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노조법 제29조의4에 따라서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소수노조에 지는 공정대표의무를 법규정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입증책임은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에게 있다고 판단하였다.
<공정대표의무 사례별 판단기준>
공정대표의무의 위반여부에 대해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은 주로 노조 사무실제공, 유급조합시간 배정문제, 소수노조의 차별문제 그리고 단체교섭 체결 과정에서 있어 차별에 대한 구제신청으로 이루어 진다.
1. 노조 사무실 제공
사용자가 별도의 사무실을 노동조합에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의무는 없지만, 이는 노동조합의 존립과 발전에 필요한 일상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이 가지는 중요성이 있다. 사용자가 교섭대표노조에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한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다른 노동조합에게도 반드시 일률적이거나 비례적이지는 않더라도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노동조합 사무실로 제공하여야 한다. 여기서 소수노조에 제공하는 노조 사무실의 크기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비례원칙이 적용되지만, 노조 사무실이 현저히 협소하여 노조활동에 지장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대한 구제사건에 있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내용은 소수노조는 조합사무실을 제공하지 않고 다수노조만 노조 사무실을 제공하였거나, 원거리에 제공하여 조합활동에 지장을 주거나, 현저히 작은 사무실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다.
2. 근로면제시간의 배분
근로면제시간 배분에 관련해서는 원칙적으로 조합원 수에 따른 비례의 원칙이 적용된다. 다만, 교섭대표노조가 단체교섭과 관련된 활동이나 노사협의회 참석 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범위에서 근로시간면제 배분에 있어 시간을 조금 더 부여하는 것은 정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를 소수노조에는 전혀 배분을 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적게 부여하는 것은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다.
근로시간 면제제도는 사업장 종사자들인 조합원 수를 고려하여 법적 한도내에서 단체협약으로 정해져 있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 지정된 조합원은 임금의 손실 없이 사용자와의 협의, 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활동 등의 조합활동과 노동조합 관리 업무에 전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노조법 제24조). 이 경우 2000시간을 기준으로 1명의 전임자가 1년 동안 조합활동에 개인의 전체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허용된 시간 만큼 전임자의 숫자가 결정된다.
조합활동 시간보장에 있어, 신입사원 교육시간을 교섭대표노조에게 50분, 소수노조에게 10분을 배분한 조치는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다. 이는 소수노조에 할당한 단, 10분이라는 시간은 노동조합 홍보 및 가입 안내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짧고, 신입사원도 정상적인 조합 가입 판단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3. 근로조건에 관한 소수노조의 차별
조합 사무실제공이나 근로면제시간 외에도 단체협약의 해석이나 이행 과정에서 다양한 차별이 있을 수 있다. 단체협약에 명시적으로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교섭대표노조에게만 적용한다는 규정을 두거나 소수노조의 조합원은 적용을 배제한다는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① 단체협약에 노조 창립기념일을 유급으로 보장하면서 교섭대표노조의 창립기념일만 인정하는 사례 ② 소수 노동조합 대하여 교섭대표노동조합과 다르게 게시판을 제공한 행위는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한 것으로서 공정대표의무위반에 해당한다. 교섭대표노조에게는 모니터를 이용한 전자게시판을 제공하고, 소수노조에게는 일반 게시판을 제공한 경우, ③ 복지기금, 해외연수 경비, 학자보조금을 교섭대표노동조합에게만 지급한 사례는 모두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다.
4. 교섭 과정에 있어서의 차별
단체교섭은 교섭요구안의 준비, 교섭과정, 교섭을 통한 합의안 도출,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총회를 통한 내부승인 절차, 단체협약 체결의 체결순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교섭대표노조는 교섭요구 작성시 소수노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단체교섭 과정에 대한 진행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여야 한다. 단체협약 잠정합의안 도출시에는 그 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에 대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여기서 교섭대표노조의 단체교섭과 체결에 관한 재량이 인정되지만, 교섭요구안 준비시 소수노조에 대한 정보제공이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인정하고 있다.
<공정대표의무 위반시 시정절차>
1. 구제신청의 당사자
공정대표의무 구제신청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가한 소수노동조합이 된다. 교섭단일화 절차에 참가하지 않은 노동조합은 신청인 될 수 없다. 교섭창구 단일화에서 결정된 교섭대표노조를 구제신청의 상대방으로 하기 때문에 사용자 일방은 상대방이 될 수 없고,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동시 또는 교섭대표노조만이 그 상대방이 될 수 있다.
2. 제척기간
소수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가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하여 차별한 경우에는 그 행위가 있은 날(단체협약 체결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그 시정을 요청할 수 있다(노조법 제29조의4, 제2항). 단체협약에 기재된 차별내용에 대해 구제신청은 체결일로부터 3개월이내에 제기하여야 하고, 기간이 지나면 제척기간 경과로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3. 구제의 절차와 실효성 방안
노동위원회는 소수노조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의 구제신청을 받은 경우 60일간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주장을 들은 뒤, 심문회의를 개최하여 비합리적인 차별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구제명령 또는 기각결정을 내린다. 구제명령에 불복이 있는 경우에는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고,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결정에 불복이 있는 경우에는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재심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명령이나 결정은 확정된다.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확정된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노조법 제89조, 제29조의4제4항).
공정대표의무는 소수노조가 교섭채널 단일화 절차를 거치면서 독자적인 교섭권은 상실 하였지만, 소수노조 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면서 노동조합으로서 실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다.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교섭대표노조는 시정명령을 받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이러한 공정대표의무 조항을 통해 소수노조가 생존할 수 있고 소수노조 조합원의 권익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조합활동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 복수노조의 시대에 소수노조는 공정대표의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노조와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