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갱신기대권(Chat GPT 생성) ⓒ강남구 소비자저널
[강남구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는 1997년도 IMF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정리해고법과 파견근로법의 도입으로 무분별하게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기간제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을 제한하고 가급적 정규직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비정규직 보호법인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기간제법”)이 제정되었다. 비정규직 보호를 위하여 2007년부터 시행된 기간제법은 기간제근로자를 최대 2년동안 사용할 수 있고, 이 기간을 초과할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4조). 이 규정은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을 제한하고, 기간제 계약직원이 반복 갱신되어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화로 유도하여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기간제법 제4조에는 분명히 2년 이내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화되어 있고, 2년 제한 규정의 예외대상을 별도로 정하고 있다. 갱신기대권은 기간제 근로계약에 갱신 조건을 가진 근로계약 등이 있거나, 기간제 근로자에게 갱신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경우에는 기간제 2년 사용제한의 예외 대상인 전문직종 근로자나 고령자의 경우에도 모두 인정되고 있어, 사업 현장에서 혼란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에 대해 갱신기대권과 관련된 법령, 판례내용, 갱신거절의 합리적 사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기간제법의 기간제한과 갱신기대권>
기간제법 제4조는 기간제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 이유는, ① 구 근로기준법 제16조에 근로계약기간을 정하는 경우는 1년을 상한으로 하고 있으나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을 통한 총 사용기간에 대하여는 아무런 제한이 없어서 사용자들이 1년 이내의 근로계약을 반복 갱신함으로써 근로기준법 제23조의 해고 제한 규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여 왔고 이에 따라 기간제근로자의 규모가 증가하게 되었으며, ② 법원이 계약기간 만료 시 고용관계가 자동 종료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근로계약이 수차례 반복 갱신된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 계약 관행, 당사자의 의사, 갱신에 대한 기대가능성, 직무특성 등 다양한 사정들을 고려함에 따라 실무상 근로자가 승소하기가 쉽지 않고 사례별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하는데 있다. 기간제법 도입 이후에는 근로계약이 수차례 반복되더라도 2년을 한도로 정하여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다툼이 없어지게 되었다. 다만, 기간제 근로계약 등에 있어 갱신에 대한 조건을 설정하였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계약의 갱신에 대해 신뢰관계가 성립된 경우 인정되는 갱신기대권은 기간제법 도입 이후에도 계속 효력을 가지고 있다.
갱신기대권은 기간제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판례에서 일관적으로 인정되어온 권리로 기간제법 제4조의 부속조항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갱신기대권’이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으나 근로자에게 계약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계약갱신을 거절한다면 부당해고와 같이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는 판례법리이다.
대법원은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경우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의 근로계약은 그 기간이 만료함에 따라 사용자의 해고 등의 별도의 조치를 기다릴 것이 없이 당연히 종료된다. 그러나 ①예외적으로 당초 정해진 기간이 장기간에 걸쳐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 ②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으로 기간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나 ③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된 경우에는 근로계약 갱신거절은 계약기간만료에 의한 계약의 종결이 아니라 해고에 해당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기간제법 제정을 통해 원칙적으로 총 계약기간이 2년 한도로 법제화 되어 위의 ①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②와 ③은 조건부 갱신, 갱신에 대한 기대권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근로자와 사용자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갱신기대권이 인정된 이후 갱신 거절의 합리적 사유>
판례는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이에 위반하여 합리적인 사유 없이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 근로자에게 이미 형성된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를 배제하고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한 데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가 문제될 때에는 다음을 고려하여 판다. ①사용자의 사업 목적과 성격, 사업장 여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 직무의 내용, ②근로계약 체결 경위, ③근로계약의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와 그 운용 실태, ④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지 여부 등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갱신 거부의 사유와 그 절차가 사회통념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한 사정에 대한 증명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한다.”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그 계약을 갱신 거절하는 데에는 해고 제한의 기준인 정당한 이유보다는 완화된 기준인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합리적 사유가 있으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갱신기대권을 대체할 수 있는 합리적 사유를 제시하거나 갱신기대권이 소멸했다는 사실을 제시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계약갱신 거절에 합리적 사유가 없는 경우
(i) 근로자 A는 2010년 10월26일 부터 2012년 10월25일 까지 2년을 기간으로 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A가 회사와 합의한 근로계약에 따르면, 근로계약 만료 1개월 전에 재계약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근로계약 만료 1개월 전인 2012.9.24 회사는 A에게 근로계약 만료일인 10월25일자로 근로관계를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회사는 근로계약 해지사유로 ‘인사평가 결과가 좋지 않다’고 A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당시 회사의 인사평가 기준은 모호했고 객관성도 떨어졌다.
