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천재: 인공지능 시대, 천재는 무엇이 다를까?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천재: 인공지능 시대, 천재는 무엇이 다를까?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강의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가장 많은 메모를 한 사람도, 가장 빨리 답을 찾은 사람도 아니다.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다. “교수님, 이 문제는 기술보다 인간 이해의 문제 아닐까요?” 나는 그런 질문 앞에서 자주 멈춘다. 강의자료를 정리하던 손이 멈추고, 노트북을 덮게 된다. 배움의 깊이는 속도가 아니라 질문에서 드러나는구나. 그 깨달음이 나를 멈추게 할 때마다, 인공지능 시대의 천재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도 한때 천재를 ‘많이 아는 사람’으로 상상했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계산이 빠르고, 남보다 먼저 정답을 내놓는 사람. 시험지를 먼저 뒤집어 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아이 말이다. 물론 그런 능력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요약하고, 문장을 만들고, 문제 해결의 초안까지 내놓는 시대가 되면서 질문 자체가 달라졌다. 많이 안다는 것만으로 천재를 설명할 수 있던 시대는 조용히 끝나고 있다. 이제 검색창에 세 단어만 입력하면 웬만한 전문가의 한 시간 강의 분량이 5초 안에 정리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많이 아는 것’은 더 이상 경이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천재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그 차이가 정답의 양이 아니라 질문의 깊이에 있다고 본다. 

AI는 이미 정보 검색과 패턴 분석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왜 그 질문이 중요한지, 그 답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무게를 갖는지는 끝내 기계의 몫이 아니다.

기술은 정리할 수 있어도, 의미까지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같은 AI를 써도 차이는 뚜렷하게 갈린다. 누구는 자료를 빠르게 정리하는 데서 멈추고, 누구는 거기서 전혀 다른 문제를 발견한다. 같은 논문을 읽어도 누구는 요약에 만족하지만, 누구는 “왜 우리는 이 문제를 이렇게만 보아왔을까”라고 되묻는다. 나는 이 차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얼마 전 한 특강에서 쉰이 넘은 제조업 대표가 질문을 던졌다. AI로 공정 불량률을 줄이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그분은 엉뚱한 방향에서 물었다. “교수님, 불량률을 줄이면 사람을 줄이라는 말이 꼭 따라오거든요. 그 순서를 바꿀 수는 없을까요?” 강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옆자리 젊은 엔지니어가 고개를 돌려 그 대표를 바라봤다. 아마 처음으로 효율이 아닌 다른 질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 질문에는 수십 년을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버텨온 사람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날 강의가 끝나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도 그 질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분이 계산을 못 해서 그런 질문을 던진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계산 끝에, 계산만으로는 안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다.나는 그날 이후로 천재의 기준을 좀 더 분명하게 다시 세우게 되었다.

천재란 남보다 빨리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본질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이다.

삶을 오래 통과한 사람들은 질문이 다르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기술이 정말 현장을 바꾸는가, 아니면 겉모습만 바꾸는가?” “사람을 살리는 방향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 이런 질문은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을 겪고, 실패를 견디고, 현장에서 오래 부대낀 이들의 내면에서 나온다. 어쩌면 주름 하나하나가 질문의 이력서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이야기가 기존 교육의 가치를 낮추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초지식은 여전히 중요하고, 훈련된 사고는 여전히 필요하며, 교육의 역할은 AI 시대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해졌을 뿐이다.

지식 위에, 그 지식을 어디에 연결할지, 누구를 위해 쓸지를 묻는 힘까지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교육이 지금까지 훌륭한 악기를 만들어왔다면, 이제는 그 악기로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지까지 함께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정답을 버리는 데 있지 않다. 정답 너머의 질문까지 품게 하는 데 있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AI가 점점 정교해지면 질문을 만들고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일까지 기계가 더 잘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타당한 지적이다. 실제로 AI는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한 패턴을 찾아내고, 뜻밖의 조합을 제시하며, 때로는 놀라운 결과를 내놓는다. 나도 강의를 준비할 때 AI의 제안에 무릎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솔직히 “이건 내가 못 이기겠는데”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남는 것이 있다. 어떤 질문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인가. 무엇을 위해 지식을 쓸 것인가. 어디까지를 가능이라 부르고, 어디서부터를 책임이라 부를 것인가. 이것은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선택에는 언제나 그 선택을 감당할 한 사람의 얼굴이 따라붙는다. 아까 그 제조업 대표의 질문이 무거웠던 것도, 계산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책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AI는 불량률 0.01%의 최적해를 찾아줄 수 있다. 그러나 그 0.01%를 위해 누군가의 자리를 없앨 것인지 말 것인지, 그 결정 앞에서 밤잠을 설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천재는 혼자 모든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더 자주 놀라고, 더 깊이 묻고, 더 넓게 연결하되, 그 끝에서 사람을 향해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다. 남보다 먼저 계산하는 사람보다 남이 놓친 인간의 얼굴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 지식을 뽐내는 사람보다 그 지식이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끝까지 따져 묻는 사람. 나는 그런 이가 앞으로 더 귀해질 것이라 믿는다.

오늘의 작은 실천은 단순하다.

누군가의 답을 평가하기 전에, 그 사람이 던진 질문 하나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다. 듣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듣지 않는 데는 꽤 큰 비용이 든다. 그 질문 속에 혹시 천재의 씨앗이 들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까.

어쩌면 미래의 천재는 가장 빨리 대답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질문한 사람일지 모른다.

 

▲사진=구글 제미나이(나노바나나2)가 생성한 이미지 – 협력의 천재성: 인간 두뇌에서 흘러나온 아이디어가 AI 요소와 상호작용 ⓒ강남 소비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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