(ii) 회사는 실업자의 사회적 일자리 지원사업 등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이고, 근로자는 2010년 10월26일 입사하여 사회적 기업 설립지원팀장 등으로 근무하였다. 재단법인은 2012년 9월24일 근로자에게 2012년 10월25일에 근로계약 기간이 종료된다는 내용을 통보하였다. 회사는 계약만료 1개월 전, 인사평가를 통해 정규직 전환 여부를 판단하였고, 대상자 4명 중, 본 근로자만 정규직 전환에서 탈락하였다.
(iii)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하여 장애인콜택시 운행에 관한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장애인콜택시의 운행업무를 수행하던 운전자 갑 등에게 계약에서 정한 위탁기간이 만료되었음을 이유로 갱신계약 체결 대상자 선정을 위한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 운영계획에 계약기간을 1년 단위로 갱신하도록 하면서 그 취지가 부적격자의 교체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장애인콜택시 사업을 한시적·일시적 사업이라고 볼 수 없는 점, 위·수탁 계약에서 위탁기간 연장 규정을 두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시설관리공단 소속 운전자들 에게는 기간제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본다.
(2) 기간제 2년 한도의 예외직종의 경우에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된 경우
(i) 이 사건 원고(사내변호사)의 경우 근로계약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나, 원고가 5년간 4회에 걸쳐 근로계약을 갱신하면서 근무하였고, 방송국 운영을 위하여 상시적, 지속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그동안 사내변호사들이 스스로 계속 근무를 희망하는 한 근로계약이 갱신되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었다면 원고는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합리적 기대권을 가진다.
(ii) 피고인 김천시는 2004년 12월1일부터 원고들을 교향악단에 비상임 단원으로 위촉해 2년 단위로 위촉계약을 체결하고, 기간만료까지 정기평정을 통해 수 차례 재 위촉해 왔다. 그런데 김천시는 갑자기 2011년 1월 위촉기간 만료 후 원고를 재 위촉하지 않았다. 김천시는 최종 위촉계약 만료 전 신규전형을 통해 단원 선발을 결정하고 2011년 11월 김천시 시립예술단 모집공고를 냈다. 그리고 원고들에게 해당 신규전형에 응시하도록 했다. 공통응시자격요건에 ‘공고일 현재 주소가 대구, 경북으로 되어 있는 자’가 추가 됐다. 이로 인해 당시 주소가 서울, 밀양, 부산이던 원고들이 응시자격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합격했고, 김천시는 갱신을 거부하였다.
(iii) 골프장 S사는 원고들과 2011년 10월 근무기간을 1년으로 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2014년 2월까지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골프장 코스관리팀 사원으로 일하였다. S사의 정년은 만 55세였는데, 원고들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이나 계약기간 중에 이미 정년에 도달한 상태였다. S회사는 2014년 3월 원고들과 다시 근무기간을 1년으로 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듬해인 2015년 1월 원고들에게 계약기간이 2월에 만료된다고 통보하였다. 원고들에게는 정년이 도과하여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 갱신거절의 정당한 이유를 찾아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근로계약 종료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3) 갱신기대권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
(i) 원고들은 2008년 6월19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계약기간을 2008년 12월31일까지로 하여 상근전문위원으로 채용되어 근무하다가 2008년 12월 경 다시 계약기간을 2009년 1월1일부터 2009년 12월31일까지로 하여 전문자문위원으로 근무하였고, 동년 12월31일 계약기간 만료로 퇴직하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해당직군 채용공고를 내면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무기계약 전환대상자는 아님’ 이라고 공고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갱신기대권이 없다.
(ii) 현대자동차는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면서 짧게는 2주일에서 많게는 6개월 단위로 14회에 걸쳐 근로계약을 반복하여 사용하다가 2년이 되는 시점에서 계약만료를 통보하고 2015년 1월31일에 계약갱신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원은 기존의 다른 기간제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변경된 전례가 없었고, 업무가 상시적 계속적으로 필요하지만 정규직 근로자의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한 한시적 업무로 판단하여 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에 대한 조건을 제시한 근로계약의 문구 등이 있거나, 갱신될 수 있다는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경우, 상시 지속적 업무의 경우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하더라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 특히, 기간제법의 예외 대상인 전문직 근로자, 정년 이후의 근로자 등의 경우에도 갱신기대권이 성립할 수 있으므로, 상시 지속되는 업무는 가급적 정규직으로 활용하고, 일시적인 업무나 갱신기대권이 성립하지 않는 업무에 한해서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